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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여행 2일차 , 태산에 오르다
※ 걸었던 코스 : 도화원 (앙구삭구 승강장)~케이블카 ~천가~서신문~벽하사~대관봉~옥황정~일관봉~노어대,사신대~
선인교~점심식당~다시 천가로 하산~남천문으로 하산~십팔반~영인송~마지막 관문인 천앙~셔틀버스타고~천가촌주차장,약 4시간 정도의 트레킹
중국 태산의 한국길 개념도 (월간 산)
태산의 트레킹 코스중에 한국길이 최근 루트가 개설되었다
바위암릉구간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개척길로 소개되어 태산의 트레킹코스로 한국등산가들이 찾는다
태산을 트레킹하기 위해서는 태안 太安을 들어와야 태산을 오르는 이동거리가 짧다고 하여
어제 청도에서 버스로 5시간이 걸려 태안이라는 도시로 이동하여 하룻밤을 유숙하였다
태안은 청도보다는 인구수가 작고 조금 낙후된 도시로 비교적 조용한 도시이다
인구는 70만명정도로 우리나라의 광역시에 해당하는 인구이지만 중국에서는 지방수준정도,
맥주,토종닭,두부가 유명하며 1년에 500만명정도가 태산을 오르기위해 태안을 다녀갈 정도로 관광산업도시이다
태산 太山은 중국의 산동성의 태산산맥의 주봉으로 높이 1532m,총면적이 426㎢으로
예로부터 중국의 다섯명산인 오악(五岳)중에도 으뜸으로 여기는 산으로 예로부터 신령한 산으로 여겼으며
진 시황제,전한 무제,후한 광무제 등이 천하가 평정돠었음을 정식으로 하늘에 알리는 봉선의 의식을 거행하는 것으로
태산에 올라 하늘에 스스로 황제임을 고하고 의식을 치뤘던 신성시여겼으며 도교의 주요성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황제라고 모두 태산을 오를수있는 건 아니다
나라가 화평하고 국민들에게 추앙받고 신임을 얻은 황제들만 이곳을 오를수있는 자격이 주어졌다고 하며 나라가 전쟁이 나거나
민심이 흉흉한 시대의 황제들은 오르지못했다고 함,곧 민심이 천심임을 일찌기 중국역사에서 입증하지않았나 하는 생각이 일었다
황제가 태산을 한번 오르기위해서는 최소 3개월~6개월정도의 여정이 걸렸다고 한다
수행일행들을 이끌고 중원에서 말을 타고 태산입구까지 이동하는 데에만 수개월이 걸리고 말을 타고 오를수
있는데까지는 말을 타고 오르고 도저히 말이 오르지못하면 인력가마로 대신하여 오르다가 또 도저히 가마가 오르지못하면 그땐 가마에 내려서
황제가 직접걸어서 태산에 올랐다고 한다.1년에 태산에 오르는
중국인들은 5백만명정도라고 하는데 황제처럼 걸어서오르고자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고 하는데 그런 이유는 태산을 오르는 경비도 많기도 하지만
(셔틀버스이용,입장료,케이블카 왕복비용포함하면 우리나라 돈으로 1인당 약8만원정도 든다고 한다)
황제가 걸었던 그 길을 따라서 오르면서 중국사람들은 가족화목기원을 빈다고 한다
태산은 황제만 오르는 산이기 때문에 그 시대의 시인묵객은 오르지못했다고 한다
태산의 유명세는 세계 유명인사와 한국의 내노라 하는 역대 대통령들도 한번씩 거의 다녀갔다고 하니
입신양명을 꿈꾸는 사람들에겐 선망의 대상이 곧 태산이다
숙소가 도시중심부에 있어 이른아침부터 자동차보다 더 많은 오토바이,자전거행렬로 거리가 북적인다
