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이 바나바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나바 초대교회의 매우 중요한 인물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중요성만큼 알려지지는 않았어요. 참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지도자였지만 사도행전의 기록도 29번 정도만 기록이 되고 또 바나바의 글이 성경에 기록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의 스킵하듯이 이 인물에 대해서 지나가지만 그러나 바나바는 초대교회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주인공 중에 하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바나바처럼 믿고 바나바처럼 살기를 결단하면 좋겠습니다. 바나바와 같은 인물이 많은 교회는 넉넉하고 또 평화롭고 은혜로운 교회가 됩니다. 복된 교회가 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바나바처럼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바나바는 어떤 사람인가? 첫째는 헬라파 유대인이었다 하는 겁니다. 36절에 구부르에서 난 레위 사람이 있으니 레윗 사람 레위 지파 출신, 그러니까 하나님의 전에서 가까이 섬기는 그렇게 부름을 받은 성직자 가정인 거예요. 그런 족속 출신 정통 유대인이면서 구부르에서 났다.
이 구부르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 사이프러스 섬을 얘기합니다. 이스라엘 서쪽의 지중해에 비교적 큰 섬이 하나가 있는데 그것이 오늘 우리의 표현으로 사이프러스 섬입니다. 이 사람은 거기 출신이에요. 자기 조카 마가 요한도 여기 출신입니다. 이 사람은 헬라파 유대인이었어요. 외국에서 태어나서 외국에서 자란 헬라파 유대인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다 히브리파 사람들이었어요. 예수님의 12 제자가 히브리파 그러니까 정통 해외에는 나가 살지 않았던 국내하라 이런 말씀이,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주로 예루살렘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12사도와 더불어 예수님이 마지막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 유월절 지키러 올라 오실 때 70인의 제자를 파송을 합니다. 유대 지역에 그 사람들이 대부분 갈릴리 출신의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어요. 그 사람들이 이제 초대교회를 구성하는 멤버가 됩니다.
그런데 이 히브리파 중심의 예루살렘 교회에 갑자기 헬라파 디아스포라 출신 바나바라고 하는 사람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중요한 거예요. 바나바의 등장은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의 영역을 넘어서 사마리아와 이방 땅 끝까지 전파되는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예루살렘 중심으로 교회가 성장했지만 이제부터는 이 복음이 국경을 넘는다 이거예요. 민족을 넘을 그 사실에 대해서 예견하는 사건이기 때문에 이 바나바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 지상에 있는 교회의 이상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마음 한 뜻이 됐습니다. 아름다운 교제가 있었습니다. 자발적 나눔과 섬김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그곳은 그 자체로 천국이었어요. 비록 환경 주위에서는 박해가 있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그들은 천국을 누릴 수 있었어요. 너무 좋은 거예요. 너무 아름다운 공동체였습니다.
그런데 그들만의 천국이었어요. 우리들의 천국이지 함께하는 천국은 아니라 이거죠. 하나님은 그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누리는 이 구원의 기쁨, 이 생명의 능력을 이웃에게도 전하기를 원하신 거예요. 유대 민족만이 아니라 유대의 국경을 넘어서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그들이 사람이 아니라고 멸시하는 이방인들에게까지 이 구원의 복음이 전해지기를 원하셨던 겁니다.
그러나 유대 히브리파 유대인들, 외국 생활을 안 해보고 그 안에서 철저하게 유대주의자로 태어나서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어려운 일이라 이거예요.
우리도 요즘은 대부분이 여권이 있고 해외를 수시로 나오지만 우리 어렸을 때 그러니까 88올림픽 이전만 해도 우리나라 여권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여행 자율화가 그 이후에 생긴 거예요. 그전에는 외국인들은 상상 속에 있었어요. 저도 처음에 프랑스에 왔는데 여기 외국인들을 보는데 감이 안 오는 거예요. 감히 인사도 하고 이렇게 사람인데 한국 사람만 보고 살다 보니까 이 느낌이 안 오는 거예요.
느낌이 아주 옛날에는 우리가 북한 사람들을 생각할 때 북한 사람들은 다 뿔달린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북한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빨리 잡아서 가두고 때려잡자 이렇게만 생각을 했어요. 근데 나중에 만나보니까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더라. 이런 경험이 참 중요합니다.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방인들을 어려서부터 생각하기를 지옥의 불쏘시개 정도로 상종해서는 안 될 사람으로 이방인들하고 앉아서 식사도 하면 안 돼요. 그런 정도로 생각하는 유대 히브리파. 이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았다고 해서 그 복음을 들고 이방인에게 나가는 것은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헬라파 유대인 바나바를 사용하시는 겁니다.
