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제주국제아이언맨대회를 마지막으로 철인이란 칭호가 무색할 정도로 한동안 킹코스 대회를 출전하지 않았다. 처용철인클럽으로 소속을 바꾼 이후, 다시 운동에 대한 강한 열정이 되살아나 만 9년 만에 제주국제철인3종경기대회에 출전한다. 지난 7월 6일 금요일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부산 김해공항으로 달려간다. 모처럼 장비들을 싣고 항공편으로 가는지라 한편 어색하기도 하고, 드디어 킹코스(수영 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를 도전하는구나 하는 부담이 와 닿는다. 본격적인 킹코스대회를 준비한 게 겨우 두어 달 남짓한 것으로 과연 편안하게 완주를 할 수 있을까? 너무 서둘러 예약한 시간보다 더 이른 8시 5분 부산발 제주행 항공편에 몸을 싣는다. 45분 날라가 창 너머로 제주시가 눈에 들어온다. 제주도는 매년 1회 이상은 방문을 하는 곳이지만 언제나 정겨운 섬이다. 올 때마다 느끼는 게 하와이보다 더 아름답고 볼거리, 먹거리가 더 많은 곳이다. 그동안 대한연맹 지방회장단 일행으로 대회를 참관하러 오곤 했다. 렌터카를 11시에 찾기로 했는데, 시간이 조금 남는다. 새벽부터 서둘러서 허기가 일찍 찾아온다. 공항청사 1층 스낵바에서 김밥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렌터카 사무실로 이동하여 차를 찾은 뒤, 제주연맹 이희봉 전회장님에게 제주에 도착했노라고 전화를 한다. 늘 반가운 목소리다. 오후에 서귀포 월드컵경기장에 마련된 대회본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약간의 시간적인 여유가 생긴다. 타지를 방문하면 늘상 하는 버릇이 또 발동을 한다. 어디 유적지나 박물관, 미술관 등을 자투리 시간을 내어 방문하는 것이다. 중문관공단지로 가는 도중, '제주항파두리 항몽유적지'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13세기 고려 말 몽골의 침략에 맞서 끝까지 항거한 고려무인들, 삼별초군의 마지막 보루였던 곳이란다. 항몽순의비에 참배를 하고, 그때 쌓은 토성을 둘러본다. 철인경기를 하는 까닭인가, 무려 740여 년 전의 삼별초 무인들의 거친 함성과 고초를 겪었던 제주도민들의 모습이 더욱 숙연하게 와 닿는다.
대회본부에서는 제주연맹 김영건 회장님 이하 제주연맹관계자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울산에서 소규모 철인대회를 수없이 많이 치러 봤지만, 제주국제철인3종경기대회는 그 규모가 엄청나 거의 3,000여명의 선수, 가족, 자원봉사자, 지역 주민 등이 동원이 되는 행사이다.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제규모급의 철인대회라고 자부할 수 있다. 대한트라이애슬론연맹 지방회장단협의회의 대표로써 대회를 축하하러 왔지만, 한편으론 참가선수의 한사람으로 선수등록을 하고 여러 주의사항들을 확인한다. 오후엔 경북연맹 김상택 회장님, 전남연맹 노양진 전회장님, 그리고 대한연맹 유문규 부회장님이 대회본부에 도착을 한다. 울산에서 만들어 온 대회장(제주연맹회장)께 전달할 공로패를 전달하고, 축하화환을 전화로 주문하는 것으로 지방회장단협의회 회장으로써의 나름의 임무(?)를 수행하고, 주최측에서 마련해준 제주 서귀포에 위치한 숙소(선비치호텔)로 이동하여 짐을 푼다. 천제연폭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아름다운 곳이다. 모레 하루 종일 수영, 사이클, 마라톤을 해야 하지만, 애써 제주의 아름다움에 잠시 여유를 가져본다.
