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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家好(다들 안녕하세요?)
송미경 집사(중국 대련에서)
중국 대련공항에서 필리핀 탑승을 30분 앞두고 김 모 집사님에게서 온 카톡 메시지. ‘(중략) 집사님 중국 생활 글 한 편 보내주세요. 오렌지 목마릅니다. 진짜로 진짜로….’ 얼마나 목마르면(?) 멀리 있는 나에게까지 원고 요청을 하시나 하는 생각 하나, 글은 어떻게 써보겠지만, 필리핀에 한 달 동안 머물 예정이라 사진은 어떻게 첨부하나 하는 또 다른 걱정 하나, 여호와 이레 하나님. 이번 여행길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동저장 매체를 챙겼다. 챙기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정말 처음이었다. 아울러 양해를 구하자면, 이동저장 매체에 있는 사진은 중국생활 첫해에 찍은 것들이라 중국생활을 온전히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중국에 온 지 한 달이 지났을 때쯤 정전을 경험했다. 문 앞에 미리 전기요금 납부에 대한 공지가 붙어 있었음에도 까막눈이라 안일하게 대처했던 까닭이다. 하루 이틀 정도 납부가 늦어져도 괜찮겠지 싶었지만, 느슨한 내 생각과 달리 아주 단칼에 전기를 끊어버렸다. 가스 사용이나 난방, 휴대폰 사용도 금액을 미리 충전하거나 납부해서 쓰는 방식이라, 충전해둔 금액이 떨어지거나 미납되면 그 즉시 사용불가이다. 야속하다 싶으면서도 미납되는 경우는 없으니, 세금을 거둬들이는 입장에서는 편리하고 합리적인 것 같다.
중국에 온 첫해 아침 출근길, 아파트 문을 나서는데 대포 소리가 났다. 어디서 전쟁이 났나 싶어 마음이 조마조마한데, 주변 사람들의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며칠이 지나서야 그게 폭죽 소리인 줄 알았다. 중국은 폭죽사용을 많이 금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개업이나 결혼, 사망, 각종 절기 때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 그 소리와 양이 어마어마하다. 바로 옆에서 터지기라도 하면 기절초풍한다. 일반적으로 마트에서 파는 대형 두루마리 한 봉지만 한 크기의 상자 폭죽이 몇 개씩 터지니 상상은 각자에게 맡긴다.
결혼 이야기도 한 번 해볼까? 워낙 넓은 나라인지라 지역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이곳은 청첩장을 손 글씨로 직접 써서 지인들에게 나누어준다고 한다. 같이 근무하던 한족 강사 선생님의 결혼식이 주일이라 예배 때문에 참석할 수 없어서 개인 축의금만 미리 전달했더니, 특별히 나에게 손으로 직접 쓴 청첩장을 주었다. 결혼식 당일에는 악한 것들을 막기 위해 살고 있는 아파트 주변의 맨홀 뚜껑은 모두 빨간색 종이로 막아버린다. 또 축의금은 꼭 빨간색 봉투에 담아서 전달해야 한다. 흰색 봉투는 장례식에 사용한다고 들었다. 결혼식을 하는 집안에서는 많은 돈을 들여서 아주 비싼 외제차들을 대여한다고 들었다. 실제로 결혼식이 있는 날이면, 도로변에 아주 비싼 외제차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얼마나 많은 외제차를 가지고 오는지 보여줌으로써 그 집안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진으로 보여드리지 못해서 아쉽다.
중국에는 외관이 훌륭하고 조경은 공원 못지않은 아파트들이 많지만, 화장실 변기나 배수관이 자주 막혀서 불편함이 있다. 또한, 한족이 사는 집의 싱크대는 한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작아서, 여섯 식구 먹은 식기들을 집어넣을 수가 없다. 설거지하려면 싱크대 주변에 식기들을 늘어놓고서 하나하나 차례를 정해 씻어야 하므로 시간이 많이 소모되고 효율성에서도 떨어진다.
