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산(460.3m) : 여수시 돌산읍 |
봉황과 금거북 타고 남해바다로 잠겨들다 |
1. 개념도
2. 개요
봉황은 진수를 감추고 있다. 돌산읍 죽포리 삼거리에서 바라보는 봉황산(鳳凰山.460.3m)은 바로 야트막한 동네 뒷산 모습이다. 조망도 그렇고, 산길이나 제대로 나 있을까 의문스러울 만큼 밋밋하다. 옛날 봉황이 살았다는 전설도 전하고, 돌산도(突山島)에서 가장 높아 상산(上山)이란 이름도 지니고 있건만 겉모습은 이렇다 할 게 없이 실망스럽다. 그러나 정상 능선에 올라서면 사위가 터지고 짙푸른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여수만 건너 멀리 남해 금산이 조망되고 능선에 서면 바다건너 금오열도가 눈에 들어오면서 새로워진다. 화태도와 대횡간도가 전열을 장식하고 그 뒤로 월호도, 대두리도, 소두리도, 소횡간도가 겹을 이룬 다음 큰 섬인 금오도가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 은빛 비늘처럼 반짝이는 바다 위에 수석처럼 떠 있는 섬들은 한폭의 그림이 아니랄 수 없다.
정상에서 남릉을 타고 가다보면 “흔들바위”가 있다. 봉황산 일원에서 보기 드문 기암이다. 삐쭉 튀어나온 채 너럭바위에 얹혀 있어 살짝 밀면 바다로 풍덩 빠져들 듯 하지만 실상은 미동도 하지않은 흔들바위다.
봉황산이 남해를 향해 비상하려는 봉황의 모습이라면, 그 반대편 금오산은 남해 너른 바다에 슬그머니 잠겨드는 거북이 형국이다. 그래서 바다로 잠수하는 금빛 바다거북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인가.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금오산 정상에 올라서면 발아래 3면이 온통 바다다. 향일암 위의 작은 금오산은 바다로 슬금슬금 기어드는 거북 형세다. 앞다리 뒷다리는 포구로, 바닷가를 향해 가고 있는 형세다.
3. 산행길잡이
봉황산은 등산인들에게 잘 알려진 금오산의 모산 격인 산이다. 따라서 두 산을 잇는 종주산행 역시 매우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두 산 사이의 고개인 율림치에 율림리와 금성리를 잇는 포장도로가 닦여 있는게 아쉽기는 하지만 고갯마루를 중간 휴식처 삼는다면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봉황산 산행 기점은 죽포리 죽포삼거리. 여수시에서 돌산대교를 건너 17번 국도를 따르다 작곡재를 넘어 내리막이 끝나는 지점에서 만나는 삼거리다.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해안도로를 따라 향일암이 위치한 임포로 향하고 우회전하면 군내리로 향한다. 삼거리에서 군내리 방향으로 50m쯤 가면 도로 건너편에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 고목이 한 그루와 그 옆에 봉황산 등산로 안내판이 보인다. 여기서 콘크리트길을 따라 5분쯤 오르면 널찍한 산길로 올라붙는다. 완경사 산길을 따르다 널찍한 헬기장을 지나면 된비알에 이어 긴 능선을 형성한 봉황산 정상에 올라선다. 능선 끄트머리가 정상으로 약 1시간이 소요된다.
정상에서 가파른 남릉을 내려서면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가로지르면 다시 산길로 접어 들었다 또다시 임도로 내려선다. 이 임도를 따르다 숲길을 빠져나가면 조망이 뛰어난 흔들바위 앞에 다가선다. 이어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가파른 능선길을 내려서면 율림치 고갯마루다.
휴게소 오른쪽 능선길을 따라 20분쯤 가면 금오산 정상이고 정상에서 또다시 20분쯤 가면 금오산 정상석이 서 있는 암봉에 올라선다. 길이 끊긴 듯해 보이는 암봉을 넘어서면 철계단이 향일암 진입로까지 이어진다.