한편 처용철인클럽의 소연이 한테 전화가 온다. 울산-제주 노선이 우천관계로 결항이란다. 그래서 부산김해공항으로 이동 중이란다. 순간 짱회장님, 기룡형님, 영일이 얼굴이 떠오른다. 출발부터 고생을 시작하는구나싶다. 오후 8시 넘어서 '제주도착^^~' 이란 반가운 문자가 온다. 그러게 여행은 서두르는 게 좋은 습관이다. 회장단 만찬에 잠깐 참석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처용클럽 회원들이 여장을 풀고 있는 한국콘도로 달려간다. 고생한 흔적이 얼굴에 묻어난다. 소연이의 엄청난 활약(?)으로 일행이 다행스럽게 제주에 올 수 있었단다. 기룡형님이 준비해온 비장의 약물요법에 따라 앰플 한 뭉치를 얻어 다시 숙소로 돌아와 일찍 잠을 청한다.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서두른다. 오늘은 제주도 화순에 위치한 수영경기장에 가서 사이클을 검차하고 사이클 거치대에 거치를 해야 한다. 또한 수영 예행연습을 마지막으로 해야 한다. 작년부터 제주국제철인3종경기대회는 수영은 화순해수욕장에서 3.8Km를 하고, 사이클은 화순에서 시작하여 월드컵 경기장을 지나 성산을 거쳐 한라산 기슭을 지나는 1115번 도로를 따라 다시 중문관광단지를 거쳐 월드컵 경기장으로 돌아오는 180Km의 구간을 달리고, 마지막 종목인 마라톤은 대회 본부를 경유하여 서귀포시 입구 반환점에서 중문관광단지 가는 도중에 위치한 반환점까지의 편도 7Km를 3회 왕복하는 코스로 되어 있다. 어제 저녁에도 그렇고 오늘 저녁에도 회장단 만찬이 있지만, 이번엔 선수로 출전한다고 다행히 술은 권하지 않는다. 1차 식사만 간단히 하고 일찍 숙소로 들어가 컨디션 조절을 하란다. 참가선수로 제주를 방문하면 이런 점은 좋구나 싶다. 다시 한국콘도로 달려가 짱회장님이 손수 준비한 스패셜푸드(대회당일 먹을 전복죽)를 전달받아 온다. 내일 대회 준비물(수영, 사이클, 마라톤)과 사이클 및 런 스패셜푸드를 각각 주최측에서 나눠준 봉지에 담는다. 오늘은 어제보다 좀더 서둘러 일찍 잠자리에 든다. 물론 9년 만에 출전하는 킹코스 대회라서인지 여느 올림픽대회때와는 달리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내일 수영, 사이클, 마라톤을 하면서 복용해야 할 약물(?)과 아미노산, 그리고 비타민 등을 머릿속으로 순서대로 따라가 본다. 다음 날 기상시간을 미리 알람으로 알리게 해놓고 자지만, 늘 알람이 울리기 30분 전이면 어김없이 잠에서 깬다. 시간이 2시 30분이다. 10시 남짓 넘어 잤으니까 4시간 30여분 잔 것 같다. 오늘 대회 출전한다고 룸메이트인 전남의 노양진 전회장님은 제주의 이희봉 전회장님과 같은 방에서 잤단다. 배려해주시는 게 고맙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스트레칭 효과는 잠을 깨는 것도 있지만 생리현상을 원활히 하는 게 더 큰 이유에서다. 두 번 밀어내기를 순조롭게 한다. 특히 킹코스대회에서 생리현상에 실패를 하면 낭패를 본다. 2001년 첫 출전한 제주국제아이언맨대회때는 경험이 부족하여 고생을 많이 했었다. 사이클 130Km 지점에서 소변을 보는데 회음부 압박으로 도저히 볼 수가 없는 게 아니었던가! 샤워를 하고, 기룡형님이 준비해준 약(샘플들)을 용기에 하나씩 넣어 스패셜 푸드 봉지에 넣는다. 수영 전에 아미노산 1개, 홍삼 2봉, 수영 마치고 사이클 시작 전에는 전복죽, 그리고 조제한 약물 1개, 아미노산 1개, 그리고 사이클 주로에서 먹을 구 3개, 아미노산 2개, 홍삼 꿀물 1통, 포카리 1통, 사이클 마치고 런 시작 전에 먹을 전복죽, 그리고 조제한 약물 1개, 아미노산 1개, 그리고 런 주로에서 먹을 구 4개, 아미노산 2개, 보급소에서 타서 먹을 홍초 1통, 비타민 6개.....대회를 하러 온건지 아니면 약물, 아미노산, 비타민을 먹으러 온건지......^^