이 사람은 외국에서 살아서 이방인들 세계를 압니다. 같이 경험했습니다. 그 선을 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바나바를 예루살렘 교회에 등장시킴으로 이제 드디어 복음이 저 이방 세계로 전달돼야 하는 것임을 암시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디아스포라 헬라파 유대인 바나바를 사용하셨습니다. 디아스포라 헬라파로 살아간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이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로 간 다음에 그때부터 공식적으로 생긴 말입니다. 70년 후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일부가 돌아오고 대다수는 현장에 남았어요. 그래서 바벨론 지역 그리고 팔레스테인 인근 지역에 흩어져서 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살게 됐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언어와 문화를 익히고 또 회당을 짓고 공동체를 형성했어요. 그들은 아마 많은 생각을 했을 거예요.
여러분 포로로 끌려가서 외국 생활한다는 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지금은 우리가 여행차 해외도 나오고 일부러 해외 생활을 하기 위해서 이민 나오는 분들도 있지만 이 사람들은 다 강제로 고국을 떠나서 맨발로 얻어맞으면서 차고에 차여서 끌려갔던 사람들이에요. 많은 생각을 했을 거예요. 왜 우리가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가? 도대체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해외 생활 이중 문화에 적응하며 사는 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또 오늘날 디아스포라 코리안들, 우리는 정말 산전수전을 다 겪는 사람들입니다. 국내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그래도 해외에서 사는 것이 진짜 어려운 거예요.
특별히 이 시대는 더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었어요. 하나님의 뜻이 공연이 흩어놓은 거 아니에요 당장은 끌려가서 정착하는 생활이 힘들지만 70년 100년, 500년 역사를 놓고 보면 하나님의 계획이 거기 있었어요. 하나님의 계획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이루셨을 때 그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도록 하는 그 전초 기지로서 유대인들,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를 사용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 디아스포라 유대인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해 그게 접촉점이에요.
이게 디아스프레아의 의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어요. 그리고 베드로는 신령한 경험을 했어요. 예수님과 그리고 모세와 엘리아가 산에서 변화산에서 만나시는 영광스러운 장면 그 천국의 신비한 장면을 눈 뜨고 봤어요. 너무 신비해서 이 사람이 주님 여기가 좋으니까 초막 셋을 짓고 자기들 건 생각도 안 해요. 여기서 그냥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할 정도로 나중에 베드로서의 그때 일을 기록도 합니다. 신령한 경험을 했어요. 베드로는 천국 열쇠를 받았어요. 그래서 서양 교회를 다니면서 동상이나 그림의 열쇠를 받은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쥐고 있는 사람, 또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은 말씀의 검 바울입니다.
바울은 주로 말씀을 전했다면 이 사람은 교회가 시작되는 곳마다 중요한 순간에 가서 열쇠를 여는 거예요. 그만큼 중요한 수제자였는데 그러나 베드로는 한계가 있었어요. 베드로의 사역이 물론 유대를 떠나서 아나톨리아 반도 나중에는 로마에 가서 순교를 했지만 그것이 주 사역 영역이 될 수 없었어 왜 히브리적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은 주로 이 유대 안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도 그랬고 예수님의 동생 유다도 그래서 그분들이 쓴 베드로서 그리고 야고보서 유다서 이 글들을 보면 히브리적 그 색깔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바울하고 달라요. 똑같이 복음을 받았어도 디아스포라가 아니었던 사람들은 이 유대적 한계를 넘어서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복음이 세계화되는 일에 헬라파 유대인 다시 말하면 디아스포라 출신들을 사용하십니다. 예루살렘교회 일곱 집사가 디아스포라 출신들이에요. 그 이름을 보면 다 외국인 이름이 필립 이런 거 다 외국인 이름이 그래서 빌립이라고 하는 집사가 또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거예요.
