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18문학상 신인상 동화부문 당선작] 한완식
소문
오늘도 안 오시려나.......
골목 안 사람들이 몸을 움츠리고 소리를 낮춰 이야기를 나눴다. 귀에 담기 무서운 말들이었다. 어느새 크고 작은 골목마다 무서운 말들이 가득 퍼졌다. 사람들은 무서운 말들을 피해 집으로 몸을 숨겼다. 무서운 말이 아빠를 숨겼다.
아빠가 연락도 되지 않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엄마는 무서운 말들을 헤치며 아빠를 찾아 나섰다. 엄마는 앞이 보이지 않는 장님처럼 소문만 더음어 아빠를 찾아다녔다. 아빠를 찾아 며칠을 헤매던 엄마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먼 곳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엄마도 이틀 전부터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 오시믄 니가 꼭 붙들고 있어야 된다. 잉, 알것냐! 절대 집 비우믄 안 된다. 잉!”
엄마가 아빠를 찾아 집을 나설 때면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다짐받듯 한 말이었다. 이제 나는 정말로 집을 비울 수가 없다. 아빠도 붙잡아야 하고, 엄마도 붙잡아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휴교령이 내려져 하루 종일 집에서 엄마, 아빠를 기다릴 수가 있다. 나는 무서운 말들이 가득 찬 골목길에서 집 지키는 강아지 마냥 어슬렁거렸다.
전봇대와 담장 사이 작은 종이가 팔랑거렸다. 하루 종일 집 앞 골목길에만 있던 나는 호기심에 눈을 번쩍 떴다. 종이를 들어 올려 흙먼지를 털었다. 누렇게 색이 바랜 종이에 글이 진하게 새겨져 있었다.
우리는 보았다.
사람들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
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 5. 20.
전남 매일 신문기자 일동
전남 매일 신문사장 귀하
20일이면 벌써 엿새 전이다. 그날 골목 안은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많은 말들을 남겼다. 광주 MBC방송국이 불에 탔다고 했다. 방송국에서 진실을 알리지 않아 불이 났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 뒷날부터 아빠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아빠는 방송국과 상관없는 시내버스 운전기사다. 방송국에 불이 났는데 아빠가 왜 집에 돌아오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바람 한줄기가 힘없이 붙들고 있는 종이를 낚아채 갔다. 종이는 줄 끊어진 연처럼 펄럭이며 골목 안을 날아다녔다. 굳이 쫓아가 잡고 싶지 않았다. 이미 골목에는 더 무서운 말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날 장관이엇제. 제일 앞에 시내버스가 떡 허니 스고, 버스도 여러 대였제. 훤한 대낮인데도 쌍 라이트를 딱! 비추고, 경적을 울리는디, 쩌그 앞에 있는 군인들이 하나도 안 무섭대랑께!”
“워매, 자네도 거기 있었는가? 나도 거기에 있었는디, 버스도 버스제만 그라고 많은 사람들이 모인 건 태어나서 처음이랑께.”
“허, 그 미친놈들이 총질만 안 했으믄....... 세상이 바뀌는 줄 알았는디, 까악~ 뛔!”
아저씨는 몸서리치며 가래침을 뱉고 발고 쓱쓱 문질렀다.
“워메,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벌렁벌렁 한당께. 그런 생 지옥은 태어나서 처음이여.”
“긍께 말이여. 나중에 군인들이 버스 끄집에 낼 때, 성한 버스가 한 대도 없었디야. 유리창은 모다 깨저불고 버스 앞에는 총알자국이 벌집마냥 수두룩 허고, 다시는 차로도 쓸 수 없을 정도가 됐다고 허드랑께.”
“아따! 말해 뭐해. 생지옥이 따로 없었당께.”
들려오는 말에 숨이 딱 멎는 것 같았다.
‘아닐 거야!’
무서운 말을 쫓아내기 위해 머리를 흔들며 골목 안 작은 하늘을 올려다 봤다. 벌써 한낮이 되었나 보다. 해가 머리 위로 치솟아 있었다. 하늘이 웅웅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큰길에서 들려오는 사람들 목소리가 골목 안까지 들렸다. 어제까지는 점심 넘어서부터 소리가 들렸는데 오늘은 더 빨리 들여왔다. 골목 안에 보이던 사람들도 어느새 보이지 않았따. 사람들도 큰 길로 나갔을 것이다.
