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장님에게
어버이날은 잘 보내셨나요?
참으로 자연의 이치는 오묘합니다. 밤에 아파트 앞 쉼터로 턱걸이하러 나갔는데 개구리 울음소리가 청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바로 건너편, 휘봉고등학교 뒷쪽 정원에 있는 분수대 근처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해마다 꽃은 새로 피고 잠자러 들어갔던 개구리는 다시 일어납니다.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죽은 듯했던 나뭇가지에는 새 순이 올라옵니다.
이제 초로(初老)에 접어든 우리네들도 시한이 다 되면 어디론가 돌아가 다음 생을 준비하겠지요? 잠자던 개구리가 다시 일어나듯이, 죽은 듯했던 나뭇가지에서 새 순이 돋아나듯이......
갑자기 웬 청승으로 개똥철학자가 되었는지 가끔씩 삶이 다한 그 뒤의 일을 궁금해 합니다. 현실을 견뎌내기도 어려운 판에 죽은 뒤의 일을 생각한다는 건 참 사치스러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 청량하게 들리는 개구리 소리는 영락없이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어제도 이 일 저 일 쫓아다니다가 급하게 하루를 보내고 말았습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루가 갔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다행한 일이기도 합니다. 잡념이 자리잡기 전에 피곤에 겨워 잠들 수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 저 일 복잡한 일들을 걱정하면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지 않고 냅다 잠에 빠져버리는 건 참 행복한 일입니다. 늙어갈수록 잠은 충분히 자 둬야 하니까요. 요즘 들어 잠자는 시간이 하루 평균 여섯, 일곱 시간은 되는 듯 합니다.
관리사무소 지출서류에 도장을 찍고 관리소장, 동대표 몇 사람과 함께 아파트 안에 있는 노인정을 찾았습니다. 어버이날을 기념해서 준비했던 떡과 음료를 전달했지요. 무척들 좋아하시더군요. 아파트 단지 안의 수목들을 돌아보면서 전지할 시기를 가늠해 보고 분리수거장 시설물의 안전 상태도 점검했습니다. 장마에 대비해서 미리미리 살펴두는 게 필요하니까요.
내가 속해 있는 문학회의 제13호 문학지 발행도 서둘러야 하고 5월 월례회 장소도 물색해 두어야 합니다. 이번 월례회는 안평대군의 집터 옆에 있는 무계원에서 할까 생각 중입니다. 안평대군이 안견에게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했던 곳입니다.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데 고색이 창연한 한옥 건물입니다. 그나마 글쓰는 즐거움은 잃지 않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어버이날을 축하한다고 딸이 화환(花環)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인간 화환’이라면서 양쪽으로 늘어뜨린 리본에 ‘만수무강 하옵소서’라는 글귀와 함께 돈다발을 주렁주렁 매단 화환이었습니다. 그 아이디어가 참신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지만 많지 않은 연봉에 정성껏 준비한 돈다발을 보니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아비 어미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고마워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몇 년 더 지나면 이 아이들도 사십 줄에 들어섭니다. 이 풍진 세상을 어찌 헤쳐 나가게 될지 늘 걱정입니다.
전과장님이나 나나 자식 걱정에 편한 날이 없을 테니 자식 둔 아비의 심정이란 누구든 다를 바 없겠지요. 오늘도 날이 화창하다고 합니다. 내외분이 어디 조용한 호숫가라도 거닐면서 한가한 하루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