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회화대전에서 입선한 이야기
2023년 3월 20일 아내와 함께 서울 인사동(仁寺洞) 갤러리 라메르에 전시된 미술 작품들을 관람했다. 제21회 대한민국 회화대전에 입선된 작품들이다. 아내는 이 대회에 수채화 한 점을 출품하여 입선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현대미술작가연합회가 주관하여 올해로 21번째 맞이한 이 대회는 2002년 연합회 창립 기념으로 제1회를 개최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 연합회는 2019년 인천지부를 설립함으로써 전국 주요 도시마다 지부를 운영하고 있는 대한민국 현대미술의 정통 단체로서 젊은 작가로부터 원로 화가에 이르기까지 약 1,4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매년 국내에서 정기전, 초대전, 회화대상전을 개최하여 대한민국 미술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동시에 서예, 문인화, 서양화, 수채화, 한국화, 민화, 공예, 서각 등 미술 분야를 총망라하여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고 양성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1884년부터 프랑스의 독립 미술가 협회가 매해 4~5회 정도 파리에서 여는 미술 전람회인 앵데팡당전(Salon des Indépendants) 같은 유명 해외교류전을 개최하여 우리 미술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우리나라 미술 단체는 일제 강점기인 1945년 결성된 조선미술협회가 있었다. 곧바로 해방된 후 1951년에 대한민국 미술협회로 바뀌었고 1961년에는 5.16 군사혁명위원회에서 당시 국내의 모든 미술 단체를 하나로 통합하여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로 개칭하였다. 그 후 미술 단체가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겨나 현재는 그 수를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다. 1946년 부산미술협회(1961년 한국미술협회에 흡수되어 현 한국미술협회 부산지회), 1961년 (사)경기미술협회, 1973년 (사)한국여류작가협회, 1983년 (사)한국현대미술협회, 1992년 경기수채화협회, 1995년 (사)한국민화협회, 1999년 (사)대한공예협회, 2002년 (사)대한민국아카데미미술협회, 2011년 홍익미술협회, 2015년 (사)한국미술교육협회, 2021년 (사)대한민국예술인협회 등 다양한 미술단체들이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현대미술작가연합회는 전국의 각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명 작가들이 연합하여 결성된 단체로서 이 회에서 개최하는 대한민국회화대상전은 국전(國展)인 대한민국미술대전 다음으로 권위 있는 미술대회로 인정받고 있다. 참고로 대한민국미술대전은 신인 작가 발굴을 위하여 문화예술진흥원에서 매해 개최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신인 공모전이다. 1941년부터 1981년까지 ‘대한민국미술전람회’라 했다가 1982년 제31회부터는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대회 명칭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제 미술 세계에 입문하여 첫 발걸음 하는 아내가 이 대회에서 입선했으니 개인은 물론이고 가문에 영광이요, 하나님께 돌릴 영광이다.
아내는 어릴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다. 학창 시절 아내에게 미술 시간은 참 즐거웠다. 미술 교사는 늘 그의 그림을 보고 미대 진학을 강력하게 권유할 정도였었다. 그러나 예능 뒷바라지는 가난한 부모에게 너무 무거운 짐이었기에 아내는 일찌감치 미술의 꿈을 접었다. 가능한 부모에게 부담 주지 않는 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중 교대, 사대를 합격하고도 굳이 전액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이 100% 보장된 국군간호사관학교에 입학함으로써 미술은 먼먼 날에 이룰 막연한 꿈이 되고 말았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한 후 실무 부대 근무하면서 짬을 내 미술학원을 다니며 마음 저변에 깔려 있는 미술에 대한 그리움을 채우려 했지만 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 후 목회자의 아내로 새로운 인생길에 접어들면서 하루살이가 불확실한 목회 환경에서의 미술은 사치였다. 가난한 농촌 목회, 3남매와의 육아 전쟁, 성전 건축 후 부채의 늪에 빠진 목회 현실은 아내에게 미술이란 아름다움을 그리는 미술(美術)이 아니고 전혀 해서는 안 되는 미술(未術)로 만들어 버렸다.
