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돌猪突의 미학 외 3편
윤 은 경
굶주린 멧돼지가 느닷없이 도심에 출몰했다
겁많은 그를 겁 없이 만든 것은 저돌성이다 자신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을 들이받는다 몽매해서가 아니다 좋지 않은 시력 대신 천혜로 받은 예민한 후각과 청각 덕분이다
아름다움은 무목적의 목적에 있다는 어느 철학자의 설파도 있었지만, 앞뒤 없이 제멋대로 내달리는 저돌의 미학은 무거운 몸뚱이를 탄탄히 떠받치는 타고난 잡식성에 있다 철사처럼 억센 털과 날카로운 엄니, 둘로 갈라진 발굽 사이에 잡식을 위한 필사의 저돌이 숨어 있다
거친 자연 대신 인공자연을 서식지로 삼은 저돌을 한낱 짐승의 것이라 폄훼하지 말라 저돌의 식성은 인간의 땅에서도 시대에 최적화된 생존의 근원이다
부끄럽게도
연약하고 부드럽고 낭창낭창 잘 휘어지는 시의 미학에는 뻔뻔함에 맞설 저돌이 없다
사소한, 너무나 사소한
해종일 리모콘 버튼을 눌러 터뜨린다
모자탄 볼폭탄 파인애플폭탄 이름도 생소한 진공폭탄
티비에 잡힌 멀고 먼 나라의 무성한 포연
지상의 것들을 가볍게 하늘로 휘말아 올린다
나는 화면 밖에서 안전하다
슬픔이 줄지어 떠다니는 밤이다
기나긴 대오를 지어 구령에 맞추어
아득한 삼도천 건너간다
우기도 아닌데, 나의 창밖에는 씨알 굵은 빗줄기
치맛자락 펄럭이는 소리를 내며 지루한 길을 간다
이 비 그치면
덜그덕 덜그덕 꽃들 피어나겠지
채널을 돌리면 되새김질하는 낙타의 멍한 눈
지평선 저쪽으로 먼저 떠난다
이제 뉴스 좀 끊어! 반쯤 녹아 소파에 걸쳐져 있는 내게
너는 소리를 지른다
그래, 상인의 손에 엮여 걷는 슬픈 짐승에게
여기도 안전하지는 않다
순해져야 한다 독하게 순응해야 한다
그래야 산다
죽음에 닿는 권력의 꽃탄두
언제나 슬프다
중독된 중독
달
달을 지나가는 구름들
오렌지 혹은 오랑쥬
노란 장미 혹은
오래 간직해온 백자 화병의 마른 꽃
열리자마자 닫는 문
발밑에서 부드럽게 뭉개지는 어둠
밤을 노리는 고양이
푸른 발톱
어둠 속에 익사하는 너의 숨소리
도로 위에 나뒹구는 신발 한 짝
굳은 성대
입 다문 조개, 조개들의 무덤
사건화되지 않는 사건들
경전을 짊어지고
수천 년 전부터 오고 있는
낙타의 오른발과
끝내 뒤따라오지 못한 왼발 생각
광풍이 휘젓고 간 고목의 마지막 잎새
매일매일 시간이 지나온 길을 닦으며
발효되는
슬픔 없는 눈물
우크라이나 애가(哀歌)
1. 키이우
깨진 벽돌로 경계석을 두른 엄마의 무덤 곁
눈물도 없이
모든 감정이 떠나버린 늙은이
여섯 살 블라드가 우두커니 서 있다
겨우 살아남아
숨죽여 떨고 있는
벌거벗은 목숨
누구도
영문도 모른 채 죽음에 뜯어먹힌
사람의 길을 묻지 못한다
회색 하늘 아래
배고픈 구름장들 더 많이 모여들고
누가 열어 놓았나
살아서는 아무도 이 문에 들지 못한다
2. 부차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주검들이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다
얼마나 많은 표정들이 밀봉된 것일까
탐조등을 아무리 쏘아대도 흑암의 잿더미를 아무리 들쑤셔도
찾아내진 못하리
삼키는 듯 뱉는 듯 반쯤 벌린 입가에 굳기름처럼 엉긴 소리
듣지는 못하리
캄캄한 대낮, 엎드리거나 누운 침묵의 일렬 대오
서성이며 배회하는 죽음들
징검돌처럼 놓인 이 다리 건너지 못하리
인류여 이 세계엔 출구가 없다
사막 늑대처럼 바람만 재빠르게 빠져나간다
<등단작>
봄-나무-희망
대지 위에 발을 붙이려 저 푸른 알들은
얼마나 큰 열망으로 매달리는 것일까
오랜 추위에 문 닫았던 그의 공장에 불이 켜졌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얼음조각들을 나르는 것이리라
