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시 독일의 원반비행체들[펌]
2차대전 때 독일의 과학수준을보면 신무기를 예측할 수 있다?
[ .....원반 전투기, 반중력 장치, 영구기관 등을 말하면 과학에 위배되는 '허망한 사이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미 20세기 초에 반중력 장치를 비롯한 영구기관이 모두 발명이 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미국 포드사 같은 유명 자동차업체와 석유자본가들의 무지막지한 방해공작으로 인해 그 귀중한 기술들은 폐기되고 발명가들도 정신병자 취급을 받던가 비밀리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된지 오래다.
우리는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모두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된 역사이기 때문이다. 패자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긴 자들의 역사라는 소리다. ... 지금은 감추어진 역사의 이면에 눈을 돌리는 시간이다. ]
2차 세계대전 당시 지구상에서 최고의 지식과 과학기술을 지니고 있던 나라는 바로 독일이었다, 전후 미국과 소련은 앞다투어 독일의 과학자들을 데려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이들의 온갖 실험 결과가 이후의 과학발전에 크게 공헌했던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로 5백 명에 달하는 기술자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나치 독일의 V로켓 개발자, 베르너 폰브라운 박사를 들수 있다.
■ 하늘로 떠올라라! : 비펠드-브라운 효과 (Biefeld Brown effect)
비펠드 브라운 효과를 이용하면 전기추진 비행접시가 가능하다. 1926년 미국에서 특허난 비펠드 브라운 효과를 활용해, 나치독일은 1억볼트 전기를 사용해서 하늘을 날게한 것이다.
비펠드 브라운 장치에서 맨위의 금속접시는 중간에는 절연체고 맨 밑에 금속접시로 되어 있으며 맨위에는 +극, 맨밑에는 -극이다. 그 원리는 이렇다. 지구는 -극이라고 한다. 하늘의 전리층도 -극이며, 비펠드 브라운 장치의 맨위의 극성은 +극이다. 전리층은 -극이라서 결국 서로 끌어당긴다. 비펠드 브라운 장치의 밑바닥은 -극이이고 지구의 땅도 -극이다. 그로 인해 서로 밀어낸다. 그리하여 결국 하늘을 날게된다. 전리층을 재빠르게 통과하면 비펠드 브라운 장치로 우주도 갈 수 있다고 한다.
절연체의 속을 파서 그 안에 테슬라코일, 단극발전기, 조종석, 탄소제거기를 장착하여 나치독일은 직경 90cm짜리의 푸파이터로 제작해서 사용했고, 직경10~50cm 이하의 푸파이터는 테슬라의 무선송전 방식으로 작동되는 무선조종 전기추진 비행공이라고 할수 있다. 나치의 원반접시는 거의 모두 비펠드 브라운 효과를 응용한 형태이다.
■ UFO 조종사들의 생명줄 : 탄소제거장치
UFO의 탄소제거장치는 일종의 실린더형 코로나 방전장치로,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에서 탄소를 전기의 힘으로 제거한다. 이는 조종사가 오랫동안 산소 없이 조종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이다, 이 장치를 잠수함, 우주선에 사용하면 산소탱크를 별도로 가지지 않아도 최장시간 작전수행이 가능하다.
사람은 밀폐된 공간에서도 산소를 들이마쉬고,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밀폐된 공간 안에 산소는 없고 이산화탄소만 남아서 질식사 한다. 그러나 코로나 방전을 사용한 탄소제거기를 사용하면, 이산화탄소에서 탄소를 제거하고 결국 산소만 남게 되어서 특별히 산소탱크 없이도 살 수가 있다.
사실상 탄소제거기는 테슬라가 발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니면 독일에서 개발했거나 후에 나치독일은 장시간 운행해야 하는 원반접시에 장착했다고 한다.
■ 나치의 V-7 계획
베를린을 함락시킨 연합군이 비밀 공장들을 샅샅이 뒤져서 마침내 비밀병기 중 하나를 찾아냈다. 그것의 프로젝트 명은 V-7.