새벽까지 3차(술자리)를 갔었다는 전남 노양진 회장님과 화순해수욕장으로 이동을 한다. 새벽 5시30분인데 벌써 많은 선수들, 가족들이 와서 대회 준비를 하거나, 기념사진을 찍거나 한다. 사이클을 점검하고 바퀴의 기압을 체크한다. 앞뒤 바퀴의 공기압을 140으로 맞춰놓고, 사이클, 런 물품과 사이클, 런 스패셜푸드를 대회측에 맡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닷물에 들어가 최종 워밍업을 한다. 헌데 또 생리현상이 시작된다. 난감하다. 슈트까지 다 착용했는데. 황급히 임시 화장실로 달려가 해결한다. 대회 시작 30여분 전이다. 간단히 식전 행사를 하고, 에어로빅 강사의 지도에 따라 다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이른 아침인데 벌써 이글거리는 태양이 떠오른다. 예사롭지가 않다. 불볕더위에 연습을 한다고 했는데, 오늘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다. 시작을 알리는 에어혼 소리와 더불어 수영이 시작된다. 480여명의 참가선수들이 일제히 바다물속으로 들어간다. 장관이다. 드디어 장도의 킹코스가 시작되는구나 싶다. 부드럽게 온몸에 힘을 빼고 천천히 천천히 수영을 시작한다. 그렇잖아도 수영이 가장 취약 종목이다. 이런 저런 핑계로 강습을 미루고 엉터리 영법으로 훈련만 열심히 한다고 했다. 어제 미리 한 바퀴 수영을 했던 게 조금은 위안이 된다. 그럭저럭 한 바퀴를 마치고 수영 반환점으로 올라오니 뒤에 몇 명의 선수만 보인다. 오늘도 역시나 싶다. 다시 한 바퀴를 역영한다. 이번엔 쉽지가 않다. 상체 근육이 뭉치는 느낌이다. 두 번째 부표 가까이 도달하니 파도도 높이 일렁인다. 호흡은 이미 가다듬어져 불편함이 없는데, 상체 어깨근육이 문제다. 억지로 롤링을 더 심하게 해 본다. 세 번째 부표까지가 쉽지가 않다. 갈수록 자꾸만 부표라인으로 몸이 밀린다. 좌우 밸런스가 깨진다. 세 번째 부표를 돌아서는 순간, 빨간 수모를 한 여자선수가 옆에 보인다. 역시 지친기색이다. 마지막 레인이다. 저 멀리 수영 시작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갑자기 오른 손 4번 째 손가락에 가시가 몇 개 박히는 통증이 느껴진다. 독성강한 해파리에 쏘였다. 통증이 심하다. 가시가 몇 개 쑤시고 들어오는 통증으로 오른 팔이 마비가 되는 것 같다. 그렇잖아도 힘든 수영인데, 이런 낭패가 있나? 2002년 속초 국제아이언맨대회 때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청초호에서 수영을 했는데, 물이 탁해 미처 파악을 못한 앞 선수의 발에 오른 쪽 귀를 맞아 고막이 터졌었다. 그때도 한동안 청초호 한 복판에서 5분여 가량을 꼼짝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겨우 남은 구간을 역영하여 뭍으로 올라오니 사회자가 "구교수님이 드디어 수영을 마쳤습니다"라고 고래고래 목청을 높인다. 짱회장님, 소연이, 종근이가 그때까지 지키고 있다. 한편으로 미안하고 고맙다. 사이클 물품백을 받아 탈의실로 들어가 천천히 슈트를 벗고 전날 준비한 전복죽을 입에 털어 넣은 뒤, 비장의 약물을 마시고, 마지막으로 아미노산을 1개 먹고 사이클을 탄다. 사이클은 나의 주종목이다. 뒤에 겨우 4~5명의 선수들만 남은 것 같다. 거의 꼴지로 수영을 마쳤다. 울산으로 돌아가면 초심으로 돌아가 수영을 다시 강습받아야겠다. 첫 40Km는 가볍게 탄다. 페달링 위주로 근육을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 오늘은 왠만하면 사이클 유바를 잡기로 하자. 미리 목덜미에도 테이핑을 했다. 유바를 장시간 사용하면 목뒤 근육통이 심하기 때문이다. 대회 준비하면서 나름 유바로 인한 목뒤 근육통을 줄이기 위한 여러 준비를 했었다. 한동안 홀로 타기를 한다. 20여분 달리니 한명씩 앞선 선수들이 나타난다. 사이클 코스가 대회본부를 거쳐 천제연폭포를 지나 숙소 앞으로 지나간다. 