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7장 한국의 미래, 세계의 미래
6. 해양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엄청난 기회
나는 알래스카 정신이란 말을 즐겨 씁니다. 알래스카 정신이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바다에 나갔다가 밤 열두 시를 꼬박 넘기고 이튿날 새벽에 돌아오는 겁니다. 그날 잡아야 할 책임량을 다 못하면 채울 때까지 고기를 잡아야만 돌아옵니다. 그렇게 지독하게 견디는 법을 배워야만 뱃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고기를 잡는 것은 유람이 아닙니다. 바다 속에 고기가 아무리 지천이라 해도 저절로 잡히지 않습니다. 전문적인 지식과 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물을 꿰맬 줄도 알고 닻줄을 맬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지독한 훈련을 받은 사람은 고기잡이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어디를 가든지 새로운 환경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을 이끄는 리더로 성장합니다. 고기잡이 훈련은 그런 리더를 키우는 일입니다.
바다에서 패권을 쥐려면 세계를 누비고 다닐 만한 배와 잠수함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최고의 조선국입니다. 해양대국이 될 수 있는 실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으므로 이제는 바다에 직접 나가는 사람이 늘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해상왕 장보고의 후예입니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파도와 싸워 이기던 전통이 우리에게 있으니 못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파도를 무서워합니다. 파도는 바람을 타고 물결을 만듭니다. 바람이 불어 바다에 물결이 일어야 바다 속에 산소가 생깁니다. 바람이 불지 않고 물결이 없는 잔잔한 바다가 계속되면 바다는 죽고 맙니다. 파도가 귀한 것을 알고 나면 더 이상 파도가 무섭지 않습니다. 거센 바람이 불고 파도가 사나워도 그것이 바다 속의 고기들을 살리는 길인 것을 알면 오히려 그것을 바다의 매력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바다 밑으로 30미터만 내려가도 파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잠수함을 타고 바다 밑으로 내려가면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선선합니다. 적당한 온도의 잔잔한 물 속에서는 온갖 고기들이 떼를 지어 몰려 다니며 춤을 춥니다. 마치 리틀엔젤스처럼 색색이 예쁜 옷을 입고 살랑살랑 지느러미를 흔듭니다. 그렇게 고요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곧 올 것입니다.
해양시대가 다가온다는 것은 우리나라에 세상을 바꿀 기회가 온다는 말입니다. 모든 생명체를 양육하고 품어주는 바다는 여성을 상징합니다. 반대로 육지는 남성을 상징하지요. 바다에 떠있는 섬나라는 여성을 나타내지만 대륙의 끝자락에 붙은 반도 국가는 남성을 나타냅니다. 반도 국가의 국민들은 바다와 대륙의 온갖 적들의 침입에 대비해서 살아온 터라 남달리 용맹하고 민족성이 강인합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와 같은 반도 국가에서 인류의 문명이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대륙으로 뻗어나가고 거친 해양을 헤쳐나가는 진취성과 강인한 탐험정신이 있었기에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울 수 있었습니다.
흑조黑潮에 대해 들어보았습니까? 흑조는 달의 인력에 의해 태평양을 중심으로 일 년에 4천 마일을 도는 물줄기를 말합니다. 태평양을 휘돌리는 물줄기니 그 힘은 거대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합니다. 흑조가 돌아가는 힘에 의해 5대양이 움직이니 만일 흑조가 없다면 바닷물이 돌지 않아 모두 죽고 맙니다. 아무리 크고 유장한 강물일지라도 결국은 바다로 가듯이 아무리 크고 웅장한 바다라도 흑조의 힘찬 물줄기를 따라 움직입니다. 우리 민족은 세계를 이끌 흑조가 되어야 합니다. 세계의 생명력을 한 곳으로 응집시키는 힘의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태평양 문명권의 중심이 될 곳을 찾으려 여러 차례 남해안 일대를 돌아본 후에 마침내 여수와 순천을 선택했습니다. 거울처럼 잔잔하고 맑은 여수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일본을 크게 물리쳤고 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바다를 끼고 있는 여수는 영호남이 만나는 곳이며 지리산의 끝자락과 맞닿아 6·25사변 후에는 좌익과 우익이 맞서 싸웠던 민족의 아픔이 서린 땅이기도 합니다. 갈대밭으로 유명한 순천만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리아스식 해안을 가진 아름다운 바닷가입니다. 맑은 물이 출렁이는 바다에 나가면 온갖 물고기가 잡히고, 잔잔한 만에서는 전복과 미역이 자랍니다. 또 드넓은 갯벌엔 꼬막을 비롯한 각종 조개와 세발낙지가 지천인 곳입니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보고 산에 올라가 살펴보아도 다가올 해양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거점으로 어디 하나 모자란 구석이 없는 아름다운 땅입니다.
나는 지금 여수를 중심으로 남해안을 개발 중입니다. 그 준비를 위해 거문도를 비롯해서 여러 섬들을 돌며 여러 달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그 마을에서 수십 년 동안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으며 살아온 사람들을 스승으로 삼고 허름한 여인숙에서 먹고 자면서 세밀하게 조사했습니다. 입으로만 조사하지 않고 눈과 발로 일일이 보고 다니며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바다에 어떤 물고기가 살고 있는지, 어떤 바다에 무슨 그물을 던져야 하는지, 어디에 무슨 나무가 자라며 어느 집에 중풍 걸린 노인이 혼자 사는지'를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남해안에 대한 조사가 모두 끝나던 날, 그때까지 나를 도와주었던 마을 이장을 비행기에 태우고 알래스카로 갔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내게 가르쳐주었으니 나도 내가 아는 것을 그에게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그와 함께 낚시를 하며 알래스카에 무슨 물고기가 살고 어떻게 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무리 작은 지식이라도 그렇게 서로 나누어야 내 마음이 편합니다.
내가 여수 개발을 시작하자마자 여수시는 2012년 해양엑스포 개최지가 되었습니다. 세계박람회EXPO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축제입니다. 엑스포가 열리는 6개월 동안 전세계 154개 회원국들이 각종 전시회를 벌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의 이목이 여수에 집중되는 것은 물론이며 선진 기술과 문화가 한꺼번에 여수로 모여듭니다. 여름날 구름이 사나운 속도로 몰려오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한번 바람을 타기 시작한 구름은 삽시간에 산을 넘고 바다를 넘습니다. 우물쭈물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구름 떼가 몰려오듯 세계가 여수를 향해, 우리 한반도를 향해 모여들게 됩니다.
나는 남해안에 있는 섬과 섬을 모두 연육교로 연결하고 세계 각국의 배를 타는 사람들을 먹이고 재울 콘도미니엄을 지을 계획입니다. 먹고 놀자는 콘도미니엄이 아닙니다. 미국인, 독일인, 일본인, 브라질인, 아프리카인들이 비록 서로 다른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더라도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은 한집에서 하도록 만들어 인류가 한식구라는 것을 알게 하고 싶습니다.
해양시대는 우주시대이기도 합니다. 머지않아 항공과학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가 다가옵니다. 그때 가서 우주산업을 준비하는 것은 늦습니다. 나는 지금 김포에 항공산업단지를 조성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콜스키 헬리콥터를 우리 손으로 만들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태극 마크를 단 헬리콥터가 전 세계의 바다와 하늘을 누비는 날이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