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타버린 성자(聖者) 글 김광한 그해 여름부터 이듬해 겨울까지 내가 다니던 잡지사가 정부시책에 부응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폐간이 되고부터 실업자 생활을 이골나게 할때였다.나의 여행은 그래서 한가로운 일탈(逸脫)이 아니라 도피나 다름 없었다.강원도 홍천 모곡(牟谷)이란 마을에 무슨 연고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 친구가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홍천 근처의 요양소에 들어가 있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가족들의 말에 따라 혹시나 홍천 근처의 사설 요양소나 기도원 같은데 칩거(蟄居)하고 있을까 생각해서 떠난 발길이었다. 물론 그 친구를 찾아야할 절박한 이유는 없었다.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상봉동 터미널에서 한 시간에 한 번씩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잡아타고 강원도쪽으로 두 시간정도 달리다 보면 모곡(牟谷)이란 마을이 나오게 되는데 버스는 그곳이 종점이었다. 거기서 나는 숙박처가 웬만하면 며칠 정도 쉬어 갈 요량이었다.처음부터 어떤 계획이 있어서 온것은 아니었다.그저 집이 싫어서 나왔을뿐이고 고등학교 동창생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서 모곡의 어느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어서 혹시나 만날 수 있지 않나 하는 기대심 때문이었다. . 종점에는 다방이 한 군데 있었고 매표소가 한가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도 예외 없이 교회의 첨탑이 몇 개 솟아 있었다. 교회 길을 따라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다 보니 침례교 간판이 붙은 조그만 교회가 하나 서 있고, 그 길 건너편에 마치 조각 전시장을 방불하듯 예수 성상(聖像)과 마리아, 여러 계급의 천사들이 마당에 열병하듯 늘어선 함석 건물이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외양으로 보면 단충 건물 같았으나 자세히 가보니 2층이었다. "천주교 벧엘 관상 기도원" 야곱이 벧엘이란 마을에서 하느님과 씨름을 하다가 넘어져 엉덩이 뼈가 부러졌다는 뜻으로 붙인 벧엘 앞에 관상 기도원이란 간판 이 나무판자에 음각되어 있었다. 이런 곳에서는 개신교의 기도원이 걸맞을 텐데 유독 천주교 관상 기도원이라고 붙인 데는 설립자 자신이 어떤 사연이 있을 것으로 직감되었다. 첫 눈에도 천주교 교구청에 속한 건물 같진 않았다. 교구에 속해 있다면 좀더 짜임새 있고 규격이 있어 질서가 있을만한데, 건물 자체가 조잡하고 엉성하기 짝이 없어 마치 불교의 암자 같은 느낌이 드는 건물이었다. 그것은 마당에서부터 나타났다. 50여 평 규모의 마당 한가운데에 예수 성상이 있는 것까지는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는데 그 양편에 각종 천사들이 날개를 벌린 채 마치 열병이라도 하듯 늘어서 있어 벽제나 공원묘지 근처의 석물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기도원은 인접한 빈집을 몇 채 사들여서 그걸 헐어와 만든 조립식 건물이었는데 형식은 2층이었다. 내가 철대문에 붙어 있는 쪽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10여 마리나 되는, 식용으로 사육되는듯한 족보와는 무관한 사나운 개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짖어댔다. 그리고 첫눈에 보아도 정신이 온전치 못한 할머니들이 마당 여기저기 모여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어떤 할머니는 묵주를 두 손으로 잡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면서 무엇인가를 갈구하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갖고 있는 것은 시간뿐이었다. 또 다른 할머니들은 무료한 시간이 권태로운지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발의 평정심을 잃어 비틀거리면서 꽃밭에 '물을 주는 할머니, 이 기도원에도 젊은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하긴 이 외진 산골짜기에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겠지만. 이때 기도원의 책임을 맡고 있는 듯한 40대 중반의 호리호리한 여자가 서성 거리는 나에게 다가왔다. "누굴 찾아왔습니까?" 나는 얼른 천주교 신자라는 말을 했다.그래야만 그 여자가 내게 갖고 있는 의혹에서 호감으로의 전환이 빠르다는 생각같아서였다. 그리고 하룻밤 묵고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이 근처에 마땅한 여관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쉬어 가시는 건 좋은데, 워낙 숙소가 누추해서“ "괜찮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서울의 어느 성당에 다니고 있느냐, 영세는 언제 했느냐는 등 주로 종교가 갖는 동질성과 자신을 맞춰보고 싶어하는 것같았다. "이 루시아라고 해요." 그녀는 자기소개가 늦었다면서 자신은 이 기도원이 생길 때부터 관리 겸 식당 일을 맡아본다고 했다. 이름보다 세례명을 선호하기에 굳이 이름을 알 필요는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영세명이 아주 좋다고 했다. "성녀(聖女)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성인전을 읽지 못해서." 하면서 다음 말을 이었다. "숙식비는 무료로 하고 있으니까요. 새벽 기도회만 참례하시면 됩니다. “새벽 미사가 있습니까?” "미사라기보다 그냥 기도회죠. 여기 식구들 모두 새벽 6시에모여서 묵주 기도를 바치게 돼 있죠. 참례 해주십시오.“ 그녀는 말을 마치고 주방으로 갔다. 말이 주방이지 "함바집"처럼 각목으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간이식당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루시아란 여자 관리인을 따라 들어간 방은 명색이 이층이었는데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는 목조 건물이었다. 건물에 잇댄 다락방이었다. 2층의 오른쪽 맨 끝 방이었는데 폭 1미터 가량의 복도가 왼쪽 끝 방까지 10미터쯤 나 있었다. 그 끝에는 역시 방이 한 개가 보였는데 사람이 없는지 큼직한 미제 자물쇠가 달려있었다. 기도원에서 나오는 허접쓰레기나 장비 같은 것을 넣어두는 방으로 보였다. 그러나 굳이 2층에 창고를 만들 필요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이 루시아에게 이팔석이란 사람에 대해 물었다. 이팔석은 내 고등학교 동창생이었다.물론 있었거나 있다는 대답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런 분은 없었는데요. 혹시 정신이 돈 사람이 아닌지요?” “정신은 괜찮고 알코올 중독자인데요.” “여긴 그런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아요. 정신 질환 환자나 비슷한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그런 사람들은 어디로 갑니까? 기도원이라는데.” “따로 있어요. 현리기도원 같은 데라고 들었어요.” 현리라면 청평 쪽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그러나 이팔석이 제 발로 다시 수용소나 다를 바 없는 기도원에 들어갔으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여기선 기도로써 정신을 안정시켜 영혼을 괴롭히던 마귀들을 쫓아내는 곳이죠.? 그녀는 마치 마귀를 직접 보기라도 한 듯이 술술 이야기를 풀었다. "마귀가 씌운 사람들 몇이 여기서 말짱하게 낳아 걸어 나갔답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예의상 머리를 끄덕여 주었다. "편히 쉬세요." 말을 마치고 그녀는 내 앞에서 사라졌다. 바로 그날 밤이었다. 보름달이 떴다. 나는 방에 돌아와서도 잠을 못 이루었다. 환경이 바뀐 탓도 있겠지만 이팔석때문이었다. 이팔석이 어디선가 살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이팔석은 한때 나를 위해 모자라는 학비를 보태주기도 한 남다른 친구였다. 그때였다. 아까 보았던 창고로 쓰이는 것 같던 방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그 방은 내가 들어오고 나서도 계속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기침 소리뿐만이 아니라 통성(通聲) 기도 소리도 들렸다. 그 방을 엿보니 여전히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40대 중반 의 우렁우렁한 목소리였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고‥‥‥ 주의 기도였다. 그리고 이어서 성모송이 들려 왔다. 누군가 자물 쇠가 바깥으로 채워진 방안에서 묵주 기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크게 열었다. 그러나 틀림이 없었다. 분명 환청은 아니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혹시 기도원 측에서 중증의 정신 병자를 외부와 완전히 격리시키기 위해 가둬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이런 생각은 하룻밤을 지새 면서 여지없이 깨져 버렸다. 그날 자정이 조금 지나서의 일이었다. 저녁 10시에 의례적인 저녁 기도가 있었고, 기도가 끝나자 방으로 들어와 잠을 청하려는데 화장실로 통하는 복도 끝에서 문득 인기척이 났다. 그러잖아도 자물쇠가 채워진 방 쪽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는 판에 인기척은 나의 머리를 쭈뼛하게 만들었다. 2층에는 방이 세 개가 있었는데 한 방은 내가 쓰고 또 다른 방은 그대로 비어 있었지만 열쇠로 채워져 있지는 않았다. 2층에는 나 혼자만이 있다는 이야긴데 그렇다면 자물쇠가 채워진 방에서 사람이 나와서 좁은 복도를 오간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호기심에서 방문을 얼고 화장실 쪽으로 살금살금 접근했다. 누굴까? 그러다가 나는 너무나도 끔찍한 광경에 혼을 빼앗겼다. 나는 그 끔찍하고 섬뜩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을 보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다리가 떨려서 움직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정신이 들자 그제야 허겁지겁 방으로 돌아온 나는 그대로 털씩 주저앉았다. 자신이 본 것이 현실이었는가, 아니면 순간적으로 헛것을 보지 않았나 손목을 세차게 꼬집어보았다. 