V-7이란 폰 브라운 박사가 개발했던 V 시리즈 무인로켓의 후속 모델이라 할 수 있으며, 독일의 비밀무기로 하늘을 나는 원반비행체였다. 나치독일 과학력의 전부가 이것의 개발에 결집되었다고 한다.
1978년 5월, 서독에서 개최된 과학박람회 때 한 신문기사가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의 원반형 비행기'라는 기사였다. 이 기사에서 원반형 비행기의 세부 스케치가 첨부되어 있었지만 설계자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았다. 기사를 쓴 사람 이름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 당시 서독 정부 당국은 이것이 공표되더라도 안전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1938년 당시 이 비행기의 발명자가 민간인이든 정부기관이든 관계없이 가까운 특허 신청소에 등록되어 곧바로 극비 취급을 받아 설계자의 손을 떠나게 되었고, 히틀러 직속의 연구기관으로 보내졌다고한다. 원반은 연꽂문양이었다. 중앙에는 구멍이 여러 개 뚫린 형태였다. 이는 비펠드 브라운 효과를 응용한 형태라고한다,
신문에 실린 설계도면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것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명칭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컴퓨터, 전자기 모터, 레이저 레이더 등 첨단 과학기술의 산물들이 기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머지 여러 도면들은 독일 정부에 의해 처분되었거나 어딘가 은닉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기사에 의하면 베를린이 함락되기 직전 당시의 SS(나치 친위대) 장관 겸 경찰장관인 하인리히 히믈러의 지휘를 받고 있던 연구기관에 의해 그 증거의 대부분이 인멸되었거나 어둠 속으로 매장되었다고 한다.
기록과 증언에 의하면, V-7계획은 1930년대 후반부터 갑작스럽게 연구가 개시된 것으로 보인다. 히틀러의 SS는 당시 뮌헨 공대의 W.O. 슈만 박사가 개발한 자기부상 장치를 입수하였고, 이것을 이용하여 비행접시의 제작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된다. 원래 나치의 비행접시는 Thule&Vril 사가 만들었는데, 1935년부터 SS의 E-4 소속 과학자들이 대거 투입되어 새로운 원반 전투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그들이 비밀리에 연구를 한 곳은 독일의 북서부 지방에 있는 '하우니부르크(Hauneburg)'였다. 이곳에 SS의 E-4는 시험 비행장과 연구 장비를 모두 갖추고 새로운 비행 접시 'H-Gerat(Hauneburg Device)'의 제작에 들어갔다. 1939년부터는 보안상의 이유로 '하우니브(Haunebu)'로 줄여 불렀으며, 오늘날까지 독일 원반 전투기의 대명사가 된다.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때는 2차대전 도중이었다. 나치독일은 소련 침공에 실패하고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패퇴하자, 히틀러는 친위부대(SS)에 새로운 형태의 비행체를 개발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깜짝 놀랄 만한 비밀병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과학자 빅터 샤우버거의 지휘 하에 튜링겐 등 3개의 지하 비밀연구소에서 중력을 제어해 비행할 수 있는 원반비행체의 개발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이 연구소의 비밀이 미국, 영국의 정보기관에 알려졌다. 그래서 히틀러는 그 연구를 대외적으로는 없던 일로 하고 비밀리에 추진하는 동시에, 거짓 위장을 위해 제트 엔진의 추진력에 의한 원반 개발도 착수 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샤우버거의 연구는 프라하의 노스트 홀에 있는 BMW공장 등 몇 군데로 분산되었으며, 우수한 과학자들이 총집결되었다.
당시 샤우버거는 오스트리아의 빈에 있는 카틀사의 연구소에서 획기적인 초전도 모터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체에 사용할 합금의 완성이 1944년으로 늦춰지면서 모터 개발은 빛이 바랬다. 주동력으로 초전도 모터가 설치되고 전자파 추진으로 비행한다는 시험 제작 비행기는 '비행모자(Flying Hat)'라고 불렸으며, 최종적으로 지름 40~70m 급의 비행체가 개발되었다고 한다.