교통순찰대가 나와있지만 도로단속에는 별관심이 없는듯이 보이고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하고있다
교차로 신호에 따라 차들이 움직이면 이들 행렬도 일제히 움직이는데 신기하게도 그 많은 인파들이 자기들네끼리 뒤엉키고
이리저리 피하면서 다닌다.그 모습이 너무 신기하여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다보았다
길거리에는 간단한 아침식사를 파는 리어카들이 곳곳에 눈에 띠는데 사람들이 흰비닐봉지에 싸가져가거나 서서 먹기도 한다
대부분 중국사람들은 아침식사를 이런 곳에서 해결을 한다고 한다
우리가 머문 호텔앞에는 허름한 차림의 노파가 와서는 태산관광지도와 허접해보이는 등산용스틱을 사달라고 한다
관관용지도를 한장 펼쳐보니 중국어로 되어있어 사용하기 불편해보여 사지 않았다
아침거리풍경이 재미있다
숙소에서 대절버스로 20분이동하여 태산매표소에 도착
매표를 하고
줄을 서서 승합차 셔틀버스에 탑승하여 케이블카를 타러간다
가이드님의 입김?으로 우리일행들만 모두 한 차에 타고 이동이다
산길포장도로를 20여분을 달리더니 이곳에 내려주었는데
이곳은 도화원 삭도 승강장 입구이다
케이블카(삭도) 요금안내와 운행시간
순서를 기다렸다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서 내려다 본 풍경^^
서서히 태산의 윤곽이 시야에 들어오니 태산에 왔음이 실감이 나 흥분이 인다
한눈에 딱 봐도 태산이 주는 위엄은 그리 산세가 험하거나 위풍당당하지는 않고 편안함을 주는 이미지를 풍긴다
내려선 입구에 있는 태산 이정표^^
케이블카는 12분정도 타고 내려주었다.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오면서 태산의 풍경을 미리 볼수있다
오늘 우리가 걸어야할 태산트레킹은
도화원삭도승강장~천가~북천문~옥황정~벽로사~남천문~3000개의 계단을 걸어서 ~ 천가원도착~셔틀버스타고 이동~
트레킹소요시간은 약4시간 정도
드디어 태산 트레킹의 시작지점
화장실이 있으므로 미리 볼일을 보고 출발하도록 한다
천가 天街 를 지나고 있다
태산 입구의 거리상가로 주로 식당,기념품,음료수가게들이 양옆으로 즐비하게 서 있는 곳을 지난다
천가를 지나 이곳에서 태산의 지도앞에 모여 현지 가이드님의 태산트레킹 전체적인 설명을 듣고 있다
현재위치에서 가야할 방향을 설명중인 현지가이드,
한자,영어,중국어,일어,한국어까지 설명이 되어 있어 길찾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고 트레킹 등로도 그리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쉬운 한자어를 보고도 대충 어느 위치인지 파악이 된다
천가 입구에서 인증샷
서서히 태산의 풍경속으로 빠져든다
천가를 지나 안으로 걸어들어오면 개선문같은 승가 升街 문을 지나는데
이 근처에 바위마다 붉은 한자글씨가 씌여져 있어 눈길을 끈다
높다란 계단따라 서신문 西神門이라고 적힌곳을 올라서면....
태산의 속살 풍경이 펼쳐진다
오월의 신록과 꽃대궐이 맞물려 태산은 무릉도원인 셈이다
서신문을 들어서자 사람들이 웅성웅성 서 있는 쪽으로 가보니....
萬代膽仰 만대담앙
그대로 풀이하면 만대에 이르러 추앙한다는 뜻인가?
