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영컨설팅
제35차 역사문화지리 트레킹은 국립 현충원과 현충원을 둘러싼 서달산 일원입니다.
달마(達磨)가 서쪽으로 왔다는 서달산(西達山)과
서달산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조망,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이 잠든 그곳 그길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세부 일정
◯일 시: 7월 14일(일요일) 14:30
◯만남 장소: 지하철 9호선 흑석역(중앙대 입구) #3 출구
◯트레킹 코스: 흑석역(중앙대 입구) #3 출구 ⇨조선일보 CEO자택 입구 ⇨흑석동 주민쎈터 ⇨달마 배드민턴장 ⇨달마사⇨서달산 달마사 거북바위 ⇨서달산 달마공원 ⇨현충원길 ⇨지장사 ⇨현충원 삼림욕장 길 및 현충원 참배(자유 시간) ⇨만남의 집/해산
◯소요시간 및 난이도: 트레킹 약 3시간 30분(휴식, 해설, 관람, 참배시간 포함) 5Km(난이도 중하)
◯진행자: 지종학, 김현회, 김남선, 황면기
◯길안내 및 해설: 유경근, 황면기, 임청아, 권오철, 명인식, 장동인, 이광우, 이길헌
◯참석방법: 카페에 들어가서 닉네임 또는 실명/연락처/하고 싶은 말
◯준비물: 식수, 트레킹복장, 개인 안전장비, 썬 크림, 날씨에 따른 준비물, 간식
◯트레킹 중 안전에 대하여
역사문화지리트레킹은 순수 비영리 트레킹으로 카페운영진과 트레킹진행자는 같은 회원으로써 일시적으로 봉사하는 것으로 트레킹 중 일어나는 모든 사고는 참석한 회원 각자의 책임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카페 운영진이나 진행자에게 민·형사상의 법적, 금전적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 항상 회원 여러분이 스스로 자신의 안전에 최대한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참석신청 자체가 위 사항을 확인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 진행 측 차원에서는 보험이 없으므로 필요시 개인적으로 여행자보험가입해주시면 됩니다.
◯기타 사항
- 정시에 출발
- 회비는 없음
트레킹 종료 후 식사 할 경우 n/1 원칙
- 당일 트레킹 일정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 자세한 사항은 국제경영컨설팅 홈페이지(www.kukjec.com)
또는 역사문화지리트레킹 카페주소(http://cafe.daum.net/trekking7)를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서달산
서달산은 국립현충원 뒷산이다.
서달산(西達山)은 ‘달마(達磨)가 서(西)쪽으로부터 왔다’는 불교의 화두(話頭)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화장산(華藏山), 공작봉(孔雀峰)이라고 달리 불리기도 하는데 화장산은 국립현충원 안에 있는 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의 옛 이름이 화장사(華藏寺)여서 붙여진 이름이고 공작봉은 국립현충원을 감싸고 있는 산봉우리 정상에서 뻗은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의 산세가 공작이 알을 품은 것과 같은 공작포란형(孔雀抱卵形)의 형국(形局)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달마사의 역사(자료: 달마사 홈페이지)
진리의 실천 도량 달마사
달마사를 감싸 안은 서달산은 북한산에서 남산을 거쳐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녹색축의 허리를 이루는 중요한 산입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는 달마사는 일 년 내 내 아름다운 자연을 누리며, 한강과 남산을 조망할 수 있는 도량입니다. 달마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인 조계사의 말사입니다.
