呂祖曰(여조왈) 徵驗亦多(징험역다) 不可以小根小器承當(불가이소근소기승당) 必思度盡衆生(필사도진중생) 不可以輕心慢心承當(불가이경심만심승당) 必須請事斯語(필수청사사어)
- 번역 : 여동빈 큰 스승은 말하였다. 나타나는 효험 역시 다양하고 크다. 뿌리가 얕고 그릇이 작은 이는 계승하여 감당할 수 없다. 모든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생각을 하여야 한다. 또한 가볍고 게으른 마음을 지닌 자는 계승하여 감당할 수 없다. 반드시 청하여 배우고 실천하려는 이에게 이 말을 전해야 한다.
- 참뜻 : 여동빈 큰 스승은 말하였다. 넋의 작용을 그치고 얼의 작용을 일으키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효험은 다양하고 큰 영향을 세상에 미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자격이 부족하고 그릇된 의지를 가진 이에게 참뜻을 전달하여 감당하게 할 수 없다. 반드시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또한 가볍게 생각하고 게으른 이에게 참뜻을 전달하여 감당하게 할 수 없다. 반드시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고 배운 것을 실현하려는 이에게 참뜻을 전해야 한다.
靜中綿綿無間(정중면면무간) 神情悅豫(신정열예) 如醉如浴(여취여욕) 此爲遍體陽(차위편체양) 金華乍吐也(금화사토야)
- 번역 : 고요함에 들어 고요함이 끊어짐 없이 끝없이 이어지면 신이 크게 기뻐하여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하고 따뜻한 물 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과 같기도 하다. 이와 같이 되면 온몸이 신과 같이(陽) 되어 황금꽃이 순식간에 토하듯이 드러난다.
- 참뜻 : 단절없이 넋의 작용을 그치고 얼의 작용을 끝없이 일으키면 으뜸가는 신과 같은 상태가 되어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토하듯이 순식간에 튀어나온다.
* 이와 같은 상태를 도덕경에서는 홀황(惚恍)이라고 부르는데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언급된다.
視之不見(시지불견) 名曰夷(명왈이) 聽之不聞(청지불문), 名曰希(명왈희) 搏之不得(박지부득) 名曰微(명왈미) 此三者(차삼자) 不可致詰(불가치힐) 故混而爲一(고혼이위일) 其上不皎(기상불교) 其下不昧(기하불매) 繩繩不可名(승승불가명) 復歸於無物(복귀어무물) 是謂無狀之狀(시위무상지상) 無物之象(무물지상) 是謂恍惚(시위황홀) - 보지만 보이지 않는 것(視之不見)을 일컬어 이(夷)라 하고, 듣지만 들리지 않는 것(聽之不聞)을 일컬어 희(希)라 하며, 잡지만 접촉되지 않는 것(搏之不得)을 일컬어 미(微)라 하는데, 이 셋은 밝혀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합하면 하나가 된다. 그 위가 밝지 못하고 그 아래는 어둡지 않고 무한하여 무물로 복귀한다. 이러한 상태를 일컬어 언어도 없고(無狀之狀) 형태도 없는(無物之象)상태라 하고 이러한 상태를 일컬어 홀황(惚恍)이라 한다. (참조 : 노자의 도덕경, 노자, 이창성 역, 나무의 꿈, 2017년, p59~60, 제14장)
既而萬籟俱寂(기이만뢰구적) 皓月中天(호월중천) 覺大地俱是光明境界(각대지구시광명경계) 此爲心體開明(차위심체개명) 金華正放也(금화정방야) 既而遍體充實(기이편체충실) 不畏風霜(불외풍상) 人當之興味索然者(인당지흥미삭연자) 我遇之精神更旺(아우지정신갱왕) 黃金起屋(황금기옥) 白玉為台(백옥위대) 世間腐朽之物(세간부후지물) 我以眞氣呵之(아이진기가지) 紅血為乳(홍혈위유) 七尺肉團(칠척육단) 無非金寶(무비금보) 此則金華大凝也(차즉금화대응야)
- 번역 : 오만 소리가 그치고 모두 고요해지면 밝은 달이 하늘 가운데 떠 있고 온세상(大地)은 모두 빛으로 이루어져 있고 밝은 경계임을 알게 된다. 이와같이 되면 몸과 마음이 열려 밝아지니 황금꽃이 바로 피어난다. 이미 온몸이 튼튼해지면 바람과 서리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남들이 접하여 흥미를 잃는 것이라도 내가 그러한 것을 접하면 의식(精神)은 더욱 왕성해진다. 황금으로 집을 짓고 백옥으로 대를 쌓더라도 세간의 썩어 없어질 물건에 대해서 나의 참된 기는 껄껄 웃어버린다. 붉은 피는 우유로 바뀌고 칠 척밖에 되지 않는 육체 덩어리는 금과 보배가 아닌 것이 없게 된다. 이것이 곧 황금꽃이 크게 엉긴 것이다.
