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카(演歌) <음악>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하나 트로트[trot 뽕작]라는 뜻으로, 여기에서는 정형화된 리듬에 일본 엔카(演歌)에서 들어온 음계를
사용하여 구성지고 애상적인 느낌을 주는 노래라고 하겠습니다. {트로트와 일본의 엔카와의 차이점은 아래 글을 참조바랍니다.}
01. 대전 부르스 등...........등
트롯과 일본 엔카의 원조시비 한국의 트롯(trot 속칭 '뽕짝')이 일본의 ‘요나누키(四七拔き)’ 단음계로 만들어진 엔카(演歌)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인가? 아니면, 일본의 엔카가 한국적 정서를 표현한 트롯의 영향을 받아서 발전한 것인가? 소위 트롯과 엔카의 원조 시비는 아직도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해묵은 논란거리다. 엔카(演歌)의 대부, 코가 마사오(古賀政男)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여덟 살 되던 해에 한국(조선)에 건너와 선린상고(善隣商業高等學校)를 다녔고, 메이지대학(明治大學)을 졸업하였다. 오늘날 일본 엔카가 소위 말하는 ‘코가멜로디’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을 만큼 그는 일본 대중가요에 있어서 '살아있는 전설이자 신화'이다. 그런데 코가 마사오(古賀政男)가 1931년에 최초의 엔카로 발표한 '사케와 나미다카 타메이키카(酒は淚か溜息か)'가 전수린(全壽麟, 1907~1984)이 1926년에 작곡한 '조용한 장안'을 표절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해서 당시 일본 박문관(博文館)에서 출판한 잡지 '신청년(新靑年)'에서 코가 마사오의 '사케와 나미다카 타메이키카(酒は淚か溜息か)'가 조선인 작곡가 전수린의 '고요한 장안을 표절했다고 시비가 일어났다. 사실, 코가 마사오와 전수린은 절친한 사이이며, 두 사람은 조선과 일본에서 자주 만났다. 그리고 문제의 '사케와 나미다카 타메이키카(酒は淚か溜息か)'는 전수린의 '조용한 장안'을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전수린은 왜 1926년에 작곡한 '조용한 장안'을 음반으로 제작해서 발표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당시의 음반제작은 오늘날로 말하면 하이테크분야였다. 다시 말해서 음반제작은 일본에 가지 않으면 조선에서는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1920년대 후반부터 조선에는 전수린을 중심으로 한 조선 작곡가의 활동이 매우 활발했다. 1926-1936년 사이에 데뷔한 유명한 작곡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27년에 홍난파와 함께 경성방송 관현악단을 창설하고 '찔레꽃' '직녀성' 등의 대작을 만든 김교성이 1932년 일본 빅터레코드에 전속되었다. 국민가수 김정구의 친형으로서 배우, 가수, 작곡가를 겸한 천재 작곡가 김용환이 1932년에 폴리돌에 전속되었고, 일본 무사시노음악학교(武藏野音樂學校)를 졸업한 조선의 서양음악 선구자이자 피아니스트로서 '홍도야 울지 마라' '처녀총각' 등을 만든 '김준영'이 이 시기에 데뷔했다. 휘문고보(徽文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한 바이올린니스트 문호월은 '노들강변' 이난영의 '봄맞이' 남인수의 '천리타향'을 작곡했고, 일본음악학교(日本音樂學校)를 졸업한 손목인은 고복수의 '타향살이'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등 대작을 작곡했다. '애수의 소야곡' '이별의 부산정거장' '신라의 달밤' 등 수 많은 명곡을 작곡한 한국 최고의 작곡가 박시춘도 이 시기에 데뷔하였다. 일본 동경음악학교를 졸업, 북한에 억류되어 평양음대 총장을 역임하고 북한의 가극 '피바다'를 작곡한 이면상도 역시 이 시기에 빅터레코드에 전속, 데뷔했다. 한국의 슈베르트라고 불리는 이재호는 일본의 고등음악학교를 졸업, 20세에 오케이레코드에 전속되어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등 명작을 작곡하였다. 홍난파도 이시기에 데뷔했는데, 안옥경의 '여인의 호소' 이규남의 '유랑의 나그네' 등을 발표했지만, 가곡분야에서 더 두각을 나타내어 '성불사의 밤' '봉선화' 등의 주옥 같은 명곡을 남겼다. 