분명 꿈은 아니었고 잘못 본 것도 아니었다. 아직도 화장실에 켜 둔 촉수 낮은 백열등에서 반사되는 희끄무레한 빛이 달빛과 어울려 웬만한 물체가 어느 정도 판독되었다. 내가 본 것은 화장실에서 황급히 튀어나오는 살아 있는 물체였다. 아니 괴물이었다. 분명 외양으로 사지가 밀정했으나 목 위에 달려 있는 얼굴 부분의 형상이 보통 사람의 것과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다. 반인반수(半人半獸), 반은 사람이고 얼굴 쪽은 괴물이란 이야기가 아니라 얼굴 쪽이 사람은 사람인데 그 형태가 너무나도 끔찍해 눈을 돌릴 정도였다. 마치 괴기 영화에 나오는 괴물 같았다. 프랑켄슈타인이나 드라큘라 같은 괴기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너무나도 흡사했던 것이다. 사람이 아닌 괴물, 그럼 이 낡고 허술한 기도원 건물 내에 괴물이 있단 말인가? 나는 다시 한번 내 자신이 본 것이 환각이 아닌가 싶어 천정을 살펴보았다. 도배한지 오래되어선지 여기저기 파리똥이 지저분하게 붙어 있었고 풀기가 말라 천정지가 축 늘어져있었다.. 나는 가슴의 박동을 애써 진정시키고 살그머니 미닫이를 열어 복도에 얼굴을 내밀었다. 생각 같아서는 빨리 이 괴기스러운 기도원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자물쇠가 채워진 빈 방을 엿보았다. "괴물"이 그 방으로 들어 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방문 앞에는 예의 그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었다. 누군가가 괴물이 들어간 방에 뒤따라가서 자물쇠를 채웠다면 이야기가 되겠지만 뒤따라 간 발자국도, 그림자도 못 보았기 때문에 내가 본 것이 헛것만 같았다. 그러나 헛것은 분명 아니었다. 아직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시력이 약해 사물을 분간 못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괴물이 들어간 방에 바깥으로 열쇠가 채워졌다면 괴물이 신통력을 발휘해 바깥으로 채울 수도 있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고 그렇다면 괴물의 공범(?)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본 괴물의 빈 방, 그 방안에 아직도 괴물이 있을까? 그가 만일 심약한 여자였더라면 당장 기절을 했을 것이다. 나는 괴물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조립해보았다. 금방 활활 불타는 불구덩이에서 튀어나온, 재 한줌을 들고 나온, 아니 화장터에서 불타는 관을 뚫고 나온 듯한 얼굴, 아니면 살아 있는 멧돼지가 꼬챙이에 달려 바비큐 요리를 당하다가 자기를 꿰고 있는 꼬챙이를 물어뜯고 튀어나온, 그런 얼굴 전체가 기름 물이 철철 흐르고 일그러지고 타 버린 그런 끔찍한 형상의 얼굴이었다. 그것이 목 위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육괴(肉塊)였다. 문득 나는 어느 공원에서 본 화상(火傷) 입은 사람의 얼굴이 생각났다. 입술이 붉게 위로 솟구쳐 얼굴 전체가 쏠리듯 뒤틀어지고 일그러져 눈뜨고 차마 볼 수 없는 그런 얼굴, 그 얼굴은 차라리 양호한 편이었다. 얼핏 보았지만 손가락이 마디마다 안쪽으로 오그라들어서 조막손이 되어 있었다. 얼굴은 가운데 코 부분이 뻥 뚫린 채 구멍만 나 있고, 눈썹 자리에는 긴 머리카락 같은 털이 두어 개만 펼쳐져 있어서 그것이 사람의 얼굴이라고 짐작하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그 끔찍하고 그로테스크한 얼굴이 바짝 나를 대하자 황급히 빈 방으로 사라진 것이다. 그 얼굴은 나를 피했던 것이다. 이 한적하고 조그만 사설 기도원에 무언가 숨겨진 음모나 비밀이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씩 좋지가 못했다. 아직도 조금 전에 본 괴물의 잔상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나는 방문의 고리를 꼭 닫아걸고 누웠다. 그러나 잠이 올 리 없었다.한적한 시골에서의 낭만은 사라져버렸다. 내 생각으로는 일주일에 한번 꼴로 온다는 성직자를 위해 마련한 방에 성직자 아닌 몰골이 흉한 사람이 남의눈을 교묘히 피해 살고 있다고 여겨졌다. 나는 마치 추리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 기도원의 관리인인 이 루시아란 여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을 듯해 이튿날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 이튿날, 잠을 설친 탓에 온몸이 개운하지가 못했다. 새벽기도 시간을 알리는 둔탁한 종소리-사실 놋그릇을 젓가락으로 두드리는 소리였지만-에 잠을 깼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이 루시아에게 어젯밤 내가 본 본 괴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보셨군요." 그녀는 별로 큰 관심이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녀는 납작한 얼굴에 주근깨가 마치 파리똥이 붙어 있는 것처럼 다닥다닥 박혀 있는 40대 중반쯤의 여자였는데 천주교에 들어와 성서 지식을 조금 습득한 것 이외에는 지식수준이란 것은 없는 사람같았다. 그 나이에 이런 외진 곳에, 수입성이 별로 없는 곳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면 그 나름대로 기구한 사연이 있음직한 여자였다. 그러나 남의 탐탁치 않은 과거를 묻는다는 것이 일이 실례가 될 것같아 그냥 두었다. 그녀는 처음엔 별것 아닌 것같이 대답했다가 그가 관심을 갖자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도 보셨군요. 보셨을 거예요." "꿈이 아닌가 했습니다." "놀라셨겠죠. 이 집에 있는 할머니들도 첨엔 다 그랬어요. 선생님께 사전에 말씀드릴까 하다가 그랬다간 아무래도 거처를 옮기실 것 같아서‥‥‥“ 나는 우선 그것이 사람인가부터 물었다. "물론이죠. 영혼은 누구보다 티 없이 맑은 사람이죠. 사람이란 몰골보다도 영혼의 가치를 따져야죠." 그녀는 성경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그는 영혼이 아무리 깨끗하고 숭고해도 얼굴이 그 지경이 됐으면 별것 있느냐는 생각을 했다. “영혼이 깨끗하다면 도사 같은 사람이군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분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서‥‥‥“ "사연이 있다는 말씀이죠?" '예, 그분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낮에는 한 치도 나오시지 않아요. 햇볕을 아주 싫어하죠. 하지만 아주 훌륭한 분이에요. 이 세상에서 그런 뜻 깊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드물 거예요." "그런 분이 왜 밤에만?" "얼굴이 그 지경이라서, 얼굴뿐만이 아니에요. 온 몸이 타 버려서." "화상입니까?" “예." "어젯밤에는?" "방안에 있는 용변기가 넘쳤죠. 그 용변기의 내용물을 화장실에 갖다 버리려다가 선생님을 만났던 거예요. 제가 수발을 들고 있는데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만." "화장실이 방안에 있나요?" "요강이 한 개 있을 뿐이죠. 그 분이 필요로 하는 물건은 대부분 방안에 넣어 드렸거든요. 그러니까 굳이 바깥출입을 할 필요가 없었죠. 상대방에게 자신의 얼굴이 혐오감을 준다는 걸 잘 알고 있으 니까요. 상대가 자기 얼굴을 보는 걸 아주 싫어하거든요." "정신은 온전한가요?" "그야 물론이죠." "요양을 온 사람입니까?" "화상의 치료는 끝난 상태지만 이곳에서 여생을 마치려고 해요." "원장이 누군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을 이곳에서 받아 줍니까? 다른 사람들 생각도 해야죠." "그분이 원장이시니까요." "원장이요?" 내가 의아해서 다시 물었다. "원장이 방구석에 숨어서 뭣을 합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저런 얼굴로 신자들을 대한다면 모두 겁이 나서 도망할 텐데요." "그래서 꼼짝 않고 모든 일을 인터폰으로 제게 지시만 하십니다. 식사는 제가 직접 갖다 드리죠.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늘 조심을 하죠." "힘들겠군요." 나는 이 루시아란 여자에게 여러가지를 물어보려 했으나 마침 방문객들이 몇 있어서 이야기가 중단됐다. 나의 궁금증이란 대략 이런 상식적인 것들이었다. 원장이란 인물이 그런 심한 화상을 입은 채 왜 이런 구석진 곳으로 찾아들었을까. 규모가 큰 기도원을 설립하려면 교구의 허락도 받아야 하고 또 운영비도 꽤 들 텐데 화상으로 노동력이 상실된 사람이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는 것인가. 또 자신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컴컴한 골방 속에 숨어서 무슨 일을 어떻게 지시하는가. 나이는 몇이고 과거의 행적 같은 것 등등. 온통 괴물 같은 사나이에 대한 것들이었다. 이 루시아가 방문객을 안내한 후 다시 왔기에 그는 골방의 사내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대뜸 거절했다. "원치 않으실 겁니다. 그분은 상대방에게 혐오감을 주는 걸 싫어 하시거든요." 그가 다시 물었다. "누구도 만나지 않겠다는 말입니까?" "이 기도원에서 개인적으로 만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흉한 몰골을 남들에게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피해를 준다고 알고 있거든요. 그것을 죄악으로 알고 있어요." "절대 그분을 놀라게 해 드리지 않겠습니다." 나는 원장이란 화상을 입은 사내에게 왠지 모르는 친밀감 같은 걸 느꼈다. 어쩌면 그가 친구인 이팔석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있었다는 곳은 안양의 비산동 기도원이었다.혹시 전에 안양의 비산동 기도원을 탈출해서 이 기도원으로 잠입한 것이 아닌가. 그 와중에서 큰 사고가 나서 화상을 입은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세상을 등지고 숨어 있을 곳을 찾다가 이 외 진 곳까지 흘러들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이팔석이라도 자기가 할 일이라곤 없을 것 같았다. 그의 불구자적인 일생을 뒷바라지할 자신이 없는 한 오히려 정신적, 육체적인 부담만 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 사내가 제발 이팔석이 아니길 은근히 바랬다. 심한 화상을 입어 불행하게 된 사내를 봄으로써 느끼는 어떤가 가학적인 즐거움보다도 그에게 혹시나 있을 카리스마적인 것들에 대해 나는 호기심이 갔던 것이다. 이런 사내일수록 일반인들보다 엄청난 체험이 있게 마련이고 체험을 통해 얻은 철학 같은 것들과 신앙이 그에게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이 루시아에게 다시 한번 사정했다. "꼭 만나게 해주십시오." 