▷연혁
1931年 만공스님의 제자 유심스님에 의해 창건
1959年 요사체 신축
1962年 대한불교조계종 등록
1966年 삼성각, 불로원 신축
1968年 대웅전 신축
1969年 대웅전 앞 마당 다보탑 조성
1970年 법능스님 주지 취임 영천 조상-자연동굴에 용왕상을 봉안
1971年 석조관세음보살 조성
1977年 일주문 신축
1987年 대웅전 중건
1988年 전통사찰 지정(등록번호 제13호)
1999年 종림스님 회주 취임
2000年 경암스님 주지 취임
2003年 호산스님 주지 취임
2009年 달마사 중창불사 기공법회
2009年 반게료 상량식
2009~2012年 반게료, 무이루, 원통전, 영산전, 일주문 신축
2012年 봉안당 조성(영산전)
2013~현재 대웅전 중창불사 진행 중
2015年 진화스님 회주 취임 덕일스님 주지 취임
2016年 남일스님 주지 취임
2018年 일행스님 주지 취임
❍호국 지장사(서울)
국립 현충원을 들어서 걷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묘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와 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런가하면 운동복 차림으로 순환로를 따라 걷는 사람, 약수를 받아가려는 사람들의 즐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을 가슴에 안고 인공적으로 가꾸어진 묘비의 숲과 자연이 이루어 놓은 숲속을 번갈아 가며 지나면 호국지장사에 닿는다. 지장사가 자리한 곳은 일찍이 이승만 대통령이 들렀다가 ‘만일 이곳에 절이 없었다면 내가 묻히고 싶은 땅’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할만큼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호국지장사는 원래 통일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한 갈궁사(葛弓寺)가 시초이다. 이후 창빈 안씨(昌嬪 安氏)의 원찰로 지정되어 화장사(華藏寺)로 이름을 고쳤고, 다시 1983년에는 국립묘지에 안치된 호국영령들이 지장보살의 원력으로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뜻에서 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로 바꾸게 된 것이다. 호국지장사라는 절 이름에 어울리게 현재 절에는 지장보살입상을 중심으로 2500여 좌(座)의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조선 후기의 재상으로 이름 높았던 오성 이항복(李恒福)과 한음 이덕형(李德馨)이 소년시절 머물면서 공부한 곳이기도 하다. 이 시절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이야기책의 한 꼭지가 되기도 했다. ▷역사 지장사는 신라 말 풍수지리설에 뛰어났던 도선(道詵)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즉 도선스님이 북쪽으로 만행을 하다가 한강 언덕에 이르러 둘러보니 서기가 퍼져 나오는 곳이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 가보니 칡덩굴이 엉켜지고 약물이 샘솟는 명당이므로 토굴을 짓고 갈궁사(葛弓寺)라 했다는 것이다. 그 후에는 폐허가 되다시피 한 갈궁사를 고려 공민왕 때 보인(寶印) 스님이 중창하고 절 이름을 고쳐 화장암(華藏庵)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안진호(安震湖) 스님이 편찬한 『봉은본말사지(奉恩本末寺誌)』에는 사기(寺記)를 인용하여 “1577년(선조 10) 왕이 창빈묘(昌嬪墓) 부근 산기슭에 절을 창건하고 창빈의 원찰을 삼으니 갈궁사가 바로 이것이다(朝鮮宣祖十年 ?寺於昌嬪墓附近山麓 爲昌嬪願刹 是葛弓寺)”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창빈의 묘는 1578년 즉 선조 즉위 11년에야 양주(楊州) 장흥리(長興里)에서 이곳 동작리로 옮겨졌다. 그래서인지 안진호 스님은 창건에 대한 여러 설을 언급하며 이 시기에 지장사가 창건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현재로서는 화장사가 언제 처음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일반적으로 전해지는 내용은 보인(寶印) 스님의 중창이후 1577년(선조 10)에 선조의 생조모인 창빈 안씨(昌嬪 安氏)의 묘를 절 부근에 모시게 되자 그 원찰로 삼고 화장사(華藏寺)로 고쳐 불렀으며, 창빈 묘의 조포사찰(造泡寺刹)로 지정하였다는 것이다. 