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장. 악당에게 시비거는 자들.
아마 이 소요객점의 안쪽에는 이런 별채가 여러 개가 되는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이런 별채에 드는 사람은 아주 돈 많은 부자들이나 귀족들이기 마련이다. 따라서, 별채는 여태 지나온 객방들보다도 여러모로 지극히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별채의 주위로는 넓은 정원이 있었는데, 그것 역시 아주 조화 있고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었다.
아향은 그 앞에 이르러서 백검운에게 말했다.
"이것은 나으리께서 산책하기에 좋으라고 곽 둘째언니께서 일부러 정원이 넓은 곳을 선택하셨어요."
그녀는 일부러 곽소유의 행동을 칭찬하고 있는 것이다. 백검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곽소유를 향해 고개를 돌려보았다.
- 곽소유,
사실 백검운이 처음으로 금릉성에 당도했을 때 가장 먼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의 언니가 그의 아내가 되는 바람에 두 사람의 사이는 상당히 어색하게 변해 있었다.
처제와 형부사이지만 염연한 법도가 있으므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다소 어색하고 쑥스러운 것이다.
백검운은 그녀의 언니를 위하는 마음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녀는 이를테면 이곳에 그들의 신방을 꾸며놓은 것이리라. 곽소유는 백검운의 시선이 와닿자 문득 가볍게 안색을 상기시키면서 웃어보였다.
이 별채의 현판에 새겨진 이름은 바로 소요루였다. 그것은 이 객점의 이름과도 부합되는 것이므로 자연 이곳에서 가장 훌륭한 별채라는 것을 쉽게 느끼게 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과연 호화찬란하기 그지없었다.
백검운은 사실 이렇게 호화로운 곳에서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다소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다행히 그는 전번에 전부자의 집에 들어가서 아주 호화로운 실내를 먼저 구경을 했었기에 별로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다.
허나, 때문에 그는 문득 그 전부자의 여식의 일이 생각났다. 과연 그 전보보는 지금 무사히 병상에서 회복하고 있을까?
이곳 소요루의 전체는 마치 하나의 작은 저택과도 흡사했다. 중앙의 건물에는 대청이 있고, 또 좌우에는 종자들이 거처할 수 있게 만들어진 두개의 독채가 따로 붙어 있었다.
백검운은 그 두개의 건물을 각각 아향과 삼살에게 사용하도록 했다. 이어 곽소유에게는 따로이 다른 건물을 사용하도록 하려고 했으나 그녀는 굳이 아향과 함께 지내겠다고 우기는 것이었다.
하긴, 외지에서 여인이 혼자 거처하는 것은 다소 두렵기도 할 것이며 적적하기도 하리라. 백검운은 굳이 더 권하지 않고 곽소봉과 함께 중앙의 커다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 건물 안에는 실로 거의 모든 것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전에 남궁세가에서 살던 그 별채와는 아예 비교가 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비단 하나의 욕실이나 주방만 해도 시설이 엄청나고 호화로와서 눈이 다 부실 지경이었다.
이 건물에는 대청과 주방들을 제외하고는 다시 몇 개의 방이 더 있었는데, 백검운은 그 중 하나의 침실과 서재를 사용하기로 했다.
이윽고, 두 사람이 나란히 침실로 들어가자, 일순 그 안에 설비되어 있는 아름답고 호화로운 장식과 가구들, 그리고 휘황한 빛을 뿌리는 오색의 궁등과 화려한 넓은 침상 등을 보고는 절로 입이 벌어질 지경이었다.
다만 이곳은 전에 전부자의 집에서 보았던 그런 침실보다는 다소 좁기는 했다. 그러나, 어쨌든 이런 곳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거의 상상도 못한 호화로움인 것이다.
곽소봉은 그 안에 들어서자 마치 꿈꾸는 듯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대뜸 몸을 돌려 백검운의 목을 얼싸안고 그의 품에 안기려고 했다.
