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31(일) 11:00~ 주일예배
♡만민의 하나님♡
성경: 창세기 17장 1~5절
찬송: 280, 439, 428, 370
설교: 이 경준 목사님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창세기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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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도 합니다. 곧 약속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약속의 하나님은 그들 민족만을 택하시고 그들 민족만을 위하여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생각 속에 있는 것이지요.
창세기 12장 1절로부터 3절까지를 보면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 기거하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라고 하시며 복 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75세 되던 때였습니다.
그 후로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12명의 아들을 낳음으로 이스라엘의 열두지파가 형성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여종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이라는 아들도 있었고, 창세기 25장 1절부터 3절을 보면 후처 그두라를 통하여 더 많은 자손을 얻게도 됩니다. 그들이 여러 민족을 형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자손으로 창세기 21장 12절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들만 약속의 자손이라는 선민의식 속에서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17장 19~20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시지만, 이스마엘과 아브라함의 후처들로부터 생산된 민족들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민의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고 또 그 민족들이 하나님을 알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구원 사역에 쓰일 도구로 일찍이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 약속된 씨에서 예수그리스도가 태어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약속의 의미입니다. 결코,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만의 하나님이 되시려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마지막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그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들만 선택된 민족이라는 잘못된 특권의식 속에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절대 계명은 어기며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 때문에 중동지방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물 위에 뜬 기름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공동의 적이 되었던 것이지요. 잘못된 선민의식이 그 땅에 평화를 깨뜨렸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교회들도 이스라엘 민족처럼 구원받은 공동체라는 선민의식 속에서 살면서 오히려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잘못을 많이 저지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 사역에 쓰실 도구로 우리를 택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선교라는 사명을 순기능으로 이행하기보다는 역기능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설립 목적은 선교를 위함입니다. 그리고 선교를 위하여 모인 공동체가 예배를 위하여 사용하는 곳이 교회당입니다. 그런데 한 지역에 이미 교회가 세워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옆에 어떤 목회자가 건물을 지어 들어온다면 그것은 선교를 목적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선교보다는 먼저 세워진 교회의 성도들을 유혹하여 가로채 보겠다는 의도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손쉽게 얻을 성도들과 그들에게서 드려지는 헌금을 탐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화려하고 더 큰 교회당을 지어서 작은 교회들을 무너트리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행동을 하는 목회자들이 하는 행위를 선교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교회세습과 교회재정을 횡령하는 짓들, 그들이 올바른 신앙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들은 선교의 현장을 끼리끼리만의 리그(league)의 장으로 생각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야곱의 이름의 뜻은 속이는 자입니다. 그는 실제로 속이는 자가 되었고, 그 일로 말미암아 가족을 등지고 외삼촌인 라반의 집에서 종살이까지 하게 됩니다. 기독교는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를 속인 야곱에게 어떻게 되었던 정당성을 주며 이야기합니다. 속이는 자이든지 거짓말과 술수를 통하여 재산을 늘린 자이든지 상관없이 재산을 늘리고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에만 포커스(focus)를 맞추어서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생각을 하실까요?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생각을 하셔서 정당성이야 어떻게 되었든지 그들을 위해서 일하실까요?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양 떼를 성실하게 치지 못한 자입니다. 신풍나무로 괴상한 짓을 해가면서까지 자기의 양 떼를 늘려갔습니다. 삼촌의 양 떼를 도둑질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옆에 교회를 세우고 또 화려한 교회를 지어서 작은교회를 무너뜨리는 자들의 취지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고도 하나님이 자기의 하나님이기를 원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의 모든 것을 돌보아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둑질까지 도와주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삭과 야곱에게도 함께하시며 이스라엘의 그 수 많은 반역과 범죄에도 참으신 것은 그 씨에서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야곱은 에서에게 장자의 권한을 빼앗았어도 에서보다 더 큰 재물을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에서가 이삭의 재산을 물려받아 야곱보다 더한 거부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기근을 피하여 애굽 땅으로 이주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야곱의 자손들은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게 됩니다.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은 모든 민족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려는데 목적이 있으셨습니다. 결코, 그들만의 하나님이 되시고자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시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만민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제는 우리만의 하나님이시라는 편견에서 벗어날 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만으로 만족하는 하나님이셨다면 왜?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게 하시고, 광야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당하게 하시며, 어려움을 겪게 하셨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쓰임 받을 도구로 택함을 받았을 뿐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도 아직 믿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택함을 받은 도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명을 다하여야만 합니다. 우리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처럼 나중에 버려지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그리스도인이 다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창세기17:5)고 말씀하십니다. 이제까지 이스라엘의 민족의 존귀한 자로 살아가던 아브람이 온 세계의 영적 아버지인 아브라함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이스라엘 백성 같은 선민의식으로 믿지 아니하는 형제자매를 사랑으로 섬기지 못하였음을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우리도 이전에는 몸과 마음으로 온갖 죄를 범하였던 죄인이었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으로 용서함 받았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늘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여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의 향기 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우리가 이제까지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죄를 회개합니다. 재확산되고 있는 코로나가 멈추게 하시어 온전한 일상이 회복되게 하시고,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지구촌 모든 분쟁지역의 분쟁이 멈추게 하시어 전쟁과 재난으로 지치고 상처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평강과 기쁨으로 위로하시고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도우소서!
이 땅에 세우신 지도자들이 먼저 우주만물의 주인이시며 생사화복의 주관자 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게 하시고, 깨끗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정직하게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봉사하게 하시며, 국민들은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여 봉사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에게 지혜와 명철과 독수리 날개 치는 새 힘을 주시어 합력하여 이 어려운 난국을 잘 극복해 나가게 하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올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