- 참뜻 : 넋의 작용이 완전히 그치고 얼의 작용이 왕성해지면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드러나고 으뜸가는 신이 으뜸가는 신의 마음에서 드러나 온세상이 으뜸가는 신의 뜻으로 이루어져 밝지 않음이 없음을 안다. 이와같이 되면 의식이 으뜸가는 신과 같이 되어 인식할 수 있는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뚜렷이 드러난다. 몸이 튼튼하면 찬 바람과 서리를 두려워하지 않듯이 남들이 접하여 두려워하거나 흥미를 느끼지 못 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얼의 작용이 일어나는 의식은 두려워하지 않고 흥미를 느끼며 더욱 왕성하게 활동한다. 사람들은 부귀공명을 좇아 살아가지만 얼의 작용을 일으키는 의식은 그러한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 하고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일에 집중한다. 넋으로 생긴 마음은 결국 정화되어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되어 어떠한 생각을 하더라도 으뜸가는 신의 생각이 아닌 것이 없다. 이는 드러난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크게 엉긴 것이다.
第一段是應觀經(제일단시응관경) 日落大水行樹法象(일락대수행수법상) 日落者從混沌立基(일락자종혼돈립기) 無極也(무극야) 上善若水(상선약수) 清而無瑕(청이무하) 此即太極主宰(차즉태극주재) 出震之帝也(출진지제야) 震為木(진위목) 故以行樹象焉(고이행수상언)
- 번역 : 1단계는 무릇 관경(觀經)에서 말한대로 해가 떨어지고 큰 물이 흐르고 나무들이 늘어선 것과 같은 모양이다. 해가 떨어진다는 것은 세상이 생기기 이전의 상태를 따라 터를 세우는 것인데 이와 같은 상태를 가리켜 경계가 없는 상태(無極)라고 한다. 높은 곳의 선함(上善)은 물과 같아서 맑고 허물이 없다. 이것이 곧 태극(太極)이 주재하는 상태로 우뢰(震)를 일으키는 제왕과 같다. 우뢰(震)는 나무가 되기에 늘어선 나무(樹)와 같은 상태라고 말한 것이다.
- 참뜻 : 1단계는 의식이 으뜸가는 신에게로 돌아가 으뜸가는 신이 의식을 주관하는 상태이다. 의뜸가는 신에게로 돌아간 상태를 경계가 없는 상태, 즉 무극(無極)이라고 부르고 으뜸가는 신이 의식을 통해 세상에 강림한 상태를 가리켜 태극(太極)이라고 부른다.
* 上善若水(상선약수)는 도덕경 제8장에 나오는 말이기에 도덕경을 보면 상선(上善)의 참뜻을 알 수 있다.
‘上善若水(상선약수) 水善 利萬物而不爭(수선이만물이부쟁) 處衆人之所惡(처중인지소오) 故幾於道고기어도)’
번역 : 높은 곳의 선함은 물과 같다. 물의 선함은 만물에 이로움을 주지만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도 머물기에 도(道)에 가깝다.
위 문장을 수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상선(若水) ≒ 물(水) ≒ 도(道)
즉 상선은 단순히 선함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으뜸가는 신의 상징적 표현일 따름이다.
* 후천팔괘에서 진은 동쪽을 가리키고 오행에서의 목 역시 동쪽을 가리킨다.