바깥 출입문은 한국과 달리 문을 닫는 순간 자동으로 닫히게 되어 있고 닫히는 순간 잠기게 되어 바깥에서 열 수가 없다. 집에 오신 손님을 배웅하러 가거나 엘리베이터에 짧은 볼일이 있을 때라도 열쇠를 꼭 소지하지 않으면 열쇠업자를 불러야 하는 경우가 잦다. 자주 깜박깜박하는 우리 부부는 중국생활 초반에 열쇠업자를 자주 불러야 했다. 열쇠업자를 한 번 부를 때마다 지급하는 비용이 100원~120원(한국 돈 18,000원~21,000원 정도)으로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아예 비상 열쇠를 학교에 하나 보관해두고 있다.
또한, 중국은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이라도 주인이 건물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채우느냐에 따라 집집마다 모양새가 제각각이다. 집주인이 가구나 가전제품을 모두 비치해두고서 임대를 하기 때문에 임차를 하는 입장에서는 그냥 들어가서 살기만 하면 된다. 가구나 가전제품의 브랜드 수준이 어떠한지, 살림을 어느 정도 갖추어 두었는지에 따라 임대료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6명이 살기에는 집이 좁고 수납공간도 여의치 않아서 2년을 살다가, 2014년 4월에 처음으로 이사했다. 집을 계약할 때 한 달 월세만큼 보증금으로 지급하는데, 집주인들은 온갖 트집을 잡아서 보증금을 안 돌려주려고 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여럿 보았다. 더구나 우리 집은 어린아이들이 4명이나 있어서 2년 동안 집을 많이 망가뜨린 상황이라 보증금을 돌려받기는커녕 오히려 추가 금액을 지급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사 나가던 날 집주인에게 집을 보여드리면서, 우리가 망가뜨린 것을 일일이 정직하게 설명하며 보여드렸다. 그런데도 보증금의 50%를 돌려주셔서 깜짝 놀랐다. 너무 뜻밖이기도 했고, 주인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우리가 바로 옆 아파트로 이사를 가니 혹시라도 또 다른 문제가 발견되면 돈을 더 드릴 테니까 전화를 달라고 말씀을 드리고 이사를 왔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화는 오지 않았다. 보증금 받으려고 집주인에게 꼼수 부리지 않고, 오히려 정직하게 행동했더니 예상치 않은 좋은 결과를 얻었다.
새로 이사 간 집은 중국에서 보기 드문 욕조가 딸려있고, 수납공간도 넉넉하며, 냉장고도 예전 집보다 넉넉해서 마음에 들었다. 출입문에는 붉은색의 ‘福’자가 커다랗게 붙어 있고, 집안에 들어서자 배수구를 비롯한 모든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인위적으로 막혀 있었으며, 부엌에는 신줏단지도 놓여있었다. ‘福’자는 중국의 거의 모든 출입문에 빨갛게 붙어 있으며, 복이 쏟아져 들어오라고 글자를 거꾸로 붙여둔 곳들도 있다. 복이 어디에서 어떻게 들어오는지를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왜 이렇게 불편하게 사나? 왜 이렇게 두렵게 사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福’자를 떼어내고, 구멍을 막은 비닐들을 걷어내며 신줏단지를 버렸다. 대신 새로운 처소를 두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니 간편하지만 든든해서 참 좋다.
중국은 중앙난방이라 보통 11월 15일경 전후하여 일제히 난방이 시작되고, 4월이 시작되면 일제히 난방이 끊어진다. 대련은 중국의 동북지역이라 매서운 바람과 추위를 견뎌야 하고, 특히 4월이나 10월에도 여전히 춥기 때문에 전기장판은 필수품이다. 식구가 많은 탓에 한국에서 대형전기장판을 사 왔지만, 6명이 드러누우면 다닥다닥 붙어야 한다. 가족이 더 가까이 얼굴을 마주할 수 있어서 참 좋다. 저녁에 나란히 누웠다가도 아침이 되면 제각각 흩어져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은 장판 바깥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다. 나는 몸이 부실한지, 전기장판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기라도 하면 다음 날 아침에 그 부분만 특별히 쥐가 나서 고생을 한다.