헌데 그때였다. 단지 너무나도 심한 행복감에 도취되어 있던 곽소봉은 일시 크게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이 침실의 안에 그들 외에도 느닷없이 인기척이 느껴졌던 것이다. 이것은 그녀의 무공이 그토록 고강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발견할 수 없는 미세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설마 누가 이런 곳에 먼저 들어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한 처지였고 마음을 놓은 상태에서 지나치게 행복감에 도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런 상태에서도 인기척을 포착해 낼 수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녀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증거였다. 그리하여 그녀가 백검운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곽소봉은 다소 의아함을 느꼈다.
백검운은 전혀 놀란 기색이 아니고 그저 담담하게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는 당연히 그 인기척을 느꼈던 것이 분명하지 않을까?
여기에서 문득 한 가지 기이한 느낌을 받은 곽소봉은 다시 내색하지 않고 백검운의 손을 잡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운랑 이곳의 침대는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군요? 우리 어디 함께 앉아볼까요?"
- 운랑,
그것은 그녀가 촉망중에 꺼낸 애칭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말을 하고서도 스스로 부끄러워 안면을 노을처럼 붉혔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다소 차가와져 있어서 그녀가 사실은 다소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냈다.
이곳에 스며든 사람이 비록 무공이 고강하지는 않더라도 일단 그들을 노리고 있다는 점에서 곽소봉에게는 확실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백검운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합시다."
이어, 두 사람은 나란히 손을 잡고 천천히 중앙에 놓인 침상으로 걸어가서 나란히 걸터앉았다. 이 침상은 아주 푹신하기 그지없었다. 아마 그 가운데 서너 명이 몰래 파묻혀 있는다고 해도 겉으로 보기에는 잘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곽소봉은 침상위에 걸터앉자 곧 백검운의 품속에 머리를 기대며 속삭였다.
"운랑, 당신은 저에게 입맞춤을 해주시겠어요?"
백검운은 웃으며 곧장 부드럽게 그녀에게 입맞춤을 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마치 전신에 뼈가 없는 듯 뒤로 몸이 천천히 넘어져갔다. 그리하여 마악 그녀의 몸이 중앙의 푹신한 부위에 드러누울 때였다.
갑자기, 그곳에서 깔깔거리는 한줄기 웃음소리와 함께 하나의 인영이 날벼락처럼 솟구쳐 오르는 것이 아닌가?
"호호호호홋!.........."
아마 미리 짐작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간담이 다 내려앉았을 것이다. 지금 침상 속에서 튀어나온 인영은 바로 그러한 점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인영은 이 두 사람의 무공에 대해서 착오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들은 결코 자신이 만든 함정에 녹녹하게 걸려들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 인영은 처음에는 맹렬한 기세로 천정 쪽으로 솟구쳤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의 손목은 이미 곽소봉에게 제압되어 그만 더 이상 위로 오르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상태가 되었다. 게다가, 일순 손목이 심하게 아파왔으므로 그 인영은 눈살을 심하게 찌푸리며 짧은 비명을 내질렀고, 이어 곽소봉의 무공에 놀라 경악의 외침을 발했다.
자연 그 상태에서 그 인영은 용모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 인영은 여자였다. 또한 백검운이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다름 아닌, 바로 그녀는 남궁세가의 막내딸인 남궁소소였던 것이다.
그녀는 대체 어떻게 이곳에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다소 곤혹스럽기는 했지만 알고 보면 간단했다. 원래 그녀는 백검운에게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일찍이 그가 남궁세가를 떠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그녀는 먼저 아향의 뒤를 밟아서 그의 거처를 알아두려고 한 것이다. 당시 아향 등은 무공이 높은 사람이 없어서 남궁소소가 매우 주의를 하는 바람에 아무도 그녀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녀에게 이곳 침실 안에까지 들어오게 만들었던 것이다.
헌데, 남궁소소는 일단 침실 안으로 들어오자 생각이 문득 달라졌다. 그녀는 원래 집안만 확인하고는 물러갈 생각이었지만, 이 푹신한 침상을 보자 나중에 백검운이 들어오면 놀려주리라고 생각하고 그 안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백검운은 혼자가 아닌 다른 여자와 함께 들어와서 희희닥거리고 있지 않은가?
남궁소소는 스스로 무안하기도 하고 다급한 마음이 들어서 즉시 신법을 펼쳐서 크게 놀래주고 달아나려고 했던 것이다.
