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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 조선시대의 관인(官印) 대부분이 동제·철제인장인 점과 선국사의 역사적 정황으로 보아 상서원에서 주조한 관인으로 추정되며, 보관함은 없어졌으나 동인은 자획의 손실이나 탈락 없이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동인의 규격은 가로 6.3㎝, 세로 7.8㎝, 두께 1.5㎝의 장방형 동판에 높이 6.5㎝, 두께 0.7㎝의 상면이 말각된 손잡이가 달려 있다. 인면(印面)에는 ‘蛟龍山城僧將印(교룡산성승장인)’이라는 7자가 종서의 전서체로 새겨져 있다. |
▶ 동래부사 정현덕
정현덕의 자는 백순, 호는 우전으로, 본관이 동래 라는 견해와 초계라는 견해가 있다 . 철종 1년(1850)에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리로 출발하였다. 철종 13년(1862)에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대원군이 집권하자 그의 심복으로서 동래부사에 임명되었다. 원래 동래부사는 대일외교의 실무의 책임을 갖고 있기에 정현덕은 평소의 소신인 위정척사의 정책을 폈다. 일본의 메이지유신 후 조선에 대한 유신을 통고하기로 결정하고, 1858년 12월 관인을 파견 서계를 전달하였다.이후 일본은 조선과의 새로운 국교를 열기 위해 수 차례의 교섭을 펼쳤으나 단호히 거부하였다. 조선정부와 동래부의 강경한 태도에 일본에서 정한론이 대두케 하였다. 부사는 일본의 침입을 염려하여 동래읍성을 수축케하여 군의 강화를 기하였다. 이어 이조참의를 역임하였으며 대원군이 실각하자 그도 따라 파면되었 다. 1882년 임오군란으로 대원군이 재집권하자 형조참판으로 기용되었으나 대원군이 실각 함으로써 파면되고 유배된 뒤 유배지에서 사사되었다.
▶ 동래부사 정현덕공덕비
1872년 국청사내에 위치한 공덕비로서 국청사의 평윤스님이 동래부사 정현덕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웠는데 1982년 연못보수공사이후 사라진 것을 대웅전 오른쪽 요사채옆에 두동강이 난채로 있는 것을 발견하고 원래의 위치에 세웠다.
▶ 정현덕부사의 영세불망비
물금취수장을 지나 용화사로 가는 길이 그 유명한 '황산베리끝', 바로 황산잔도(黃山棧道)다. 잔도는 험한 벼랑에 선반처럼 달아서 낸 길. 서부리 촌로들은 "워낙 험해 장꾼들이 한 잔 걸치고 지나다가 자주 빠져죽기도 한 곳"이라고 말한다. 그곳에 동래부사 정현덕부사의 영세불망비가 생각나서 같이 실어본다.
▶ 지장보살 본원 삼층석탑
연못에 들어있는 지장보살 본원 삼층석탑의 지장보살님은 미륵보살이 오시기 전까지 중생을 제도하시는 대승불교의 보살이다.이런 대원본존을 명부전에 가둬버린 세파불교를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없다.
▶ 연못과 석탑에 얽힌 사연
맑은 샘물이 솟아나와 오래전부터 마을의 식수원이었던 연못에는 하루에도 수십 차례 주민들이 물을 길어왔다고 한다. 이곳 주민들 중에는 소, 닭, 염소 등 가축을 키워 살아가던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법당에서 염불을 하면 전쟁 중 죽어간 사람들의 신음소리와 날짐승 울음소리가 나서 도저히 기도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고민 끝에 당시 창봉스님과 주지 혜성스님이 그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맑은 약수가 샘솟는 연못을 확장하고 한가운데 지장보살 보원 3층탑을 세워 자연석으로 연못을 아름답게 조경하였던 것이다. 석탑을 조성한 이후 신기하게도 신음소리와 울음소리가 그쳤고 영령들의 원혼을 달랠 수 있었다고 한다.
★ 다른 전설 이 연못 남쪽에는 약수 우물이 솟았는데, 위에는 더운 약수가, 아래에는 찬 약수가 나왔다는 영험한 우물로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는 전설이 지금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연못을 따라 돌길을 걸어 올라가면 산세에 안겨 있는 아름답고 소박한 사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오랜 세월을 견딘 흔적을 간직한 작은 일주문을 지나면 대웅전과 한켠의 요사채, 고풍스런 멋이 그대로 담긴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
▶ 지장보살본원탑과 일본석등의 잘못된 만남.
전쟁!!. 특히 일본에 의해서 억울하게 죽은 무주고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지장보살본원탑,불교의 어떤 교법엔들 차별이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무명으로 인하여 아직은 분별심이 남은 이들에대한 배려 또한 자비가 아닐런지...일본신사에 있는 일본석등(카스가 석등)은 한국석등의 귀꽃(꽃 모양의 장식)이 있어야 할 자리에 일본식의 궐수(蕨手/와라비테: 곡선 끝이 고사리의 끝처럼 말려들어간 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중대석이 주로 원형으로서 중간에 띠를 두르고 있고 간주석이 8각이 아닌 6각이며,화사석도 해와 달 등의 문양이 들어가 있어서 우리 석등과 차이가 난다.
▶ 국청사의 요사채
▶ 국청사 대웅전
▶ 국청사의 요사채
▶ 국청사 소대
각종 재의식에서 소대의식(燒臺儀式)에서는 재를 지낸 도량장엄을 위해 마련한 각종 장엄물과 영가를 위해 준비한 금은전(金銀錢) 및 옷 등을 소대(태우는 곳)에서 ‘하늘의 입’이라 여기는 신성한 불(火, Agni)에 넣어 사룬다. 법회의 공덕을 지금까지 정성껏 받들어 모신 법회의 공덕으로 영가께선 아미타불께서 계신 서방 극락세계로 왕생케 되신 바 길 떠나시는 영가를 전송하는 의식을 하는 장소이다. 이곳에 소대를 보면 영남범패중 통범소리 대가이신 용운스님이 주석하신 절이라서 한번 더 보게된다.
▶ 양산 불광사의 소대
소대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실례로 드는 곳이 양산 불광사의 전탑양식의 특이한 소대이다.이곳은 청봉스님이 주석하시는 절로서 천도재의식에 관해서는 유명한 사찰이다.그런데 이곳의 소대는 특이해서 재의식을보러가서 찍어 놓은 사진을 올린다.
▶ 절충장군 김시색의 영세불망비
절충장군 김시색은 1907년 8월 한일 신협약에 의해 군대해산이 되기까지 금정산성을 관리한 마지막 별장으로서 금정진관아를 들어오는 입구에 백성들이 산성의 수장인 별장을 기리는 영세불망비를 세웠다.
▶구비누비탐방대 오늘 탐방 끝!!
김태영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많은 걸 배우고 알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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