사도들은 감히 하지 못하는 일을 이 헬라파 유대인들이 하게 됩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그곳에서 자라면서 언어와 문화를 익혔어요. 우리가 이렇게 해외 생활하는 거 하나님의 큰 뜻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국내에서만 살았던 사람하고 해외에서 디아스포라로 살았던 사람은 달라요. 외국인을 대하는 거 외국 문화를 대하는 것도 다르고 생각 구조도 달라지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선교를 위해서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쓰임새가 많은 사람 국내파보다 해외파가 쓰임새가 더 많다. 혹시 국내파가 들으시면 기분이 나쁘시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얘기예요.
이 경험이 굉장히 여러분 중요합니다. 해외 생활 쉽지 않죠 산전수전이라는 것은 해외 생활을 해본 사람만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진짜 여행으로 잠깐 왔다 가는 거하고는 달라요. 여기 와서 유학하고 사업하고 아예 여기 정착해서 산다는 것은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행하고는 전혀 다른 거예요.
더군다나 요즘은 우리나라가 얼마나 잘 사는지 몰라요.
한국을 갔다 올 때마다 너무너무 달라지는 거예요.
이렇게 편리할 수가 없어요. 여기는 뭐 이사 한 번을 하면 모두 내가 해야 되고
참석자 1 14:35
가구 하나를 사도 다 사다가 또 조립해야 되고 약간의 기술은 늘지만 별로 도움이 안 돼.
그때 한국은 그냥 주문하면 착 와가지고 탁 완제품이 되는 거예요.
이사도 원래 있었던 데다 다 갖다 꽂아놓는 그런 나라.
우리는 이 인터넷도 한 번 신청을 했다가 이게 한 번 꼬여버리면요.
짧게 1년 왔다 가는 분은 떠날 때쯤 완성됩니다. 정말 칭합니다.
칭해 그게 이제 외국 생활에서 겪는 문화 충격이기도 해요.
외국분들은 또 한국에 가면 너무 빨라가지고 정신이 없을 거예요.
어쨌든 특별히 유럽에서의 삶은 더 어렵습니다. 미국은 그래도 돈이라도 많이 번다는 100만 장자의 꿈이 있지만 여기는 많이 벌면 세금으로 다 걷어가버려요.
여기서 100만 장자가 됐다는 사람을 거의 못 봤어요.
그저 겨우 먹고 살아야 되는 그런 삶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뜻이 있다 이거야.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 유럽의 생활을 다시 바라보면 의미가 있어요.
참석자 1 15:52
하나님은 우리의 이 해외 생활을 통해서 유학, 주재원 사업, 직장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계획이 있다.
그것을 묵상하고 그것을 묻고 그것을 깨달은 사람은 매일매일이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사용하시기 위해서 이곳으로 보내셔서 경험하게 하시고 훈련시켜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또 여기 있다가 한국 들어가도 괜찮아요.
여기 있다 들어간 사람은 이미 여기 있었다는 이유로 불허권을 생각하고 유럽을 생각해요.
여기를 위해서 한마디라도 기도할 수 있어요. 아멘 저와 여러분들이 여기 오신 것은 분명히 뜻이 있어요.
우즈베키스탄의 윤철운 선교사님이라는 분이 계세요.
이분은 저희 선교사 훈련 동기신데 이분은 본래 군 대령으로 예편을 한 다음에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서 장신대를 하셨어요.
신대원을 졸업하시고 저한테는 후배지만 한천 형님이죠.
훈련을 같이 받았어요. 그 자녀들이 아버지하고 같이 신대원을 다녔어요.
참석자 1 17:10
근데 이분이 선교사 우즈베키스탄 선교사로 나가셨는데 나가시기 전에 먼저 정탐을 위해서 중앙아시아를 쫙 돌면서 글을 썼는데 그 글이 뭐냐 하면 누가 고려인을 이곳에라는 글입니다.
이분이 들어가서 얼마 안 되셔서 그 어려운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으셨는지 암에 걸려서 소천하셨어요.
그리고 사모님이 이제 그 일을 감당하고 계시는데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경륜이 거기 있어 하나님의 경륜을 봤어요.
우리가 이 조선이 망하면서 또 너무 가난해서 먹고 살 게 없어서 조선인들이 저 북쪽 만주 연해주로 올라갔어요.
그 땅을 가꿨습니다. 그 만주 연해주는 그게 우리 땅이에요.
우리 땅 우리가 읽은 땅입니다. 그런데 정말이라니까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이 농사를 짓는데 이 논 농사는요.
굉장히 부지런한 사람들이 지어야 돼요. 새벽부터 일해야 되는 거예요.