허나, 그녀는 불과 허공을 일장도 못 날으고 잡히고 말았다. 따라서, 그녀는 곧장 안색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어서 나의 손을 놓아요!"
그러나, 곽소봉이 순순히 그녀의 손을 놓아줄 리가 없었다. 그녀는 원래 백검운의 주위에 있는 여인들에게 매우 긴장을 하고 있었던 판에 이런 여인이 걸려들자 결코 쉽게 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두 눈에 냉전같은 한광을 뿌리며 차갑게 그녀에게 물었다.
"너는 대체 누구지?"
남궁소소는 이 말을 듣는 순간 곧장 차가운 코웃음을 치려고 했다. 허나, 이미 그 순간에 곽소봉의 손 끝으로부터 기이한 한줄기의 막대한 진기가 스며 들어와서 그녀의 전신에 무한한 고통을 주기 시작했다. 남궁소소는 비록 겉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았지만 전신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애원하듯 말했다.
"나를 어서 놓아줘요. 나는 그분도 알고 있는 사람이란 말이에요.."
곽소봉은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보고는 백검운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에, 백검운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바로 남궁세가의 막내딸이오."
그 말을 듣는 순간 곽소봉은 이게 어찌된 일인지 능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남궁소소의 손을 놓으면서 물었다.
"너는 어째서 이 안에 들어와 있었지?"
이때, 남궁소소는 극도의 고통에서 일순 해방되자 평소의 앙칼진 성격이 되살아나 곧장 곽소봉을 향해 뭐라고 소리치려고 했다. 헌데 다음 순간, 무심코 바라본 곽소봉의 두 눈에서 마치 푸른 전광과 같은 한기가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남궁소소는 비록 자신이 절대적인 무공을 연성하지는 못했어도 그것이 바로 그와 같은 무공을 연성한 증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황급히 이 자리를 피하기 위해 뒤로 훌쩍 신형을 날리며 소리쳤다.
"흥, 그거야 내 맘이지........"
허나, 뒤로 훌쩍 신형을 날려 창가로 날아간 남궁소소는 순간 뭐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느새 그녀의 앞에는 곽소봉이 다시 나타나 길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순간 다시 남궁소소의 손목을 세게 잡아버렸다.
"너는 방금 뭐라고 했지?"
남궁소소는 순간 전신이 마치 불에 빠진 듯 엄청난 고통이 휩싸고 도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가 이미 몸을 돌린 상태이기 때문에 백검운은 이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아니, 남궁소소는 여전히 백검운이 단지 서생인줄로만 알기 때문에 설령 그가 안다고 해도 결코 이 신비한 절색미녀의 상대가 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자신은 전혀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지 않은가?
남궁소소는 다급함과 무서운 고통 속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대답했다.
"내가 잘못했어요. 제발 용서해 줘요."
이것은 남궁소소의 도도한 일생에 그야말로 파격적인 것으로, 진실로 그녀는 막강한 임자를 만난 격이었다. 곽소봉은 여전히 손을 놓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그럼 너는 다시 도망을 치겠느냐?"
남궁소소는 황급히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대답했다.
"아니에요, 저는 도망치지 않겠어요."
순간, 남궁소소는 갑자기 전신의 고통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순간 이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바로 강호에서 유전되는 분근착골수나 그런 종류의 고문기술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주 신기하기 짝이없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절색의 자의미녀는 아마 극상승의 무예를 터득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런 여자는 자신의 가문에 결코 주눅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남궁소소는 다소 기가 죽어서 전신이 무겁게 늘어졌다. 아니, 뿐만 아니라 일시 너무도 극심한 고통을 당했기 때문에 그녀는 마치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기 짝이 없었다.
그녀를 향해 곽소봉은 손을 놓으며 말했다.
"나는 네가 약속을 지키기를 바란다. 너의 이름은 뭐지?"
지금에 이르러서야 남궁소소는 이미 이 자의미녀에게 대단한 공포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순순히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남궁소소예요."
곽소봉은 일순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
"네가 이 안에 들어온 이유는 ?"
남궁소소는 정말 그 이유를 말할 수가 없었다. 허나, 곽소봉의 냉전같은 싸늘한 안광을 보는 순간 그녀는 겁에 질려서 무의식중에 말을 토해내고 말았다.