사람들이 큰길에 나갔다 오면 새로운 말들이 골목을 채웠다. 나는 제비 새끼마냥 사람들이 물어오는 말들을 받아먹었다. 나도 큰길에 나가 보고 싶었다. 비어 있을 집이 걱정되긴 했지만 그래도 잠깐 가서 보는 건 괜찮을 것 같았다.
집 앞 작은 골목을 벗어났다. 항상 다니던 길인데도 며칠 만에 낯설어 보였다. 작은 골목을 벗어나면 극장이 나왔다.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극장 앞이었는데 사람 그림자조차 찾아 볼 수 없었다. 극장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건물 위에 커다랗게 걸려 있는 영화 포스터에 이주일 아저씨가 익살스럽게 웃고 있었다. 포스터를 볼 때마다 옆집 사는 영남이랑 킥킥대며 지나다녔는데 이제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극장 앞은 차가 다니는 길이다. 차가 안 대도 보이지 않았다. 골목만큼이나 텅 빈 길이 돼 버렸다. 병원 구급차 한 대가 다급하게 내달렸다. 그 뒤를 군용 지프차가 구급차를 놓칠세라 바짝 따라갔다. 지프차에는 총을 든 시민군들이 타고 있었고 커다란 태극기가 펄럭였다.
시민군은 정식 군인들이 아니라고 했다. 시민군에는 대학생 형들, 택시기자 아저씨들, 길 건너편 시장 삼촌들, 철공소 아저씨도 함께 참여했다고 들었다. 군인들이 먼저 아무한테나 총을 쏘자 살기 위해 총을 든 시민들을 시민군이라 불렀다. 시민군이 만들어지자마자 무서운 말들이 밀려나고 골목 안은 조금씩 밝아졌다. 들리는 말들은 여전히 무서웠지만 사람들 모습은 조금 더 활기찼다.
나는 구급차와 지프차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바랐다.
“아이고, 광주가 꽉 막혀붓당께요!”
“이 일을 어째야 쓸까나!”
길 건너편 시장 골목 어귀에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들 말에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기울였다. 엄마, 아빠를 기다리다 생긴 습관이었다.
점포 문을 닫는 시장은 골목 안보다 조용했다. 점포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들 몇이 시장 안을 서성거릴 뿐이었다.
“아짐은 어디서 오시오?”
“잉, 각하동에서 오는디, 군인들 봉께 잘못한 것도 없는디 괜히 가슴이 꽁닥거려서 혼나부렀구만.”
“군인들은 뭐하고 있습디요?”
“뭐하긴, 개미 새끼 한 마리 못 지나다니게 길 막고 있제. 그라고 그짝도 같은 사람들인디 항꾼에 주먹밥도 나눠먹고 그라제.”
“그랑께요. 이제 뭔 난리인지 모르것소!”
사방팔방 꽉 막힌 강주라고 했다. 도대체 아빠는 꽉 막힌 고아주 안 어디 계실까? 엄마는 어디에서 아빠를 찾고 계실까? 발에 걸리는 작은 돌맹이를 화풀이 하듯 걷어찼다. 돌멩이는 떼굴떼굴 굴러 사거리 신호등 앞에 가서 멈췄다.
“와아아~!”
함성 소리가 사거리를 덮쳐왔다. 검정색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형들이었다. 형들은 백 명이 훨씬 넘어 보였다. 형들도 큰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나도 형들의 뒤꽁무니에 따라붙었다.
큰길에 다가갈수록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울렸다. 고등학생 형들이 사람들 속으로 까만 점처럼 묻혀 버렸다.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광주 시민들이 모두 큰길에 나온 것 같았다.
사람들 모습이 마치 강물 같았다. 강물처럼 도청 앞으로 굼실굼실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도청은 시민군이 지키고 있다고 했다. 도청 앞 도로는 넓었다. 넓은 도로는 사람들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내는 광장이 됐다고 했다. 아빠가 태워 주던 시내버스 안에서 봤던 한목소리를 내는 광장이 됐다고 했다 아빠가 태워 주던 시내버스 안에서 봤던 분수대가 생각났다. 동그란 분수대는 두 개 층으로 나눠져 있었다. 아래층 분수대에는 가장자리로 작은 분수가 나오고 위층 가운데는 커다란 물줄기가 높게 솟구쳐 올랐다.
사람들 목소리가 도청 앞 분수처럼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비상 계엄령 해제하라!”
“살인마 전두환은 물러나라!”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오른손을 높이 치켜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혹시 이 속에 아빠도 있을까? 아빠를 찾는 엄마도 있을까?’