곳곳에서 교통통제 자원봉사자들 모습이 들어온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종일 뙤약볕에서 자원봉사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달리는 선수들 이상으로 고통스럽다. 6~70Km를 달리니 제주 특유의 해변가와 마을들이 눈에 들어온다. 제주도는 아름다운 섬이란 걸 다시 확인해 주는 사이클 주로이다. 서서히 피로가 쌓여온다. 전반 90Km는 편안하게 페달링을 하기로 했는데, 한 명 두 명 앞지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속도를 낸다. 영일이와 기룡형님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90Km 지점에 위치한 스패셜푸드 지점에 도착한다. 지열이 지글지글 끓는다. 이번 대회엔 주최측에서 전복죽을 준비하기로 했다고 사전에 인터넷 게시판에 반가운 소식을 올렸는데, 막상 도착하니 자원봉사하는 아주머님 왈, "전복죽이 벌써 다 떨어졌어요"하는 게 아닌가? 난감해 말이 안나온다. 동네 대회도 아니고, 이름하여 국제대회인데.... 연맹관계자로써 뭐라고 욕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그냥 갈 수도 없고. 주최측에서 준비한다고 이 지점에서는 스패셜푸드를 별도로 준비하지 않았던 게 실수였다. 옆 선수가 햇반과 생수, 그리고 깻잎을 봉지에서 꺼낸다. 어린 아이 때 친구가 맛있는 과자를 손에 쥐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시선이 돌아가던 것처럼 그 선수의 스패셜푸드에 눈이 절로 돌아간다. 다행히 햇반을 3분의 2만 생수에 말아 깻잎과 먹는다. 수취심이고 뭐고 따질 상황이 아니다. "저기, 햇반 좀 얻을 수 없을까요?" 그 선수 왈, "이것 드세요!"하는 게 아닌가. 정말 고맙다. 인사를 하고 그 선수처럼 생수를 햇반에 말아 후루룩 마신다. 헌데 시원하게 넘어간다. 꿀맛이다. 옆 테이블엔 먹다 남은 고추장이 눈에 들어온다. 고추장을 나무 젖가락으로 푹 찍어 입에 넣어본다. 역시 꿀맛이다. 세상에.... 요즘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든 지역이라도 찬밥에 물말아 고추장을 반찬으로 식사 한 끼를 때우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다. 고추장이 들어가니 포카리, 구, 홍삼꿀물로 다래진 속이 좀 풀리는 것 같다. 역시 한국 사람은 고추장, 된장, 김치를 먹어야 힘을 쓸 수 있어. 드디어 그 악명 높은 고갯길, 돈네코 입구다. 기어를 최저비로 바꾸고 서서히 페달링을 한다. 고개 초입부터 아예 끌고 올라가는 선수들 모습이 들어온다. 언양-경주 구간에서 고갯길 연습을 좀 했다고 왠만큼은 올라간다. 천천히 천천히.... 중턱 즈음 다달으니 역부족이다. 중고등학교 6년을 자전거로 통학을 한 이몸이다. 언덕길 올라가는 방법, 지그재그 주행을 하자. 물론 지그재그를 할 때마다 뒤에 올라오는 차량들을 조심하면서. 고갯마루에 올라갈 무렵 반가운 소리와 얼굴이 들어온다. 짱회장님과 소연이다. 정말 고맙다. 여기까지 달려와 또 응원을 한다. 영일아와 기룡형님은 사이클에서 내려 끌고 올라왔단다. "지그재그는 내 주특기야!" 하고 여유를 부리면서 올라간다. 고갯마루에 위치한 보급소에서 잠시 물을 마시고 또 다시 그 유명세를 날리는 낙타고개에서의 역주가 시작이 된다. 거의 20Km 이상을 개마고원같은 제주 한라산기숡 도로는 완만한 고갯길인데 올라가면 또 다른 고개가 싱겁게 웃고 기다리는 것같은 부담을 주는 곳이다. 이 구간에서 전력을 다한다. 거의 50여명 이상의 선수들을 추월한다. 중간쯤 가니 평소 좋아하는 부산의 전광진 형님이 기다리고 있다. 부산 동호인들 응원하러 일찌감치 올라와 계신 것이다. 늘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하는 선배님이다. 이번엔 18년 가까이 동고동록을 함께하다 최근 하늘나라로 훌쩍 떠난 강아지 비키가 떠오른다. 