"나는 그를 놀려주기 위해서였어요."
강호의 처자로서 남자를 놀려주기 위해 침상까지 스며드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보통의 마음이 아니라는 증거다. 곽소봉은 그 말을 듣자 일순 한숨을 내쉬며 백검운은 건네다 보았다.
이때, 백검운은 담담히 웃으며 그녀를 보고 있다가 말했다.
"그녀를 풀어주시오. 그녀는 내게 악의는 없소."
그 말에, 곽소봉은 다소 한숨을 내쉬며 옆으로 길을 비켜주었다. 허나, 백검운의 말을 들은 남궁소소는 이미 기가 되살아나 있었다. 그녀는 기왕에 나가려던 창문 쪽으로는 나가지 않고 몸을 돌려서 방문 쪽으로 걸어가며 백검운의 앞에 이르러 짧은 코웃음과 함께 싸늘하게 물었다.
"그녀는 대체 누구죠?"
그녀가 말하는 그녀란 바로 곽소봉을 말하는 것이었다. 백검운은 웃으며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녀는 바로 나의 내자이다."
순간, 마악 거침없이 밖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던 남궁소소는 일순 엄청난 뇌전에 강타당한 듯 일시 걸음을 멈추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급히 고개를 돌리며 소리쳐 물었다.
"하지만 당신은 아직 그런 여자가 없다고 했었잖아요?"
백검운은 웃으며 대꾸했다.
"하지만 어제는 없었더라도 오늘은 있을 수가 있는 법이다."
남궁소소는 순간 그 말뜻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비록 차분한 성격은 아니더라도 그 영악함은 가히 언니인 남궁혜보다 우위에 있었다.
백검운의 말은 이 내자가 바로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것은 더욱 더 자의미녀가 백검운의 내자라는 사실을 확신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남궁소소의 안색은 하얗게 질려갔다.
백검운에게 내자가 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도 극심한 충격을 주었다.
"당신은 그럼, 그럼........"
그녀는 다소 원망에 찬 음성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문득 말을 다 맺지 못하고 눈물을 뿌리면서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다가, 방문을 열고는 고개를 돌려 홱하니 곽소봉을 돌아보며 두 눈에 결의에 찬 차디찬 기색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이어, 그녀는 곧장 신법을 펼쳐서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리하여 곽소봉이 처음 이곳에 들어오면서 꿈꾸었던 행복의 빛깔은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만 셈이었다.
곽소봉은 내심 암암리에 한숨을 내쉬었으나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그녀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던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곽소봉은 다만 자신이 진실로 백검운의 사랑을 받기만을 바랬다. 그리하여 그녀는 다소 웃으며 백검운에게 다가와 그의 옷 벗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물었다.
"운랑, 목욕을 하시겠어요?"
아까 엉겁결에 꺼낸 호칭이었지만 이 운랑이라는 호칭은 아주 그녀의 마음에 들었다. 백검운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당신부터 하지 않겠소?"
곽소봉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예요, 저는......."
헌데 이때, 갑자기 열려진 방문으로 아향이 달려 들어왔다. 그것을 보고 곽소봉은 하던 말을 중단했다. 그녀의 기세가 숨찬 것이 다소 심각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웬일이지, 아향?"
곽소봉의 질문에 아향은 일순 당혹한 표정으로 안색이 빨개졌다. 그리고는 말했다.
"남궁소소가 달려 나가던데 이곳은 괜찮았나요?"
아마 그녀는 남궁소소가 갑자기 침실에서 달려 나가는 것을 보고 놀라서 달려온 것 같았다. 곽소봉은 그만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괜찮으니 그만 물러가도록 해."
"예,"
아향은 즉시 대답한 뒤 매우 송구한 표정으로 천천히 그 자리를 물러났다. 그것을 바라보며 곽소봉은 일순 거푸 한숨이 터져 나왔다. 백검운의 아내 노릇을 하는 것은 이다지도 어려운가 하는 생각이 절로 생겨났다. 그러나, 막상 고개를 돌려 백검운의 온화한 얼굴을 보자 이내 그녀의 수심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백검운이 그녀를 보고 말했다.