물론 사내의 끔찍한 얼굴을 다시 본다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처음같이 놀랄 것 같진 않았다. 마치 시체를 처음 대했을 때와 두 번 세 번 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같은 느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지 않을 자신 있으세요?" "물론이죠." "기절하실 텐데요." 그녀는 모처럼만에 웃었다. 나는 가끔씩 성당의 신심 단체에 들어서 죽은 신자들의 염 같은 것도 많지는 않지만 여러번 해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 꺼려하는 걸 별로 두렵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즉은 사람이야 영혼을 떠났지만 몸은 온전하지요. 그러나 그 분은 좀 달라요." 이 루시아도 처음 원장을 만나보고 그 끔찍한 모습에서 며칠 동안 식사도 못했다고 했다. 또 이 기도원을 그만둘까도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사람과 매일 마주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죠.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했죠. 우리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고 힘이 약하고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잘 대해주는 것이 그분에게 해 드리는 것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은총으로 생각했단 말씀이죠?" "그래요." 나는 이 루시아의 까무잡잡한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문득 이 조그만 여자에게 어떤 존경심 같은 것이 들었다. "그분을 대할 때마다 혐오감은 점점 없어지고 오히려 존경심마저 들게 되었죠. 저렇게 되어서도 살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있다는데 대한. 아마 저 같으면 일찌감치 자살이라도 했을 거예요. 선생님은 어떠신지 모르지만‥‥‥“ 사람이 특이한 인물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이것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지독한 불구의 몸으로 기도원을 운영하는 데 따른 어려움과, 또 특별한 인생관 같은 것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 여자가 물었다. 아마 내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선생님의 직업은?" 나는 얼른 소설을 쓴다고 했다. 이런 종류의 사람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소설가나 시인이라고 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소설가는 다른 직업에 비해 많은 남의 체험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창작을 하다 보면 속이 남들보다 트여 있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소설가라고 하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분은 선생님의 글에 인용 당하는 걸 원치 않으실 겁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언젠가 주간지 기자가 찾아온 적이 있어요. 그때도 거절을 했죠. 남의 망가진 육체를 흥밋거리로 다루는 것, 뻔한 일 아니겠어요? 선생님은 그럴 분이 아닌 것 같아서 이야기는 드려 보겠어요." "원장님은 이 루시아 씨 이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습니까?" “처음부터 약속이 되어 있어요. 선생님이 글을 쓰신다고 하니까 아마 통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분도 하루 종일 무슨 글을 쓰시니까요. 글을 쓰는 사람들과는" "대화가 된다는 말씀이죠?" "그렇게 되길 바라겠어요." 그녀는 자기 나름대로 원가 짐작이 간다는 투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그분이 만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은 주로 영리하고 이해에 밝은 사람들이죠. 계산 잘하고 남의 약점 잘 알아맞히고, 자신의 잣대로 남을 평가하고, 지식은 많되 나눠 주려 하지 않는 사람, 지식의 수전노 같은 사람, 가진 것은 많지만 나눠 주는 데 인색한 사람‥‥‥“ "훌륭한 분이로군요." " 그런 사람들에게 그 동안 상처를 많이 입었으니까요. 선생님은 그런 분 같지 않으시니 잘 말씀드려 보겠어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2층의 골방으로 갔다. 여전히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그 방의 열쇠는 이 루시아가 갖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가 방의 자물쇠를 따는 것을 확인하고 복도의 먼지투성이로 범벅이 된 방앞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그 방에서 나온 것은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녀는 그 방에서 원장이란 사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나는 둘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가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나는 만일 원장이란 사내와 만나더라도 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일수록 감각이 예민하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상처가 되는 말이란 주로 화상을 입은 동기를 비롯해 과거의 행적 같은 것들이었다. 또 간혹 있을 수 있는 여자와의 관계, 그런 화상을 입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실망 섞인 이야기를 해선 안 되었다. 그녀는 웃는 낯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얼굴이 밝은 것으로 보아 만나 주겠다는 의사가 분명했다. 나의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잘됐습니까?" 내가 물었다. "만나시겠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각오를 단단히 하셔야겠습니다. 얼굴은 정면으로 쳐다보지 마십시오." "그럼 방바닥만 바라보란 말씀인가요?" "그런 게 아니라 선생님 때문이죠. 선생님이 피해가 될까 봐서죠." 나는 이 루시아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화상의 사내는 하루 종일 그 방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그는 마치 추리 소설이나 괴기 영화에서 본 어떤 장면을 연상했다. 대부분의 괴기 영화는 줄거리가 비슷해서 주인공은 심한 화상을 입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은밀한 곳에서 남들을 해치려는 음모를 꾸미는 그러한 것들이었다.흉한 얼굴과 거친행동을 동일시하는 것들이 대개의 줄거리였다. 그러나 사내는 왠지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언젠가 본 '양들의 침묵'이란 영화도 상기해보았다. 가장 선량한 것 같으면서 가장 악한 인간의 본질을 그린 영화였다. 이 루시아는 골방 문 앞에 이르자 열쇠를 꺼내 방문을 땄다. 그리고 조용히 기도하는 자세로 몇 번 방문을 노크했다. 그러자 비교적 배움이 있음직한, 40대 초반의 중후한, 그러나 약간 허스키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예, 들어오십시오." 이 루시아가 얼른 말을 받았다. "들어가 보세요." 그녀가 나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 "전 그만 내려가겠어요." 그녀는 발뒤꿈치를 살그머니 들고 조심스럽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방은 컴컴해서 좀처럼 사물이 분간되지 않았다. 잠시 서있자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앉으십시오." 조금 있자 어둠이 걷히고 물체가 잡혔다. 사내는 가부좌를 튼 채 목석처럼 그냥앉아 있었다. 방은 바깥에서 상상한 것처럼 그리 좁은 편이 아니었다. 유리문이 하나 있었으나 커튼으로 가려 버려 더욱 컴컴했다. 방바닥은 일본식으로 다다미가 깔려 있었다. 십자가상이 벽에 걸려 있었고 책상으로 보이는 곳에 예수 성상이 놓여 있었다. 사내는 움직이려는 것으로 보아 책상 위에 있는 초에 불을 붙이려는 것 같았다. 그가 촛불 켜는 것을 도와주었다.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성냥을 긋는 데 불편을 느꼈던 것이다. 촛불을 켜자 방안의 형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내가 먼저 말을 꺼낼 것 같지가 않아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첨 뵙겠습니다." 그래도 그는 등을 돌리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이 사내가 이팔석이 아니길 바랐다. 대꾸가 없자 조금 머쓱해진 기분이 들었다. 한참만에야 사내는 등을 돌렸다. 머리만 움직인 것이 아니라 몸 전체로 돌아앉았다. 그때 본 그의 얼굴, 아니 그건 마치 살아 있는 등신불을 연상했다. 불교에서는 신심 깊은 승려들이 간혹 소신공양(燒身供養)(불에 태워 공양 하는 것)을 한 다음 자신의 죽은 몸에 금물을 씌워 신자들과 부처님에게 공양한다고 했던가. 눈 한쪽에 안대를 한 것으로 보아 실명한 것 같았다. 화장실에서 얼핏 본 것과는 또 다른 얼굴이었다. 온통 높은 열기로 쏘인, 마치 뜨거운 불에 데어 오징어처럼 안쪽으로 오그라진 두 팔과 얼굴, 눈 썹 자리에 고양이 눈썹처럼 검게 긴 털이 나 있어서 그것이 머리카락을 이식한 것이라는 걸 금방 알 수가 있었다. 살이 타 오그라들었는지, 그 기세에 목이 줄어들었는지 거기에 또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고 불에 쏘여 그나마 한쪽 눈동자는 정기를 잃어 초점이 없었다. 그러나 사내는 의외로 친절했다. 그런 얼굴의 소유자가 내는 음성은 탁하고 음침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비교적 깨끗했다. 다소 탁음이 섞이긴 했지만 그것은 불길에 성대가 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얼굴로 보아서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으나 목소리는 중년이었다. 