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61
비극의 막은 끝나지 않고
그는 초췌했다.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그 종이를 목에 건 채
어린 딸 옆에 세운 채
시장에 서 있던 그 여인은
그는 벙어리였다.
팔리는 딸애와
팔고 있는 모성을 보며
사람들이 던지는 저주에도
땅바닥만 내려보던 그 여인은
그는 눈물도 없었다.
제 엄마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고함치며 울음 터치며
딸애가 치마폭에 안길 때도
입술만 파르르 떨고 있던 그 여인은
그는 감사할 줄도 몰랐다.
당신 딸이 아니라
모성애를 산다며
한 군인이 백 원을 쥐어주자
그 돈 들고 어디론가 뛰어가던 그 여인은
그는 어머니였다.
딸을 판 백 원으로
밀가루빵 사 들고 어둥지둥 달려와
이별하는 딸애의 입술에 넣어주며
-용서해라! 통곡하던 그 여인은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라는 제목의 시다. 탈북민 장진성은 1999년 평양 동대원구역 시장에서 자신이 목격한 장면을 영화처럼 그려냈다. 딸을 판 돈으로 밀가루빵을 사 들고 뛰어와 딸의 입에 넣어주는 병든 어머니의 눈물이 마지막 연에 흥건하다. 가슴에 멍울지도록 아픈 시에서 엄마는 그렇게 딸을 팔았다. 죽음을 앞둔 어머니가 어린 딸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 그 딸을 파는 서사라면 지나친 비극이다.
평양은 그나마 쌀뜨물이라도 마셨다고 한다. 북한에서 이른바 고난의 행군 때 굶어 죽은 사람이 많게는 2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아사자의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으나 쉬파리조차 쫓을 힘없이 죽어간 사람이 거리에 널려있었다는 증언은 차고 넘친다.
중국에 있는 탈북민도 1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가족들 입속에 밀가루빵이라도 넣어보려고 월경한 사람들이다. 그중 많은 여성은 인신매매로 팔려가 원치 않은 결혼과 아이를 낳는다. 그렇다고 신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눈칫밥이라도 배불리 먹으면 다행이련만, 중국 공안에 잡혀 강제 북송되면 갖은 폭행은 물론 또다시 썩은 옥수수 낱알을 세어 먹고 살아남아야 한다.
자란 연어들은 가을이 되면 강을 거슬러 오른다. 그 넓은 바다에 살면서도 자신이 태어난 물줄기를 찾아내는 능력이 신비롭다. 미물이 그러한데 사람의 회귀본능이 그만 못할 리 없다. 찬 바람이 불어도 고향이 좋다는 말처럼, 풀뿌리 조차 마른 황무지라도 자신의 태를 자른 고향은 영원한 요람이다.
남한으로 온 탈북자가 3만 5천 명에 이른다. 작은 군 단위 인구와 비슷한 숫자다. 그들은 목숨을 내놓고 국경을 넘었다. 살기 위해 목숨을 거는 모순적 부조화는 체제가 만든 비극이다. 그들은 결코 아나키스트가 아니다. 낯선 중국 땅을 전전하고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어 남한에 정착했지만, 그들의 고향은 북녘 하늘 아래 있고 탈피가 서툰 세뇌 세포는 조국이란 단어에서 북한을 쉽게 지우지 못한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지리적 범주를 확장한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고향이라는 개념이 흐릿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지척에 고향과 부모 형제를 두고도 볼 수 없게 가로막은 철조망의 가시는 탈북민들에겐 단장의 고통이다.
스스로 곡기를 끊는 것은 일종의 자해행위다. 제1야당 대표가 단식투쟁으로 병원 신세가 되었다. 한쪽에서는 살자고 빵을 움켜쥐고 다른 한쪽에서는 살기 위해 빵을 거부한다. 상반된 행위지만 아이러니의 귀결은 먹는 것이다. 일차원적인 생존투쟁이 처절하다.
장진성의 또 다른 시 「세상에서 제일로 맛있는 건」에서 굶어 죽은 동생이 세상에서 제일 맛 있는 건 ‘어젯밤 먹었던 꿈이라 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재명 대표도 단식 중 꿈에 고기를 구웠다고 했다. 얼마나 허기졌으면 꿈에도 소원이 고기였나 싶다.
굶주림을 두고 동정에 인색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다수의석을 가진 정당 대표의 단식 명분이 구차하다면 한때의 동정심은 조롱과 비난으로 전락할 수 있다. 아무래도 딸을 파는 어머니보다 탄핵이란 단어를 달고 사는 야당 대표의 수척한 얼굴은 동정의 서사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빵을 소재로 한 문학이나 정치투쟁이 사라지길 바랄 뿐이다.
햇밤만큼이나 추석 달이 영글고 있다. 국내는 물론 외국 여행 항공권이 동났다고 한다. 명절을 맞아 조상님 이발은 벌초대행업자에게 맡기면 된다. 헬스장에 다니는 부모님이야 홍삼 세트 택배 주문하고 휴대폰 영상으로 안부를 물으면 그만이다. 다만 자식 같은 개와 고양이를 여객기에 싣기 위해서는 며칠 발품을 팔고 인터넷을 뒤져 폼나는 캐리어를 사야 한다. 할 수 없다. 햇밤을 깎아 상에 올리는 사람들만이라도 이웃에 탈북민이 있다면 따뜻하게 보듬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