4. 주변의 명소
(1) 돌산도(突山島)
전라남도 여수시(麗水市) 남쪽에 돌출하여 돌산읍을 이루는 섬으로 면적이 73.33㎢에 이릅니다.. 백제 때에는 돌산현이 되고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서는 순천부(順天府)에 딸렸다가, 1895년(고종 32)에 돌산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여수군(麗水郡)에 편입되었고 현재 여수시 돌산읍 사무소 소재지입니다. 대미산·소미산·수죽산·천마산·봉황산·두산(斗山)·천왕산·금오산의 8대 명산이 있으며, 연안바다에서 삼치·갈치·멸치 등이 잡히며 쌀·보리·고구마·마늘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2) 돌산만호진
고돌산진은 화양면 용주리 고진(古鎭)에 있는 옛날 수군의 진이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 관하 오관.오포(五官.五浦)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전라좌수영의 서쪽 30리 거리에 있어 전라좌수영이 설진(說陣)되기 전부터 수군의 기지였다.
이 곳에 어느 때부터 수군진이 설치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태종실록과 세종실록지리지 등 기록에 돌산만호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보아 돌산진은 고려말 아니면 조선 초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여수에는 전라도 도만호(都萬戶) 아래에 삼일동의 신덕이나 낙포쯤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진례만호와 돌산만호가 왜구 방어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 같다. 초기에는 모든 수군이 그랬듯이 돌산만호진도 성은 없었고 간단한 모사(모사)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 후 세종5년에 진례만호는 여수시 국동으로 추정되는 내례포로 옮겨 내례만호가 되었고, 내례만호는 성종10년(1479) 다시 전라좌수영으로 승격하니 돌산만호진은 자연 전라좌수영의 관할이 되었다. 그러나 이 무렵에는 수군들이 항상 바다에 떠 있음으로 해서 그 고생이 많고 병장기도 해풍에 녹이 슬어 손실이 심했기 때문에 성종 때에 들어와서는 수군진에 성을 쌓아 병장기도 보관하고 수군들도 육지에서 쉬게 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 성종16년(1485) 연해안 수군진에 성을 쌓기 시작하니 이곳 돌산진에서도 축성을 시작하여 성종21년(1490) 6월에 성이 완성되었던 거이다.
돌산만호진이 축성된지 32년 후인 중종17년(1522), 남해안 수군진의 일부를 보강 정비할 때 방답진(防踏鎭:돌산읍 군내리)을 새로 설진하여 돌산포(돌산이 성종 때 돌산포로 바뀜)의 군선을 이 곳으로 옮기게 되자 자연 돌산포만호진은 폐진이 되고 권관(權官)을 두어 순천부의 진군들 가운데 약간명의 군사만이 와서 지키게 되었다. 이 때의 이진(移鎭)에 관한명확한 이유가 기록되지 않고 있으나 침입하는 왜구의 방어에는 방답진의 지리적 위치가 보다 중요시되어 전진 배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임진왜란 때는 돌산포가 전라좌수영의 5관,5포에 는 속하지 않았지만 이 지방민은 전라좌수영 본영이나 방답진에 소속되어 빛나는 활약상을 모여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우리나라에는 왜구의 방어에 더욱 힘을 기울여 남해안의 수군진을 대폭 증설하였는데, 광해군3년(1611)에는 옛날의 이곳 돌산포진을 고돌산진으로 개칭하여 새로운 수군진으로 출발시키고 권관을 두었는데 그 후 별
