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제족의 선택 (4)
- 노. 정 연합군이 수양 땅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노. 정 연합군의 침공 소식은 즉각 송장공(宋莊公)의 귀에 전해졌다.
그는 이미 노환공과의 회담에 나가지 않으리라 결심할 때부터 그들의 침공을 예상했었다. 모든 준비를 갖추어놓고 그들이 쳐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냉소가 입가에 스쳐갔다.
송장공은 맹장 남궁장만과 맹획(猛獲)을 불러 명했다.
"그대들은 병차 3백 승을 이끌고 나가 노. 정나라 군대를 무찌르라!"
"주공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남궁장만은 주장(主將)이 되고 맹획은 부장(副將)이 되어 각기 병차를 거느리고 성문을 나갔다.
수양 들판에 이르러 남궁장만은 노. 정 연합군과 마주 보고 진채를 내렸다.
높은 구릉에 올라 내려다보니 두 개의 화려한 덮개수레가 눈에 띄었다.
그는 그 덮개수레 안에 노환공과 정여공이 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맹획(猛獲)을 불러 어깨를 두드리며 사기를 북돋았다.
"오늘 대공을 세우지 않으면 언제 다시 기회가 오겠는가. 저기 보이는 덮개 수레 안에 노. 정 두 군후가 타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솜씨를 발휘해 천하에 용맹을 떨쳐보이도록 하라."
남궁장만의 부추김에 맹획은 자신이 즐겨 사용하는 혼철점강모(渾鐵點鋼矛)를 꼬나들고 맹렬한 기세로 병차를 몰았다.
노환공과 정여공은 달려오는 적장의 형세가 예사롭지 않음을 보고 얼른 소리쳤다.
"공자 익(溺)은 어디 있느냐?"
"원번(原繁)은 어서 나가 적장을 막아라!"
두 장수가 앞으로 달려나갔다.
노나라 장수 공자 익(溺)과 정나라 장수 원번(原繁)이었다.
그들은 각기 병차를 몰아 사나운 기세로 달려오는 맹획(猛獲)의 앞을 가로막았다.
세 장수는 한데 어우러져 싸우기 시작했다.
말과 말이 엇갈리고 병차와 병차가 스쳐 지나갔다. 그때마다 창과 칼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맹획(猛獲)은 남궁장만이 선봉으로 내세울 만했다. 체력과 무용이 빼어났다.
공자 익(溺)과 원번(原繁)을 상대로 싸우면서도 두려워하거나 밀리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팽팽한 접전이 벌어졌다.
이를 보고 있던 노환공이 옆을 돌아보며 명했다.
"진자(秦子)와 양자(梁子)는 뭘 하고 있느냐?"
진자와 양자는 모두 노나라 장수였다.
그들은 명이 떨어지자 지체없이 맹획(猛獲)을 향해 덮쳐갔다.
정여공도 자기 진영의 장수들에게 외쳤다.
"맹획(猛獲)을 사로잡을 용사가 없는가?"
정나라 장수 만백(曼伯) 또한 맹획에게 달려들었다.
맹획이 아무리 절륜한 무용(武勇)을 지녔다 하더라도 다섯 장수와 싸우기에는 힘이 벅찼다. 눈에 띄게 강모(鋼矛)의 움직임이 어지러워졌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노나라 장수 양자(梁子)가 창을 거두어들이고 활을 꺼냈다. 그가 쏜 화살은 정확히 맹획의 오른팔에 가서 꽂혔다.
맹획(猛獲)의 손에서 강모가 떨어지고, 나머지 네 장수는 일제히 달려들어 돼지 잡듯 맹획을 포획하였다.
"와아 - !"
맹획(猛獲)이 사로잡히는 바람에 송군은 지리멸렬 흩어졌고, 노. 정나라 연합군은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올랐다.
남궁장만은 선봉부대가 패한 것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맹획을 찾아오지 않으면 내 무슨 면목으로 성으로 돌아가겠는가?"