그 후 목회 환경이 새롭게 바뀌었다. 전임자 사모가 그림 활동을 자유롭게 했으므로 자연스럽게 망각의 캡슐에 가두었던 미술의 향수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동안 버리지 못했던 그 꿈을 실현하나 싶었더니 자라 등 때문에 솥뚜껑 보고 놀란 교회 임원들이 미술 금지령을 선포하는 바람에 아내는 열린 그 뚜껑을 다시 닫아야 했다. 그 후 10년의 세월은 미술을 꺼낼 수 없을 정도의 고단한 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3번의 목회 현장을 바꾸어야 했으니 그 시간의 고단함을 필설(筆舌)로 다 기록할 수 없으리라. 내적 상흔은 미술을 생각조차 못하게 막았다. 그저 평안함이 최고의 가치였으니 붓을 잡는 일은 천국에서나 할 여유있는 삶이었다. 그 후 2021년 평창의 메밀꽃 피는 마을 봉평(蓬坪)에서 마지막 사역의 닻을 내릴 때에도 당연히 지금까지 그랬듯이 미술(美術)은 아내에게는 여전히 ‘아니다’의 미술(未術)이었으니 언필칭 언감생심(言必稱 焉敢生心)이었다. 낯선 목장에 오면 적응기가 필요하다. 33년 목회 경력이면 이 분야에서 달인쯤 되어봄직한 데도 어리바리한 목회 초년 시절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고, 남창여수(男唱女隨)의 한계를 넘을 수 없는 아내 역시 처지는 매 한 가지였다. 그러다가 평창군에서 군민들에게 지원하는 문화 활동의 한 분야로 수묵화(水墨畵) 반을 소개받고 짬을 냈다. 그것이 여고 졸업 후 40여 년 만에 제대로 붓을 잡아본 처음 순간이었다. 그러다가 2022년 6월 남몰래 혼자만의 세계에서 그 망각의 캡슐을 조심스럽게 열고는 그렇게 꿈꾸던 한 편의 작은 수채화를 완성하고는 혼자 뿌듯해했다. 잘 그려서가 아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온몸은 그렇게 반응했다. 하나님은 이런 아내에게 평창지방 내 30년 경력의 화가 최금란(崔琴蘭) 사모를 만나게 하셨다. 서로는 그림과 목회라는 동질감을 공유하며 유유상종(類類相從)의 기회를 자주 가졌다. 머리카락이라도 보일라 꼭꼭 숨겨두었던 미술의 재능과 열정은 먹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처럼 조금씩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하여 친정 엄마의 봄(장독대), 뒤뜰의 잔치(모란), 여름을 머금다(자작나무 숲), 학창 시절의 추억(자목련), 먼 데서 온 사랑(복숭아), 겨울에 영근 우정(겨울 딸기) 등등의 작품들이 세상에 나왔다. 어느 날 최 화가는 대한민국회화대전이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는 공모전에 출품할 것을 강권하였다. ‘아직은 아니야!’ 이런 망념(妄念)으로 진일보할 기회를 놓치는가 싶었으나 결국 2022년 11월 그리스 성지순례 시 메테오라 수도원 전경에 감탄하고는 화폭에 남기고 싶은 자신만의 꿈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모든 게 어설픈 그에게 이 수도원을 백색의 화선지에 담는 작업은 호랑이 앞에 선 하룻강아지의 무모한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소실점이나 구도를 잡는 안목도 부족한데 도전장을 내밀었으니 그저 무지는 용감할 뿐이었다. 3주 동안 그림과의 사투(死鬪)를 벌이면서 심신에는 과중한 피곤이 오겹살처럼 차곡차곡 쌓였다. 그렇게 완성된 메테오라 수도원, 일명 ‘해질 녘 하늘의 정원’이 20호(73x53) 도화지에 마침내 선명한 영상으로 재탄생하였다. 붓을 놓고 낙관을 찍을 때 손 떨림 현상, 온몸으로 번져가는 희열, 불가능한 미션 완수의 성취감, 땅에 감추었던 달란트를 이제야 꺼내 주인을 위하여 일하게 된 종의 뿌듯함, 그리고 40년만의 꿈의 실현을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게다가 출품만으로도 만족한데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입상의 범위에 들었다고 하니 더 이상의 화술(話術)은 사족(蛇足)일 뿐이다.
생전 처음으로 찾아본 서울 예술의 거리 인사동에 우뚝 서 있는 라메르 갤러리에 들어서자 발군의 작가들 그림은 초보를 주눅 들게 할 대작처럼 보였다. 애써 아닌척하고 지나치며 오매불망(寤寐不忘) 3층 전시실 한 귀퉁이에서 주인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해질 녘 하늘의 정원’ 그림 앞에 섰을 때는 까닭을 알만한 전율이 온몸을 훑어내려 감전 사고를 내고야 말았다. 지금까지 그 험난한 터널을 지나고 나니 이렇게 빛나는 영광의 순간이 그 끝에 준비되었을 줄을 누가 알았으리오? 희열에 찬 아내의 눈빛을 바라보면서 고진감래(苦盡甘來)는 꿈을 잃지 않고 인내의 돌산을 묵묵히 넘어온 사람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는다. 어릴 때부터 마음 한편에 고이 가두었던 꿈이 실현된 이 전시실 안에는 참 좋으신 하나님을 노래하는 아내의 찬양 향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브리서 3:14).
최금란 화가와 함께
해질녁 하늘의 정원 (수채화 心耕 최숙희 작)
큰 딸 가족들과 함께
아들과 함께
손녀들의 축하
시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기념
친정 엄마의 봄 (최숙희 작 2022)
뒤뜰의 잔치 (모란, 최숙희 작 2022)
여름을 머금다(자작나무 숲, 최숙희 작 2022)
학창 시절의 추억(자목련, 최숙희 작 2022)
먼 데서 온 사랑(복숭아, 최숙희 작 2022)
겨울에 영근 우정(겨울 딸기, 최숙희 작 2023)
첫댓글 휼륭하십니다.감상잘했습니다.
최숙희 작가님 ! 대한민국 회화 대전에서 입선 하신것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 그동안 그 예술성을 숨기셨군요 . 메테오를 직접 보는 듯 하여 성지순례 감흥이 되 살아 납니다 .
이렇게 멋있는 작가님을 친구로 알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화가님 ~^^♡♡♡
이교수 과분한 칭찬 고마워^^ 아직은 화가가 아니고 되고싶은 사람이야^^
사모님 마음처럼 그림이 따듯합니다
새로운 도전에 응원의 박수를 맘껏 쳐드립니다.짝짝짝
멋져요멋져~
인도공주님은 누구신가요^^
응원 감사합니다♡
따뜻한 봉평에 놀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