장으로 바뀌었다. 이 때 고돌산진은 장흥부와 회령포진이 함께 좌수영에 편성되어 소위 전라좌수영의 6관 6포가된다. 본시 이곳이 돌산진이었을 때의 수군은 <세종실록지리지>에 “병선이 8척 이었고 선군이 518명이고 초공(梢工)4명” <규장각 고지도>에 고돌산진에는 “전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 2척, 사부(射夫) 25명, 화포장 11명, 포수 34명, 사공 11명, 능노군 150명으로 계231명”으로 기록되어 있고, 광해군3년(1611)에 쓰여진 <고돌산진 진지 및 사례>에 “열자전선 1척에는 기패관 2員, 좌우포도관 2원, 훈도 1인, 사부 15명, 포수 24인, 화포장 10명, 사공 10명, 능노군 108명, 장자병선 1척에는 선장 1원, 훈도 1인, 사부 10명, 포수 10명, 화포장 1명, 사공 1명, 능노군 30명, 1사후선 1척에는 능노군 6명, 2사후선 1척에는 능노군 6명, 사열에 군관 36인, 진무 21인, 통인 15인, 사령 21인, 군뢰 2명, 기수 2명, 자모군 118명, 초둔군 20명, 가짜왜군 2명,”
<영지> 부록 사례에 “고돌산진 전선 1척, 방선 1척, 사후선 양척, 소기군병 238명”, <호좌수영사례>에는 “고돌산진 전선 1척, 군병 171인내, 기패관2, 훈도 1, 화포장 10, 사공 8, 능노 108, 포도관 2, 사부 15, 포수 24, 선직 1, 병선 1척, 군병 55명, 사후선 2척, 매척 능노군 6명씩”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만기요람>에 “전선 1척, 병선 qcjr, 왜선 1척, 사후선 2척”의 기록이 보인다. 고돌산진은 고종32년(1895) 7월 각 수영 및 진영이 폐지됨에 따라 조선초부터 500년간 가막만 방어의 주역인 이곳도 또한 혁파(革罷)되고 말았던 것이다.
방답의 이름은 거제에 있던 방답만호진이 혁파되면서 용주리의 돌산만호진의 군선을 주축으로 지금의 군내리에 첨사진으로 승격되어 설진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3) 한려해상국립공원(閑麗海上國立公園)
경상남도 거제시에서 여수시에 이르는 해안 일대에 분포하는 해상국립공원. 전남 여수시, 경상남도 사천시. 거제시. 통영시. 하동군. 남해군 등 2개도 4개시 2개군에 걸쳐있다. 한려(閑麗)란 한산도의 “한”(閑)자와 여수의 “여”(麗)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1968년 12월 해상공원으로는 처음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 지역에는 자연경관이 수려한 다도해, 비진도, 한산도, 거제해금강 등 해상관광자원이 풍부하며, 임진왜란때 일본 수군을 대파한 이순신장군의 유적이 많아 역사의 산현장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기후가 온화해 동백나무·비자나무·유자나무·풍란 등 난대성식물이 자생한다.
총면적 510.32㎢ 가운데 바다 면적이 344.76㎢이고, 그 나머지는 섬을 포함한 육지로 면적은 165.56㎢이다. 섬은 총 95개로 이 가운데 유인도 38개, 무인도 57개가 있다. 지역별로는 통영시 203.9㎢, 거제시 170.50㎢, 남해군 74.12㎢, 여수시 28.90㎢, 사천시 26.70㎢, 하동군 6.20㎢ 순이다. 이 국립공원은 거제해금강지구, 통영·한산지구, 사천지구, 남해대교지구, 상주·금산지구, 여수·오동도지구 등 6개 지구로 구분된다.
거제해금강지구는 거제시 동남해안과 가왕도·대덕도·갈곶도·장사도·장병태도 등을 포함한 지역으로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거제해금강(명승 제2호)은 거제시 남부면의 갈곶도에 있는 경승지로 비로봉·만물상·촛대바위·사자바위 등의 해식애와 십자동굴과 같은 해식동굴이 절경을 이루며, 갈곶도 정상부에는 여러 종류의 난(蘭)과 동백나무 등의 희귀식물이 자생한다. 해안 곳곳에는 학동·구조라·명사 해수욕장이 있다. 천연기념물로 동부면 학동리의 동백림 및 팔색조번식지(천연기념물 제233호)와 거제도 연안의 아비도래지(천연기념물 제227호)가 있다.