이후의 연혁은 『봉은본말사지(奉恩本末寺誌)』에 자세히 전한다. 화장사는 1663년(현종 4)에 중수를 하는 등 꾸준히 사세를 유지해왔는데, 영조 때 신경준이 지은 『가람고(伽藍攷)』에도 “동작리에 화장암이 있다(在銅雀里縣北十五里)”고 기록하고 있다. 그 뒤 1862년(철종 13)에는 운담(雲潭)과 경해(鏡海) 두 스님이 중건하였다. 1870년(고종 7)에는 운담(雲潭)과 경해(鏡海) 두 스님이 경파루(鏡波樓)를 새로 지었으며, 1878년(고종 15)에는 주지 서월(瑞月) 스님과 경해 스님이 큰방 등을 수리하였다. 1893년(고종 30)에는 화주 경운(慶雲)·계향(戒香) 스님이 불상을 개금·개분하고 구품탱·지장탱·현왕탱·독성탱·산신탱을 봉안하였고, 1896년에는 칠성각을 새로 지었다. 그리고 1906년에는 화주 풍곡(豊谷) 스님이 약사전의 불상을 개금·단청하고 후불탱·신중탱·감로탱·신중탱·칠성탱 등을 봉안하였다. 1911년에는 일제의 사찰령에 따라 봉은사의 말사로 편입이 되었다. 1920년에는 주지 원옹(圓翁)스님과 명진(明眞)스님이 큰방을 수리하였고, 1936년에는 주지 유영송(劉永松) 스님이 능인전(能仁殿)을 중수하였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국립묘지가 들어서자 수많은 유가족들이 호국영령을 위해 기도하는 사찰이 되었다. 그 뒤 1983년에는 혜성(慧惺)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국립묘지에 안치된 호국영령들이 지장보살의 원력으로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뜻에서 절 이름을 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로 다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립 서울 현충원 설립경위(자료: 국립 서울 현충원 홈페이지)
조국의 광복과 더불어 군이 창설되어 국토방위의 임무를 수행하여 오던 중 북한 인민군의 국지적 도발과 각 지구의 공비토벌작전으로 전사한 장병들을 서울 장충사에 안치하였다. 그러나 전사자의 수가 점차 증가함에 따라 육군에서 묘지 설치문제가 논의되어 1949년 말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에서 서울근교에 묘지 후보지를 물색하던 중 6ㆍ25전쟁으로 묘지 설치문제는 중단되었고 각 지구 전선에서 전사한 전몰장병의 영현은 부산의 금정사와 범어사에 순국 전몰장병 영현 안치소를 설치, 봉안하여 육군병참단 묘지등록 중대에서 관리하였다. 계속되는 격전으로 전사자의 수가 점차 증가하여 육군에서는 다시 육군묘지 설치 문제가 논의되고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주관 하에 묘지후보지 답사 반을 구성하여 제1차로 대구지방, 제2차로 경주지구 일대를 답사한 결과 경주시 형산강 지류인 천북 대안 일대를 육군묘지 후보지로 선정하고 추진하던 중, 군 고위층에서 현지를 답사하여 검토한 결과 지역적으로 편재되어 있고, 침수의 우려가 많을 것을 고려하여 타 지역으로 후보지를 재선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이 내려져 일단 중지하게 되었다.
1952년 5월 6일 국방부 국장급 회의에서 육군묘지 설치문제에 대하여 논의한 결과, 육군묘지를 설치하게 되면 타군에서도 각기 군 묘지를 만들어 관리상 많은 예산과 인원이 소요되고, 영현관리의 통일성을 기할 수 없는 등 여러 가지 폐단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육군묘지 설치문제는 일단 보류하도록 지시하고, 3군 종합묘지 설치를 추진하되, 묘지의 명칭은 국군묘지로 칭할 것을 결의하였다. 1952년 5월 26일 국방부 주관으로 국군묘지 후보지 선정을 위하여 3군 합동 답사 반을 편성하고, 1952년 11월 3일 군 묘지 설치위원회를 구성한 후 1952년 11월부터 1953년 9월까지 11개월 동안 7차에 걸쳐 10개 지역을 답사하였다. 답사 결과 동작동 현 위치를 국군묘지 후보지로 선정하여 1953년 9월 29일 이승만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국군묘지 부지로 확정하고 1954년 3월 1일 정지공사를 착공한 이래 3년에 걸쳐 묘역 238,017㎡ 을 조성하고, 그 후 연차적으로 1968년 말까지 광장 99,174㎡, 임야 912,400㎡ 및 공원행정지역 178,513㎡을 조성하였다.