난장이나 곱사등이는 키만 가지고는 나이를 알 수 없지만 얼굴에 묻어 있는 주름을 가늠해서 나이를 판별할 수 있듯이 사내의 목소리에서 연륜을 느낄 수 있었다. "잘 오셨소." 그는 대뜸 '습니다'란 말 대신 '소'란 하대어를 썼다. 나의 얼굴에서 연륜이 들어 있지 않음을 느꼈던 것이다. 사내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 손이 나에게 미치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쑥스럽다는 듯이 손을 거두었다. "힘든 걸음 하셨소. 나는 천연 기념물이오. 그저 보다시피 이런 꼴입니다." 사내는 자학인지 유머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던졌다. 사내는 오그라든 조막손으로 곁에 있는 담배를 몇 개비 빼 들었는데 그 손으로는 한 개비만 뽑아 들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한 개비를 간신히 두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다른 손가락의 마디가 타 버렸기 때문에 두 손가락이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다. 내가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그의 손길이 무척 따뜻했다. "고맙소. 내가 이 꼴이 된 후 내 손을 잡은 것은 노형밖에 없었소." "영광입니다." "영광일 것까진 없소." '피는 모두 따뜻하죠" "내용이 중요하단 말이지요. 통하는 데가 있는 것 같소." 나는 가능하면 그의심기를 거슬리지 않게하기 위해 그에게 맞는 수식어를 고르려 애썼다. "고맙소,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노형 말씀대로 내용이 중요하오." 그는 자신의 칭찬을 이야기 속에서 은근히 곁들였다.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은 살아갈 희망이 있다는 것과 같다. 눈썹이 모공 근처까지 타 버렸는지 그 자리에 머리카락을 꼽아 놓아 조금 발란스가 맞지 않아 우스꽝스러웠다. 방안은 생각보다 정돈이 잘되어 있었다. 물론 이 루시아 씨가 손을 본 것이겠지만. 책장에 세계 문학, 성서 주해, 성인 사전, 대영 사전, 법구경(法句經) 등의 사전류와 철학 서적 등이 빽빽하게 꽂혀 있어 그의 지적 수준을 짐작케 했다. 나는 사내의 얼굴을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보았다. 타 들어간 코의 부위를 보아서 친구인 이팔석의 모습 같아 보였다. 그러나 목소리가 달랐다. 이팔석이 이 지경을 당했다면 그 역시 자살을 했거나 어딘가 잠적을 했을 것이라 믿었다. 빛이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인 손바닥만한 창문가에 새장이 한 개 걸려 있었는데 새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새장을 바라보자 사내가 물었다. "새를 좋아하오?" "예" "사람들은 새를 좋아하죠. 그러나 아름다운 새의 소리를 들을 때만 좋아하죠. 마치 꽃이 어떻게 피고 어떻게 지는가 하는 것보다 꽃이 피어 있는 시간만 즐기죠. 그리고 새들이 자기를 위해 노래를 한다고 생각하죠. 또 그렇게들 믿고 있소." "그럼 새들이 지저귀는 것은 노래하는 것이 아닌가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요. 새들 편에서 생각하면 그럴 것 같진 않소. 자신을 가둬 놓은 사람들에게 노래를 할 턱이 있겠소. 자유를 위한 절규, 성질 사나운 새들은 저희들끼리 사람들에게 욕질을 할 것이오." 사내가 말했다. 나는 사내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물었다. "새를 키웠습니까?" “심심해서 키웠죠. 그러나 날려 버렸습니다. 십자매였소." "누군가 다시 잡을 텐데요." "그건 잡는 사람의 몫이죠." 사내는 담배를 꽁초까지 태웠다. 골초였다. 하긴 저 지경이 된 사내가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곤 담배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이 루시아에게 이야기 들었소. 작가라고요?" "습작 단계죠." "많이 썼소?" "잡문이나 시시껄렁한 것들이죠." 그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뭔가 마음을 상한 것 같았다. "나는 겸손을 가장한 오만 같은 것은 싫소." 무척 화난 얼굴이었으나 얼굴 표정만으론 그의 마음을 읽을 수가 없었다. 겉보기에 화난 얼굴이었으나 그게 아니었다. 웃으면 입 주위가 이상하게도 화난 표정이 되는 것이었다. 정상인의 반대였다. 그러니까 그가 화난 얼굴이 웃는 얼굴이었다. 사내가 설명을 부연했다. "오해할까 봐 말씀드리는데, 지금 나는 무척 즐겁소. 화난 얼굴이 내겐 기분 좋은 얼굴이오. 웃는 얼굴을 몇 번씩 만들어 보려 했으나 실패했소." "걸작품입니다." 나는 이 말을 하고서 얼른 후회했다. 그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역시 화가 나 있었다. "그래서 더러‥‥‥“ 사내가 처음으로 웃었다. 성난 모습이었다. "가끔씩 외출도 하셔야죠." "특별한 일이 없어서 그냥 있소. 모처럼 대화를 나눌 분이 있어서 기분이 좋소." 책상 위에 원고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무슨 글을 쓰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전문적인 문필가 같지는 않았다. 물론 전문자를 붙여 줄 만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소설이나 그 외 문필업을 하는 사람 같지는 않았다. 잠시 침묵이 오가다가 사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소개가 없었소. 변진택이라 하오. 이런 곳에서는 세례명으로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소. 시몬이라고 하오." "시몬?" 그가 말했다. "흔한 이름이죠. 베드로 다음으로 많소." "성서에도 시몬이란 분이 몇 명 있죠?" "나는 그냥 시몬이 아니라 키레네의 시몬이오." "처음 듣는데요. 키레네의 시몬?" "그렇소. 키레네 사람 시몬이죠. 그때 당시에도 시몬이란 이름이 흔했던 모양이오." "성서에 무지해서." 사내가 설명을 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타의에 의해서 대신 지고 간 사람이죠. 키레네란 지방에서 구경 왔다가 로마군에게 강제로 찍혀 대신 십자가를 졌소. 재수 없는 사람이죠." "어쩐지 선생님의 말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 같다는 생각이 들었소. 그러나 지금은 아니오. 그저 그렇다는 이야기요." 그는 시니컬하게 웃었다. 자포자기한 웃음이었다. "궁금할 것 같아서 먼저 내 소개를 하겠소. 병인년 생이오. 마흔 둘 됐소." "열 살 위이십니다." "그래요. 같은 연배 정도로 알았는데." "어떻게 해서 ‥‥‥“ “물론 말씀드리죠. 선생의 눈에 호기심이 매달려 있소 차차 알게 될거요." 다시 사내가 말을 이었다. “제 얼굴이 노형에게 몹시 혐오감을 줄 것이오. 그 점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오." "사람은 얼굴을 갖고 평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 "그건 공자님의 말씀이요. 누구나 공자나 소크라테스 같은 말을 하지만 그 사람들처럼 되지 못하오." "자학인가요?" "우리 좀더 정직해집시다. 그것이 우리 대화의 질을 높이는 방법일 수도 있소. 사실 난 거울이 싫소.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내 얼굴이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그것이 현실이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소. 차츰 내 얼굴에 정이 들게 되었단 말씀이오. 얼굴에 붙어 있는 눈, 물론 한쪽 눈을 실명했지만 이 눈 갖고서 모든 것을 볼 수 가 있소. 아름다운 산과 강, 바다, 그리고 모든 사물, 움직이는 모든 것들, 생명이 있는 것과 생명이 없는 모든 것들, 그것들을 볼 수 있는 것이오. 나는 그것이 고맙소. 그리고 들을 수 있는 귀와 맡을 수 있는 코가 고맙소. 신이 준 얼굴을 잘 간수하지 못한 내 책임이 클 뿐이오." 그는 필터까지 타 버린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다시 담배 한 대에 불을 붙였다. 줄담배였다. "사람은 참 간사하오.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든 불이 증오스러웠지만 이 불을 보시오. 나는 이 불을 이용하고 있소. 처음엔 이 꼴이 되고부터 신(神)의 존재가 의심스러워지더군요. 나를 이렇게 만든 신을 원망했소. 이런 얼굴로 성당이나 교회나 절을 찾는다고 할 때 그들이 받아 주겠소? 사람들이 모두 피할 것 아니겠소. 그들은 모두 신이 만든 얼굴을 훼손하지 않고 규격대로 간수한 사람들뿐이오. 그래서 나는 일찌감치 그곳에 나가길 포기했소." "선생님 나름대로 하느님을 만들었다는 이야긴가요?" "일테면 그렇죠." 그는 웃었다. "하느님이란 분은 반드시 성당이나 교회 안에만 있지 않다고 생각했소. 노형, 나에겐 거울이 하나 있소. 이해하기 힘들 테지만‥‥‥“ "거울?" “마음이란 거울이오. 물가에 비친 얼굴이 보기 싫어서 물을 없애 버린다고 그 물이 없어집니까? 바다가 싫다고 바다를 없앨 수 없지 않소. 세상이 싫다고 촛불을 끄고, 낮이 싫어서 밤에만 활동한 적도 있었소. 바로 노형이 보았던 그날 밤도 그랬소.” "어젯밤 이야기입니까?" "노형과 마주친 날 나는 세숫물을 버리려고 했소. 이 방에는 하수구가 없소. 노형을 놀라게 해서 미안하오." 그는 내 앞에서 십자 성호를 그었다. 사과한다는 표시였다. 그의 뒤틀리고 꼬부라진 손가락이 간신히 가슴팍까지 올라왔다. "노형의 얼굴에 쓰여 있소. 내 이야기를 듣고 싶을 거요. 특이한 인생을 살아오지 않았나, 혹은 이처럼 되기까지에는 어떤 신의 저주 같은 것이라도 있지 않았나. 그에 대한 호기심 같은 것이겠지. 선생은 소설가라고 했소?" "습작 단계죠." "글을 쓴다는 것이 중요하지, 글을 쓰는 사람의 직위가 문제가 되진 않소. 혹시 노형이 쓰고 있는 소설 속의 또 다른 주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런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소." 그가 말을 중단하고 나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이런 엄청난 일을 당한 사람만이 갖는 혜안(慧眼) 같아 보였다. 그가 다시 물었다. “자서전 아시죠?" ”예,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고 나서 남길 것이 뭐 있겠소. 그래서 개중의 영리한 사람들은 자신의 탐탁치 않은 생애를 후손들에게 글로써 남기려 하는데, 이것이 문제요. 글줄깨나 쓰는 문사들을 동원해 값비싼 수고비를 주고 탐탁치 않고 졸렬한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묘사 시키고 있소. 그런데 말이오." 그는 잠시 뭔가 생각하는듯 눈을 감았다. 구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변진택 씨는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신(神)학교에 입학했다. 