가벼운 깃털 위로 폭포처럼 쏟아지는 불비를 맞으며 실핏줄들 벋어간다
덮어두었던
추억의 내부가 축축하다
-나는 점점 시간 속으로 파고들지요
시간에게도 체온이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먼지에 덮인 물기둥 뒤틀린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푸른 연기, 부화하는 푸른 잎들
새의 날개로도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눈부신 죄로 사무친 몸 끌어간다
<산문>
유령의 언어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산업사회의 일상의 삶은 소소하고 또 지루하다. 사회와 국가와 자본의 힘이 위력적으로 작동하면서 개인의 삶의 전반을 규율하고, 개인들은 왜 올라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오르고 올라야 하는 관성을 습관화 시킨다. 매일 쳇바퀴처럼 일터로 나가고 지루하게 업무를 보고 돌아와 잠을 자는, 일상성 속에 인간을 구겨넣는다. 그날이 그날인 오늘들은, ‘잘 짜인 계획표’ 대로 노동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빌딩 숲으로 함몰된다.
매일 피로와 권태에 지친 몸을 실어나르는 지하철 유리창에 누군가가 끼인 채 죽어 나간다 해도, 물샐 틈 없이 잘 짜인 계획표대로 오늘을 수행해야만 한다. ‘무엇이’ ‘왜’ 그토록 가볍게 한 죽음을 초래했는지, 얼마나 쉽게 한 죽음과 슬픔이 봉합되고 봉인되어버렸는지를 따져 묻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슬픔과 안타까움과 분노와 무관심 등의 감정들은 처참한 얼룩의 현장을 말끔히 지우고,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을 지속한다. 설령, 모순투성이인 삶인 것을 깨닫는다고 해도 이를 부정하고 노동-기계로서의 삶을 벗어나는 순간,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일상은 깨어지고 현실사회로부터 처절하게 도태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삶이 사회적 삶의 모든 것이 되어버렸다.
일상성에 함몰된 자신을 발견하고 일기장을 펼치는 일 따위는 현재를 살아가는 데 크게 유용하지 않은 듯이 보인다. 시시때때로 엄습해오는 씁쓸함과 자괴감들은 키 높은 건물이 조각낸 하늘 한 귀퉁이라도 치어다보며 한숨을 내쉬고, 영혼이 빠져나간 허깨비 언어로 조각난 감정들을 토로하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 지구 저편 어디선가 누군가가 집단으로 죽어 나가고, 누군가의 광기로 인해 영문도 모른 채 주검으로 변해 구덩이에 처박힌다 해도 공명이 되지 않는 저 먼 나라의 일로 치부된다. ‘각자도생’의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언어도 점점 고독해져 간다. 누군가의 슬픔과 고통에 공명하던 시의 언어들은 감정을 잃고 메마르고 고독한 유령의 언어가 되었다. 사람들은 좀처럼 흥분하지도, 움직이지도 않는다. 움직인다 해도 자신의 감각과 감정에만 충실하면 그만이다. 스테판 메스트로비치는 이전 시대라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사건과 위기에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는 사회를 ’탈감정사회‘라 불렀다.
