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한 번에 내복 한 벌이라는데
오늘은 맑고 포근해서
답사 하기에 더없이 좋은날이다
산청은 부산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지만
좀더 많은것을 보기위해
새벽녘 아기별과 함께 출발했다
곤색 양복을 입은 멋진 해설사님과 함께
오늘 하루 동행하게 되었다
목면시배유지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목화를 재배하여 의복생활에
혁신을 가져온 곳으로
문익점이 중국 원나라 사신으로 갔을때
10알의 목화씨를 붓통에 가져와
그의 장인에 의해 1알의 씨앗이 싹을 틔웠다고 한다
그후 3년동안 100알 정도를 번식 시켜
목화씨를 마을사람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따뜻한 옷을 입을수 있도록 한것이다
목화밭에는 실제로 목화가 눈송이 같은
하얀 솜털을 품고 있었다
선생의 애민정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는 이렇게 따뜻하고
예쁜 옷을 입을수 있는것이다
문익점 선생의 유산으로 우리 모두
마음속에 목화 한 송이씩을 받아
정성으로 가꾸어 남을 배려 하는 마음을
가슴속에 새기며 배산서원으로 향했다
비탈진 언덕길에 덕연사라는
사당이 있던곳에 배산서원이 있었다
이원과 이광우의 위패를 모신곳으로
때마침 공자의 진영이 모셔진
문묘에서는 제향을 올리고 계셨다
독립운동가들의 낙성문이 씌여 있는곳으로
유교를 복원하기위해 세워진 서원이라고 한다
어르신께서 제를 지냈다고
떡을 한 보따리를 싸주신다
역시 목화 솜처럼 따뜻한 마음이다
선비의 고장 답게 도처에 또 도천서원이 있었다
삼우당 문익점의 공적을 알리고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위해 세워진
조선시대 사설교육 기관으로
선현들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땅바닥에 노오란 은행잎이 수북하게 쌓여
바람이 불때마다 마치 나무에서
금가루가 날리는 것처럼 환상적이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문익점의 묘로 향했다
산비탈 아늑한곳에 적송이 우거져
맑고 청아한 새소리를 들으며
다같이 참배를 하고
요즘처럼 시국선언으로 시끄러운 세상에
이곳에 와서 새소리 바람소리 들으니
잠시나마 귀가 정화된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세상에서 가장 깊은
사람의 마음,백성의 마음을 읽을수 있었던
선생의 체취를 느낄수 있는곳이기에
더욱더 그런지도 모른다
단성향교로 가는 교동마을.
한 고을에 향교가 2개나 있다고 한다
동네 우물가에서 빨래 방망이를 두들기며
빨래를 하고 있는 동네 아주머니를 보니
마냥 정겹고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다
수확을 끝낸 경운기는 깊은잠에 빠져 있고
마을 초입 큰 은행나무엔 새가 둥지를 틀고
토담길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낙엽을 밟으며
우린 그 길을 걷고 있었다
집집마다 처마엔 곶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길다란 수세미는 대문을
예쁘게 장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자만한
개 한 마리가 뛰쳐 나오더니
내 심장을 벌렁거리게 한다
나는 도망치듯 뛰어서
친구 등 뒤에 숨어버렸다
어릴적 동네 개한테 물린적이 있는 나는
개가 있는곳을 지나칠때마다
엄마 등에 업혀 두 다리를 힘껏 올린 다음
개의 키보다 훨씬 더
다리를 높이 들고 가곤 했었다
지금도 내 허벅지엔 그때 물렸던
개의 흉터가 남아 있다
향교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립학교로
단성호적대장이 보관되었던 장소라고한다
아까 보았던 사자만한 개가
낯선 손님을 배웅이라도 하듯
동네 어귀까지 따라 나오더니
우리가 버스에 오르는걸 보고 집으로 돌아 간다
작은 마을에서 사람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낯선사람을 보고도 반가워서
한걸음에 뛰쳐 나오고
가는길 배웅까지 하고 가는건지
그져 신통하기만 하다
추어탕과 동동주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목화의 고장 답게 식당 앞에도
눈송이 같은 목화솜이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주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라의신과 곡식에 대한 제사를 지냈다는
단성 사직단으로 향했다
토지신과 곡식신에게
제사를 지내기위해 쌓은 제단으로
고장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라고 한다
그런데 동네 할머니께서 숨가쁘게
우릴 따라 올라 오시더니
자신이 문익점의 외손녀라면서
일제강점기때 사직단을 지키기위해
할아버지께서 온갖 고문을 당하고
쫒기고 몰매를 맞아가면서 까지
사직단을 지켰다고 하신다
우리는 이곳에서 산 증인을 만난것이다
1200년전 단속사지 절터로 가는길.