어려서부터 성당에서 복사를 섰고 주일 학교 시절부터 신앙생활에 열성을 보여 주임 사제의 눈에 들었다. 그는 평소 생각한대로 신부가 되어 많은 헐벗은 영혼을 구하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신학교 시절, 학급에서 반장을 했고 성적 또한 상위권에 속했다. 그의 지도신부도 장래 훌륭한 사제가 될 것이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갖는 기대가 컸다. 까다롭고 견디기 힘든 규율과 재미없는 철학, 그리고 교과 과정을 따른다는 건 일반인으로서는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그는 오직 사명감과 신앙을 갖고 이를 극복할 수가 있었다. 사제로서 갖춰야 할 정결, 청빈, 순명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선 영적인 수준이 필요했다. 세속적인 생각을 갖고 하느님과 일체가 되는 삶, 그것은 자기를 버림에 있었다. 오직 하느님 위주로 하는 삶, 그분의 뜻이 무엇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그분이 의도한 것이 무엇인가를 잘 파악해서 사는 삶을 가져야 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다는 겸손의 삶이란 수행하기가 힘들었다. 그러기 위해선 성인전(聖人傳)을 많이 읽어야만 했다. 불란서 아르스 지방의 성인 비안네 신부의 철저한 청빈과 계율, 그리고 자기 정진에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그는 소년 시절에 한때 복사를 섰던 성당을 찾아가 봉사를 하기도 했다. 방학 동안에 주임 사제의 미사를 도와주고, 또 청년회나 그 밖의 신심 단체에 참여해 장래 신부로서 갖춰야 할 자질을 하나씩 키워 갔다. 물론 다른 동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본당에서의 생활은 신학교보다 훨씬 자유로워서 좋았다. 옷장 한 개와 나무 침대 하나, 책장 하나, 이것이 신학교에서 그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새벽 다섯시 반에 기상해서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었는데 하루의 일과가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첫 강의가 시작되는 9시 이전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는데, 이것 역시 교육의 하나였다. 하느님과 자신과의 성스런 대화로서 이 시간이 그에게는 무척 지루했다. 4년 동안에 1백60학점을 이수해야 학사 자격증이 나오고 2년을 더 다녀야 신부가 될 수 있었는데 신학교를 졸업하고 신부가 되지 못하면 오히려 일반 대학 졸업만도 못한 대우를 받게 된다. 그는 주말이면 으례 시내로 외출을 하거나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 대폿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방학을 맞아서는 자신이 소속됐던 성당의 보좌 신부 방에서 아예 침식을 같이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 제대에 마련할 꽃을 구하기 위해 성당 입구의 꽃가게에 들렀다가 왼쪽 다리가 불구인 20대 중반의 여자와 알게 되었다. 묵주 반지를 왼손가락에 낀 것으로 보아 그 성당의 신자임을 첫 눈에 알 수가 있었다. 얼굴이 하얗고 눈동자가 까매 조금 이국적인 용모인 이 여자는 혼혈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필리핀이나 월남 계통의 서양인들과의 혼혈아들이 간혹 이런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제대(祭臺)위에 놓일 꽃을 사기 위해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고, 그녀는 그가 성당에서 후원하는 예비 신부라는 걸 알고 호감을 갖고 대했다. 세례명이 테레사인 그녀는 비록 중학교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독서를 많이 해서인지 아는 것이 많았다. 세계 문학 전집을 비롯해 일반적인 상식이 풍부해 그와의 대화에도 빈곤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는 변진택 학사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또 새로운 사실을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변씨는 그 여자의 상냥한 말투와 친절에 이제까지 신학교 생활에서 맛보지 못한 해방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이 일반적인 감정을 점차 넘어선다는 것이 불안하기조차 했다. 그는 이것이 흔히 말하는 세속적이고 천박한 감정인가 생각하고 가능하면 그녀를 뇌리 속에서 지워 버리려고 애썼다. 그는 속으로 선배들이 말하는 마장(魔障)(마귀의 심술)이 아닌가 생각했다. 마장이란 불교에서 수도승들에게 가끔씩 나타나는 악의 장난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저런 아름답고 귀여운 여자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이 앞으로 신부로서의 사랑의 예행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 했다. 그 여자는 신학생 변진택 씨에게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성직자의 생활에 관심을 갖고 물었다. 그녀는 신부와 목사, 그리고 일반적인 성직자의 생활에 대해 집요할 정도로 질문을 했다. 물론 그녀의 질문은 일반 신자라면 누구나 관심을 갖고 있는 것들이었다. "목사는 결혼을 하는데 신부는 왜 독신이어야 합니까? 성경에 신부는 결혼하지 말라고 쓰여 있나요" 이런 대답하기 난처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녀의 말에는 다소 장난기가 있었으나 신체적인 불구와는 달리 쾌활하고 명랑했다. 신체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열등의식 같은 것을 그녀에게는 전혀 엿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역시 농담처럼 대꾸해주었다. "신부가 장가를 가서 처자식을 거느리면 사제관이 붐빌 텐데, 성당 마당에 빨랫줄도 걸어 놔야 하고, 그게 보기가 좋아요? 장가를 가게 되면 가족들 걱정 때문에 사목(司牧)하는 시간을 빼앗기게 되지요. 신자들을 생각하고 자기 성찰(省刹)을 하게 되려면 독신이어야 하지요." "그런데 신부님들도 장가를 가는 곳이 있다던데요?" "성공회나 그리스 정교회 같은 곳이죠." "독신으로 살려면 고생이 많을 텐데요?" "우리도 결혼을 하긴 합니다." 그는 그녀를 놀라게 해주기 위해 농담을 했다. "그래요?"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줬다. "결혼을 한다고요?" “예, 하느님과 결혼을 하지요."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보조개가 옴폭 들어가는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았다. 한쪽 다리가 불구였지만 그녀의 영혼은 티없이 밝고 깨끗하다고 여겨졌다.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건 여간 힘들지 않을 텐데요?" 그 말에 그는 다소 엄숙하고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자기 성찰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항상 겸허히 반성하고 내 아픔보다 남의 아픔에 관심을 갖고‥‥‥" 그녀는 변진택 씨의 말에 또 다른 난처한 질문을 했다. "그럼 저같이 불구자인 불쌍한 사람도 사랑할 수 있나요?" 그녀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뭔가 그에게 갈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럼요." 변진택 씨는 그녀에게서 꽃 몇 송이를 사 가지고 성당의 제대로 나아가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았다. 특히 그 여자의 말을. "저같이 불쌍한 사람도 사랑할 수 있나요?' 그녀의 말은 자신에게 하는 진정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또 이제까지 자신이 그녀에게 한 말 모두가 자기 확신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위선적인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인생의 에피소드이다. 신부가 되기 위해 거쳐 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하다.' 변진택 씨는 제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고 실행할 수 있는 굳센 힘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고 세속적인 유혹에 휩싸이지 않는 것이 무엇안가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러나 제대 앞에 서 있는 그분은 침묵이었다. 십자가에 달린 채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 결코 입술을 열지 않았다. 그는 몇 번씩 거듭 기도를 했다. '주여, 저의 가녀린 영혼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저의 영혼이 감당할 수 있는 굳센 힘을 주옵소서. 악에 빠지지 않도록 이끌어 주소서. 세속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저의 발을 떼어놓지 말게 하소서. 주여, 주여, 주여!' 그러나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소리는 아무런 답변도 없었다. 그는 생각해보았다. 도대체 무엇이 악인가? 그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악이 될 수 있는가? 지나친 규율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그것이 오히려 악이 아닌가? 그날 밤 보좌 신부 옆에서 잠을 자면서 이 사람이 갖는 일생이란 과연 최고선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했다. 그날 밤 꿈결에 그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예쁘고 가련한 얼굴이 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무엇인가 끝없이 갈구하고 있었다. 잠을 깨 보니 얼굴은 온통 땀으로 얼룩져 있었다. '내가 왜 이럴까.'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문을 외웠다. '우리를'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그는 입술을 깨물면서 다짐했다. '그 여자는 사탄이다. 사탄은 때로는 예쁜 얼굴을 하고 나타날 때도 있다. 