* 불교의 한 지파인 정토종에서 중시하는 경전으로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을 가리킨다.
七重行樹(칠중행수) 七竅光明也(칠규광명야) 西北乾方(서북건방) 移一位爲坎(이일위위감) 日落大水(일락대수) 乾坎之象(건감지상)
- 번역 : 일곱 겹으로 늘어선 나무요 일곱 구멍에서 나오는 빛의 밝음이다. 서북쪽은 건(乾, 하늘)의 방위인데 한 자리를 옮기면 감이 되는 모습과 같다. 해가 떨어지고 큰 물이 흐른다는 것은 건괘(乾)가 감괘(坎)로 바뀌는 모양이다.
- 참뜻 : 드러나는 표상은 으뜸가는 신의 마음인데 이는 으뜸가는 신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입으로 맛을 보기 때문이다. 으뜸가는 신은 양(陽)으로 표시할 수 있기에 건괘의 형태라고 말 할 수 있다. 반면에 인간을 통해 강림한 으뜸가는 신은 감괘의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드러난 육체는 사람이기에 음(陰)으로 표시되지만 감추어진 의식은 으뜸가는 신이기 때문이다.
坎爲子方(감위자방) 冬至雷在地中(동지뢰재지중) 隱隱降降(은은융융) 至震而陽方出地上矣(지진이양방출지상의) 行樹之象也(행수지상야) 餘可類推矣(여가류추의)
- 번역 : 감괘는 자(子)의 방위에 해당되는데 한겨울에 우뢰가 땅 속에 꼭꼭 숨은 채 한없이 힘이 커지고 있는 모양이다. 진괘(震)에 이르러서야 밝은(陽) 모습이 땅 위에 나온다. 이러한 형상을 늘어선 나무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나머지 것들은 유추하여 알 수 있다.
- 참뜻 : 으뜸가는 신이 의식에 강림하면 으뜸가는 신의 뜻이 마음에 생겨난다. 으뜸가는 신의 뜻은 언어나 표상으로 드러날 수 있는데 으뜸가는 신의 뜻이 세상에 드러남은 으뜸가는 신이 세상에 나왔음을 가리킨다.
* 자(子)는 십이지지(十二地支)의 하나인데 방위로는 북쪽이고 음양에서는 양을 가리키고 계절로는 겨울이며 달로는 11월을 가리키며 시간 상으로는 밤 11시에서 0시 59분까지를 가리킨다. 천간(天干)과 십이지지가 결합하면 육십갑자(六十甲子)가 되고 천간과 십이지지의 각 글자들이 년월일시의 형식에 따라 결합하면 사주(四柱)가 된다.
第二段即肇基於此大地為冰(제이단즉조기어대지위응) 琉璃寶地(유리보야) 光明漸漸凝矣(광명점점응야) 所以有蓬臺而繼之(소이유봉대이계지) 佛也(불야) 金性既現(금성기현) 非佛而何(비불이하) 佛者大覺金仙也(불자대각금선야)
- 번역 : 둘째 단계는 곧 이에 터를 두어 힘써 나가는 것이다. 대지는 얼음이 되어 유리와 같은 보배가 되고 빛은 차츰 엉기게 된다. 그런 이유로 봉래산이나 연화대가 있게 되고 그것을 계승하게 되니 곧 부처인 것이다. 금빛 속성이 이미 나타났으니 어찌 부처가 아니겠는가? 부처라는 것은 크게 깨달아 황금꽃을 드러낸 신선(金仙)을 가리킨다.
- 참뜻 : 으뜸가는 신의 뜻이 드러난 뒤 부지런히 그러한 뜻을 헤아리고 염두에 두고 살아가노라면 으뜸가는 신의 마음은 점점 뚜렷이 나타나 그러한 인간의 마음은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되어 으뜸가는 신을 잇게 되고 으뜸가는 신의 속성이 발현되니 그러한 이는 능히 으뜸가는 신의 대리인, 즉 절대자의 대리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고대 동양인들은 이러한 이를 가리켜 부처나 황금꽃을 드러낸 신선, 즉 금선이라고 불렀는데 부처나 금선과 같은 말은 크게 깨달아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드러내 으뜸가는 신과 같이 된 이를 가리킨다.