자신의 큰 아들 남궁우(南宮牛)를 불렀다.
"너는 나가 싸우되, 패한 척하고 적군을 서편 골짜기로 유인하라. 그 뒷일은 내가 처리하겠다."
남궁우(南宮牛)는 젊고 패기가 넘쳐 흘렀다.
병차 30승을 이끌고 정나라 진채 앞으로 가 욕설을 퍼부었다.
"정나라 자돌아! 너는 의리를 저버린 놈이다. 하늘이 부끄럽지도 않느냐! 속히 나와 우리 주공 앞에서 자결하여라."
이에 정나라 편장(偏將) 하나가 1백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진채 밖으로 달려나왔다. 편장은 오늘날의 중대장에 해당한다.
정나라 편장은 남궁우(南宮牛)가 어린 것을 보고 얕보았다.
대뜸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남궁우(南宮牛)는 아버지 남궁장만이 지시한 대로 싸우는 척하다가 슬며시 병차를 돌려 서쪽 골짜기를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정나라 편장은 기세좋게 그 뒤를 쫓았다.
골짜기 입구로 들어섰을 때였다.
문득 포소리가 크게 일더니 양편에서 송(宋)나라 군사들이 벌 떼같이 쏟아져나왔다. 편장은 그제야 남궁우의 계책에 빠진 것을 알고 병차를 돌렸다. 그러나 때가 너무 늦었다.
한 장수가 태산 같은 기세로 그를 향해 덮쳐들었다. 송나라 총지휘관인 남궁장만이었다.
남궁장만은 몸을 날려 이쪽 편 수레위로 올라타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 편장을 꽁꽁 묶어버렸다. 뒤늦게 원번(原繁)이 편장을 구하기 위해 쫓아왔으나, 남궁장만은 이미 정병 1백여 명을 모조리 사로잡아 진채로 돌아가버린 뒤였다.
그 날 저녁, 남궁장만은 사자를 보내 사로잡은 장수를 서로 교환하자고 교섭했다. 정여공도 그에 응했다.
맹획과 편장은 각기 자기 본영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부터 싸움은 소강 상태에 빠졌다.
남궁장만은 노. 정 연합군의 막강 병력에 사기가 꺾였고, 노. 정 연합군은 남궁장만의 사나운 기세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양자(梁子)가 군막 안으로 들어와 노환공에게 말했다.
"기(紀)나라 사자가 방금 이 곳에 당도했습니다. 급한 일이라면서 주공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기(紀)나라라면 제나라와 인접해 있는 나라이다. 하왕조 때 분봉된 유서깊은 제후국이다. 주왕조에 들어서서 제와 노나라 틈에 끼는 바람에 약소국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노나라와는 대대로 혼인을 맺으며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이를테면 노나라의 위성국인 셈이다. 후작의 나라로 지금의 산동성 수광현(壽光縣) 남쪽에 옛 성이 남아 있다.
"기(紀)나라 사자가 이 곳까지 웬일일까?"
노환공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紀)나라 사자를 들어오게 하였다.
싸움터에 나와 있는 자신에게 사자를 보냈다는 것은 대단히 급박한 일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기(紀)나라 사자는 온 몸이 땀에 젖은 채 들어와 노환공에게 기후(紀侯)의 서신을 바쳤다.
지금 제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범하여 망하느냐 사느냐가 조석(朝夕)간에 놓여 있습니다. 노나라는 우리 기(紀)나라와 대대로 혼인한 사이입니다. 노환공께서는 지난날의 우호를 잊지 마시고 물불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우리 기(紀)나라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노환공은 기후의 서신을 보고 놀랐다.
기(紀)나라는 비록 소국이지만 노나라와는 이와 입술과도 같은 사이였다.