1955년 7월 15일 군 묘지 업무를 관장할 국군묘지관리소가 발족되고, 이어서 1956년 4월 13일 대통령령으로 군 묘지 령이 제정되어 군 묘지 운영 및 관리를 위한 제도적 기틀이 마련되어 전사 또는 순직한 군인, 군무원이 안장되고 덧붙여 순국선열 및 국가 유공자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안장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한편, 6.25 전쟁으로 발생한 많은 전사 장병 처리를 위해 지금까지 군인위주로 이루어져왔던 군묘지 안장업무가 1965년 3월 30일 국립묘지 령으로 재정립되어 애국지사, 경찰관 및 향토예비군까지 대상이 확대됨으로써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고귀한 삶을 희생하고 아울러 국가발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분들을 국민의 이름으로 모시게 되어 그 충의와 위훈을 후손들에게 영구히 보존, 계승시킬 수 있는 겨레의 성역으로써 국립묘지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또한, 2005년 7월 29일 국회에서 의원입법으로 제정 공포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 동작동 국립묘지의 명칭이 "국립 서울 현충원"으로 변경되고 소방공무원과 의사상자도 안장대상자에 포함되었다.
▷연혁
-2010년대
2015.11.26.김영삼 대통령 안장
-2000년대
2009. 08. 23.김대중 대통령 안장
2006. 01.관리기관 명칭 변경(대통령령 제19286호) 국립현충원 →국립서울현충원
2005. 07. 29.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 공포 (법률 제 7649호 : 시행 2006.01.30)
-1990년대
1999. 05. 24.국립현충원 조직개편(전례과, 현충선양과 → 현충과, 대통령령 제16339호)
1997. 05. 30.국립현충원 청사 준공
1996. 06. 01.국립현충원으로 기관명칭 변경
1993. 08. 10.임시정부요인 묘역 조성 및 안장
1991. 03. 28.국립묘지관리소 조직 개편(현충선양과 신설, 대통령령 제13335호)
-1980년대
1985. 11. 13.대전국립묘지 준공
1982. 08. 27.대전국립묘지 사병안장 개시
1980. 12. 31.현충관 건립(현 영화관으로 병용)
-1970년대
1979. 11. 03.박정희 대통령 안장
1979. 08. 29.국립묘지관리소 대전분소 창설 (대통령영 제9581호)
1979. 04. 01.대전국립묘지 건설공사 착공
1977. 01. 01.대전국립묘지 설치위원회 구성
1976. 10. 27.무후선열 117위 봉안식
1976. 04. 14.대전국립묘지 위치 결정
1974. 12. 30.국립묘지관리소 청사 준공
1974. 08. 19육영수 여사 안장
1971. 11. 17.애국지사묘역 충열대 제막
1970. 06. 22.무장공비 현충문 폭파 미수사건 발생
-1960년대
1969. 04. 30.현충문 건립
1967. 09. 30.현충탑건립 (위패봉안관 포함)
1965. 07. 27.이승만 대통령 안장
1965. 07. 21.경찰관 최초 안장
1965. 03. 30.국립묘지로 승격 (국립묘지령 제정, 대통령령 제2092호)
1963. 11. 21.재일학도의용군 안장
1964. 03. 11.애국지사 최초 안장(김재근)
1962. 05. 10.합동 의장대 창설
-1950년대
1958. 03. 21.각 시/도 공원설치
1957. 04. 02.신분확인 용사 최초 안장
1956. 04. 19.현충일 제정(제39차 국무회의)
1956. 04. 13.국군묘지 설치법령 제정(군묘지령, 대통령령제 144호)
1956. 01. 16.무명용사 최초 안장
1955. 07. 15.국군묘지관리소 창설 (국방부 일반명령 제218호)
1954. 10. 30.무명용사탑 및 무명용사문 건립
1954. 03. 01.국군묘지 착공
1953. 09. 15.군묘지 후보지 답사 완료
1952. 11. 03.군묘지 설치위원회 구성
1951. 09. 07.군묘지 후보지 답사 게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