까치발로 기웃거렸다. 구호를 외치며 오른손을 높이 치켜들면 가운데 있는 사람들 얼굴이 팔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자라목처럼 목을 길게 뺐다. 하지만 엄마, 아빠 얼굴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불쑥 영남이 말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대. 더 많은 사람들이 군용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갔대. 죽은 사람들이 산처럼 쌓였는데 끔찍해서 볼 수가 없대.”
“너는 어디서 들었냐?”
“우리 큰형한테 들었지. 큰형이 시민군인거 알지? 어제 저녁에 저녁밥 먹으면서, 그리고...... 아니다.”
영남이는 말을 끊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영남이가 삼킨 말을 더 묻지 않았다. 분명 엄마, 아빠에 대한 말일 것이다. 엄마, 아빠에 해단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렸다. 골콕세서 나을 보며 어른들이 하는 말은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 하나였다.
하늘을 쳐다봤다. 5월 하늘은 참 푸르고 맑았다.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눈물이 또그르르 흘렀다. 나는 주먹으로 눈물을 훔쳐 냈다.
‘소문일 거야. 엄마와 아빠는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올 거야.“
도청 앞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아빠는 엄마를 찾고, 엄마는 아빠를 찾아 헤매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나도 더 이상 기다리지만 않고 직접 찾고 싶었다. 아스팔트 위로 내려섰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까! 말까! 망설였다.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사람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하늘을 쳐다봤다. 헬리콥터가 나타났다. 헬리콥터는 머리가 동그랗고 꼬리가 길쭉한 게 잠자리를 닮았다. 정말 잠자리처럼 사람들 머리 위를 윙윙 거리며 날아다녔다.
“헬기에서도 총을 쏜다는디!”
“이라고 많은 사람들 한티 총질 해불면 인간도 아니제.”
“아따 이 사람! 그동안 인간이었으면 그라고 초질했간디?”
“그라믄 야단 아니여!”
사람들은 겁에 질려 우왕좌왕했다. 나도 가로수 나무에 매미처럼 바싹 붙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알려 준 건 아니지만 나무 밑에 가장 가깝고 안전해 보였다.
“광주 시민 여러분 전라남도 도지사입니다. 여러분 이성을 찾으시고, 도청을 비우고 해산해 주십시오!”
헬리콥터에서 총알 대신 방송이 나와 다행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헬리곱터에 욕을 해댔고, 어떤 사람들은 슬그머니 큰길에서 빠져나갔다. 헬리콥터는 두어 번 방송을 더 하고는 멀리 사라졌다. 잠시 움찔거리던 사람들은 다시 도청을 향해 움직였다.
마음이 다시 한 번 갈팡질팡 요동쳤다. 엄마가 다짐 받듯 하던 말이 떠올렸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도 엄마, 아빠를 찾을 자신이 없어졌다. 그리고 비어 있을 집이 걱정됐다.
‘혹시 엄마가 아빠를 찾아서 집에 와 있으면.......’
나는 몸을 돌려 집을 향해 뛰었다. 밥을 안 먹어서 배는 고픈데 다리에 힘이 솟았다. 올 때는 몰랐는데 급한 마음에 되짚어 가는 길이 이렇게 먼 줄 몰랐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을 때 골목 안으로 접어들었다.
“만식아!”
해태슈퍼 아줌마가 날 불렀다. 주먹밥 두 덩이를 들고 계셨다. 동네 부녀회 아줌마들은 골목 어귀에서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들한테 나눠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부녀회 아줌마들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양동이며 바가지를 들고 나와 모였다. 주먹밥을 만들고 물을 시민군한테 돌렸다. 또래 아이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주막밥을 만드는 곳에서 갖은 심부름을 먼저 하려고 애썼다. 집 앞을 벗어나지 못한 나는 그곳이 부러웠다. 점심때가 조금 지난 듯 아줌마들은 빈 그릇들을 씻고 있었다.
어제 점심때도 아줌마가 챙겨 준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웠었다. 주막밥은 밥에 소금으로 간을 하고 김으로 감싸 쥐어 간단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도 뒷맛이 고소한 게 맛있었다.
쾅!
대문을 부서져라 밀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집 보랑께 어디 갔다가 인자 오냐!’
혹시나 했던 엄마 목소리는 역시나 들리지 않았다. 거친 숨만 몰아쉬었다. 다리에 남아 있던 힘이 모두 빠져 버렸다. 그대로 대문에 주저앉았다. 대문이 만든 그늘에서 거친 숨이 잦아들었다. 이따금 불어오는 살랑 바람이 시원했다. 눈꺼풀이 스르륵 내려왔다.