근데 한국 사람들이 가면 어디든지 이 농사를 읽어내는 거예요.
그래서 연회주를 다 읽었어요. 그런데 스탈린이
참석자 1 18:30
이주 정책을 쓰는 겁니다. 여기 사람들이 여기 이렇게 모여 있으면 자기 정권에 통치하기가 어려우니까 여기저기 흩는데 유대인들은 동쪽으로 보내고 또 거기에 있던 우리 조선인들을 열차에 태워서 중앙아시아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1937년에 17만 2천 명을 그냥 무작정 태워가지고 보낸 거예요.
가는 중에 얼어죽고 굶어죽고 병들어 죽고 일부가 거기에 도착한 겁니다.
도착을 했는데 제가 그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너무 그냥 허벌판인 거예요.
먹을 것도 없고 집도 없고 그냥 그 추운데 거기다 떨어뜨려 놨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맨 땅에 떨어져서 우리 말에 맨 땅에 헤딩이라고 하잖아요.
거기를 읽어냅니다. 근데 지금은 그 사람들이 그 지역에 지식인이 되고 상류층이 됐어요.
잘 사는 사람들이 됐어요. 그 사람들을 이름하여 고려인이라고 해요.
그들이 연해주로 갈 때 또 스탈린에 의해서 중앙아시아로 갈 때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는가 고민했을 거예요.
원망했을 거예요. 그 뜻을
참석자 1 19:46
때로 몰랐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다는 거예요.
이 선교사님이 들어가서 보니까 이제 구소련이 열리면서 이제 선교사들이 대거 들어갑니다.
들어가서 보니까 원래 선교사들이 들어가면 이 러시아어를 배워야 되는데 러시아어는 아마 프랑스어보다 더 어려울 거예요.
또 몽골어도 배워야 되고 가서 보니까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야.
고려인들이 그 사람들은 고국의 언어 그리고 고구려의 문화를 지키면서 자손들에게 그것을 흘려보냈어.
그래서 언어를 배울 필요도 없이 즉시 그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분들이 사역자가 돼서 중앙아시아를 복음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복음이 전파되고 그 지역의 교회가 세워지고 신학교가 세워지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됐어.
우리가 짧은 시각으로 보면 우리 민족의 그 한스러운 역사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그러나
참석자 1 20:56
하나님의 차원에서 보면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한국에 살든 해외에 살든 특별히 해외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것을 묻고 그것을 깨닫고 가는 사람하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는 사람하고 인생의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고 하는 겁니다.
기아스프라 위그노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지금 그 책을 쓰고 있는데 우리가 위고노다 여기서 박해를 비례해서 해외로 흩어졌던 그들 그 당시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 그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겠어요?
그러나 역사를 한 페이지만 넘기고 보면 그들을 통해서 세계 역사의 축을 바꾸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런 깨달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 바나바는 또 어떤 사람이냐? 디아스포라 헬라파 유대인일 뿐만 아니라 성품이 좋은 사람이었어.
36 37절에 구부르에서 난 레윈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람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참석자 1 22:08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니 그가 밭이 있음에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바나바. 원래 이름은 요셉입니다. 근데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서 바나바라 했다.
그 뜻은 위로의 아들이다. 위로하고 권면하고 마음 따뜻한 긍휼이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는 넓은 마음이 있는 성품 좋은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그런 성품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성품 좋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에요. 세상에는 성품이 뭐 같은 사람도 있는 거예요.
아주 이 사람은 타고나기를 성품이 좋은 사람으로 타고났어요.
그냥 지도자감이에요. 이 리더십 가운데는 품성론이라는 게 있어요.
지도자는 태어날 때부터 지도자의 성품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늘이 냈다. 이런 말씀이 지도자로서의 좋은 성품, 사람들을 흡수해내고 위로하고 끌고 가는 그 성품.
물론 그 후에는 그런 이론이 바뀌기도 합니다. 개발도 되고 여러 가지 새로운 이론들이 나오지만 아주 전통적으로는 품성론이 제일 중요합니다.
참석자 1 23:38
지도자의 지도자로서의 좋은 성품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대개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성품이 비교적 좋으시다면 부모님께 감사하기 바랍니다.
감사하셔야 돼요. 나 성품이 비교적 괜찮다. 근데 내 성품은 내가 봐도 좀 이상해. 그러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내 주위에 사람이 없어요. 바나바 같은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사람이 좌석처럼 붙습니다.