서신문과 반대편 동신문 사이에 내려서면 벽하사 도교사당이 있다
풍경에 취해 쉬엄쉬엄 오르다가보니 갈림길이 나타난다
첨노대와 옥황정이정표인데 어느 방향으로 가던지간에 한바퀴 돌아서 내려오면 다시 만나는 지점,
대부분 사람들은 옥황정으로 오르기에 덩달아 가본다
대관봉 大冠峰
마치 노천 바위 서예 전시장같은 분위기이다
태산에는 글을 새긴 돌이 2,200개 여 개소나 있는데 그중에서 태산정상의 석각은 258개에 이른다
석각의 대부분은 역대 황제들이 봉선의식을 행할때의 제문 際文,사묘 寺廟의 창건과 중수기,그리고 태산을 올랐던 시인묵객들이
태산을 칭송하는 시문 詩文들인데 이 중에는 태산을 올랐던 공자,이백,사마천 등의 글귀도 있다고 한다
온통 주변바위에 새겨진 붉은 글씨사이로 오른쪽으로 금색의 글씨가 두드러진다
바위글씨가 한자로 씌여져있지만 대체로 알기쉬운 한자여서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운봉 雲峯 (구름의 산봉우리), 글씨아래엔 강희제가 썼다는 시와 글씨인데 '무진 2월 그믐밤에 대정 岱頂 에서 잤다' 는 2편의 시와 '삼가 선대 황제가 세운 운봉 雲峯 이라는 큰 글씨를 풀이하다'라는 1편의 시가 새겨져있다
운봉의 오른쪽 글씨는 치신소한 置身霄漢 (몸을 하늘의 은하수에 둔 듯하네) 치신소한 바로 옆의 암암 巖巖은 바위처럼 굳센 기질과 의연함을 뜻하는 호연지기와 일맥상통하여 맹자의 의기를 기려 새겼다고 한다
벽립만인 壁立萬仞 (만길 암벽에 섰구나) 천지동유 天地同攸 (하늘과 땅과 같은 곳에 있으니....)
바위 맨 윗쪽의 글씨는
오악지존 흥국동안 五岳之尊 興國同安(오악의 으뜸인 태산은 나라를 흥하게 하고 함께 평안하다)
성진가적 星辰可摘 (하늘의 별을 가히 딸만하도다)
가장 유명한 글씨는 금박으로 입힌 석각인데 당마애 唐磨崖 라고 부른다
이는 726년 9월에 당현종이 새긴 것으로 높이가 13m,폭이 5m를 넘는다
천하대관 기태산명 天下大觀 紀泰山銘 이라 적혀있고 그 아래 글자수는 모두 1,008자 라고 한다
당현종이 태산에서 봉선제를 올린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선인들의 비문에 태산의 위엄을 찬양하고 있다는 것과 당시대의 태평성대를 이루고 있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중국 본국이 탁본을 해두었다고 하니 이 석각을 보니 나는 문득 중국에 있는 광개토왕비가 생각이 나는걸 무슨 이유일까?.....
내용의 안내글이 한국어로 적혀있으므로 유심히 잘 읽어보면 도움이 되며 현지가이드님이 보충설명을 잘해주신다
과연 태산의 명성에 걸맞는 석각들을 보면서 옥황정으로 향한다
태산 전역에 피어있는 화사한 분홍색의 꽃대궐의 주인공은 수사 해당화^^
다른 이름은 할라아나꽃사과,서부해당화,꽃해당화 등 부르는 이름이 다양하다
중국이 원산으로,꽃은 4~5월에 피는데 가지끝에 모여나기한듯이 긴 꽃자루에 매달려 아래로 늘어져 피는데
꽃이 긴 자루에 달려서 "늘어진 실"이라는 뜻으로 수사(垂絲)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겹꽃,홑꽃 품종이 있는데 이 녀석은 홑꽃이다
마치 무릉도원인냥 태산이 꿈처럼 이 꽃에 파묻혀 봄을 보낸다
옥황정으로 오르면서 만난 중국인 현지사진사들
즉석기념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는다. 인쇄된 인화를 슬쩍보니 품질이 조금 떨어진다. 카메라는 어떤걸 쓰는지 보질 못했다
그러고 보니 중국여행을 하면서 만난 현지 중국관광객들은 우리나라 관광객같이 고급형카메라를 들고 다니는걸 본 적이 없다
소형카메라는 들고다니는걸 보았는데 소형도 소니나 니콘,케논의 보급형정도이다