사탄이 그 여자의 마음속에서 손짓하고 있다.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 그러나 입으로는 그렇게 외치면서도 자꾸만 그녀의 얼굴이 떠르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이튿날 그는 안 되겠다 싶어서 주임 사제에게 고백 성사를 청했다.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세요." "그 여자로 인해서 자꾸만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자유스러워지고 싶습니다." "그 여자에게 집중되는 걸 피하세요. 사제는 여러 양들에게 골고루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갖게 되면 둘 다 형평을 잃어 잘못을 범할 수가 있습니다. 마귀는 빈틈을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기도 백 번을 외우고 성체조배 다섯 번을 보속으로 드리겠습니다." 그는 주임 신부의 말에 따라 주의 기도 백 번, 아니 천 번을 되풀이 했다. 그리고 성체조배를 하기 위해 하루 종일 제대 앞에서 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악에서 구하소서를 백 번 이상 되풀이했다. 그리고 제대 앞에서 그분의 고통에 젖은 모습을 보면서 기도를 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그분의 고통스런 모습에 그 여자의 아름다운 얼굴이 얹혀져 있었다. 까만 눈동자, 상큼한 얼굴, 왼쪽 다리가 짧은, 그래서 그리스도처럼 된 다리, 그 여자는 웃을 듯 말듯, 그러나 비웃고 조롱하는 모습이었다. '나를 따르라, 너는 성직자이기 이전에 더욱 진실한 인간이 돼야 한다. 성직자인체 하지 말아라. 그것은 위선이고 죄악이다.' 그는 눈을 씻고 다시 한번 십자가상의 그분의 침통한 얼굴을 바라 보았다. 그분의 다리 한쪽이 추켜져 올라가 있었다. 분명 그녀의 다리 한쪽이었다.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너에게는 성소(聖召)가 없다. 네가 갈 길은 따로 있다.' 그는 이것이 자신을 시험하는 악의 세력이며 손길이라고 생각 했다. 자신을 준엄하게 꾸짖어 보았다. 그는 수없이 많은 화살기도 (짧은 기도)를 바쳤다. '이 불쌍한 영혼이 유혹에 빠져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를 유혹에 빠져들게 하지 마시고 자유롭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그분의 침묵은 여전했다. ' 왜 그럴까?' 사제가 되기 위해선 넓은 포용력과 한 개인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는데 자꾸만 집착이 앞서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버리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이 저주스러웠다. 물건에 대한 집착, 애욕에 대한 집착은 결국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키는 것인데 그 집착이 떠나지를 않는 것이다. 그는 돌려서 생각해보았다. 그 여자는 신체장애자이다. 따라서 그녀의 결혼 상대자는 반드시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마땅한 사람이 흔하지가 않다. 그러나 반드시 그가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누군가 그녀의 육체적인 결함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꼭 나라야만 한다는 법은 없는 것이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따로 있다. 이제부터 그 여자를 멀리 해도 내 자신이 갖는 양심에 훼손은 없을 것이다. 내가 가야 할 길은 너무나 멀고 또 험하다. 그러나 또 다른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그 여자를 외면하고 사탄이라 죄악시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불쌍한 영혼을 더욱 외롭게 하는 것이다. 소외되고 버림받은 모든 사람들을 외면하고 자신의 신앙만을 고집하는 것은 이기주의자이다. 울고 있는 사람, 가련한 영혼에게 따스한 손길을 준다는 것은 그분이 원하는 것이다. '너희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변진택 씨는 이런 생각으로 몇 날 밤을 뜬눈으로 지샜다. 그 결과 자신은 사제가 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변진택 씨는 다시 담배 한 대를 물었다. 내가 물었다. '정말 그 여자가 불쌍한 영혼의 소유자였을까요?" '내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소. 그 여자를 그냥 내버려 됐어야 했소." "후회하시는군요." "후회하지는 않소. 진정한 인간이 되길 원했소. 검은 염소는 검은 염소의 길이 따로 있다는 걸 알았소." "검은 염소의 길이라니요?" 그가 물었다. "마지막 심판 때 검은 염소와 횐 염소를 구분해서 세운다고 하오. 검은 염소는 죄인을 의미하고 흰 염소는 의인을 말하오. 나는 결국 검은 염소에 불과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던 것이오." 내가 다시 물었다. "신학교를 그만두었나요?" 그 물음에 그는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정기가 빠져나가 약간 공허해진 눈동자에 물이 괴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부가 되기 전에 인간으로서의 생활에 더 충실해지는 것이 정직한 삶이란 걸 깨달았소. 그분이 원하는 건 신부가 아니었소. 신부가 되었어도 후회할 것이라 생각했소." 변진택 시몬 씨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노형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지금의 처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후 신학교 동료들은 수군댔지요. 한 마리의 검은 염소가 또 생겼다고요. 그러나 검은 염소가 있어야지 횐 염소가 빛이 나지 않겠소." 그 후 변씨는 꽃집 여자와 가까이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토로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웬일인지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학교를 그만두었다는 말에 그녀는 크게 실망을 했다. "나는 댁이 신부가 될 줄 알고 호감을 가졌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년을 원했던 것이 아닙니다. 이제야 말하지만 나는 댁한테 동정 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어요. 첫 결혼에 실패 했다 뿐이지, 세상 물정도 잘 알고, 내가 원하는 행복도 찾을 수 있어요. 댁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녀는 변씨에게 '댁'이라는 거친 호칭을 썼다. 변씨는 자신의 판단이 잘못 되었음을 알았으나 이미 늦었다. 변씨의 생각을 알아차린 그의 집에서는 급기야 큰 소동이 벌어졌다. 그를 지도했던 신부는 더 큰 실망을 했다. 그를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탓이었다. "지금도 늦지 않아. 학장님께 잘 말씀드리지. 순명의 길이 자유의 길이다. 그 분의 뜻을 따라야 한다. 젊은 날의 일시적인 치희(稚戱)가 되길 빈다. 오늘 밤 제대 앞에서 함께 기도하자.“ 그러나 그는 돌아가지 않았다. 밤새도록 기도를 했으나 응답은 없었다. 변씨가 내게 말했다. "그 여자가 말했소. 기왕에 당신이 결정을 내렸으니까 도움이 필요할 거예요. 그 도움은 내가 주겠어요. 내가 당신이 내린 결정에 원인 제공을 한 셈이 됐으니까요. 그러나 아무래도 순탄치는 못할 거예요. 그 책임은 결코 내가 지지 않겠어요." "한번만 도움을 주겠다는 말이군요." "그렇소. 그 여자는 짧게 생각했던 것이오." 신학교를 중퇴한 그는 갈 곳도 없었고 가진 돈도 없었다. 집에서도 내쫓긴 상태였다. 그래서 여자에게 간곡히 말했다. "받아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될 줄 몰랐나요?" 그녀의 얼굴은 전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녀가 냉정하고 사무적인 대답을 했다. "일단 그러기로 하죠." 변씨는 그 여자의 꽃집에서 기거를 하게 됐다. 엄밀히 말하자면 더부살이였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연탄을 갈고 집안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시장에 나가 반찬거리를 사 왔다. 그녀의 꽃집 옆으로 가끔씩 그의 신학교 동료들이 지나갔다. 그 때마다 그는 그들을 피해 숨었다. 그녀는 가끔씩 그에게 물었다. "후회하죠?" "아니오." 그러나 그때쯤 그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그녀와 함께 자고 먹으며 고용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즐거움은 이미 행방 불명이 되었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찾아왔다. 아들의 이런 한심한 꼬락서니를 보고 나서 한숨을 쉬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넌 신부가 됐어야 했어. 이젠 다 틀렸지. 아가씨, 이 아이를 타일러서 내보내 줘요." 그러나 변씨는 듣지 않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잠깐 동안 생각에 잠겼던 변씨가 윤인수에게 말했다. "그 여자의 한쪽 다리 역할을 하려 했던 것이오. 그러나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소. 그 여자는 누구보다 영리하고 사리판단에 앞선 사람이었소." 그는 그 여자의 충실한 고용인이었다. 도매 집에서 꽃을 받아 오기 위해 손수 용달차 운전을 했고 그녀를 싣고 드라이브를 하기도 했다. 이것이 그가 갖는 일상적인 행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꽃을 싣고 오는 도중에 난폭하게 모는 화물차를 피하기 위해 핸들을 쥐다가 차가 전복되어 화재가 발생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가 정신을 차려 헤집고 나오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가 깨어난 곳은 시립 병원 중환자실이었다. 그의 온몸은 붕대로 감겨져 있었고 손과 발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곳이 지옥인 줄만 알았다. 각종 사고로 들어온 중환자들의 단말마적인 신음 소리가 지옥에서 들려오는 비명 같았기 때문이다. "여기가 어딥니까?" 그러나 아무도 답변해주지 않았다. 여기 저기 피투성이 환자들이 붕대를 싸맨 채 누워 있었고 간혹 들것에 실려 영안실로 가는 시신들이 눈에 뜨이기도 했다.