작금의 탈감정의 시대에 나는 내 시의 언어를 어디에 놓아야 하나. 나는 내 언어의 오랜 수형생활을 반성한다. 오래도록 나는 인공 아닌 자연 속에 내 시와 삶을 놓아두고자 했고, 퍽하고 울음이 터지는 삶의 육성들을 외면해왔다. 거칠고 투박한 말의 질감을 느껴보고 싶다. 자신의 슬픔을 감히 내놓지도 않을뿐더러 타인의 슬픔에도 손을 내밀지 않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아직은 내 시의 언어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메마르고 건조한 감정의 묵정밭에서는 어떤 생명도 싹을 틔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
부암동 외 3편
장 승 진
부암동 길모퉁이에서 비를 맞았습니다
평온하던 하늘이 갑자기 표정 바꿔
생각난 듯 젖은 말들을 쏟았습니다
나 그 말들 온전히 듣기 위해
우산도 쓰지 않고 천천히 걸었습니다
함부로 찢어버린 흑백 사진처럼
먹구름 한쪽 귀퉁이 너덜거리고
이별 편지 담긴 봉투 속에서
날카로운 글자들 구르는 소리 들립니다
쏟아질 듯한 마음 가방에 구겨 넣어
힘겹게 지퍼를 끝까지 밀어 올리고
두 어깨로 그 무게 받아냅니다
흙 비린내처럼 내 몸 적시는 것들을
더는 추억이라 부르지 않겠습니다
창의문 근처 젊은 모습 그대로인 채
기억되는 시인의 육필 원고 옆에
편지 봉투를 올려놓고 나옵니다
나중에 다시 찾아와도 그 글자들
시인의 원고처럼 계속 고뇌하고 있을까요
서울의 옛 경계 나타내던 관문이
그때도 지금처럼 아름답기만 했을까요
풀리지 않는 생각들이 자꾸만 쌓여
오르막이 더 가팔라 보이기도 했습니다
운길산에 올라
추억을 더듬어 산을 찾았습니다
비탈진 산길을 오르는 도중
당신의 기억이 돌멩이처럼 밟혀
자꾸 미끄러지며 수종사로 향합니다
불이문과 돌계단까지 무거웠던 마음
해탈문 지나 잠시 내려놓고
허리 숙이고 호흡 가다듬으며
그 앞에 펼쳐진 조망 바라보니
멀리서 석양에 물든 양수리가
눈물로 반짝이며 말하고 있습니다
각자 외로이 흘러온 물줄기가
어떻게 만나 하나를 이루는가를,
나 거기서 잠시 생각이 깊어져
내게 부족했던 것들 떠올리는 동안
방금 앉았던 새 날아간 나뭇가지처럼
마음이 다시 흔들리는 것 느낍니다
옥탑
지난 여름 세들어 살던 더위가
밀린 방세 내지 못해 쫓겨난 뒤로
옥탑에 어린 풀들 새로 이사와
아래층에 머리 숙여 인사한다
얼마 전 바람이 가을을 데려와
집 보여주자 마음에 들었는지
도장밥 묻힌 것처럼 벽돌들 붉다
더위가 남기고 간 군식구 같은
곰팡이 핀 기억 창문 열어 말릴 때
옥탑은 심호흡하듯 어깨를 펴고
마른 빨래처럼 마음이 나부낀다
더는 밀려날 곳 없는 꼭대기
몇 안 되는 이삿짐이라도
오르내리느라 버거웠을 철제 계단
햇볕이 손잡이 잡자 삐걱거리지만
녹슨 나사로 희망을 조인 채 가슴 뜨겁다
짓물러서 고름 나던 상처에
약솜 묻혀 상처 덮었던 구름마저
떼어낸 듯 푸르른 하늘 밑
은밀한 아픔은 단단히 여물어서
낮이면 환한 가시 달린 빛을
옥탑에 밤톨처럼 쏟아낸다
벚꽃
봄은 꽃을 앞세워 찾아오지만
꽃이 진 자리에서 다시 분홍빛으로
부끄러운 얼굴 감싸 쥐고 고개 내민다
빠르고 화려해서 주목받다가
정작 외로울 땐 찾아주는 이 없어도
수줍게 봄을 이룩하는 일 그치지 않는다
태양이 던지는 빛의 그물에
자기 손끝에 지닌 푸른 물고기들 내주고
빈손으로 돌아설 때가 더 아름다운 나무
반가운 사람의 뒷모양은 애잔해서인지
함부로 쳐다봤다가는 눈물 빼놓고야 마는
덧없는 인생을 낙화에 담아내다가
그 이후로도 생을 지속하며 후일담도 없이
꽃잎 떨어진 자리에 삶의 부표를 세운다
그동안 나는 제대로 피지 못해
화려하지도 못했던 꽃들을
여기저기 바쁘게 떨어뜨리며
나의 봄을 뽐내는 것에만 신경 쓴 채
떨어진 꽃들 사그라들기 전
거기 닻을 던져 봄의 깊이 가늠해보려
끝까지 내려가 본 적 없었다
ㅣ등단작ㅣ
반지하의 아침
한 여자, 가스레인지 앞에서 까만 머릿결을 추스르고 있다 불끈 일어나 뒤에서 껴안고 싶다 불꽃의 아우성처럼 사랑도 점화된다면 밸브를 늘 열어두어야 하리 파란 불꽃이 신호등을 켜면 마음이 먼저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사 올 때부터 열어놓았던 창에서 추운 입김이 쏟아져 나온다 幻風에 시달린 것일까 손을 뻗자 끄르륵 소화불량이던 창이 트림하며 닫힌다 체증이 내려간 자리는 허전하고 반지하 공기는 커피 맛이 난다 곤두서는 날들, 라면이 부글부글 끓어 넘친다 달아오르지 못하는 것들만 둥둥 떠다닌다 아침인데도 이웃 반지하에서는 새댁의 신음소리가 젓가락질 사이로 들려온다 남들 발자국 높이에는 보이지 않는 확성기가 설치돼 있군 흘리지 않도록 라면을 먹는다 언제부터 이렇게 조심스러웠는지, 창 밖으로 고양이가 살짝 울고 지나간다 순간 젓가락을 내던지고 밥을 다시 얹는다 옆집 냄비가 센불에 끓어 넘치는 소리 들린다