중국에 아직 카메라붐이 일지않았는지...문화생활수준이 차이가 나는지는 모르겠다
광내고 잘 차려입은 한국사람들과 넥타이매고 정장차림으로도 황산에 오르고 여자들은 치마입은채로 화산에 오르고 해발고도가 높아 힘들다는 3000M급 고산도 아무렇지 않게도 잘 다니는 그들이 부럽고
신경안쓴 허름한 옷차림으로도 태산을 오르는 중국사람들인데 그들에게서 대륙적인 기질이 느껴진다
돈이 될만한 관광지라면 투자하여 관광수입에 열을 올리는 그들을보면 슬며시 자본주의인지 공산주의인지 혼돈스럽다
아시아권 두 나라간에 문화적 차이이기도 하지만 차별이 확연히 다르다
실제로 중국에는 허접한 티셔츠를 입고다니는사람이 수백억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는 현지가이드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우린 겉치레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경향이 많은건 사실이다
태산의 옥황정에 가기전의 중간쯤에 있는 거대한 바위,오악독존 五嶽獨尊 중국의 5위안 지폐에 들어가있어 더욱 유명한 바위이다
인증샷찍으려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기념사진 한장 찍지못하고 돌아선다
그 옆의 글자는 앙두천외 昻頭天外 (머리를 들어 하늘바깥을 우러러본다 )
기관 奇觀
바위에 새겨진 글자는 읽어보기힘든 서체로 씌여져 있어 내용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옥황정에 오르는 계단아래에 있는 무자비 ,無字鼻...이름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비석이다
두가지 說이 전해지는데....진시황이 대륙을 통일하고 BC 220년 전후 태산에 올라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 는 뜻에서 세웠다는 설과 한무제가 BC100년 전후 자신의 업적을 후대사람들이 평가해달라" 고 아무 글도 남기지않았다는 설이 전해진다
무자비에서 바로 윗쪽에 보이는 옥황정으로 오르는데 입구에는 칙수옥황정 勅修玉皇頂이라고 적힌 글씨가 눈에 띤다
곧 황제의 명에 따라 지은 건물이라는 뜻,
봉천선지 奉天禪地 라고 부르는 도교의 발상지,진시황 이후 72제왕이 무릎을 끓고 봉천의식을 행항곳으로 들어서는데 옷깃을 여미고 엄숙함으로 옥황정을 들어선다
입구에서부터 먼저 진한 향불냄새가 진동을 한다
향크기도 큼지막하여 뿜어져나오는 향도 대단하다, 향을 50위엔에 팔고있다.
옥황대제가 계시는 이곳 태산정상까지에도 장사꾼의 상술은 통한다
태산 정상비석을 줄을 쳐서 접금금지시켜놓고는 그 주변에는 수많은 자물솨통이 채워져있다
무슨 욕심들이 많아서 이곳까지 채우고 채우고 또 채워놓았을까...
복을 비는 사당에 상술로 가득 채워진 옥황정을 옥황상제가 내려다보고 계신다
옥황정 내부는 사진촬영금지...찍지말라고 손사래를 친다
너무나 붐비는 사람틈에 옥황정을 구경을 하는둥,마는둥....
태산정상 인증샷 찍고는 향불피운 제단앞에 서서 정성스레 소원을 빌어본다
하늘의 황제이신 옥황대제님이시여!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그 태산을 올랐으니 더 이상 오를곳이 없어요
나에겐 튼튼한 두 발과 건강한 몸을 주셔서 걸어서 태산을 올랐으니 감사드리고 감사드립니다
두 눈과 귀 또한 자연의 소리를 보고담기에 아직 부족함이 없으며 손에 들린 카메라로 좋은 풍경 담아 나눔을 행하며
태산만큼 넓은 도량으로 세상풍파헤쳐갈 힘을 북돋아주소서
신체발복을 빌고나니 제일 큰 소원을 빌은 셈이다
태산의 최고높이인 옥황정 玉皇頂 올랐다
옥황정은 옥황대제를 모신 사당이다
일관봉&첨노대와 사신봉쪽으로 ....
