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畵家의 순수한 내면이 빚은 시적 에스프리
―도경 이선덕 시집 「꿈을 쫓던 소녀」 론
인송 복재희
시인 수필가 문학평론가
1. 프롤로그 ― 꽃이 좋아서 꽃 향을 지닌 시인
시집의 첫 인상은 도시적인 메커니즘보다 오히려 호젓한 산길을 걷거나 바닷바람이 키운 꽃들의 이야기를 스케치한 식물성 정서가 번다繁多하다.
이는 정신원형이 어디에서 출발했는가를 살필 수 있는 구체적인 조짐이 된다. 「꿈을 쫓던 소녀」 시집은 자연과 친화적인 기저基底에서 탄생했다는 가정이 맞을지 모르겠다. 이런 심리적인 흔적들은 항상 시의 전면에 출몰하려는 자세로 작품 전체의 무드를 조성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린 날에 각인刻印된 기억들이 평생 떠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삶에 중요 인자因子로 자리 잡게 되어 의식의 전면에 출몰하는 이유라 생각한다.
이선덕 화자의 시는 수많은 꽃들과 신선한 바람이 시의 중심을 이루어 향긋하고 부드럽다는 일차적인 인상을 적시摘示하게 된다.
이런 특색을 뒷받침하는 이미지는 화자의 내면에서의 의식이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통찰로 빚어진 시어들이라 남다른 특색을 느끼게 하는 시적 향기가 상당할 수밖에 없는 시인이란 반증이다.
이제 이 명제 속으로 들어가 화자의 시적매력詩的魅力에 젖어보자.
밑그림을 그려놓고 잠시 졸고 보니
왼쪽으로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어 졌네요
꿈을 쫓던 소녀가 있어요
걷는 것보다 쫄랑거리며 뛰기를 좋아하고
조그마한 일에도 깔깔거리며 배꼽잡고 크게 웃고
불쌍한 사람을 보며 눈물 흘리던 아이
드라마 속에 주인공이 되어 주름잡던 꿈이 큰 아이
초롱초롱하던 눈망울은
삶의 거미줄로 얼 키고 설 켜 흐려져 있고
젖은 꽃잎에서 아침이슬 내음 찾고
달콤한 알사탕을 입안에 굴리던 소녀는
세월에 입히고 입혀져 조미료에 느글거리는
그것들을 즐기며 사우나에서 수다 떨고
삼삼오오 어울려 다니며 모임을 즐기는 여자
아침이면 머리 빗겨 리본을 해주시며 흐뭇해하시고
고운 옷 골라 입혀 대문 밖으로 내 보내시던 어머니
지금은 환자 되어 내 모습을 기억하시는지
외할머니를 닮아가는 딸을
억세고 질긴 갈대가 되어 오늘도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데
꿈속에서는 언제나 소녀이기를 바라는 여자
―「꿈을 쫓던 소녀」 전문
4연 20행으로 장시에 속하기도 하지만 일생을 축약한 듯한 시어들이다.
시의 정치망으로 다가간다면 낯설게 하기라든지 응축하기라든지 등의 시적기교詩的技巧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을 순 있으나 시는 작가가 쓰지만 궁극에 가서는 독자가 주인이 되는 성격을 지녔기에 독자의 가슴에 감동이 전해진다면 그 시는 이미 소임을 다한 수작秀作이라 평 할 수 있다.
화가이기도 하지만 수필가이기도 한 작가의 배경을 알아차린다면 이해의 폭은 더 넓혀진다.
화자의 소싯적 모습이 어떠했는지 2연에서 환히 보여 진다.
작은 일에도 배꼽 잡고 소탈하게 웃을 줄 알고, 불쌍한 사람을 만나면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눈물샘이 열리는 성정을 지닌 모습에서 시인의 남다른 감성은 어릴 적부터 예술가로서의 덕목을 지녔음을 발견하게 한다. 더욱이 드라마 속에 주인공이 되는 꿈을 지닌 밝고 예쁜 소녀가 화자임이 그려진다.