통영·한산지구는 통영시 일부지역과 한산도를 비롯한 미륵도·추봉도·죽도·용초도·선유도·도곡도·연대도·비진도 등을 포함한 지역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함은 물론 이순신 장군의 전승기념물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 역사 유적지이다. 한산도는 삼도수군(三道水軍)의 본영(本營)이며, 이충무공이 9,000명의 왜병을 수장(水葬)시킨 한산대첩의 교전장으로 한산도 이충무공유적(사적 제113호)이 있으며 이곳에 제승당을 비롯하여 이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忠武祠)와 한산대첩기념비·대척문·충무문·행적비 등이 있다. 또한 통영시 명정동에는 이충무공의 위패를 모신 충무충렬사(忠武忠烈祠 : 사적 제236호)가 있다. 통영시 당동과 미수동 사이에는 충무운하가 놓여 있으며, 운하 밑에는 동양 최초의 해저 터널이 뚫려 있다. 그밖에도 이충무공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남망산공원에서는 통영 중심시가지와 한려수도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통영시 도남동 일대에 조성된 통영도남단지는 세계적인 해상관광단지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사천지구는 사천시 서부 해상의 딱섬·마도·늑도·학도·초양섬과 남부 해상의 장구섬·추도·신수도 등을 포함한다. 그밖에도 국립공원에 속하지는 않지만 암벽 위에서 내려다 본 경치가 빼어나다고 하여 신라 때 최치원이 이름을 붙인 남일대가 향촌동에 있으며, 대방동에는 대방진굴항(大芳鎭掘港), 서금동에는 노산공원이 있다.
남해대교지구는 하동군 금남면의 연태봉 남부와 설천면 북부 및 이들 사이의 노량해협과 부속섬 등이 해당된다. 이곳에는 동양 최대의 현수교인 남해대교가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와 남해군 설천면 문의리 사이에 놓여 있다. 남해대교는 자체의 웅장함은 물론 그 주변의 경치와 잘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에는 이충무공의 사당인 남해충렬사(南海忠烈祠 : 사적 제233호)가 있으며, 차면리 해안에는 이충무공이 최후의 승리를 거두면서 전사한 관음포이충무공전몰유허(觀音浦李忠武公戰歿遺墟 : 사적 제232호)와 그의 유품을 진열해놓은 노량해전박물관이 있다.
상주·금산지구는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과 상주면 경계에 솟은 금산(701m)일대를 비롯하여 상주면 전체와 노도 등의 부속섬이 해당된다. 금산은 남해의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천구암·쌍홍문·감로수 등의 금산38경이 있고, 금산 남쪽 해안 깊숙한 만 안에는 울창한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인 상주해수욕장이 있다.
여수·오동도지구는 여수시 동부의 여수만 일대와 오동도 등이 포함된다. 남국의 정취가 있는 오동도는 대나무와 동백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방파제의 건설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공원의 인근지역인 여수시 고소동에는 이충무공의 유적인 좌수영대첩비 및 타루비(左水營大捷碑─墮淚碑 : 보물 제571호)와 진남관(鎭南館)이 있고, 여수시 동부 해안에는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해안절벽과 어우러진 만성리해수욕장이 있다. 관광 코스로는 부산에서 엔젤호를 타고 통영-여수, 통영-사천-부산-여수를 도는 방법, 여수항에서 남해-사천-사량도-통영-부산항에 이르는 방법 등이 있다.
(4) 다도해해상국립공원(多島海海上國立公園)
전라남도 여수시. 고흥군. 완도군. 진도군. 신안군의 해안일대와 해상 및 도서를 중심으로 지정된 해상국립공원. 총면적 2,039.1㎢ 가운데 육지가 약 83%를 차지한다. 1981년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동쪽으로는 금오도, 서쪽으로는 홍도, 북쪽으로는 도초도와 우미도에 이르는 범위에 약 2,300여 개의 섬들을 포함하고 있다.