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모와 형제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때 그는 처음으로 후회를 했다. 신학교를 중도에 포기하고 자신을 합리화시킨 채 이를 행동에 옮긴 것이 하느님에 대한 무서운 죄악이고 그 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으로 위안을 했다. '이건 단순한 사고야. 누구든지 이런 사고를 당할 수가 있지. 이런 일에 신과 하느님을 끌어들인다는 건 억설이야.' 그는 사고에 대해 결코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다시 깨어 보니 그의 곁에 꽃집 여자가 조심스럽게 앉아 있었다. 그 여자는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그것이 자기를 위한 걱정의 눈물인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한 눈물인지는 그의 얼굴로 봐서는 구분이 되질 않았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대요. 뭔가 잘못됐어요. 처음부터‥‥‥“ 그녀는 울음을 죽였다. "어떻게 된 거요?" "차차 알게 될 거예요." 그 소리를 끝으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잠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마취가 풀리자 온몸에 형언할 수 없는 통증이 왔다. 무서운 통증이었다. 조그만 육신에 이렇게 무섭고 끔찍한 통증이 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온몸의 마디마디에서, 혈관과 혈관 사이에서, 말초 신경까지 통증이 마치 함성처럼 몰려왔다. 도저히 그 고통만은 감당할 수 없었다. 아파서 소리를 지르면 통증은 위협하듯 더 심해졌다. 그는 신에 대한 원망을 했다. 육체와 함께 육체 속에 깃든 고통을 만들어 준 신에 대한 원망을 했다. 간호원이 진통제를 주사했으나 진통제가 고통을 다스려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며칠이 지났다. 중환자실은 통제 구역이라서 방문자가 드물었다. 그러나 유독 자기만이 방문자가 없는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은근히 병문안을 올 사람들을 꼽아 보았다.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 간혹 자신의 불행을 전달받은 성당 교우나 과거 신학교 시절의 동료들, 주임 사제 등, 그러나 한 명도 찾지 않았다. 그는 진정으로 외로움을 느꼈다. 잊혀진 사람, 그렇다. 그것은 죽음이나 다를 바 없었다. 열심히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뜬 다면, 우선 호적에서 이름이 사라지고, 묘비에 이름이 새겨진다. 그것도 얼마 동안이다. 그 이름은 그를 사랑하던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 이름과 관계있는 자로서 추억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질지 모른다. 그것도 잠시뿐이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 죽어 사라질 때 그의 이름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잊혀져 버린다. 물론 집의 문패는 남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러자 그는 무서움과 공포에 몸을 떨었다. 가끔씩 꽃집 여자가 걱정스럽게 곁에 앉아서 말상대를 해주었다. "내 얼굴은 어떻게 되었소. 거울을‥‥‥“ 그러나 그녀는 거절했다. "거울이 소용없게 됐어요." "무슨 말이오?" "얼굴이 없어졌어요." "얼굴이 없어지다니?" "타버렸어요." "타다니?" "사라져 버렸어요. 거울에 비칠 얼굴이 없어졌어요." 그는 그 말에 손으로 얼굴을 만져 보려 했으나 움직여지지 않았다. 온몸이 두터운 붕대로 몇 겹씩 감겨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 눈이 잘 뜨여지지 않았다. 그 눈에서 빛이 없어져 버렸다. "눈은?" 한쪽 눈이 없어져 버렸어요." 그는 한쪽 눈을 찡긋거려 보았다. 그러나 감겨지질 않았다. 마치 물고기의 눈처럼. 그때마다 통증이 왔다. 꽃집 여자가 자리를 피했다. 그는 꽃집 여자도 언젠가는 다시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간호원이 왔다. "거울을 좀‥‥‥“ 그러나 거절을 당했다. 그가 계속 애원하자 간호원이 불쌍하게 여겼는지 자기 손 거울을 꺼내 주었다. "놀라시면 안돼요." 그는 거울 속에 든 자신의 얼굴을 보자 비명을 질렀다. "으악! 얼굴이!" 자신의 얼굴은 거기 없고 온통 붕대로 동여맨 이상한 얼굴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눈과 귀와 코도 행방불명된 채‥‥ 얼굴 가운데 구멍이 뚫린 것은 코가 있던 자리이고 코는 불길에 달아나 버렸다. 구멍 뚫린 공간으로 콧물인지 진물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질질 흐르고 있었다. 커다란 둥근 빵과 같은 얼굴이었다. 그는 소리쳤다. "내 얼굴은 누가 빼앗아 갔습니까? 누가 내 얼굴을 빼앗아 갔습니까? 하느님, 당신의 뜻을 어겼다고 해서 이런 형벌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인간답게 살려고 한 것이 죄입니까? 당신은 무서운 하느님입니다." 그는 절규를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사람은 없었다. 변씨가 내게 말했다. "그때부터 나는 얼굴을 잃어 버렸소. 눈물도 나오질 않았소. 한심한 생각이 들었소. 눈물샘이 타 버려 눈물이 막혔다는 것이오. 갈고리 같은 손, 그러나 더욱 무서운 것은 통증이었소. 정신의 아픔은 화려한 것이란 걸 느꼈소. 나는 이것이 지옥이라고 생각했소. 의사들은 나를 연구 대상으로 알고 있었소. 인간 생명의 한계에 대한 연구에 나는 한몫을 했던 것이오. 실험실의 몰모트 처럼 화상 입은 피부를 땜질했다가 떼버리길 수십 차례 했던 것이오. 보통 사람들은 이 정도의 화상이라면 죽는다고 하는데 죽지 않는 내가 신기했던 것이지요." "그 후 꽃집 여자는?" "이틀에 한번 정도 왔소. 그때 그 여자는 임신 4개월이었소. 생각 같아서는 그 아이를 출산하길 은근히 기대했었소. 그러나 그 기대가 깨진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소." 변씨는 1년여 동안 전국의 큰 병원으로 옮겨 다니면서 성형 수술을 받았다. 성한 살을 떼어서 죽은 살을 메우는 수술이었는데 모두 실패했다. 조각가가 석고를 붙였다 떼었다 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다보니 성한 살이 한군데도 없게 되었다. 미완성의 작품, 그것이 현재 그의 몰골이었다. 병원에서의 마지막 날, 의사는 그에게 말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 여자는 1개월 후에 나타났다. 심각한 얼굴로 보아서 나름대로 큰 결단을 내려야겠다는 것 같았다. 그녀가 병상에 누워 있는 그에게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죄악인 줄 알고 있지만 아기를 지워 버려야겠어요. 이유는 묻지 마세요. 다 아실 테니까.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녀는 이 말 한마디를 끝으로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죽음보다 더 큰 절망을 느꼈다. 폐인이 된 몸, 그녀와 가졌던 잠깐 동안의 즐거움, 그 즐거움이 그에겐 마약이었다고 생각했다 그 얼마 후 난생 처음 보는 그녀의 친척 오빠가 된다는 사람이 찾아왔다. 주민등록을 확인하지 못해서 모르긴 하지만 직감에 오빠 같진 않았다. "자네에겐 미안하지만 동생을 잊어 주게. 십자가가 무거울수록 천상에서 받는 영복이 크다네." 오빠라는 자가 그의 환부를 친절하게 더듬어 보더니 그 여자를 뇌리 속에서 씻어 버리도록 강요했다. 그리고 종이와 사인펜을 앞에 내밀었다. 미리 작성한 각서에다 서명을 하라는 것이었다. "여기에다 사인만 하면 되네. 당분간 치료비는 대겠네." "구태어 이런 것까진 필요 없소." 그가 각서를 들여다보고는 선선히 사인을 해주었다. "됐어, 잘했네." 사내는 만족한 웃음을 짓고 병실을 나섰다. 병원 생활 1년 만에 지금의 형태로 퇴원을 해서 그의 집으로 실려왔으나 예측한 대로 분위기는 냉랭했다. 홀어머니는 그의 화상 충격으로 그가 병원에 있는 도중 타계 했다. 동생 둘이 있었으나 흉한 물골의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불청객이 들어온 것처럼 그를 박대했다. 어서 빨리 이 괴물이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생각들이었다. 남의 이목이 두렵고 창피했기 때문이다.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이런 불행을 당한 것은 하느님을 외면하고 내 위주대로 살았기 때문일까? 욥처럼 저주를 받아서일까? 그러나 욥은 나중에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회복될 원래의 얼굴이 없어져 버렸다. 결국 나는 세상을 사는 동안 남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비참하게 살다가 죽게돼 있다.' 변씨는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사면초가였다. 그의 두 동생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가재 눈을 뜨고 찾아와 협박성 발언을 했다. '형, 우리를 원망하지 말아요. 우린 절대로 형과 함께 살 수가 없어요. 이건 어디까지나 형의 책임이예요. 우리가 나가든지 형이 떠나든지 빨리 결정해야겠어요." 그는 힘없이 말했다. "좋다. 나를 이 세상에서 영원히 격리시킬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리로 보내 다오. 무인도도 좋고, 소록도도 괜찮다. 어느 기도원이라도 좋고." 그들은 무인도를 비롯해 기도원 등을 차례로 알아보았으나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그 역시 자살을 생각하고 약방을 찾아다녔다. 그를 본 약사들은 문을 닫아걸고, 때로는 문둥이인 줄 알고 동전 몇 닢을 주어 내쫓기 일쑤였다. "요즘도 문둥이가 있나?"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늘 이랬다.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그를 피했다. 밧줄에 목을 맬까 생각했으나 천장이 높을 뿐 아니라 오그라든 팔이 미치지가 않았다. 자신의 불구는 그의 자살까지 방해했던 것이다. 자살을 하기 위해선 온전한 육체가 필요했던 것이다. "자살도 못하고, 살 희망도 없고, 다닐 수도 없고, 할 일도 없고, 그러나 하느님은 생명이 있는 내게 더 이상 가혹한 짐을 주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소. 할 일이 꼭 있는 것만 같았던 것이오." 그는 장남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몫으로 돌아온 전답 마지기가 법률적으로 보장돼 있었다. 