3연에선 초롱한 눈망울도 세상사 이런 저런 사연으로 흐려지고 여린 마음도 세월이 만들어 준 굳은살로 이젠 사우나에서 수다에도 동참 하는 나이에 당도했지만 여느 사람과 달리 시인이라면 혼탁한 자리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때론 흔들리는 갈대 같지만 결코 꺾일 수 없는 고갱이 정신이 발휘된다. 화자 역시 그러함이 4연에서 보여 진다.
불현듯 밝게 예쁘게 성장시켜 주신 어머니를 떠 올리며 지금은 편찮으셔서 그 곱던 딸을 “기억은 하시는지“ 라며 안타까운 속내를 드러낸다.
“억세고 질긴 갈대가 되어 오늘도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데 ⁄ 꿈속에서는 언제나 소녀이기를 바라는 여자“ 로 탈고를 하는 화자의 시적 매력은 걸림 없이 전달되는 수채화처럼 맑아서 독자들에게 사랑받기 충분한 시인이며 화자의 시적 여정이 순탄하리라는 확신에 필자 역시 미소가 번진다.
2. 도경 이선덕 시집이 주는 맛
시는 마음에서 반응하고 인간의 정신을 순수와 더불어 아름다움으로 전환해주는 힘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삶의 가치를 한층 승화하고 고양高揚하는 에너지원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시는 아무에게나 손짓하는 신호등이 아니고 오로지 필요를 절감하는 사람에게 어느 순간에 찾아가 위로의 답안을 내려놓고 사라지는 신기루와 같은 이름 ―이 존재를 인식하고 깨닫는 것은 깨어 있음을 뜻할 뿐만 아니라 승화된 삶의 공간을 저장하는 창고가 되기도 한다.
시의 촉수를 갖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외관상으로는 다름이 없는 것 같지만 아름다움을 느끼는 정서와 그렇지 못한 사람의 정서와의 차이처럼 현격하다. 이런 이유에서 시는 내면의 성숙도를 따지는 일로 치부해 왔다. 이는 향기 나는 사람과 이와는 다른 사람과의 구별처럼 마음에서 각인刻印되는 느낌일 것이다. 때문에 시의 가치는 필요로 만들어 내는 자발성에 의해서만 가치로 승화된다는 점이다.
한 권의 시집에는 시인의 현재를 이루는 삶이 있고 추억이 있어 총체적인 풍경화를 조감鳥瞰하게 된다.
이선덕 시인의 시적 특질은 백지에다 시로 그린 수채화를 만나는 느낌이다. 그리고 통통 튀는 동심과 안정된 삶의 이야기가 함축含蓄되어 여린 듯 당당함이 초롱한 눈빛으로 다가오고 있다.
비교적 장시長詩가 주류임에도 진부하기보다 상큼 발랄함이 베어 나와 시집을 만나는 독자들에게 친근감을 안겨 줄 것이다.
작품의 분량이 104편에 달 하지만 가벼운 듯 깊어서 곱씹을수록 그윽한 맛이 가슴을 적신다. 이런 맛을 찾는 것 또한 독자의 몫으로 남기고 다음 작품을 대면해 보자.