l 대표작 ㅣ
나는 대기가 불안정한 구름
사람들이 밀집한 숲속에
내 비록 나무 한 그루로 서 있지만
나의 본질은 구름이라네
주변의 물방울들 모두 불러들여
가슴과 머리를 채우고 보면
어느새 나는 흐릿해진 구름
그들이 소용없다 버린 오폐수들이
내 아픔의 근간을 이루고
그것들 하나하나가 날 선 진실이 되어
내 구름의 실체를 만들어
뭉게뭉게 피어나던 끝에
불편한 밤 폭우가 되어 내린다네
텅 빈 마음은 다시금
숲속 나무들의 습기로 채워지고
그 지독하게 음습한 기운 때문에
나는 뿌리를 벗어던지고
구름처럼 빙빙 떠돌아다닌다네
비를 내려 구름이 편해질 수 있다면
내리다 그친다 해도 좋겠네
그 뒤로 한결 맑아진 공기와
잠시라도 어울린다면 더욱 좋겠네
물방울이 닿으면 쪼르륵 흘려버리는
젖지 않는 잎을 지닌 나무숲 속에서
나는 대기가 불안정한 구름
<시작 메모>
나는 언제나 덜 유치한 감성시를 쓰고 싶다
내가 본격적으로 시를 쓴 건 제대 후 복학생으로 돌아와서이니 남들보다 많은 늦은 나이였다. 이때 내 시의 주제가 사랑, 이별, 가족사의 아픔 등 대중적이면서 통속적인 것들이었고, 이는 주위 습작생들도 사정이 비슷했다. 하지만 이들이 남의 작품을 연구하며 시의 정통 화법을 받아들여 문단에서 인정받는 시를 쓰게 된 시점까지도 내 시는 처음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스스로 꿇리기도 하고 자괴감과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런 심오함도 창의성도 없는 감성시 같은 잡글을 시라고 여겨 그 매력에 빠져들어 시를 쓸 생각을 갖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내 시의 원동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작품성 뛰어난 시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고 싶은 것을 완성하고 나면 뿌듯하고 행복해서 시를 쓰기 시작했고,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므로 이제 와서 창작 기법을 바꾼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작년에 낸 두 번째 시집(『물은 나무의 생각을 푸르게 물들이고』)은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행복한 시 쓰기 작업의 충실한 결과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설렘도 감동도 없는 직장인으로서의 삶에서 한 발짝도 옴짝달싹할 수 없는 가운데 얻어낸 결실이자 오랜 글 가뭄의 해갈이란 점에서 내게는 의미가 매우 컸다. 나는 말랑말랑한 시가 좋고, 내가 아직 그런 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걱정스러운 점이 있다면 앞으로도 그런 시를 계속 쓸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류의 시는 스킬보다 감정 상태를 고양하는 게 더 중요한데 나도 이제 풋풋한 청년이 아니니 이런 감정 상태에 빠져드는 게 점점 어려워지므로 그걸 분출시키는 기폭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게 시가 되었든 음악이 되었든 소설이 되었든…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시에만 목매달지 않다 보면 또 삶이 시와는 먼,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여전히 할 수 있는 건 대중성 강한 현대 시를 쓰는 일 말고는 없다고 믿으며, 그 믿음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