다도해 일대는 후빙기의 해수면 상승으로 해안지역이 침수되면서 수많은 섬·만·반도가 형성되어, 해안선이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이다. 지질구조를 보면 선캄브리아기의 화강편마암이 지각변동으로 복잡한 구조를 갖게 되었다. 토양은 적황색·적색토가 대부분이다. 기후는 위도가 낮고 연중 난류가 흘러 온난다습한 해양성기후를 보인다. 특히 비가 많고 겨울이 따뜻하나, 7·8월에 태풍의 피해를 자주 입는다. 식생은 난대림지역으로 상록활엽수림이 울창하며, 섬에서만 자생하는 특유식물들이 많다. 다도해해상공원은 금오도지구, 거문도·백도지구, 나로도지구, 완도해상지구, 조도지구, 도초도지구, 흑산도·홍도지구, 만재도지구 등 8개 지구로 이루어져 있다.
금오도지구는 금오도, 돌산도, 안도를 포함한 지역이다. 이 일대는 한려수도로 이어지는 뱃길이며, 풍부한 어장, 미역양식장으로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금오도의 유송해수욕장, 돌산도 남단에 발달한 해식애와 향일암 및 흔들바위, 안도의 서고지해수욕장 등으로 유명하다.
거문도 및 백도지구는 여수시 삼산면 일대이다. 어업전진기지인 거문도는 여수-제주 간을 연결하는 선박의 기항지이며, 덕촌해수욕장이 자리잡고 있다. 백도는 1979년 명승지 7호로 지정된 곳으로 자연의 신비함을 그대로 안고 있다. 해식애·해식동 등 독특한 형태를 지닌 바위섬 36개가 어우러져 아름다우며, 희귀한 종의 조류와 풍란·석란 등의 아열대식물이 많다.
나로도지구는 고흥군 도화면의 남해안 일대와 외나로도·지죽도를 포함한 지역이다. 나로도에는 어업전진기지인 나로도항이 있다. 그러나 연안어선들이 어획물을 서울·부산·광주 등의 대소비지로 운반하기 위해 여수항·부산항 등에 선착함에 따라 어업전진기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최근에는 일본수출용 삼치·새우를 실은 선박만이 입항하고 있다. 녹동항에서 1km 정도 떨어진 소록도에는 나병환자 갱생원이 있으며, 이밖에 소록도해수욕장·소록도공원 등이 있다.
완도해상지구는 완도의 남쪽 해안 일대를 비롯하여 보길도·소안도 등을 포함한 지역이다. 완도항 내의 주도는 상록수로 우거져 있으며, 정도리에는 청환석(靑丸石)으로 이루어진 자갈해변인 구계등(九階嶝)이 있다. 완도는 1969년 완도교가 군외면 원동리에서 달도를 거쳐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까지 건설됨에 따라 육지와 다름없는 곳이 되었다. 이 다리의 건설로 해남·강진·광주 간을 잇는 버스가 통행하고, 김·미역·생선 등의 운반도 원활해졌다. 완도읍 죽청리에 이도재 송덕비가 있다. 보길도는 〈오우가〉·〈어부사시사〉 등의 시조를 남긴 고산 윤선도가 섬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정착한 곳으로 유명하다. 동백나무·황칠나무·비자나무·후박나무가 자란다. 이밖에 보길도해수욕장과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신지도의 신지해수욕장이 있다.
조도지구의 진도는 진돗개의 본고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진도의 의신면 모도리와 고군면 회동리를 연결하는 바닷길 2.8km의 회동기적지(回洞奇蹟地)가 있다. 이곳은 매년 3월이면 바다가 갈라지는 광경을 보기 위해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이밖에 임회면의 남도석성(사적 제127호), 군내면의 용장산성(사적 제126호)·백조도래지(천연기념물 제101호), 조도면의 후박나무(천연기념물 제212호), 금골산의 5층석탑 등이 있다.