근데 성품이 나쁘면 나는 혼자 독불장군 할 것 같지만 사람이 떨어져 나가요. 주위에 사람이 없으면 리더십이 끝나는 겁니다. 장군도 혼자 나가서 잘 칼 들고 잘 싸우면 그 장군의 부하가 많아야 돼요. 몇 명을 이끄느냐가 중요한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성품이 필요한데 이 바나바는 그런 사람이었어. 위로와 권면을 잘 아는 사람 어떤 사람은 위로와 권면을 잘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만나면 아픔과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일이 내게서 반복적으로 일어날 때는 빨리 자기를 돌아봐야 돼요.
왜 그럴까? 왜 사람들은 나를 피할까? 그러면서 자기를 갖고 나가야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품에 이를 수가 있는 겁니다. 바나바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이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히브리파 중심이기 때문에 아무리 그리스도인이라도 배타적입니다. 누구에 대해서 이방인 또는 해외파에 대해서 여러분도 아마 여기서 공부 끝나고 한국에 들어가면 뭐 어디 취직하면 그런 걸 많이 느낄 거예요.
뭐 유학하고 왔다고 옛날에는 이렇게 우러러보지만 유학한 사람을 왕따시킬 수도 있어요.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사회에 삐집고 들어가기가 예루살렘 교회도 그렇다고 봐야 돼요. 완전히 히브리파로 돼 있는데 거기에 헬라파가 들어가기가 쉽지를 않아요.
그런데 바나바는 들어갈 수 있었어요. 바나바는 거침이 없어요. 사람들하고 만나서 갈등이 별로 없는 거예요. 그래서 바나바가 들어가고 바나바가 들어간 다음에 이 바나바를 통해서 바울이 들어가게 되는 거. 바울은 다이렉트로 못 들어갑니다. 바나바가 그 좋은 성품으로 중간 역할을 해준 거예요.
이 무난한 리더십 이게 참 중요합니다. 좋은 교회는 바나바처럼 무난한 사람들이 많으면 좋아요. 바울 같은 사람이 많으면 별로예요. 사실은 바울 같은 사람은 빨리 해외로 선교사로 보내야 됩니다. 좋은 교회에는 바나바 같이 무난한 분들이 모여서 서로 하나가 되고 힘을 합칠 때 좋은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이런 마음이었기 때문에 자기의 것을 팔아서 전부 팔아서 사도들을 발 앞에 놓습니다. 쇼한 게 아니에요. 이 사람은 진정으로 그렇게 긍휼의 마음으로 하나님이 그것을 보신 것입니다.
또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교회가 생겼을 때 이 안디옥 교회는 최초의 이방인 교회입니다. 누구를 보낼까? 바나바를 보냅니다. 바나바는 거기 가서도 이방 출신으로서 목회를 또 잘 감당하게 되는 것을 보게 돼요. 이 바나바는 이 성품 하나로 놀랍게 쓰임을 받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들어갔죠. 바울을 또 연결시키죠. 그리고 해외 최초의 안디옥교회 이방인 교회를 목회하게 되는 거예요.
또 이 바나바는 리더십이 네트워킹 리더십이에요. 27절에 보면
바나가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미엘에게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사울 사울은 예루살렘 교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어요. 스데반을 죽일 때 자기가 직접 돌로 치지는 않았지만 돌로 치는 사람의 옷을 보관했어요. 이 얘기는 주모자라는 거예요. 뒤에서 딱 뒤침찌고 스데반을 죽이는 모든 일을 계획한 거예요. 그 일 후에 예루살렘 교회에 대박해가 일어나서 사도들을 제외한 전부가 이제 떠나게 됩니다. 그 일을 주모한 사람도 사울입니다. 사울은 거기에 더해서 교인들 교회를 잔멸 완전히 초토화시키기 위해서 계획을 하고 다미섹으로 갑니다.
그러니까 이 예루살렘 교회뿐만 아니라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사울 그러면 아주 공포의 대상입니다. 만나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근데 그 사람이 어느 날 다메섹에 갔다가 가다가 죽이러 가다 그리스도인을 잡아서 죽이러 가다가 변화됐다고 하는데 그것을 믿을 수 있느냐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변화된 것 같은데 그래도 께름직한 거예요. 그래서 바울을 다 기피합니다.