환우로 와상환자가 되어 누워 계신 아버지
젖은 속옷을 갈아입힌다
굳어진 하반신으로 눈만 껌뻑 거리신다
젊은 날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고
쌀가마를 나르시던 튼튼한 두 다리
부지런히 골목을 쓸던 두 팔
푸른 힘줄만 앙상하게 허공에 손짓만 하신다
다시 일어 설수는 있을까
눈으로 말하시는 아버지
두 눈에 마른 눈물이 볼 위를 적신다
머리맡에 늘 쓰시던 돋보기가 놓여있다
푸른 수액이 천천히 떨어진다
바람이 밟고 간 자리
소나무 한 그루 넘어져 버둥거린다
가지가 꺾이고 뿌리는 허공에 엉덩이를 들고 말라있다
봄볕이 가지위에 눈길을 보내지만
힘없이 늘어져 눈을 뜨지 못한다
봄이 오면 소나무는 일어 날 수 있을까
―「내 아버지의 아흔 아홉의 봄」 전문
아버지는 바위 같은 의지로 가족을 이끌어가는 고독한 존재이다. 아울러 그의 체취는 항상 가족을 위해 모든 헌신의 덕목을 갖추었고 누구도 그 자리를 범접하지 못하는 외로운 카리스마의 공간을 점하고 있지만 이 에너지는 헌신과 사랑이라는 틀 속에서 등대燈臺인 셈이다.
그 아버지가 푸른 수액에 명줄을 이으시며 와상환자로 병상에서 눈으로 말하신다는 시인의 담담한 시어가 오히려 더 가슴 아리게 다가오게 하는 것이 시적 재능이라 하겠다.
온갖 슬픈 시어를 다 모아도 후련할 수 없는 슬픔임에도 사족 없이 절제된 시어는 아무나 구사할 수 있음이 아니다.
더욱이 화자는 바람에 넘어져 “가지가 꺾이고 뿌리는 허공에 엉덩이를 들고 말라 있다” 며 소나무 명줄에다 아버지를 소환해 봄이 오면 소나무는 일어 날 수 있을까, 봄이 오면 내 아버지는 일어나실 수 있을까 라는 간절한 소망을 반문하는 시어를 구사하며 서정시의 상당한 저력을 보여준다. 부디 일어나시어 머리맡에 놓인 돋보기 쓰시고 따님의 시집을 읽으시며 흡족해 하시기를 필자도 간절히 두 손 모은다.
3. 끝자락에 서있는 그리움
인간사 아픔 중에서 사별死別보다 더 큰 아픔이 있을까 를 생각하면 사별을 겪지 않은 사람보다 수명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서는 다 아는 사실이다. 다음 만날 작품에서 화자는 ‘그리움‘ 이라는 시어에 묻어 두고
“눈 감고 그려보고 ⁄ 너에게 갈 수 없어 ⁄ 하늘 길 열어 가슴에 담아본다” 는 담담한 절규를 만나보자.
내디딜 곳 없는
끝자락에 서있는 너를 그리다
두려운 마음에 한 걸음 물러선다
놓을 수 없는 마음 주워
그 위에 나란히 서보고
끝자락에 맴도는 그리움 담아
너를 그리고 또 지워본다
놓을 수 없는 애달픔에
외줄마음
눈 감고 그려보고
너에게 갈 수 없어
하늘 길 열어 가슴에 담아본다
―「여기 그 자리」 전문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절절한 가슴의 흐름이 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그리워하는 너 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적 애매성 曖昧性은 그리움의 대상을 구지 밝힐 필요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화자의 작품 중에 시적 정치망이 잘 가동된 작품이라 하겠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님은 조국祖國도 되고 석존불釋尊佛도 되고 사랑하는 님도 되는 이치와 같음이다.
위 작품은 형용사나 조사 하나 없이도 시적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서정시에 언덕 같은 작품이다.
“두려운 마음에 한 걸음 물러선다” 와 “너를 그리고 또 지워본다” 는 시어詩語는 감칠맛 나는 역설로 독자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첫 시집임에도 이러한 작품을 창조해 내는 화자의 시적 여정은 문운이 환하게 길을 열어 주리라 생각된다.