그것이 최후의 보루였다. 그것을 동생들에게 결코 양보할 수는 없었다. 그는 동생들에게 자신의 몫으로 된 집과 전답과 약간의 동산을 소유할 것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 돈으로서 영원히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을 곳을 물색했다. "그래서 이곳을 택했습니까?" "그렇소." "지금도 변 선생님의 이런 모습을 만든 신을 원망합니까?" "내 탓이었소. 더욱 겸손해지라는 그분의 뜻을 알았던 것이오. 그 여자는 이미 용서했소. 나는 그분의 뜻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던 것이오. 내 얼굴이 그걸 증명하고 있소.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 의미를 알아야 할 것이오." 나는 다시 한번 그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 보았다. 어쩐지 성인(聖人)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일그러진 성인의 모습, 남의 불행을 대신해 질 수 있는 성인의 모습 같았다. 이 사내에게 요구를 한다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꺼이 해줄 수 있다고 생각 들었다. 내가 일어서려 하자 그가 악수를 청했다. "언제든지 오시오." 나는 그날 상경하지 않았다. 그가 며칠 있는 동안 변씨는 예상대로 한번도 외출을 하지 않았다.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이 루시아의 안내가 필요 없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가 떠나기 전날 밤이었다. 나는 혹시 이 사내가 친구인 이팔석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팔석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또 사내와 똑같은 경험을 했다면 사내와 흡사한 모습으로 이 장소에 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만나는 나를 변씨는 무척 반겼다. 그의 일그러지고 처참한 얼굴에 웃음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보아도 그가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를 알 수 있었다. 이상하고 야릇하고 기분이 나쁜 웃음이었지만 그는 이웃음이야 말로 진정한 인간의 웃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떠나시려오?" 사내가 물었다. 아마 사내는 자기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내 이야기가 재미있소? 남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는 사람은 사실은 그 자신 재미없는 인생을 산 사람이오. 안 그렇소? “ 사내의 말에 나는 공감을 했다. 문득 까마득히 잊었던 '사제의 길'이 생각났다. 사내가 실패한 '사제의 길', 그러나 사내에게 내색은하지 않았다. "어떤 일을 하시려오?" 그는 아마도 내가 작가라고 했으니까 자기를 상대로 한 소설을 쓰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세상살이가 그렇소. 잘 참으시오." 나는 이 사내에게 자신이 이곳을 찾게 된 동기를 이야기해도 무방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변씨가 기억을 더듬듯이 한동안 묵묵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3개월쯤 전이었소. 이씨 성을 가진 중년 사내가 찾아온 적이 있었소. 함께 있게 해 달라는 이야기였소. 그러나 거절했소. 나는 나 하나로서 족한 것이오. 그 사람은 자기 나름의 삶이 남아 있었소." 그렇구나, 이팔석이 오긴 왔었구나. 그가 이 장소에 왔었다는 사실 하나만 갖고서도 그의 생존이 확인된 셈이었다. "그리고 사내는 떠났소. 이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을 거요.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나는 변씨에게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언젠가 이팔석을 만나서 들으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변씨는 오늘따라 무엇을 쓰려는지 책장 위에 원고지를 수북이 쌓아 놓고 있었다. "글을 쓰시고 있군요." "변변치 못하오." "어떤 글을 쓰시려고?" "남들이 쓰지 않았던 것이오." "그런 글이 있습니까?" "그래서 찾고 있소. 함부로 쓰진 않소. 그런 글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훼손시키고 상처를 입혔는가, 마치 무슨 진리가 있는 것처럼. 그건 일종의 사기요." 그가 담배를 찾는 표정 같아서 얼른 담배 한 개비를 손에 쥐어 주었다. "불도." 그가 성냥까지 그어 댔다. "나는 처음 불을 싫어했소. 불이 원수로 생각된 적도 있었소. 그러나 원수가 되어선 아무 것도 안 되오. 그것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오. 마치 몸에서 빠져나간 이빨보다 틀니를 사랑하듯 말이오." "무슨 글입니까?" 그가 물었다. "그건 비밀이오." 그는 무척 피곤하게 보였다. "쉬시지요." "괜찮소. 선생 같은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즐겁소." 그는 숨이 가쁜지 간간이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되진 않겠지만 노형도 누구에게 버림받을 때는 이곳을 찾으시오. 사람은 갈 곳이 있어야 하오. 나는 앞으로 버림받은 사람들 모두를 받아들이려 하오." "꽃동네 같은 곳을 만들려고?" "그보다는 적은 규모요," "쓰려고 하는 글은 그들의 이야기입니까?" "그렇소. 그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우리 시대의 선과 악의 존재를 설명하려 하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이야기요. 톨스토이가 이미 썼지만‥‥‥“ 내가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손이 따뜻했다. 가슴도 따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결론짓듯 말을 맺었다. "그러나 사랑의 이야기겠지요. 하긴 나처럼 문둥이 같은 사내가 사랑의 이야기라니 좀 웃기지요. “ 그가 한 손을 내밀었다. "노형은 남은 시간이 많소. 외로워질 때가 더 많을 거요. 사람의 영혼이 가득 찼을 때 사람은 외로워지는 거요. 배고픔을 느끼는 사람이 건강하듯이‥‥‥“ 내가 일어서자 사내는 잡지 않았다. "잘 가시오." 그가 기도원을 나설 때 눈이 내렸다. 강원도 날씨는 믿을 만한 것이 못됐다. 구름 몇 점만 보이면 눈이 오고 비가 내렸다.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 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불과 한 시간 남짓 지나서였다. 버스는 한 시간 후에 오게 돼 있었다. "불이야, 불. 기도원이야!" "기도원 가건물이야. 신나 통에서 불이 났어!" 그가 몸을 돌려 기도원으로 뛰어올라 갔을 때 기도원의 가건물은 이미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버스 정류장과 기도원 사이는 1킬로쯤 되었다. 나는 숨 가쁘게 뛰어가면서 변씨를 생각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소방차는 아직 도착하기 전이었다. 할머니 몇 사람이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고, 이 루시아가 물동이로 연신 불길 속에 물을 퍼붓고 있었다. 불길은 목조 건물 전체를 향해 번지고 있었다. "원장님은?" 이 루시아가 울상이 되어 말했다. "저 안에 계세요." 이때 목조 건물이 넘어지면서 짐승의 형체 같은 괴물이 2층에서 뛰어내렸다. 원장이었다. 그는 무슨 힘이 있었던지 중풍 걸린 할머니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위험해요!" 그러나 사내는 불이 붙고 있는 담벼락을 걷어찬 채 방으로 들어가 할머니를 업고 나오다가 쓰러졌다. 사내의 등 자락에 불이 붙어 있었다. 몇 명의 할머니들이 물동이에서 물을 쏟고 있었다. 사내는 너무 지쳤는지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때 양평 쪽에서 소방차 소리가 났다. 원장의 옷에 붙은 불은 껐지만 그는 일어나지 못했다 소방차가 도착하자 건물의 진화 작업이 시작되었으나 건물은 이미 반 이상이 타 버렸다. 이때 소방관 한 명이 쓰러져 있는 사내의 몸 에 기계적으로 호스로 물을 뿜어댔다 "완전히 꺼야 돼!" 그의 몸에선 김이 모락모락 났다. 소방관이 그를 부축해 일으키다가 그의 얼굴을 보고는 '으악‘하며 비명을 질렀다. '이거 사람인가, 무슨 사람이 이렇게 생겼어요?" 놀란 소방관이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는 질식해서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소방관이 쏜 물줄기를 맞은 그의 ·몸은 물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내가 얼른 소방관이 부축한 사내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다. '이 사람이 진짜 세례를 받았구나. 불세례를 받은 다음에 물세례를‥‥‥“ 그러나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못했다. 어쩐지 자신이 신의 뜻을 함부로 해석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끝 약력 1944년 서울 용산 출생 1969년 중앙대 문리대 국문과 졸업 시와 시론 소설 당선(1990년) 한국문인협회회원 |
첫댓글 소설을 읽으면서도
너무나 현장감 넘치는 문장력이라
저도 모르는 사이 수필로 착각했습니다
읽는 내내 작가가 선생님이신 줄 착각하고
제 마음 속으로 우리 선생님은
이렇게 발바닥으로 소설을 쓰시는 구나 감탄을 했습니다
그 흉칙한 남자와 나누는 대화체에서
선생님의 담력과 사랑이 대단하시다고 생각하며
또 수필이라고 착각을 했지 뭐예요 ㅎㅎㅎ
정말 연민이 가는 주인공입니다
마지막 글 3행에서도 또 한번 놀라게 하셨습니다
선생님 화이팅
'이 사람이 진짜 세례를 받았구나. 불세례를 받은 다음에 물세례를‥‥‥“
그러나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못했다. 어쩐지 자신이 신의 뜻을 함부로 해석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졸작을 읽어줘서 고마워요.주인공 변씨는 오래전에 세상 떠난 실제 주인공이에요.시간과 장소만 옮겼지요
고마워요
숨을 죽이며 읽었습니다!
네-실제 인물이라 이토록 가슴에 여운으로 남는 작품입니다
제목도 너무 좋구요
역시 관록이 있으신 분의 작품입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그분의 아픔을 상상하며
자꾸만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