여러분 같으면 그러지 않겠어요 어저께까지 우리를 죽이려고 쫓아다니던 사람이 나치 같은 사람이 말이예요. 어느 날 갑자기 변화됐다고 지금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그게 믿어지냐고 그래서 다 기피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바울은 탁월한 전도 능력이 있지만 소외되고 그리고 변당해서 그냥 사역하다가 끝날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어요.
그런데 바나바가 그를 중앙에 진출시킵니다. 바나바가 그 연결고리 역할을 해요. 사도들에게 소개를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을 변호해 준 거예요.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와 바울이 만나게 됩니다. 그 후에 바울은 세계 선교를 감당하고 신약 성경 27권 중에 13권을 쓰고 그가 쓴 그 신약 성경에서 대부분의 기독교 교리가 나옵니다. 놀라운 사역을 하게 되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바나바는 자기가 안디옥에서 사역을 하면서 이 바나바가 가서 사역을 하니까 이 좋은 성품을 가지고 와서 하니까 부응을 했어요.
근데 어느 순간이 되니까 자기 한계가 온 거예요. 뭔가 돌파를 해야 되는데 이 목회가 거기서 멈춰 있는 거에요. 그래서 고향에 가 있는 바울을 또 초청해서 같이 목회를 합니다.
여러분 이거 쉬운 일 아니에요. 우리는 동종 업종에서 경쟁을 합니다. 목사들도 마찬가지 남의 교회가 부응했다 하면 축하할 일이면서도 나도 저렇게 됐으면 하면서 그럴 수 있는 거예요.
음악가들은 또 음악가들끼리 경쟁합니다. 이 동종 그래서 같은 분야에서 누군가를 이렇게 띄워주는 건 쉽지 않아요. 바나바는 그럴 수 있었어요. 자기가 목회 잘하는데 자기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을 불러와서 이 교회를 성장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바나바가 바울을 불러서 함께 목회를 하면서 이 안디옥 교회가 얼마나 뜨거워졌는지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받습니다. 예수의 미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 그때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나와요.
바나바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사도행전 11장 25절에서 26절에 그 말씀이 나옵니다.
바울과 안디옥교회를 연결시킨 사람. 그래서 안디오기가 크게 성장하고 세계 선교를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복음이 아시아와 유럽으로 전해졌어요. 이게 네트워킹 리더십입니다. 혼자 잘할 수 있어요. 그러나 혼자는 한계가 있어요. 더 위대한 사람은 혼자 자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자라는 거예요. 함께 자기가 빠지고 다른 사람들이 잘할 수 있도록 연결시켜주는 거예요. 그것이 더 위대한 리더십입니다.
오늘날은 그런 리더십이 필요해요. 혼자 잘하는 것보다 시너지 효과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바나바는 사실 이후에 그의 이름이 거의 나오지 않아요. 몇 번 나올 뿐입니다. 역사의 후면으로 물러갔어요. 바나바 별거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1차 선교여행 끝나고 나서 바울하고 다툰 다음에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어요. 그 후로는 바나바의 존재가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바나바가 없어진 건 아닙니다. 바나바는 뒤로 물러났지만 그가 연결했던 사도 바울이 세계의 역사를 변화시키는 사명을 감당합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복음이 편만하게 되는 일에 이 바울이 역할을 감당한 거 사실은 바나바가 감당한 거예요. 바울을 등장시킨 인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울은 기독교의 기초를 놓았고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썼고 신약의 모세와 같은 역할을 했어요. 바울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신앙 이 기독교가 존재할 수 없어요.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기독교 신앙의 기초가 놓여졌지만 그것을 오늘날 이런 교리와 이런 교회론으로 만든 것은 사도바울입니다.
그 바울을 역사 전면에 등장시킨 사람은 바나바예요. 그런 의미에서 바나바는 위대합니다. 여러분 이 시대에 많은 바나바가 필요합니다. 바울 같은 사람도 필요하지만 바나바 같은 사람이 많이 필요해요.
그리고 우리도 바나바가 될 수 있어요. 좋은 성품 가지고 우리는 특별히 디아스포라 이미 두 가지는 갖췄어요. 그리고 이제 나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이 다 잘 되도록 이렇게 연결시켜주고 자기를 감추는 삶을 살면 우리도 바나바가 되는 것입니다. 바나바처럼 믿고 바나바처럼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