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마(魔)의 부활, 아수라만겁마화대진
목불인견(目不忍見)의 대참상…….
큰 우박덩어리와 같은 둥글고 검은 폭약은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늘(天) 위, 독비가 멈춘 절곡 위에서 눈송이가 쏟아지듯 떨어져
내리는 무수한 폭구(暴球)!
'대체 몽혼과 취정은 무엇하고 있기에?'
"크아아악!"
콰아앙! 콰콰콰쾅!
폭음과 절규―.
작은 산더미 같은 불꽃이 밝혀지다 사그라지는 순간마다, 예외 없이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
용소유는 무서운 눈빛으로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서는 수십 마리의 거대한 흑응들 위에서 금의를 입은 괴인들
이 연신 폭구(爆球)를 던지고 있었다.
삐이익!
용소유의 입에서 날카로운 휘파람소리가 터져 나왔다.
순간이었다.
꾸우우악!
어디선가 엄청난 괴성이 울리며 천묵붕사가 나타났다.
끄르륵!
망우곡 하늘을 가리는 그 거대한 천묵붕사의 위용을 보자 흑응들은
갑자기 요동을 치며 하늘 높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끄아아악!
천묵붕사가 놀라운 속도로 흑응의 무리 속으로 세차게 파고들어갔다
"으아아악!"
"크아아악!"
흑응 위에 있던 금의인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내렸다.
꾸아왁!
마치 호랑이 앞의 토끼처럼 흑응들은 천묵붕사를 피해 결사적으로
날아갔다.
용소유는 그 광경을 보며 내심 자책하고 있었다.
'실수였다, 금마존을 얕본 것이, 독비와 땅 속의 고독……, 거기에
다 하늘에서 폭약까지 던질 줄이야…….'
비록 천묵붕사의 출현이 더 이상의 공격을 막아 주었다고는 하나 망
우곡 안의 사정은 참혹할 정도였다.
핏물이 흐르는 계곡 안에는 폭연(爆煙)이 자욱하게 깔리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중상을 입은 고수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독상을 입은 고수들이 처절하게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그들을 훑어보던 용소유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금마존이 이런 방법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어야 되는 것인데
……!'
그때였다.
"크하핫…… 용소유, 어떠냐? 본좌에겐 아직 더 무서운 힘이 있다!
모두 몰살당하기 전에 천황비를 순순히 내놓는 것이 어떠냐?"
망우곡의 오른쪽 절벽 위에서 금마존의 굉량한 음성이 음산하게 터
져나왔다.
금마존이 아득한 절벽 위에서 금색면구를 번쩍거리면서 우뚝 서 있
었다.
용소유는 순간 흠칫 놀랐다.
'저곳은 취정이 있는 곳인데?'
그때였다.
"사형!"
"사형!"
그의 뒤에서 취정과 몽혼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응?"
용소유는 급히 뒤돌아보았다.
취정은 불그레한 얼굴로, 몽혼은 잠이 확 깬 듯한 얼굴로 그의 뒤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취정! 어떻게 된 일이냐?"
용소유의 날카로운 음성이 터졌다.
취정은 붉은 눈을 깜박이며 우물쭈물했다.
"사형이 걱정이 돼서……."
"그래서 네가 맡은 곳을 포기하고 내려왔단 말이냐?"
"……."
"미련한 놈!"
용소유는 한광을 번뜩였다.
다음 순간, 그는 천독자와 함께 서 있는 백란지를 향해 소리쳤다.
"란지! 나는 금마존을 잡아야겠소. 이곳을 부탁하오!"
"용사형! 걱정 마세요!"
백란지의 결곡한 음성이 들려오고 있을 때, 용소유는 그대로 아득한
절봉 위로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휘익!
허공을 향해 일직선으로 솟구쳐 오르는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천
독자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졌다.
"오! 창천표룡비(蒼天飄龍飛)를?"
그때였다.
삐익!
용소유의 입에서 휘파람소리가 터져나오는가 싶더니, 천묵붕사가 급
히 절곡을 향해 내려왔다.
꾸― 아악―!
용소유는 허공에서 여덟 번이나 꿈틀거리더니 곧 천묵붕사의 위에
올라탔다. 그때였다.
"사형! 놈이 도망갑니다! 빨리!"
몽혼이 다급히 소리쳤다.
과연 금마존이 한 마리의 거대한 금응(金鷹)을 타고 어둠 속의 하늘
로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붕아, 가자!"
천묵붕사는 거대한 날개를 펼쳤다.
파다다다닥!
용소유와 천묵붕사는 아득한 밤하늘로 사라져 갔다.
과연 그는 금마존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휴우……."
"아미타불……."
망우곡 안에서 백란지와 천각대선사는 깊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금마존의 가공할 공세는 멈추었으나, 곡 안은 온통 비릿한 선혈과
중상을 입은 자들의 신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구파일방의 장로와 고수 일백사십삼 인 중 구십오 인 사상(死傷)!
정도문파의 무림명숙(武林名宿) 구십칠 인 중 육십오 인 사상!