기나라가 멸망하면 노나라는 입술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게 된다. 그래서는 노나라가 여간 피곤하지 않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군대를 돌려 기(紀)나라를 구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노환공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정여공 때문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상대가 제(齊)나라일 게 무엇인가?'
노나라는 제(齊)나라와 라이벌 관계이면서도 서로 협력하지 않을 수 없는 동맹국이었다. 더욱이 노환공은 제희공의 사위이다. 노환공은 즉위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제희공의 딸인 문강(文姜)에게 장가들었던 것이다. 지금 노환공이 기(紀)나라를 돕기 위해 군대를 출동시키면 그것은 곧 장인인 제희공과 싸우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어렵게 되었군.'
노환공은 망설였다.
- 정리(情理)냐, 국익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침내 노환공은 마음의 결단을 내리고 정여공을 향해 말했다.
"기(紀)나라 군후가 이렇듯 급하게 구원을 청하니 달려가서 도와주지 않을 수 없군요. 지금 송나라를 함몰시키지는 못했지만, 이쯤하면 송장공도 정신을 차리고 다시는 물건을 보내라마라 귀찮게 굴지는 않을 것이오. 군후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우리 노(魯)나라는 여기서 회군해야겠소이다."
노환공은 장인 제희공에 대한 정리보다는 위성국을 잃지 않으려는 국익을 선택한 것이었다. 정여공은 지금까지 노환공이 자신에게 보여준 노력과 성의에 대해 깊은 감동을 받은 터였다. 아쉽기는 하지만 자신만의 욕심을 위해 노환공을 계속 붙잡아둘 수는 없었다. 노환공의 말대로 이쯤하면 송장공도 더 이상 정나라를 괴롭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노환공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군후께서 우리 정나라를 위해 베풀어주신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노나라가 군대를 옮겨 기(紀)나라를 구원하러 가신다고 하는데, 제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도 군후를 따라가 미력하나마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정여공의 말에 노환공은 뛸 듯이 기뻐했다.
"정나라까지 나서서 도와준다면 기(紀)나라는 이제 산 것이나 마찬가지오."
그러고는 전군에 회군명령을 내렸다.
"모든 군사는 영채를 뽑아 기(紀)나라로 진군하라!"
노나라와 정나라는 송나라 공격을 중단하고 기(紀)나라를 향해 떠나갔다. 노환공이 30리 앞서 행군했고, 정여공은 송군의 추격에 대비하며 그 뒤를 따랐다.
노. 정 연합군의 회군을 남궁장만이 모를 리 없었다.
그는 자신을 유인하려는 계책이 아닌가 의심했다. 정탐병을 풀어 그들의 회군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조사했다.
수일 후 정탐병이 돌아와 보고했다.
- 노. 정 두 나라 군대는 이미 우리 경계를 떠났습니다.
- 그들은 본국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제나라의 침공을 받은 기(紀)나라를 도우러 갔습니다.
남궁장만은 비로소 노. 정 연합군의 회군 목적을 알게 되었다.
그 역시 군대를 돌려 상구로 돌아갔다.
"싱겁군."
싸움이 오래 갈 것이라 예상했던 송장공(宋莊公)은 오히려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태재 화독이 묘책이 생각났다는 듯 두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생각할수록 노나라와 정나라의 행위는 괘씸하기 짝이 없습니다. 마침 그들이 기(紀)나라를 도우러 갔다고 하니, 이 기회에 우리는 제나라를 돕는 척하면서 노. 정나라를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齊)에게는 은혜를 베풀고, 노. 정에게는 복수를 하고...... 그것 참 묘안이오."
송장공이 손뼉까지 쳐가며 좋아하자 남궁장만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치듯 말했다.
"신에게 병차 2백 승만 내주시면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제(齊)나라를 도와 노. 정나라를 쳐부수겠습니다."
"출병하라!"
남궁장만은 다시 맹획을 선봉장으로 삼아 기(紀)나라를 향해 진군해갔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