“만식아!”
힘겹게 눈을 떴다. 해태슈퍼 아줌마였다.
“니가 씽하니 달려간께 집에 뭔 일 있는 줄 알았다, 잉.”
아줌마는 빈 집 안을 둘러봤다. 집 안에 기척이 없다. 나를 보며 연신 혀를 찼다.
“오메 짠한 그, 이거라도 묵어라. 힘 있어야 가리는 벱ㅇ여.”
주먹밥 두 덩이였다. 난 힘없이 머리만 까딱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대신했다.
“너무 걱정 말고 들어사거 지둘러야. 느그 어매, 아배 꼭 올것잉께.”
“네.”
“그라고, 뭔 일 있으믄 나한티 맹큼 말해야 쓴다. 알았냐?”
“네.”
아줌마가 내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바보같이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어금니를 꽉 물고 버텼다. 아줌마는 손을 털며 돌아섰다. 뒤돌아 가면서 하는 혼잣말이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어디든 살아 있어야 할 것인디, 짠해서 어쩌끄나.”
‘분명 오실 거예요!’
하지만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아줌마 말대로 힘을 내야 했다. 이렇게 멍청히 앉아 있기는 싫었다. 주먹밥을 한손에 들고 일어났다. 그때 옆집 문이 열리며 영남이가 나왔다. 뒤이어 영남이 엄마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나왔다. 영남이 엄마 얼굴이 아빠를 낮아 헤매던 엄마 얼굴 같았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콩닥거렸다.
“영남아! 뭔 일 있냐?”
영남이가 울먹였다.
“우리 큰형이 총에 맞았대. 지금 병원에 있는데 피가 모자라데, 피가! 그래서 식구들 모두 헌혈하려고.”
“영남아 뭐허냐! 한시가 급헌디.”
영남이 엄마가 숨넘어가듯 영남이를 불렀다.
“네. 가요! 갔다 올게.”
영남이가 눈물을 훔치며 뛰어갔다. 골목에 앉아 있어도 바람이 많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개인택시 아저씨가 죽었단다. 대학생이던 수창이 누나가 돌아오지 않았단다. 용석이 형이 죽었단다. 용석이 형은 아직 고등학생이었다.
집에 들어가 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왜 계속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왜 군일들은 시민들한테 총을 쏘아대는지 나는 이해 할 수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손에 힘이 빠져 마루 위로 축 처졌다. 주먹밥이 먼지 쌓인 마루위로 작은 길을 냈다. 아무것도 먹지를 않았지만,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우두커니 대문만 바라봤다. 시멘트로 세워진 기둥에 파랑색 철문이 붙어있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아빠는 새봄을 맞는다며 하루 동안 페인트칠을 다시 했었다. 녹이 쓸어 곰보빵이던 대문이 새것처럼 환했다. 금방이라도 엄마, 아빠가 파란 대문을 밀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 기다리는 엄마, 아빠는 안 오고 차츰 어둠이 찾아왔다. 대문도 잘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안 오시는구나!
얼마나 그렇게 더 앉아 있었을까. 갑자기 방송 차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강물을 이루던 큰길 쪽이었다.
“사랑하는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시내로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광주를 끝까지 지킬 것입니다.......”
여자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울고 있었다. 방송 차는 멀어져 갔지만 울먹이던 목소리는 귀속에서 맴돌았다. 마이크 소리에 동네 개들이 왕왕 짓어댔다. 번쩍 정신이 들었다. 나는 급히 대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엄마, 아빠가 지금이라도 돌아오길 바랐다. 오늘 밤마저 넘기면 영영 못 볼 것 같아싿.
‘계엄군이 오고 있대요. 계엄군이 오고 있다고요!’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목이 멨다. 불 꺼진 골목길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따. 힘없이 몸을 돌렸다. 영남이 집에도 불이 꺼져 있었다. 문득 ‘호프’가 생각났다. 호프는 영남이네 개 이름이다. 영남이 큰 형이 요즘은 영어 이름이 유행이라며 지어 준 이름이었다. 호프는 영어로 희망이라고 했다. 영남이 엄마가 큰형을 나무랐다. 개 이름도 개를 닮아야 한다며 복실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나와 영남이는 호프라고 불렀다. 복실이라는 이름보다 훨씬 근사해 보였다.
담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호프!”