오르막길에 버스도 숨이 차는지
힘들게 기어 올라 간다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마을 앞 정자가 있고
감은사지의 축소판이라고 하는
단속사지의 법당자리 앞에
동.서로 세워졌던 통일신라시대 쌍탑이 보인다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기위해 만들어졌다는데
규모도 굉장히 컸다고 한다
경내에는 강회백이 과거에 급제하기전에 심었다는
정당매 한 그루가 세월이 말해주듯
너무 노쇠해 올해는 꽃을 피우지 않았다고 한다
나무도 기력이 없어 많이 아픈가 보다
남명조식의 사적지가 있는곳으로 가는길은
은빛 억새와 주홍빛 감이
가을정취를 더하고 있었다
덕천강이 흐르는 지리산 줄기 아늑한곳에
선생은 산천재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기거 하셨다고 한다
그는 실천유학의 핵심을 가지고
제자들를 가르쳤기 때문에
나라가 정말 어려울때 나라를 지켜냈다고 한다
무관의 영의정,정신적인 지도자,나라의 어른으로서
어쩌면 이 시대에 가장 존경 받아야할 인물 인지도 모른다
창문을 열면 천왕봉이 보이는 이곳 마당 한 가운데
그가 심었다는 남명매 한 그루가
주인은 가고 없지만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른 봄이면 은은한 매화꽃을 피워
향기를 뽐내고 있겠지
"뼈속에 스며드는 추위를 겪지 않고서야
어찌 매화 향기를 얻으리오"
그곳을 나오는 발걸음에
붉은 단풍이 소복히 쌓여
고춧가루를 뿌려 놓은듯 하다
지리산의 토착신앙이자 천왕할매인
지리산 성모상을 만나러 가는길엔
겨울 김장 배추가 예쁘게 고춧가루로 화장을 하고
시집갈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리산 천왕봉 아래
증산리에 위치한 지리산 성모상은
국가의 안녕을 위해 제사를 지내던곳인데
토착신앙과 불교적의미가 가미시켜져
안타까운점이 있다고 한다
천왕봉에 있던 천왕할매가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지
정말 아이러니 하다
산중의 해는 벌써 중턱을 넘어 가고 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구형왕릉으로 가는길.
땅거미가 내려와 금세 어두워 지고 말았다
금관가야의 마지막왕이자 김유신의 할아버지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지는데
흔히 볼수없는 독특한 구조로
경사진곳에 7개의 층단을 쌓고
그위에 봉분이 있으며
돌무덤의 담장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비와 세 아들과 함께 돈과 보물을 가지고
신라에 항복한것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이곳 왕릉은 상당히 기가 센곳으로
무덤위로 낙엽이 떨어지지 않으며
혹시 떨어진다 해도 바람에 의해 날아가
절대로 낙엽이 쌓이는일이 없다고 한다
또 새가 무덤 주위를 날아 다니지 않고
칡넝쿨 또한 무덤을 피해
다른곳으로 뻗는다고 한다
다람쥐 같은 산속의 동물들도
담 위를 넘어 다니지 않는다고 하니
주위에 사물들도 이곳이
왕의 무덤 이라는걸 아는 모양이다
오늘 하루동안 산청 곳곳을 답사 하면서
어리석은 사람도 지리산에 들어오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명언을 듣고
문익점을 비롯한 많은 선비들이 배출된곳인만큼
지혜로운 지리산의 기운을 받아
이런 훌륭한 선비들이 배출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들의 열정 만큼이나 해설사님 또한
그 열정이 대단하셨다
목면시배유지 관장이자
문화해설사,시인이란 수식어가 붙을 만큼 말이다
자신이 낸 시집을 우리모두에게 선물로 주셨다
꿈이 있고 열정이 있는 사람은
늙지 않고 언제나 청춘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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