'아아! 내가 잘못 생각했어. 금마존이 그렇게 상상도 못할 암습을
준비를 하고 있을 줄이야……!'
백란지는 홀로 가슴 아픈 회한을 되씹고 있었다.
'천묵붕사가 없었다면 모두 전멸했을지도 몰라.'
그러다가 그녀는 문득 놀랐다.
'아니……?'
그녀는 급히 주위를 돌아다보았다. 한데, 그녀의 눈에는 찾고자 하
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가 찾는 사람은 천독자였고, 그는 언제부터인지 종적을 감춘 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디로 가셨지? 그 분이 있어야 많은 도움이 될 텐데……?'
백란지는 급히 취정과 몽혼을 바라보았다.
하나, 취정은 어느새 힐끗 그녀를 바라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몽혼은 군막의 한쪽에 기댄 채 신나게 잠을 자고 있지 않은가?
'맙소사! 아휴……, 뭐 저런 애들이 있담?'
백란지는 속이 터지는지 그들을 힐끗 본 뒤 십 인의 장문인들을 향
해 다시 입을 열었다.
"누구…… 대사형을 보신 분은 없나요?"
"……?"
"……?"
십 인의 장문인들은 그제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천각대선사가 급히 입을 열었다.
"노납 등은 사상자를 추리느라고……."
쉽게 말하나 어렵게 말하나 못 보았다는 말이 아닌가?
'아이! 대체 어디로 가셨지?'
백란지는 아찔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이제 용소유 없이는 그 무엇도 해낼 것 같은 자신감을 상실
한 지 이미 오래였다.
그때였다.
팟! 파파― 팟―!
돌연 곡 내에 기이한 녹색의 광채가 가득 차는 것이 아닌가?
공동장문인 우학도인이 급히 외쳤다.
"이게 무엇이오?"
곤륜장문인 운중협룡이 황망히 군막 밖으로 달려 나갔다.
백란지와 다른 장문인들도 급히 밖을 향했다.
한데, 이 무슨 광경인가?
팟! 파파파― 팟―!
녹색(綠色)의 마화(魔火)!
망우곡 전체가 녹색의 짙은 운무(雲霧)에 싸인 채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지 않은가?
"이… 이게 대체……?"
백란지는 어이가 없었다.
하나, 그녀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스―.
분명히 그녀의 앞에 서 있던 십 인의 장문인들의 신형이 어디론가
사라지며 짙은 녹색의 안개만이 자욱히 시야를 가리는 것이 아닌가?
"아앗!"
그때였다.
"소사매! 이리 와라!"
천독자의 음성이 들리며 그녀의 손목이 우악스런 손길에 잡혔다.
"아……! 대사형이세요?"
"쉿! 조용히 해라!"
천독자가 그녀를 군막으로 데리고 갔다.
취정과 몽혼은 군막 속에서 항상 그렇듯이 망연히 서서 졸고 있었다
어느새 군막 속까지 녹색의 마화가 비쳐들고 있었다.
천독자가 가볍게 혀를 찼다.
"쯔쯧……, 이 녀석들 때문에 소유의 앞날이 환하다!"
그는 취정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인석아! 어서 저 잠자는 놈을 업고…… 노부를 따라와라!"
그의 음성에는 긴장의 빛이 가득 찼다.
취정은 곧 몽혼을 등에 업었다.
"쿨…… 드르렁……!"
몽혼은 힘차게 코를 골고 있었다.
"대사형! 왜 그러세요?"
천독자는 백란지의 의아한 음성에 벌컥 화를 냈다.
"네가 예뻐서 손목을 잡으려고 그러는 줄 아느냐? 어서 따라오기나
해!"
"……!"
백란지는 머쓱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천독자가 이번에는 취정의 손을 급히 붙잡더니 바람처럼 몸을
날렸다. 동시에 그의 전음이 취정과 백란지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눈을 감고…… 숨을 쉬지 말아라! 또한 호신강기로 귀(耳)를 보호
해라."
휘이익!
백란지는 몸이 허공에 떠 있는 것을 느꼈다.
'아! 과연 천마서생이시다. 이토록 빠르다니……?'
그녀는 눈을 감은 상황에서도 절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천혜금봉이라는 그녀 역시 당금 무림의 초절정 고수가 아닌가?
하나, 양손에 세 사람을 잡고도 무서운 속도로 허공을 나르는 천독
자의 경공은 그녀가 생전 처음 겪는 놀라운 것이었다.
"……."
백란지는 살그머니 눈을 떴다.
녹색의 마화와 녹색의 짙은 안개가 천지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두 눈을 찢어져라 부릅떴다.
그 속에서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용소유가 자신을 향해 악귀와 같은
형상으로 달려들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 란지! 네가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
너를 믿은 내가 잘못이었다! 하나, 나는 혼자 죽을 수 없다! 란지
네 목도 다오!
"아악! 사형! 왜 이러세요?"
백란지가 자신도 모르게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터뜨렸다.
그때였다.
"멍청한 계집! 눈을 뜨지 말랬더니!"
천독자가 노성을 토했다.
"아……!"
백란지의 힘없는 신음성이 뒤를 이었다.