사실 나치는 연구개발센터를 프라하(체코의 수도)의 자동차 생산기지인 스코다 공장에 두고, 1944년까지 날개 없는 비행접시 형태의 시제품 15대를 생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V-7 프로잭트 중에 '하우니브'와 기타 UFO
처음 개발된 것이 하우니브1로, '최후의 대대(Last Battalion)'의 핵심이 되는 물체이기도 하며 나치의 V-7 프로잭트 중 재일 유명한 기체이기도 하다. 초기형인 하우니브I의 시제품은 2개가 만들어졌고, 직경 25m에 8명의 승무원이, 1939년 첫 비행을 했으며 총 52회의 시험 비행을 했다. 그리고 비록 저고도이지만 믿기지 않는 시속 4,800Km를 달성했다고 한다.
나중에 개량된 버전은 시속 17,000Km에 달했으며, 비행 가능 시간은 18시간 정도였다. 고속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마찰열을 견디기 위해 Viktalen이라는 특수한 초합금을 개발하여 장갑으로 둘렀다. 초기형은 2연장 60mm 제트 캐논을 실험 무장으로 장비했다. 이 포탄은 10mm의 장갑 관통 성능이 있을 걸로 예상됐다. 하지만 더 대형포를 장비한 시험 모델은 비행이 불안정해서 취소됐고, 훗날 기관총 모델과 기관포 모델이 추가로 등장했다.
히틀러는 폭탄을 탑재할 수 있고 레이더 망에 잡히지 않는 이 유인 원반비행 전투기를 동맹국인 이탈리아의 통치자 무솔리니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 무솔리니의 국방보좌역으로 나치의 원반 전투기를 목격한 루이기 로메르사(84)는 "특이했다. 모양은 둥글었고, 가운데 조종석은 유리돔 형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우니브 시리즈는 그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1942년, 30m 직경의 하우니브II가 시험 비행을 하게 되었다. 이번엔 승무원이 9명이었고, 시속은 6,000~21,000Km로 55시간이나 날 수 있었다. 이것과 나중에 나온 DoStra는 모두 2개의 Viktalen 장갑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총 7대의 시제품이 만들어져 1942년~1944년까지 시험 비행을 거쳤다. 총 시험 횟수는 106번이었다.
1944년, 실전 투입용 모델인 하우니브II DoStra(Dornier STRAtospharen Flugzeung)가 등장했다. 2대의 시제품이 완성되었는데, 더 부피가 크고 수층 높이에 승무원은 20명이나 됐다. 이 역시 극초음속인 시속 21,000Km에 근접하게 날 수 있었다.
SS는 이 기종의 생산을 융커스와 도르니에 중 어느쪽에 맡겨야 할지 고민했지만, 1945년 3월에 도르니에가 선택됐다. 하지만 종전 때문에 도르니에는 생산에 들어가지 못 했다. 하우니브2 DoStra의 몇몇 사진과 SS E-IV의 서류만이 증명을 해줄 뿐이다. 다만 도르니에의 서류에서 이 기체에 관한 문건이 전혀 없다는 점은 이상하다.
종전 직전에 만들어진 것이 더 거대한 직경 71미터의 전설로만 남아 있는 하우니브3 이다. 오직 1대의 시제품만 종전 직전에 만들어졌는데, 승무원 32명에 시속 7,000~40,000Km를 낼 수 있었다 한다. 이 기종은 3개의 Viktalen으로 덮여 있었다. 항간에 이 기종은 7~8주나 비행할 수 있다고 하니, 가히 움직이는 전설의 하늘 요새가 아닐 수 없다. 총 19회의 시험 비행이 있었고, 1945년 3월 중에는 Thule&Vril사원들의 탈출 작업에 사용됐다고 한다.
