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에 대하여>는 린 램지 감독이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소설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 말할 필요가 있다>를 영화로 각색한 것이다. 소설에서는 열 다섯살 난 아들이 컬럼바인 사건을 벌인 후, 아내가 남편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편지형식으로 쓰여졌다. 이 책은 출간 당시 학교 내의 대학살적 총기사전에 대한 묘사보다는 모성의 양가성에 대한 묘사 때문에 더 많은 관심과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므로 영화로 각색한 <케빈에 대하여> 상영 이후도 역시 많은 논란을 일으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실제 이 소설에서 엄마인 에바는 처음부터 자신이 아이를 원하는지 확신을 갖지 못한다. 그럼에도 에바는 단지 남편이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것에 동의하여 임신을 하게 된다. 준비되지 않는 임신이었던 것이다.
임신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지만 그녀는 임신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불편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만을 할 때는 난산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취제를 거부하고 자연분만을 한다. 그것이 진정한 모성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케빈은 에바와 남겨질 때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울어대고 분노와 독기가 서린 고함을 질러댄다. 그리고 청소년으로 자란 케빈은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보이며 결국엔 잔혹한 살인까지 저지른다.
소설에서 에바는 바로 그 엄청난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 자신의 과거의 행위와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며 남편에게 아들 케빈에 대해서 말하지 못했던 그녀의 진심을 고백하고 있다. 대신 영화에서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그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연출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영화 속 케빈의 엄마 에바는 세계 곳곳을 자유롭게 누비는 여행가로서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자신과 전혀 다른 남자의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 아들 케빈을 임신하고 낳게 된다. 그 결과 그녀의 세계는 ‘집’과 ‘아이’로 축소되며 준비되지 않는 상태에서 낳은 케빈을 에바의 삶을 근심과 불안으로 가득 채운다.
에바는 이로써 180도 달라진 삶을 살아간다. 일과 양육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에바의 삶을 케빈의 이유모를 반항으로 점점 힘들어져 간다. 에바는 가족 중 유독 자신에게만 마음을 열지 않는 케빈과 가까워지기 위해 애쓰지만 그럴수록 케빈은 교묘한 방법으로 에바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16살이 된 케빈은 에바에게 평생 혼자 짊어져야 할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만다. 그것으로 인해 에바는 죄책감과 원망이 뒤섞인 참혹한 심정으로 아이의 곁을 지키게 되는데 그것은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과 ‘모성’에 대한 사려 깊은 통찰을 관객에게 전하고 있다.
이 영화는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변수로 영화를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케빈의 입장에서 충분하지 못한 애정에 대한 관점으로 접하게 되고 에바의 입장에서는 모성애에 대한 접근방법을 논하게 된다. ‘싸이코 패스’ 라던가 혹은 ‘절대선과 절대 악’ ‘모성애’ 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사회적으로도 반향을 일으킨 영화라고 평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여시 여성이다. 감독은 “아이를 갖는다는 것에 대햐 오랫동안 고민했었다. 그러다가 내 아이가 안 좋은 아이로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근원적 두려움이 나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영화는 ‘만약 아이들이 전혀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어떨까?’ 라는 감정을 느끼는 엄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은 누구나 엄마를 향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케빈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는 케빈 역의 에즈라 밀러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고 “익숙한 거랑 좋아하는 거랑은 달라. 엄만 그냥 나한테 익슥한 거야.”라고 말하고 있는 영화속의 케빈. 새로운 차원의 이야기에 우리는 한번쯤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