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즉명(有仙則名)
-궁벽한 산도 그곳에서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평화롭고 아름다운 산이 될 수 있다 -
필자는 UFC를 보며 “더 쳐라, 더 패라“ 하는 일부 넋 나간 사람이나 자기들의 야욕을 위해 오늘도 포화에 무고한 사람들이 쓰러져 가고 있는데 두꺼운 얼굴을 하고 TV, 인터넷에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는 XX같은 인간은 마주하기 싫다. 또한, 오직 승리를 위해서 격이 없는 말과, 음모와 험담으로로 싸움질하는, 브로커와 술사들이 판을 까는 까마귀 우는 골에 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에 이런일이“라는 프로에서 선한 일로 우리들이 소홀하기 쉬운, 그리고 후미지고 험난한 일이어도 마다하지 않는, 의인을 보면 흐뭇해진다. 이게 어찌 필자만의 생각일까. 그런데 이 프로에서도 점점 기기묘묘, 형형색색, 재기발랄 등 너무 감각적으로 튀거나 보통 사람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일들을 조명하고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은다. 이렇게 흥미 위주로 끌어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어 아쉬운 마음을 떨쳐내기 쉽지 않다.
설령, 공영방송이 아닐지라도 방송의 공공성은 언제나 상수로 작용하고 있다. 수많은 광고와 홍보성 기사들로 넘쳐나는 지금”금전만능”과 ”먹고사니즘“이 득세를 하는 세상이 되버린지 오래다. 우리 인간이 지켜내야 할 순수와 품격, 맑은 영혼들은 자꾸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의구심에 펜을 들었다.
<안개>
1.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 2.이 읍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 중 략>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위에서 취객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총신을 겨눈다.상처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따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끔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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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기형도 시인. 1960년경기 옹진군 출생.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 당선 등단. 중앙일보 기자.1989 서울 종로 파고다 극장 소주 한병 든체로 쓰러져 사망.(뇌졸증.28세)
뜬금포 마을에서 구장 선거가 치러졌다.
민심, 여론, 추정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우리를 놀라게 한다.
마을의 미래를 위해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과
바르지 못한 선거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백주에 ”세상에 이런 일도“라는 프로에 나올법한 쇼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다수가 쥐도 모르고 새도 모른다며 의아해 하는 것을 보면...,
선거에 참여한 그들만이 대충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들은 대의(代議)를 대의(大義)로 착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마 교주의 가르침에 집 팔고 논 팔아서 영생헌금을 하며 광신도가 되어가는 줄 모르고 오리무중(五里霧中) 안개속을 헤메고 있지는 않는가.
세 번씩이나 치른 구장 선거, 흔드는 세력이나 끌려가는 사람 모두 시트콤 찍는 배우들처럼 마냥 웃으며 즐기는 것처럼 비추어지고 미스테리한 고을의 대명사로 되어 가는 줄 모른다면 안타깝다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까.
양심과 영혼을 어디론가 출장을 보내고...,
미국의 사회운동가 사울 알린스키는 그의 저서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에서
”인간의 정신은 과연 우리가 옳은지를 살펴보는 내적 의심이라는 작은 불빛을 통해서만 빛날 수 있다“고 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사회를, 마을을 만들어 갈 대표성을 가진 자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과연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선택해서 잘 가고 있는지,
그 올바른 선택을 위해 사사로움을 떨쳐내는 용기를 가졌는지...,
물론 거주하는 사람들의 격에 따라 마을이, 사회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결국 사람, 즉 마을의 구성원이 올곧은 정신과 깨어 있는 양심으로 대표성을 가진 자들을 잘 선택해야 하고 옳지 않은 선택에 대한 견제와 감시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했다.
만약, 달콤한 냄새를 쫒아서 우리가 지녀야 할 영혼과 격을 내팽게 친다면 똥파리 떼와 무엇이 다른가?
산부재고 유선즉명(山不在高 有仙則名)
수부재심 유용즉령(水不在深 有龍則靈)
위 싯구는 당나라 때 ‘시호(詩豪) 유우석(劉禹錫, 772~842)이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록산의 난 이후 안후이(安徽)성 변방으로 좌천된 그의 직책은 통판(通判)으로 한직에 불과했다.
관사(官舍)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음에도 “누추한 집이지만 덕의 향기로 감쌀 것(斯則陋室惟吾德馨)”이라고 ‘누실명(陋室銘)’을 통해 자신을 명산의 신선과 명천(名川)의 용에 비유하면서 스스로 위로했다고 전해진다.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산다면 명산이요
물이 깊지 않아도 용이 머문다면 명천이다.
인향만리(人香萬里)
순수하고 맑은 심성의 사람 향기가 그리워진다.
우리 사람사는 동네
목전의 利보다
사람의 향기가 먼저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