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벌마을 앞 당사나무 가까이에 있는 노천 샘이다.
이 지방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로 뱃머리(선두, 船頭) 즉 배의 앞쪽을 이물이라고 하는데서 유래된 이름으로 마을 앞에 있는 샘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샘에 대해 전해오는 전설로 조선 선조 때에 이 마을에 아주 힘이 세고 몸놀림이 민첩한 장사가 살았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살건네 주위에서 의병들과 함께 많은 왜적을 무찌르기도 한 무예가 출중한 무명의 장수로 그냥 '김 장군'이라 불렸다.
어느 날, 김 장군이 마을앞 들에서 논을 매고 있는데, 아래에서 왜장이 부하들을 이끌고 말 위에 앉아 거들먹거리며 마을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이를 본 김 장군이 논갈이하던 쟁기를 뽑아들고 달려가서 단번에 쟁기의 날로 왜장의 목을 날려 버렸다. 왜장의 목이 너무도 쉽게 장군의 쟁기에 떨어지자 졸개 왜병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는 것을 뒤좇아가서 여러 명의 목을 베었다. 김 장군은 왜장과 졸병들의 목을 들고 울산 병영성에 가서 성문을 지키는 수문장에게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성주(城主)에게 상신하여 전투에 참여할 수 있게 하여 달라고 하였다. 수문장은 김 장군에게 돌아가서 기다리게 하고, 왜병들의 목을 들고 상관에게 가서 자기의 전공인양 보고하고 상을 받고 특진을 하였다. 그래서 김 장군은 사기(史記)의 그 어느 곳에서도 이름이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김 장군이 왜장의 목을 베어 핏자국이 있던 곳에서 샘물이 솟아올라 이 샘물이 되었는데, 이 샘물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철에는 얼음처럼 차가워서 땀흘리며 들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쉴 참에는 찾아와 목을 추겼으며, 땀띠를 없애기도 하던 곳으로 수 백년 동안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김 장군의 묘소가 울벌 동산 어딘가에 있다고 하나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음력 정월 보름이면, 이 마을 사람들은 김 장군의 제사를 모셔왔다. 김 장군의 구국충정과 애향심을 흠모하고 공경하여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