공식적인 실험보고는 하우니브3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서류상으로는 하우니브4가 존재했었다. 자세한 성능은 전해지지 않지만 120m 정도의 크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비행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재미있는 것은 나치독일의 항복 후, 미군이 발견한 한 문서에서 V2 발사 실험 당시 그 근처에 비행물체가 감시를 하고 있었다는 독일측의 보고가 있었다는 것이다. 독일 최고사령부 제13호실에서 발견된 암호명 URANUS가 사실상 세계 최초의 UFO 공식 조사 기록이었던 셈이다.
독일의 전기추진 비행접시는 여러 종류가 있다. 니콜라 테슬라의 광속전기추진 비행접시를 바탕으로 한 것, 비펠드 브라운효과를 발전시킨 것, 빅터 샤우버거의 공기추진 비행접시, 제트엔진 장착 비행접시 등으로 나눠진다. 그중에 원반비행체인 '푸파이터'는 테슬라의 것과 비펠드브라운 효과를 발전시킨 것으로, 직경 90cm 1인의 소년유격병 또는 체구 작은 병사가 탄 형태이다. 페달식 발전기, 패러데이의 단극발전기 또는 N머신 장착과 테슬라 코일 그리고 직경 5~40cm 이하의 작은 푸파이터는 테슬라의 무선송전 기술을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푸파이터는 작지만 큰 불빛을 띈 괴비행물체였다고 당시 연합군 파럿의 증언들이 많이 있다.
V-7 프로잭트는 1945년 5월, 베를린이 연합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행방이 묘연해졌다.
항공기 설계기사이자 공군 대위였던 루돌프 슈라이버는 1941년 봄에 원반형 비행기 설계를 완료했으며, 1942년에는 이 장치에 대한 시험 비행을 실시했다. 그리고 1943년 8월에 슈라이버는 신뢰할만한 3명의 동료들과 함께 하늘을 나는 원반의 실물크기 모형을 조립했다. 그러나 다음 해 여름에 그는 프라하 근교의 BMW 공장에서 가스터빈 엔진을 제트추진 장치로 바꾼 모델로 설계를 변경했다.
슈라이버의 말에 따르면, 1944년 초에 조립된 원반형 비행기는 1945년 4월에 실험 비행을 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전에 배치되지는 못했다. 한발 앞서 진주한 연합군 때문에 시기를 놓친 것이다. 이후 나치의 V-7 프로젝트는 베일에 묻혀 버렸다.
1945년 초 독일에 대한 연합군의 침공이 위협적 상황으로 변해감에 따라, V-7 관련 자료와 시제품들을 전부 폐기해 버렸기 때문이다. 완성된 1호기까지 파괴해 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슈라이버는 1950년대 말에 사망했지만 당시의 일기와 원반형 비행기의 스케치 및 자료가 발견되어, 그와 주변의 연구 내용이 다소나마 밝혀지게 되었다.
원반형 항공기의 개발 계획은 원래 독일 전문가 하벨모르, 미테라 그리고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베론소 박사 3인에 의해 제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벨모르와 슈라이버는 조종석을 중심으로 날개가 회전하는 가동익형 원반비행기의 설계를 추진하고 있었고, 보고에 따르면 원반비행기는 지름이 42m, 바닥에서 꼭대기까지의 높이는 32m 정도였다. 최고로 올라갈 수 있는 고도는 13만2천 m였으며, 최고속도는 시속 2천 km였다고 한다.