아무튼 일본 엔카의 대부 코가 마사오는 조선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조선인 작곡가와 교류하고 또 조선의 정취를 자연스럽게 익혔을 것이고, 또 전수린을 중심으로 한 조선인 작곡가들은 일본을 통해서 서양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빅터레코드와 같은 일본 음반회사를 통해서 데뷔하여 활동하였다. 이상으로 한국의 트롯과 일본의 엔카는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나서 상호 영향을 주면서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화가 급속히 확산되는 오늘날, 엔카와 트롯의 해묵은 원조 시비론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대중음악은 국경을 초월해서 불러서 즐겁고 들어서 좋으면 된다. *일본의 대중가요, 엔카(演歌)가 초기에 '요나누키(四七拔き)' 단음계를 기본으로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요나누키'라는 말은 '4와 7이 빠진'이라는 뜻의 일본어, 즉 서양 7음계의 '파'와 '시'가 빠진 단음계를 말한다. '요나누키(四七拔き)' 단음계는 일본밖에 없는 음계가 아니고, 음양오행(陰陽五行: 木火土金水)의 원리에 따른 것으로 중국, 한국, 일본에서 공통으로 사용되었다. 즉, '요나누키(四七拔き)'의 '도?레?미?솔?라'는 한국의 전통음계의 '중(仲)?임(林)?남(南)?황(黃)?태(太) 또는 '무(無)?황(黃)?태(太)?중(仲)?임(林)'에 해당한다. 한국 전통음악의 기본음계는 황종(黃鐘:C)?대려(大呂:C#)?태주(太簇:D)?협종(夾鐘:D#)?고선(姑洗:E)?중려(仲呂:F)?유빈( 賓:F#)?임종(林鐘:G)?이칙(夷則:G#)?남려(南呂:A)?무역(無射:A#)?응종(應鐘:B)의 12율(律)이다. 서양에서는 스코틀랜드가 전통적으로 일본의 '요나누키(四七拔き)' 또는 한국의 ' 중(仲)?(林)?남(南)?황(黃)?태(太) '와 같은 단음계를 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민요(선율)가 한국인이나 일본인의 정서에 잘 맞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졸업식 때에 많이 부르는 '석별(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을 들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00년대를 전후해서는 애국가를 이 곡조로 부를 정도로 우리 정서에 잘 맞다.
그런데 음계 구성음(音階構成音)이 같은가만을 주목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인 것입니다. 음계 구성음이 음악 중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가를 주목해야 한다. 구체적인 예는 "장음계(長音階)"와 "자연 단음계(自然短音階)". 음계 구성음은 완전히 같습니다만, 이 2개를 같은 음계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한편, "화성 단음계(和聲短音階)"와 "선률 단음계(旋律短音階, 가락 단음계)"는, 음계 구성음은 다릅니다만, 이 2개는 실질적으로는 같은 음계라고 보여지고 있습니다. 한국민요에서는 "경기도 아리랑"과 "밀양 아리랑"도, 음계 구성음을 조사하면, 거의 같습니다.그러나, 이 2개는 분명하게 다른 음계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서양 음악의 경우에는 "으뜸음(Tonic)", "딸림음(Dominant)"등 , 각음에 관하는 기능이 명료합니다만, 이것은 서양 음악에서는 화성학(和聲學 - 화음 진행에 관한 이론)이 매우 발달한 결과입니다. 동아시아의 음악을 포함해 일반적으로는 그렇지는 않아요. 따라서, 고찰은 한층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민요에서는 "경기도 아리랑"과 "밀양 아리랑". 이 2개는 음계 구성음을 조사하면, 거의 같아요. 그러나, 이 2개는 분명하게 다른 음계인 것처럼 느껴지어요. 