호프가 어둠 속에서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꼬리를 흔들었다. 나는 주먹밥을 절반 뚝 떼서 호프 앞으로 집어 던졌다.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잘도 먹어댔다.
“네 이름처럼 모든 일이 잘 될 거야. 집 잘 지켜라!”
호프가 내 말을 알아먹었는지 꼬리를 더 세차게 흔들었다. 호프한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왠지 가슴 한쪽이 뻥 뚫린 것 같았다.
방으로 들어와 텔레비전을 켰다. 아홉시 뉴스가 나왔다. 뉴스에 나오는 도시들은 멀쩡했다. 건물 유리창도 깨지지 않았다. 부서진 차도 보이지 않았다.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비둘기가 날아다니는 공원은 평화로워보였다. 같은 하늘 아래 있어도 다른 나라를 보는 것 같았다.
군복을 입은 보안부 사령관이란 사람이 나왔다.
“북괴에서 내려 보낸 간첩 때문에 광주가 폭동의 도시가 됐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군인들을.......”
“거짓말!”
텔레비전을 꺼 버렸다. 죽은 용석이 형. 총에 맞은 영남이 큰형, 돌아오지 않는 수찬이 누나가 모두 간첩일까? 엄마, 아빠가 간첩이라도 집에 돌아오지 못한 걸까?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텔레비전을 끄니 방안이 너무 어두워서 무서웠다. 다시 텔레비전을 켤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어둠 속에 혼자 있는 게 무서웠지만 뉴스에서 하는 거짓말보다 견딜 만했다.
“만식아!”
엄마 목소리다. 엄마, 아빠가 파란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 아빠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빠는 말끔한 양복을 입었꼬, 엄마는 천사처럼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엄마! 아빠!”
눈물이 나와 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엄마가 내민 손을 붙잡으려 할 때 갑자기 총을 든 군인들이 나타나 앞을 가로 막았다. 군인들은 억센 힘으로 엄마와 나를 떼어 놓았다. 더 이상 엄마, 아빠와 떨어질 수 없었다. 울며 부며 안 떨어지려고 몸부림쳤다.
“안 돼!”
소스라치게 놀라서 눈을 뗐다.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꿈이었다. 꿈이라도 좋았다. 잠시라도 엄마, 아빠 얼굴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정말 엄마, 아빠가 곧 올 것만 같았다. 난 혹시나 해서 밖으로 나가려고 방문을 잡았다.
‘탕! 탕! 탕!’
갑자기 총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드르륵! 드르륵! 탕! 탕!’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총소리는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나는 허겁지겁 방바닥을 기어 이불장을 열었다. 그 안에 있는 이불을 몽땅 끄집어냈다. 그리고 이불 밑바닥으로 파고 들었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눈물이 흘렀다.
“엄마, 아빠 제발 빨리 와!”
돌아오지 않는 엄마, 아빠를 애타게 불렀다. 이 모든 것이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 다시 잠들었다가 깨어나면 엄마가 만들어 준 김치찌개를 먹고, 아빠가 태워주는 시내버스를 타고 시원한 분수대를 돌았으면 좋겠다.
꿈이 아니라면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소문이었으면 좋겠다. 골목길에 다득 찼단 무서운 말들이 바람에 모두 흩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몇 겹의 이불 밑에 새우처럼 몸을 웅크려 있어도 총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예 귀가 먹어 버렸으면 하고 양손에 힘을 꾹 주어 귀를 막았다.
한완식_1974년 고흥 금산면 출생. 광주대학교 건축과 졸업. 현재 나주에서 축산업 종사.
심사평 중에서...
당선작은 80년 5월 18일을 기점으로 어린이의 심리를 따라가며 풀어쓴 것이 인상적이다. 버스기사였던 아빠가 집에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된 엄마가 찾아나 선다. 집에 남은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 엄마와 아빠를 기다리며 흉흉한 소문을 계속 듣게 된다. 실제 죽음을 목도하지 않았음에도 고문만으로 충분히 고통에 처한 주인공의 심리를 그 시대의 아픔과 함께 잘 표현하고 있었다. 직접 보지 않았고 겪지 않았다 하더라고 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광주의 이야기를 어린이의 시각으로 차분하게 풀어나갔다.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518문학사이 아니면 성립될 수 없는 무게감을 가지고 있기에 선정하였다....
심사위원 이상권, 임지형
《문학들 2018 여름호》
첫댓글 소문만으로도 아이가 느꼈을 공포감은
아주 컸을 거예요.
그리고 부모님의 부재.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멋지십니다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