갑자기 뭉클하면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고녀석 정말 친자식처럼 지냈는데. 집앞 동산에 고이 묻어주고 매일 같이 들르건만 아직도 슬픔이 가시질 않는다. 이젠 서서히 내리막구간으로 접어든다. 특유의 할강(위험하지만 유바를 잡고서, 엉덩이를 안장의 뒷쪽으로 쭉 뺀 자세)을 한다. 엄청난 속도로 내려온다. 2차선 도로라서 위험하기 짝이 없다. 마지막 50Km 정도를 남겨두고 있다. 지겨움이 극에 달하는 지점이다. 아니나 다를까, 양쪽 허벅지에 엄청난 근육통이 시작되는게 아닌가. 약물 복용도 철저히 했는데, 왜 또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하면서 페이스를 확 떨어뜨린다. 겨우 겨우 페달링을 하면서 마을들을 돌아돌아 드디어 화순 팻말이 보이는 지점까지 내려 왔다. 앞뒤로 선수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또 꼴지인 것처럼. 온갖 생각들이 스쳐지나간다. 장거리 마라톤이나 사이클을 탈 때면, 항상 여러 생각들이 떠오른다. 가족은 물론, 친구들, 학생들, 앞으로의 여러 계획들,..... 그래서 철인경기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든다. 이젠 고통을 즐기는 경지에 이른 것일까? 그만큼 나이가 든 것일까? 인생을 어느 정도 알면할 때면, 이미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어느 선배님의 말씀이 있었는데....
드디어 런 주로와 겹치는 5Km 남은 구간이다. 사이클 구간이면서 마라톤 구간이다. 오르막, 내리막이 짜증스럽게 반복되는 구간이기도 한다. 벌써 대다수의 선수들이 마라톤 역주를 하고 있다. 게중엔 반가운 얼굴들도 보인다. 울산철인클럽의 대표 선수인 일환이도 보인다. 역시 잘 달린다. 저 멀리 월드컵 경기장 지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마트도 보인다. 장장 7시간 이상의 사이클 구간을 종료하는 순간이다. 소연이가 또 반갑게 주로에까지 내려와 환영을 한다. 가시나! 늘 까칠한 면이 있는데, 오늘따라 고맙고 미안할 정도다. 짱회장님도 물론이다. 종근이도.... 이번 대회 때만큼 자원봉사하는 회원들의 뜨거운 고마움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안 떠오른다.
다시 탈의실로 들어가 전복죽으로 요기를 하고 조제약을 마신 뒤, 또 아미노산을 한 개 털어넣는다. 그리고 구와 비타민을 주섬주섬 상의 옆 호주머니에 쑤셔 넣고 오늘의 마지막 종목인 마라톤을 시작한다. 막판 사이클에서 무리를 한 성싶다. 서서히 근전환 모드로 달린다. 저만치 처용철인클럽의 꿈나무 영일이가 반환점을 돌아 힘겹게 달려온다. 대견하다. 철인을 시작한지 일 년 남짓한 기간에 킹코스까지 도전을 하다니...반환점을 돌아 중문방향으로 달린다. 2001년 제주아이언맨때도 뉘엇뉘엇 넘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달렸던 구간이다.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면서 중간중간 보급소에 들러 생수로 온몸을 적시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내달린다. 한때 영남 사인방 중 한사람으로 철인계를 휘어잡던 부산의 백호산철인, 아직도 그 여세를 놓칠 줄 모르는 창원의 조정현철인, 우리나라 철인 역사의 시조랄 수 있는, 그리고 기인으로 분류되는 주정규철인, 그리고 울산철인클럽의 반가운 얼굴들(강명호, 장지택, 김지훈, 오일환, 최승필. 박진용....), 이런 열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다들 존경스럽다. 첫 바퀴 14Km는 그런대로 편하게 역주를 하였다. 두번 째 바퀴다. 영일이가 쉼 없이 뒤를 따라온다. 기룡형님은 상태가 안 좋은지 지택이와 걷기 시작한다. 속도가 서서히 떨어진다. 보급소마다 들러 냉수 등목을 하면서 컨디션을 억지로 맞춰본다. 