"그럼 내가 먼저할 테니 당신은 나중에 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우리 요 앞의 주루로 가서 함께 식사나 합시다."
곽소봉은 백검운이 자신의 기분전환을 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예,“
* * *
소요객점 맞은편 길건너에는 바로 거대한 주루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건물이 워낙 넓고 방대할 뿐만 아니라 전부 삼층으로 되어 있었다. 대문의 편액도 지극히 거대했고, 화려한 금글자로 풍운루라고 새겨져 있었다.
백검운은 목욕을 마친 후에 잠시 거닐다가 곽소봉, 삼살과 함께 그 주루에 올랐다. 아향과 곽소유는 이제부터 그녀들이 만드는 음식을 백검운에게 드리겠다고 하면서 따라오지 않았다.
아직 점심때가 되려면 다소의 여유가 있었으나 이 풍운루의 거대한 넓은 실내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일행은 아래층에서 빈자리를 찾을 수가 없어서 이층으로 올랐다. 이 이층은 비교적 고급이었고 따라서 음식 값도 좀 더 비싼 것 같았다. 이층에는 아직 그다지 사람이 많지 않아서 일행은 창가에 있는 전망이 좋은 탁자 두개를 차지할 수가 있었다. 탁자 하나는 하철수 등의 삼살이 차지했고, 다른 하나는 백검운과 곽소봉이 차지했다.
주루안의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남자 손님들로, 거의가 거칠은 사내들이었는데 처음에는 곽소봉의 미모를 보고 저마다 눈이 휘둥그레졌으나 곧 그녀의 무서운 눈길을 받고는 감히 더 이상 바라보려 하지 못했다.
이윽고, 점원 하나가 올라와서 주문을 받았다. 곽소봉은 비록 음식을 만들지는 못해도 입맛이 다소 까다로운 편이었다. 그녀는 백검운의 기호를 생각해서 몇 종류의 음식을 시키고는 이어 시선을 삼살에게 던졌다.
이때, 삼살은 자신들이 이런 주루에 나타난 것은 바로 고기가 물을 만난 형국이었으나 다만 곽소봉의 시선을 두려워해서 감히 전혀 시끄럽게 굴지 않고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주문을 할 시기가 되자 즉시 하철수가 소리쳤다.
"구운 돼지고기 한 마리하고 죽엽청 열 통만 갖다 주시오."
그들은 이미 밤새도록 먹었던 술이 다 깨어버린 것 같았다. 곽소봉은 그 말을 듣고 다소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비록 그렇게 먹으면 좋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은 다른 취미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지."
이어, 그녀는 손수 생각해서 몇 가지의 요리를 그쪽의 탁자에 시켜주었다. 이것은 그녀가 처음에 아주 사납던 태도와는 매우 달라진 것이었다. 그렇기는 하나, 그녀의 두 눈에 감도는 무서운 한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하철수 등은 여전히 두려워서 그녀의 눈길을 피했다.
과거 그들은 언제나 사건을 일으키는 주동이 되었다. 살인 방화, 강간도 서슴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제발 아무런 사건이 터지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순한 양처럼 되어버렸으니 정녕 과거의 그들을 본 사람이었다면 믿지 못할 일이라고 할 것이다.
헌데 이때, 점원이 주문을 받아서 물러간 뒤에 갑자기 한 가지 느닷없는 사건이 터져서 상황은 그들이 원하던 대로 되어가지 않았다.
사실, 일행은 두개의 전망 좋은 자리를 차지했지만, 연인들의 본능이라고나 할까, 곽소봉과 백검운은 다소 전망에 방해가 되더라도 조금 구석지고 은밀한 자리를 차지했는가 하면 하철수 등은 바로 아주 전망이 좋은 커다란 창가의 바로 앞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점이 문제가 되었다.
백검운과 곽소봉은 마치 신선처럼 아름답게 차려입어서 그런 자리에 아주 어울렸지만, 이 하철수 등은 마치 세 마리의 못생긴 돼지가 안방을 침입한 형국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비록 그들의 입에서 거친 말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 주루의 대부분의 손님들은 그들을 다소 꺼려하면서 질시하고 있었다. 단지 그들의 양쪽 태양혈이 불룩하고 두 눈에서 무서운 정광이 도는 것으로 보아 무림고수일 것 같아서 억지로 참는 것이다.