도초·비금도지구는 신안 앞바다 일대로 해식애와 맑은 백사장 등 수려한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다. 비금도를 비롯한 신안군 내 여러 섬들에서는 염전업이 활발하여 도내 생산량의 2/3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강달어·꽃게 등이 많이 잡히며, 비금명사십리해수욕장과 서산사가 있다. 또한 조도면 방축리 도독도 앞바다에는 송·원대의 유물이 매장되어 있는 해역이 해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흑산도 및 홍도지구에 속하는 대흑산도는 황해 해상의 유일한 도서어업전진기지로 홍도에 이르는 길목에 있으며, 주변 해역에서 어획되는 홍어가 유명하다. 홍도는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에 속한 섬으로 목포에서 뱃길로 130km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오랜 지질시대에 걸친 지각변동과 해풍·파랑에 의한 침식으로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 있다. 또한 바닷물이 매우 맑아 수심 30m 깊이의 해초류까지 들여다볼 수 있으며, 동백·문주란·풍란 등 많은 희귀 식물류와 곤충류가 서식하고 있다. 유람선을 타고 섬 주위를 관광할 수 있으며, 여러 개의 무인도들과 기묘한 형상의 독립문·탑섬·병풍바위·석화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죽항리에 자갈로 이루어진 해수욕장이 있다.
만재도지구는 진도로부터 약 60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해안절벽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후박나무 자생지로도 알려져 있다.
국립공원 일대는 예로부터 공물(貢物)을 중앙으로 수송하는 주요교통로였으며, 중국·일본과의 문화적 교류가 빈번했던 곳이다. 또한 삼별초 항전, 이충무공유적 등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곳이다. 옛 문화자원과 자연경관을 유지하고 있어 관광지로서의 개발전망이 밝다. 그러나 아직까지 각 도서를 연결하는 정기여객선의 운항이 빈번하지 못하여 관광객의 유치나 각 섬간의 연계가 활발하지 못하다. 관광객의 증가에 따른 교통수단의 구조적인 개선과 특산물 개발이 시급하다.
(5) 향일암(向日庵) - 문화재자료 제40호(1975.2.5 지정)
옥향일암은 낙산사의 홍연암, 남해 금산 보리암, 강화도 보문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4대 관음기도처 중의 하나이다. “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의 이 향일암은 여수시 돌산읍에 644년(백제 의자왕 4년) 신라의 원효대사가 원통암으로 창건하였다. 고려 광종 9년(958)에 윤필대사가 금오암 으로, 기암절벽위에 동백나무와 아열대 식물의 숲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해 수평선의 일출 광경이 특히 장관을 이루어 조선 숙종 41년 (1715년) 인묵대사가 향일암이라 명명하였다. 또한 주위의 바위들이 거북등처럼 되어있어 영구암(靈龜庵)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평일도 물론이지만 특히 매년 12월31일~1월1일에는 향일암 일출제가 열려 관광객들이 전국각지에서 이 곳 '해맞이 명소'에 몰려든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충무공을 도와 싸웠던 승려군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이 곳은 대웅전과 관음전, 칠성각, 독서당, 취성루 등이 복원돼 사찰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6) 무술목
무술목은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이 왜선 60여척과 왜군 300여명을 섬멸한 전승지이다. 이때 전사한 왜적들의 피로 바닷물이 붉게 물들었다 하여 “피내”라고도 불렸는데 현재 이를 기념하는 전적비가 남아있다. 피낸ms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무서운 목”이라는 뜻의 무술목, 혹은 왜군을 섬멸한 전투가 무술년(1598)에 일어났다는 뜻의 무술목으로 이름이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
무술목 앞바다에서 돌산도를 바라보면 마치 두개의 섬처럼 보인다. 이곳이 바로 섬의 잘록한 허리부분에 해당하는 무술목이기 때문이다. 지형 사정을 모르는 왜군들은 이를 뱃길로 오인하여 들어섰다가 섬멸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