옥황정에서 내려와 올라왔던 반대편인 일관봉으로 향한다
뒤에 보이는 건물은 기상대와 호텔을 겸한 곳으로 일출을 이곳에서 볼수 있다고 한다
일관봉과 기상대사이의 석각
청나라 제4대 강희제황제의 웅치천동 雄峙天東 태산이 하늘동쪽에 웅장하게 솟아있다
공자소천하우 孔子小天下虞 공자가 태산에 올라서 천하가 작은것을 알았다
크고 작은 기암들이 있는 일관봉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은 일품이었다
툭 트인 조망아래로 태산이 다 보일듯 윤곽이 드러나 마치 먹물로 진한 터치..또한 부드럽게 터치한듯 산봉우리들이 가까이에서...
멀리서 보인다
일관봉에서 내려다본 청제궁 & 공자묘
공북석 & 주변 기암바위
선인교
점심식사 식당 겸 호텔
강 택민 주석이 이용한 식당이라고 선전문구가 적혀있다
중국여행에서 식당메뉴는 다 비슷비슷하여 별반다를바는 없었다
특이하게도 볶음땅콩이 나와 맛있게 먹었고 국물에 담긴 완자탕이 담백하게 맛있었고
음식량은 산중이라 그런지 적은듯이 적당, 깔끔하게 차려져 나왔다
식당로비에서 바라본 태산 풍경
다시 천가쪽으로 내려왔는데 단체수학여행온 학생들로 인해 혼잡하다
천가로 내려오다가 하산지점인 남천문 이곳으로.....
남천문 입구^^
너무나 많은 사람들로 인해 인증샷도 못 찍고 계단을 내려선다
이제부터 다리가 아프도록 계단만 밞고 내려서는데
저 계단수가 3000개이라나 뭐라카나.....세워보다가 중도에 포기해버렸다 ㅋㅋ
이곳도 중간중간에 문을 세워놓았는데 용문을 지나고있다
내려오다가 운치있는 소나무 풍경 ^^
뒤돌아본 남천문 십팔반 十八盤
다행히 내려오는 거라 편하긴 했지만 계단폭이 좁고 가팔라서 집중해서 걷지않으면 자칫 넘어지면 다칠우려가 있다고 가이드님이
사전 안내를 해줬건만.....내려오다가 헛발을 디뎌 발이 꼬이면서 몇바퀴굴러버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아 구르는 나를 잡아주었지만 피멍이 제법 들었었다.태산의 기를 받는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나쁜진 않았음 ㅎㅎ
만장비 万丈碑
거의 다 내려섰는데 안내글이 길옆에있어 쳐다보니 커다란암벽에 붉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청나라 건용13년(1748)에 건용 황제가 암벽에 시를 조각한것을 속칭한다
규모는 높이 25m,너비 13m,글자의 직경은 1m 이며 태산의 대형 그림도장이기도 하다
영인송
天 仰
하늘을 맞이하러가는 길이 어찌 가벼울수가 있겠는가...
마지막 관문을 지난다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산아래로 내려가는데 20여분 정도 걸린다
천외촌 주차장
12황제의 행차를 기념하는 석주가 서 있는 광장^^
뒤돌아보니 신록의 태산이 내려다보고 있다
약 4시간정도의 태산 산행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고는
내일의 산행지인 노산을 오르기위해 유방이라는 도시로 다시 전세버스를 타고 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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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태산 등정 잊지 못 할 추억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