지난여름에는 가족이 톈진과 북경 여행을 했다. 톈진대학교에서 근무하시는 조선족 교수님의 도움으로 톈진에서는 가족끼리 자유여행을, 북경은 편의를 위해 유명한 한국여행사에 합류했는데 여행의 수준과 질의 차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북경에 도착해보니, 여행사에서 개인에게 요구하는 별도의 입장료가 코스별로 2~3배인지라, 중국에 살고 있어서 현지 물가를 잘 알고 있으니 여행사에서도 적당하게 수익을 남기는 선에서 입장료를 할인해 달라고 살짝 비밀스럽게 부탁을 드렸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오히려 단체 관광에 참여한 모든 사람 앞에서 마이크 들고 말하기를 한 명이라도 동의하지 않고 코스에 빠지게 되면 그 코스는 아예 가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가이드는 터무니없는 압력을 행사했다. 다른 관광객들은 사정을 모르고 있는데 우리가 사정을 얘기하면 여행사에 영업방해가 될 테고, 우리 가족만 빠지겠다고 하면 다른 분들에게 민폐가 되기에 무척 난감했다.
중국에서는 장소에 따라 키가 120cm 또는 130cm 이하인 경우는 대부분 무료입장이고, 학생에게는 반값 또는 2/3 가격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매표소 앞에 붙은 내용도 직접 확인을 했지만, 사정을 전혀 모르는 다른 관광객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모른다면 차라리 나을 듯 아이들 입장료까지 성인요금의 2~3배를 지급하자니 속이 상했지만, 나중에는 무덤덤해졌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식사였다. 대련에서 중국음식점을 대충 다녀본 나로서는, 가이드가 데리고 가는 식당마다 식당의 수준이나 음식의 맛에서 기가 막혔다. 북경의 카오야(오리고기)는 중국음식의 별미라고 들어서, 괜히 다른 곳에서 어쭙잖게 먹고 선입견이 생기지 않도록 꼭 북경에서 먼저 맛보아야겠다고 미루고 있었는데, 가이드를 따라간 식당에서 내온 북경 카오야를 보고서는 할 말을 잃었다. 여행사도 수익을 남겨야 하니 그러겠지 이해하면서도, 5성급 호텔로 한국 관광객들을 호객하면서 그 이면에는 터무니없는 바가지요금을 받고, 물품 판매를 위해 문화유산은 대충 돌고, 중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먹지도 않는 저급한 식당으로만 도는 것을 보면서 한탄을 금치 못했다.
중국에는 유네스코선정 세계문화유산이 꽤 많은데, 그것도 사전에 읽은 중국여행책자를 통해서였고 가이드를 통해서는 듣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나는 교실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식견이 좁은 우물 안 개구리이다. 그런 개구리에게 보이는 중국은 중국에 온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부터 정치, 경제, 문화, 군사, 외교면에서 정말 위협적이고 무서운 나라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에 반해 우리 가족이 함께 여행했던 단체여행객들의 말투나 얼굴에서는 아직도 중국에 대해 경시하는 마음들이 살짝 엿보였다. 짧게 스쳐 가는 만남이라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중국을 제대로 못 보고 가시는구나 하는 마음에 안타까움이 들었다. 여행사 나름일 수도 있고, 중국을 보는 시각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혹시 중국여행을 계획하시는 분이시라면 가이드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중국이 전부가 아님을 꼭 아셨으면 좋겠다. 아울러 짧은 지면을 통해 내가 적는 글 또한 개인적인 근황에 불과함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지원이는 중등부 9학년, 예원이와 정원이, 주원이는 초등부 6학년과 4학년, 그리고 2학년이 된다. 엄마 입장에서는 한 학교에서 아이들 얼굴을 볼 수 있으니 참 기쁘고 감사한 일이지만, 교사 자녀라서 받는 불필요한 눈치나 오해가 생겨서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학교에서 만나는 우리 집 아이들에게는 아주 까다롭게 한다. 학교에서의 호칭은 반드시 송미경 선생님으로 할 것, 용돈이나 필요한 준비물은 집에서 미리 갖추도록 하고 학교에서 절대로 요구하지 말 것,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사나 궁금한 것들은 반드시 담임선생님에게 질문할 것 등이 그것이다. 어떤 때에는 다른 아이들에게 실컷 먼저 인사하면서 복도를 지나왔다가, 아차! 그 무리에 같이 있던 우리 집 아이에게는 눈길도 한번 안 주고 왔구나 싶을 때도 있다. 자녀가 있는 학년은 담임을 못 하므로 선택할 수 있는 학년의 폭이 좁은 것이 아쉽지만, 이제는 이곳에서 가르치는 일들에 익숙해져 있다.