■ 밝혀지는 사실과 비밀들
연합군 측은 V-7의 행방을 필사적으로 찾았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나치는 재빨리 시험 비행기와 설계도 등을 파기해 버린 것으로 보인다. 몇몇 정보에 따르면, V-7의 신형엔진 시험을 마치자 독일 과학자들은 이것을 기체에서 분리시켜 1941년 이래 건설 작업을 계속하던 남극의 비밀 기지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 미국의 UFO연구가 프랭크 스트랜지스 박사는, 전운이 기울어가는 독일이 마지막 카드로 내민 것이 바로 원반비행체였다고 한다. 그전에도 나치 독일은 연합군이 상상할 수 없는 최첨단 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V1, V2 같은 로켓은 실전 배치되어 영국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도 했다. 또한 슈퍼건, 음향포, 초음속 폭격기, 원자폭탄 등을 개발 중이었다고 한다. 연합군은 이미 그러한 사실을 알고 종전 후 앞다투어 독일에 입성했으며, 경쟁적으로 나치의 첨단기술을 싹쓸이해 가기에 이른다.
미국은 훗날 아폴로 계획의 주역인 브라운(W.Von.Braun) 박사를 비롯해 핵심 과학자들을 영입해 갔으며, 화물 열차로 약 250대분의 V2 로켓의 장비와 부품을 본국으로 실어 날랐다.
구 소련은 한술 더 떠서 공장 자체를 그대로 뜯어가 이전했으며. 점령지구 내에서 4000여 명의 과학자와 그 가족들을 소련으로 이주시켰다.
이 비행기를 개발하는 데 중심 역할을 했던 샤우버거는 미국으로 가서 캐나다 항공기회사인 AVRO사와 미 공군의 공동개발 계획인 '인공원반 계획'이라 불리는 원반형 비행기의 개발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슈라이버는 1950년대 말, 시카고의 길가에서 타살된 채 발견되었으며 샤우버거도 미국에서 사기를 당하고 독일로 돌아와서 이내 세상을 떠났다.
경위야 어찌됐건 연합군이 많은 노력을 했어도 UFO 관련 기술은 이미 나치에 의해 빼돌려진 후였으며, 현재에도 어딘가에서 이 연구는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히틀러가 싸우고자 했던 상대가, 일반 국가가 아닌- 미국을 숙주로 내세운- 유대계 주축의 프리메이슨같은 그림자정부였다고 볼 때, 독일이 승리함으로 해서 그림자정부의 주수입원인 석유에너지 개발이 사라지고 UFO 같은 반중력 장치를 이용한 영구기관이 보편화 됐다고 하면, 최소한 환경적 측면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쾌적한 삶을 영위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38년 나치독일에서 한 발명가가 연꽃문양의 원반형 전기추진 비행접시를 특허 내었다. 그것은 재빠르게 기밀에 들어가서 테슬라는 광속전기추진 비행접시를 제작하였다. 광속전기추진 비행접시는 테슬라코일 기본장착, 발전기는 단극발전기 사용, 당연히 조종석 기본장착, 테슬라코일 다수 사용이며, 그외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테슬라는 우주에서 신호가 발생하는것을 테슬라 코일을 사용해서 발견했다고한다. 테슬라는 우주에 다른 생명체가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서 우주선을 발명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광속전기추진 비행접시, 전기의 힘으로 날아가는것이다. 당연히 지구 둘레를 감싸고 있는 전류 방패막을 기본 장착하며, 테슬라는 자신이 설계한 우주선이 광속을 넘어선다는것을 몰랐다고 한다. 그냥 우주선이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필라델피아 프로젝트로 인해 알게 되었다. 자신의 우주선이 광속을 가볍게 넘어설 수 있다는사실을(탄소제거기를 장착한 것으로 추정됨). 테슬라는 우주전함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주전함의 초기형이 바로 필라델피아 프로젝트에 사용된 구축함이다. 테슬라의 것을 푸파이터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진은 어떤 미국인이 비펄드 브라운 효과를 이용하며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약 18kv의 전압을 주었다고 하더군요.
왜소(?) 하긴 하지만 가능은 하군요.... 야외실험 사진도 있는데 못 찾아서....
진실은 저 너머에.....
원문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_2&uid=7458
https://cafe.daum.net/gycenter/AY6q/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