대체 이것이 무슨 엄청난 괴변의 연속이란 말인가?
한데 그 순간, 녹색의 안개 속에서 흐릿한 몇 개의 인영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흐릿한 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눈부신
여인의 전라지체가 아닌가?
고르게 흘러내린 팔등신의 몸매와 흐느적거리는 은어 같은 두 팔과
대리석 기둥 같은 두 다리, 탐스러운 두 개의 팽팽한 육봉과 풍염한
둔부가 흐릿한 녹색 안개 속에서 빛을 뿜고 있었다.
그것은 적나라한 나신보다 더욱 신비스러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순, 여인들 중에서 귀를 간질이는 듯한 고성이 흘러나왔다.
"분명히 무슨 소리가 틀렸지?"
"그래, 그런 것 같은데……?"
"설마? 잘못 들은 아니겠지?"
"그럴 수도 있을 거야……. 누가 이 가공할 절진(絶陣)을 빠져나갈
수가 있겠어?"
"그건 그래! 하지만 일단 공주님께 보고를 드려야 하잖겠니?"
"그래!"
스르르―.
마치 한 편의 환상이 이루어지듯, 여인들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
고 말았다.
아아! 망우곡의 이 일대괴변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산곡(山谷).
미명(未明)의 짙은 어둠이 서서히 물러가고 있는 순간,
"예엣?"
돌연 산곡 안에서 자지러질 듯이 놀라는 여인의 교성이 터져나다.
천독자와 백란지, 취정과 몽혼이 산곡의 한 거암(巨岩) 뒤에 있었다
지금 천독자의 표정은 심각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백란지는 영롱한 두 눈을 경악으로 빛내고 있었고, 취정과 몽혼은
언제나 그렇듯이 고개를 숙인 채 졸고 있었다.
한데, 천독자는 천천히 무거운 음성으로 말을 잇고 있는 것이 아닌
가?
"노부의 말은 사실이다! 과거에 나는 우연히 그들을 만날 기회가 있
었다. 하나 그때는 그 아수라만겁마화대진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나올 수가 있었지……!"
― 아수라만겁마화대진(阿修羅萬 魔火大陣)!
그 얼마나 가공한 이름인가?
"……!"
백란지의 엄청난 경악 속에서, 천독자의 무거운 침음성은 계속 이어
지고 있었다.
"아수라만겁마화대진에 대해서는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마등(魔燈
)과 마화(魔花)에 의해 펼쳐지는 그 대진은 만고의 절대절진이다."
만고의 절대절진!
"과거 구백 년 전, 그 진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당시 강호의 모
든 권력을 쥐고 있던 천제맹(天帝盟)의 일만 고수가 몰살을 당했다.
"……!"
백란지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천하의 패권을 움켜잡고 있던 천제맹의 일만 고수가 몰살을 당했다
니!
천독자의 말은 그곳에서 끊어졌다.
무거운 침묵이 산곡 안을 휩쓸고 있었다.
하나, 침묵보다 더 무거운 것은 백란지의 가슴속이었다.
불현듯 천독자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 무서운 혈영천마(血影天魔)의 저주(咀呪)가 살아나다니…
…!"
― 혈영천마(血影天魔)!
절대천마(絶代天魔)라고 했다.
구백 년 전의 강호에서 그는 제황이었다.
그의 명령은 곧 법이었고, 그의 이름은 바로 신이었다.
죽음은 그의 벗이었으며, 피는 그의 향기로운 술이었다.
아아! 강호무림에 가장 강한 마두로 등장한 그는 바로 절대천마였다
하나, 하늘에 태양이 있으면 달이 있듯이 혈영천마에게 천적(天敵)
이 나타났다.
― 겁( )의 신화(神話), 파천노조(破天老祖)!
혈영천마와 쌍벽을 이룬 천적은 바로 파천노조라는 신비인이었다.
정(正)도 사(邪)도 아니었던 고금제일의 신비인인 그는 혈영천마보
다 백 년 늦게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놀랍게도 만겁(萬 )의 신화를
창조했다.
천마묘(天魔廟).
파천노조는 혈영천마가 세운 그 천마묘의 일만 고수를 몰살시킨 것
이었다. 그러나 파천노조와 혈영천마는 사이좋게 나란히 실종되고
말았다.
한데, 그 가공할 혈영천마의 아수라만겁마화대진이 다시 나타나다니
"대사형! 곡에 남아 있던 십대문파의 장문인들과 고수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천독자는 그녀의 질문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녹화(綠火)가 혈화(血火)로 바뀌지 않았으니……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네가 짐작한 대로 그들이 십 인의 장문인들을 억류한 것은
그들이 공식적으로 강호에 나온 것임을 공포하려는 것일 게다!"
"……!"
백란지의 화사한 옥용에 암울한 노을이 가득 덮였다.
'아아! 금마존조차 감당하기 어려운데, 또다시 천마묘가……?'
천마묘!
그 가공할 부활(復活)!
휘이이잉―!
산곡 안에는 늦가을답지 않은 음산한 한풍(寒風)이 불어오고 있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