교무실 풍경은 글로벌하다. 한국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중국어부 선생님들이, 오른쪽에는 영어부 선생님들이 계셔서 3개국 언어가 오고 간다.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오신 요한 선생님과 수산 선생님 부부는 연세가 많으시지만, 서로 존중하며 챙겨주는 모습이나 아이들을 대하는 사랑과 열정이 남다르시다. 더구나 두 분 모두 신실한 크리스찬이셔서, 서로 다른 문화를 초월하여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좋다. 암튼 내가 지금까지 본 외국인들 중에 최고다. 짧은 영어 때문에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서 아쉬움이 크다.
하나님의 은혜로 대련 한국국제학교에서 근무한 지 3년이 되었다. 주재원 자녀들이 대부분이지만, 요즘 중국 내 외국인이 경제활동을 하기에는 녹록지 않은 점들이 많아서 속속들이 귀국하는 탓에 학생 수는 급격히 줄고 있다. 내가 이곳에 도착할 때만 해도 학년별 2개 학급이었는데, 이제는 한 학년에 한 반만 운영되고 있다. 이곳의 입학조건은 반드시 Z비자를 갖추거나 거류증이 있어야 하므로, 아버지는 한국으로 돌아가셨는데도 자녀의 교육을 위해 어머니께서 유학비자로 거류증을 얻어 간신히 견뎌내고 계시는 분도 있다. 중국에서 사업해 볼 요량으로 작년에 캐나다에서 오셨던 한국인 장로님은 두 달 동안 시장조사며 행정절차를 이래저래 알아보시다가 결국 만만치 않은 중국시장을 포기하고 돌아가셨으니 그 사정 알 만하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33:19)
1년 더 근무하고 나면, 다시 재계약을 해서 연장근무를 할지 한국으로 돌아갈지를 결정해야 한다. 한국보다 턱없이 적은 임금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도 사회보장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수입의 25%는 세금으로 내야하며 하루가 다르게 급격히 상승하는 이곳 물가와 집값 때문에 경제적인 여유는 없지만, 네 명의 아이들이 이곳을 무척 좋아하는데다가 어느덧 이곳에서의 삶이 익숙해지고 편안해져서 어떤 결정이든 쉽지 않을 것 같다. 새로운 꿈과 비전을 품고 나아가는 남편의 일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능력 이상으로 나를 사용해주셨고 예비해주셨다. 언.제.나.처.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실, 내 인생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향해 시선을 고정해두고 싶다.
※ 3년 동안의 중국 생활 중에 무엇을 글로 쓸까 짧게 고민하다가, 지난번에 간증했던 부분은 제외하였습니다. 글을 쓰고서야, 3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음을 느끼게 됩니다. 늘 존경하고 사랑하는 천석길 목사님, 어느 곳에 가든지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구미남교회, 눈에서 멀어져 있지만, 마음은 늘 함께 하고 싶은 모든 성도님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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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영주 집사님~~ 글이 너무 길어서 사진이랑 디자인 하면서 4P~5P분량으로 끊어서 이번호에 실어 주세요
연재형식으로 마지막에 행복한 중국 생활 다음호에 계속~ 이란 문장을 넣어 주시면 될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