아니, 제발 그들 삼인이 빨리 음식을 먹어치우고 사라지기를 빌고 있었다. 그런데, 세상에 그들이 흉악하게 생겼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들에게 다가와서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평소에 중주삼살은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에게도 일부러 시비를 만들어서 사건을 일으키곤 하던 사람들로 아주 유명한 악질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아주 얌전하게 앉아있는데 누군가가 어이없게도 그들에게 시비를 걸어온다면, 이는 그들의 성격으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것이다.
- 삼인,
갑자기 주루의 이층에 올라와서 삼살에게 다가선 사람은 역시 세 명의 인물이었다. 다만 그들은 마치 촌사람 같은 복장을 하고 두 팔에는 각각 주먹에 이르기까지 하얀 천으로 칭칭 동여매었는데 모두 중년인이었다.
그런 복장의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저 흔하다고 할 수도 있는지라 삼살은 결코 그들이 자신들에게 다가와서 시비를 걸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믿기지 않는 현실은 벌어졌다. 세 명의 중년 농부들이 다가와서 그중 앞장을 선 농부 하나가 삼살에게 다소 싸늘한 음성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이봐, 너희들은 빨리 자리를 옆으로 옮기도록 해라."
".........?"
삼살은 일시 너무도 어이없는 꼴을 당했는지라 망연하져서 두 눈만을 휘둥그레 떴다. 그들은 과거 자신들이 했던 짓거리를 직접 이렇게 자신들의 앞에 와서 재현하는 자들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었다.
그러니 일시 멍해질 수밖에,
그들은 다만 자신의 귀가 잘못되었나 의심을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세 명의 농부를 쳐다보았다. 이 세 명의 농부는 아무리 봐도 용모가 별로 특이하지 않으며 눈빛도 그저 평범한 것 같았다. 이때, 삼살이 멀뚱하게 그들을 바라보기만 하자 다시 다른 농부가 앞으로 나서며 차갑게 소리쳤다.
"뭘 하느냐? 어서 빨리 자리를 비키라는데?"
".........."
삼살은 그제야 이것이 현실이요, 엄연한 사실임을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기가 막혀진 나머지 하철수가 먼저 벌떡 신형을 일으켰다.
하철수는 원래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두려워하는 사람이란 요 근래에 와서 생겨난 몇몇 사람들뿐이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두려워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차림의 인물들이 들어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정말로 화가 나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철수는 일시 자신들이 활약을 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세상이 자신들을
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일었다.
"너는 방금 뭐라고 씨부렸느냐?"
하철수는 일순 크게 분격한 나머지 벽력같이 소리쳤다. 웬만한 사람이면 이 정도에서 다소 눈빛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 명의 농부는 그야말로 하나같이 호랑이의 간이라도 삶아먹은 것인지 하철수의 그 벽력같은 고함에도 눈썹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다만, 그중 하나가 이렇게 되물었을 뿐이었다.
"너는 죽고 싶으냐?"
하철수는 일시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음성에는 강한 자신감이 들어있었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형언하기 어려운 강한 살기마저 포함되어 있었다.
하철수의 육감으로 볼 때 이런 종류의 사람은 단연코 무림인이지 절대로 녹녹한 시정의 잡배가 아니었다. 헌데, 이 세 사람은 눈빛이 그저 평범해 보이니, 이는 오히려 내력이 극치에 이르렀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들은 강호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절정의 고수들이 분명했다.
대체 이런 고수들이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났을까? 그리하여 대체 무엇 때문에 다짜고짜 그들에게 다가와서 시비를 거는 것일까?
'우라질!'
하철수는 내심 분격해서 욕을 퍼부었다. 그리고, 내심 이들이 비록 절정의 고수들이라고 할지라도 지금 옆에서 주인인 백검운 등이 보고 있는데 창피하게 그냥 당하고 물러설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빗자루 눈썹을 곤두세우며 말했다.
"너희들은 우리가 누구인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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