가을비가 차창을 두드립니다
초가을 물든 나뭇잎에 시가 열리는데
효심의 시입니다
시련의 결실들이 무르익어가는 시입니다
봄이면 풋풋한 꿈을 꾸고
여름이면 꽃망울을 만들고
가을이 오면 알알이 품어 오던 시입니다
눈뜨면 익어가고
만지면 촉촉한 효심을 전하는
마음의 정원입니다
―「초암정원 가는 길」 전문
초암정원草岩庭園은 전남 보성, 초암 산자락에 조성된 종가 고택이다.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난대수종인 야자수를 비롯해 녹나무 감탕나무 등 수많은 나무들을 3대에 걸쳐 잘 가꾸어 온 정원을 화자는 시 종자로 삼았다. 초가을 물든 나뭇잎에 시가 열리는 것을 ‘효심의 시‘ 라고 한 배경은 초암정원이 품은 효와 가족애를 노래 한 듯하다. 이 작품 또한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는 시적 정치망을 잘 갖춘 시어라서 소개했다.
4. 사랑이여
인간의 삶은 언제나 혼자라는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숙명의 자리를 넓히면서 하루하루를 살아 간들 손에 잡히는 것 보다 오히려 빠져 달아나는 허무를 안게 되고, 세월의 켜는 어느새 돌아보는 나이에 당도해 있음을 인식하게 되지만, 의미와 무의미를 분간하면서 의미 쌓기를 계속하는 열정에 엔진을 가동시켜 긍정의 시선으로 살다 보면 삶의 가치는 높아진다는 이치에 당도하게 될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시를 쓰는 시인이나 모두 자신의 의미 찾기의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꿈 많고 푸르던 시절은 예상치 못한 이런 저런 바람에 휘둘려 밀려 온 곳이 지금 여기라면 늦음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도전 정신에 깃발을 들어야함이 옳다. 화자의 작품 전반에 녹아 있는 정신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신은 인간을 사랑하는 휴머니즘이 에너지원이라 할 수 있다.
작품에서 그 정신을 만나 보자.
추억하지 않게 될 때가 오면
깊은 곳에서 서서히 멀어지게 되고
마음 속 바다가 함께 줄어든다
하얀 창들이
그리움으로 어른거리는 밤이 흐르는 동안
가시나무의 가시 꽃이 피었다 지고
아픈 아침이 와서
창문을 깨물 때 까지
건너기 힘든 육지의 저편에서
노을이 질 때를 또 기다린다
감빛 노을이지는 해안에서
한 무리의 철새를 날려 보내고
사색의 창에 마음을 적어 보낸다
―「사랑이여」 전문
사랑이나 그리움은 추상명사이기 때문에 확실한 뜻으로 정의할 수가 없다. 그러나 모호성의 안개 속에서 애달픔으로 다가오는 그리움이나 사랑의 뜻은 인간 본연의 깊이에 당도하려는 본질일 때, 그리움은 사랑을 지향하려는 길을 만들려 노력한다.
그리움에는 거리距離가 존재하고 사랑에는 거리가 소멸하는 점에서 둘은 구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시작을 논리적으로만 해법을 삼는다면 이는 사랑을 모르는 일일 것이다. 어느 순간에 다가와서 기쁨을 만들고 또 슬픔을 잉태하면서도 애태우는 그리움으로 사랑을 아파하는 일이라면 사랑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숙명적인 그림자일 것이다.
피하고 싶어 하는 것 보다 오히려 사랑의 포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선하는 것은 사랑이 인간의 본질을 통괄하는 원형이라는 점에서 생명의 근원에 닿는 신기루와 같은 이름일 것이다.
「사랑이여」 작품은 화자의 차마 드러내지 못하는 감정이 숨겨져 있지만 그리움이 흐르는 불면의 밤을 지나고 아픈 아침을 맞이하는 시어가 너무 아리게 다가오는 서정시 이다.
감빛 노을이지는 해안에서 ⁄ 한 무리의 철새를 날려 보내고 ⁄ 사색의 창에 마음을 적어 보내는 시인의 지고한 마음이 추억하지 않게 될 슬픔이 되어 시인의 마음 속 바다가 줄어들지 않기를 독자들은 간절히 소망할 것이다.
―도경 이선덕 시집 「꿈을 쫓던 소녀」 론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