이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경기도 아리랑"은 F-dur(바장조)이고, "밀양 아리랑"은 d-moll(라당조)라고 느껴집니다만, 이것은 서양 화성학(西洋和聲學)에 근거하는 감각이며, 이 감각에 의지하는 것이 올바르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저는 한국의 "트롯"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만, 만약 2박자계라면 Lozer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순수하게 한국 기원과는 생각하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한국 전통 음악은 압도적으로 3박자계가 중심인 것은 유명합니다. 중국으로부터 도입하여진 "아악(雅樂)"도 한국에서는 3박자이네요. 한국 전통 음악에 넓게 존재하는 "3박자"는, 일본사람인 저에게는 독특한 이국 정서적인 매력을 느낍니다. 3박자는 중국은 아니고 몽골등 북방 유목민족(北方遊牧民族)에 많다고 하고, 한국인의 기마민족성을 관련되고 화제가 된다고 합니다. 한국 전통 음악의 리듬 체계는 매우 복잡하고, 3박자 를 기본으로 해 9박자, 12박자, 이러한 혼합등이 존재합니다. 한 편, 일본 전통 음악에는 "3박자"는 매우 적어요. "아악(雅樂)도" 일본에서는 2박자가 중심적입니다. 그리고, 일본 민요에 극히 조금 존재하는 3박자를 조사하면, 배경으로 한국과 교류가 존재했던 것이 암시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일본 전통 음악에서는 압도적으로 2박자, 4박자가 지배적입니다. 제가 아이였던 때에는 "일본인은 왈츠가 서투르다"라고 말해진 것 같에요. 지금도 그럴지도 몰라요.(^^;) ※ "이쯔키노 코모리우타(五木の子守歌, 이쯔키의 자장가)"는, 일본 민요에 존재하는 얼마 안되는 3박자로서 유명한 예입니다만 이것도 큐슈(九州) 지방 만요여, 지리적으로 한국에 가까워요. 또 외가가 있는 기후현(岐阜縣) 구조하치만(郡上八幡)의 민요에는 3박자 요소가 부분적으로 존재합니다만, 산지를 사이에 두고 인접하는 후쿠이현(福井縣)에는 3박자의 민요가 산재 한다고 해요. (유감이지만 저는 "후쿠이현의 3박자"을 아직 직접적으로 체험한 것은 없어요.) 그리고, 후쿠이현부터 기후현(岐阜縣) 구조하치만(郡上八幡)까지는 옛 시대부터 가도(에치젠 가도(越前街道))가 존재합니다. 후쿠이현(福井縣)은 일본해에 접하고 있어, 연안 지역에 한국으로부터 표착한 사람들이 과거에 존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영향이 에치젠(越前) 가도 경유로 구조하치만(郡上八幡)까지 도달했을지도 모릅니다. 박자감이 존재하지 않는 전통 음악도 있습니다. 이것은 동아시아에서는 예가 많아, 일본에서는 "오이와케(追分)", 한국에서는 "긴 아리랑", 몽골의 "오르틴?도(urtyn duu)" 등여요. 숨이 긴 음표에 복잡한 꾸밈음을 붙면서 발성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한국의 "강원도 아리랑"에는 박자감이 없는 부분과 박자감이 있는 부분가 교대로 출현합니다. contiuo 님의 음악을 통한 문화인류학적 어프로치가 재미있습니다. 기마민족과 3박자라... 미처 생각지 못 했습니다. 쿵짝짝 쿵짝짝 ... (○●● ○●● ...)은 말 타는 리듬과 같을까요?(승마경험이 없어서) 한국인이 가무를 좋아한다는 것은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을 비롯해서 중국의 고서에서도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한국인이 가무를 좋아하는 것은 오늘날도 변함없이 여전합니다. 매주 일요일에 방송하는 KBS의 인기 프로그램 '전국노래'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무를 좋아합니다. 이른바 "예술~중에서, 음악은 수학에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해, 근본적인 부분에서 공유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과계(理科系)인 저도 흥미를 가지기 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전통 음악 리듬은 "3박자"라고 해도 매우 복잡하고, 서양 음악의 "3박자"와는 꽤 다른 분위기입니다. 북방(北方) 기마민족(騎馬民族)적 요소는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모두 북방 기마민족적 요소에 귀착해 좋을 것인가 라고 하는 의문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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