중간 중간 비타민으로 최면을 걸어본다. 속도를 조금 올릴까 싶으면 여지없이 근육통이 기다린다. 두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듯.... 좀 달렸나 싶었는데 아직도 하프도 못 달렸다. 두번 째 바퀴가 많이 힘들다. 새벽부터 종일토록 본부 주로변에서 기다리고 있는 짱회장님, 소연이, 종근이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반갑고, 고맙고 감동을 준다. 처용 까칠이들이 오늘따라 감동 그 자체다. 농담으로 맥주 마시고 싶다했더니 두 번째 바퀴를 돌아오니 맥주도, 구도, 아이스크림도, 우황청심환도,....모두 준비했단다. 한편의 드라마 같다. 새벽부터 시작하여 밤 10시가 넘도록 온종일 땡볕과 씨름하면서 그리고 밤이 깊도록 고래고래 소릴 지르면서 온갖 준비물을 챙겨주다니 .... 드디어 마지막 마라톤 한 바퀴를 남겼다. 이젠 걸어도 11시전엔 들어오겠구나. 언덕을 오르는 구간엔 걷는 속도나 뛰는 속도나 별 차이가 없다. 그래도 애써 달린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장거리 훈련을 좀 했다고 얼마 전 울산대병원에서 받은 종합검진 결과가 매우 고무적이었기 때문이다. 2년 전 고지혈증, 고혈압 초기, 비만이란 단어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힘들게 달리는 이 순간에도 내 몸 안의 온갖 장기들을 깨끗이 청소하는 느낌이다. 혈관에 끼인 불순물들을 싹싹 쓸어내는 것 같다. 중문방향 반환점을 돌아 남은 6Km를 힘들게 달려가니 저 멀리 영일이가 아직껏 힘차게 뛰어오는 게 아닌가! 정말 대단하다. 영일이 지구력은 인정해야겠다. 3Km쯤 달렸을까, "구교수님!"하면서 바로 뒤에서 영일이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주클럽의 철인과 동반주를 해 온 것이다. 지난 해 울릉도 철인대회를 같이 갔었던 철인이다. "영일아, 너 정말 대단하다. 남은 구간은 같이 가자!" 미안하지만 영일이를 붙잡았다. 덩달아 걷기 시작했다. 앞에 더불어 걷고 있는 대구 계명대의 강승규교수가 보인다. 첫 바퀴는 추월했다가 두 번째 바퀴에서 추월당했는데. 다시 인사를 하고, 영일이도 인사를 시키니, 먼저 가란다. 강교수는 KTS 운영자이기도 하다. 그분의 역할은 또 나름 대단하다. 우리나라 철인들의 정보교환은 물론, 수많은 동호회의 구심점으로써, 그리고 수많은 철인들의 지침이 되는 사이트를 정말 열심히 운영하고 계신다. 드디어 이마트 특유의 노란색 간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역시나 짱회장님, 소연이, 종근이, 그리고 전남 노양진 전회장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이젠 더 이상 고맙다는 표현도 안 나온다. 장장 15시간 54분 05초, 이 순간을 위해 종일 최선을 다했다. 온갖 상념과 생각으로 달렸다. 마지막 골인 세리모니는 영일이가 고함을 지르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영일이, 전남 노양진회장님, 나 세사람이 같이 골인테이프를 끊기로 했다. 마음속으로, 들어오면 달려온 주로를 향해 돌아서서 경건한 마음으로 큰절을 하기로 했는데, 환영분위기에 그마저도 잊어버렸다. 이렇게 2012제주국제철인3종경기의 대단원은 막을 내린다. 그동안 박원장님, 미담원장, 그리고 미포의 일꾼 병지, 모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처용철인 모두 오늘 한편의 드라마 주인공들이다.
첫댓글 참 수고가 많으셨네요 잘 읽고갑니다. 화이팅!
수고하셨습니다. 생생하게 그날이 묘사되어 읽는동안 마치 같이 경기에 참가하는 듯한 느낌이더군요. 그리고 진정한 철인의 기운이 강하게 전달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