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생긴 일 - 귀딜 지음, 신선영 옮김, --문학동네
도서관에 첫 발을 디디는 아이치고 엄마 손에 이끌려 오지 않는 아이들은 드물다. 그런 아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열람실을 휘 둘러보고 책꽂이에서 만화책이라도 꺼내서 보는 아이와 만화책조차도 보지 않는 아이이다. 그런 아이들이 몰라보게 변해간다. 아마 이 아이들도 엄마 손에 이끌려서라도 어린이 도서관에 오지 않았더라면 ‘도서관에서 생긴 일’의 주인공 기욤처럼 책읽기는 죽을만큼 싫어하고 글쓰기는 죽기보다 싫어할 지도 모른다. 국어시간에는 팔베개를 하고 납작 엎드려 코까지 골면서 졸기 일쑤일지도 모르고 철자법이며 맞춤법에는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지도 모른다.
그랬던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고르고, 밤 새워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책 속 세상에 빠져 들기도 하고, 그 감동이 저절로 우러나와 또래 친구들에게 책을 권하기도 하고, 두께가 꽤 두꺼운 책도 서스럼없이 펼쳐들어 주인공과 함께 웃고 울기도 한다.
기욤은 앞집 할머니 집에서 나온 짝사랑하는 소녀 ‘이다’를 따라 도서관에 가게 되고 책읽기를 싫어하지만 '이다'를 위해 함께 마법서를 찾으려고 책 속으로 여행을 한다. 도서관에서 사랑도 하고 모험도 하고 깨닫기도 한다.
'이다'는 열다섯 살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검은 망토를 목에서 발목까지 뒤집어쓰고, 유행에 한참 뒤떨어진 굽 높은 무도화를 신은, 작은 두 발을 가진 여든네 살 먹은 앞집 할머니의 어릴 적 환영이다.
어린 시절엔 책을 멀리 했지만 젊은 시절 도서관 사서로 일했고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할머니는 그 꿈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제는 도서관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마법서를 찾으면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밤마다 여행을 한다.
청소년들에게는 필독서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홍당무」,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어린왕자」를 차례차례 만나면서 주인공들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찾아나서기도 한다. 간신히 찾아낸 검은 색 가죽표지의 마법서에는 그야말로 실망스럽고 놀랄 일 뿐이다. 아무 것도 쓰여져 있지 않은 온통 백지인 ‘그냥 노트’에 불과했다. 그 빈 공간에는 모든 작가들이 작품으로 채우기 전에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이다’는 깨닫지만 이미 백발 호호할머니가 되어버린 이다는 청소년 시절 그 때 그 시절에 느껴야 할 감수성을 느낄 수 없어 후회한다.
할머니가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꼭 소녀적 나이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던 이유가, 지금 와서도 되돌리려고 절망적으로 매달리고,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더 늦기 전에 되돌아 가고 싶은 시기가 청소년 시기이다. 도서관 사서였을 때 소홀히 한 책도 청소년을 위한 책이었고 책과 치마를 바꾼 실수를 한 것도 청소년 시기였다.
그때는 그런 책이 그렇게 재미있는 책인 줄 몰랐다. 유행에 따르고 자기 몸 가꾸기에 여념이 없어 책을 통해 느껴야 할 사랑 ‧ 열정 ‧ 모험을 놓쳐버린 것이다. 지금 그런 책을 읽기에는 순수한 영혼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안타까운 것이다. 청소년 시기에 가져야 할 책 읽는 습관과 좋은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는 순간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항상 시간이 지난 뒤에 깨닫고 후회한다. 하지만 그 소중한 시기엔 그런 점을 미치 깨닫지 못하고 지나간다. 요즘과 같이 다양한 볼 거리와 매체들이 널려있는 시기에는 더더욱 활자와 가까이 하기 어렵다.
때늦은 책읽기는 삶을 바꿔놓지 못한다고 한다. 뒤늦은 책이란 '황홀한 정원'이 아니라, '무미건조한 텍스트'일 뿐이라고 한다. 이 책은 '아이들의 책읽기와 글쓰기'를 주제로 쓴 소설로, 1996년 크로노 청소년 문학상을 받은 귀딜은 이 책에서 청소년기의 혹은 아이였을 때 책읽기가 왜 중요한지, 또 얼마나 중요한지를 유명 작가의 작품과 주인공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에서 나오는 명작들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꼭 읽혀야 하는 책인지에 대한 고민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먼저 산 어른, 그것도 어린이 도서관 사서나 관장이 우리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것이 그 때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