* 봉래산 :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전설적인 산을 가리킨다.
* 연화대 : 부처가 앉는 연꽃 모양의 자리를 가리킨다.
此大段徵驗耳(차대단징험이) 現在徵驗可考有三(현재징험가고유삼) 一則坐去(일즉좌거) 神入谷中(신입곡중) 聞人說話如隔里許(문인설화여격리허) 一一明了(일일명료) 而聲入皆如谷中答響(이성입개여곡중답향) 未嘗不聞(미상불문) 我未嘗一聞(아미상일문) 此為神在谷中(차위신재곡중) 隨時可以自驗(수시가이자험)
1. 번역 : 언급한 효험들은 큰 단계별로 나타나는 효험일 따름이다. 현재에도 나타나는 효험으로 세 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앉아서 행하노라면(坐去) 으뜸가는 신이 골짜기에 들어온다. 사람의 말이 몇 리나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듯한데 하나하나 명료하고 들려오는 소리가 모두 골짜기에서 되돌아오는 메아리 소리 같은데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듣게 된다. 내가 한 번도 겪지 못 한 소리이다. 이는 골짜기 속에 으뜸가는 신이 있게 되었기 때문인데 언제든지 스스로 경험할 수 있다.
2. 참뜻 : 으뜸가는 신으로 돌아가 으뜸가는 신을 강림시키는 효험이나 마음을 으뜸가는 신의 마음과 같이 되게 하는 효험은 큰 효험을 단계별로 나눈 것이고 이외에도 확인할 수 있는 효험들을 세 가지 정도로 추릴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넋의 작용을 그치고 얼의 작용을 일으키면 으뜸가는 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으뜸가는 신의 소리 같기는 한데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소리가 있는데 분명 그 소리는 일찍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이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 한 으뜸가는 신의 소리 같은데 어찌 쉽게 으뜸가는 신의 소리인지 알아차리지 못 하는가? 이는 혼백이나 으뜸가는 신이 의식에 동시에 들어와 있고 의식을 통해 으뜸가는 신의 소리나 혼백의 소리가 말해지고 들리기에 능히 으뜸가는 신을 강림시킬 수 있는 이 역시 으뜸가는 신의 소리를 듣더라도 혼백의 소리를 으뜸가는 신의 소리로 혹시 착각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 때문이다. 하여간 이러한 경험은 언제든지 할 수 있으며 기록이나 소리로 남겨놓으면 나중에라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一則靜中目光騰騰(일즉정중목광등등) 滿前皆白(만전개백) 如在雲中(여재운중) 開眼覓身(개안멱신) 無從覓視(무종멱신) 此為虛室生白(차위허실생백) 內外通明(내외통명) 吉祥止止也(길상지지야)
- 번역 : 또 하나는 고요한(靜) 가운데 눈의 빛(目光)이 한없이 오를 수 있다. 앞에 보이는 세상이 하얗게 펼쳐지며 구름 가운데 있는 것과 같아진다. 눈을 떠서 몸을 찾아 보아도 찾아서 볼 곳이 없어진다. 이를 일컬어 텅 빈 방에 하얀 빛이 생긴다고 말하는 것이다. 안과 밖이 통하며 밝고 복되고 상서로운 일이 한없이 몰려온다.
- 참뜻 : 으뜸가는 신이 의식에 강림하여 으뜸가는 신의 생각이 이루어지면 육체를 통해 겪으며 집착으로 인해 생긴 마음은 정화되며 사라진다. 고로 예전에 접하면 흥미나 분노를 느끼거나 집착을 느끼던 대상에도 특별한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이는 그러한 대상들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으뜸가는 신의 뜻에 따라 그러한 대상들을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으뜸가는 신의 뜻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니 마음과 세상이 통하며 세상의 참된 뜻을 알게 되어 상서로운 일이 끝없이 몰려온다.
一則靜中(일즉정중) 肉身絪縕如綿如玉(육신인온여면여옥) 坐中若留不住(좌중약류부주) 而騰騰上浮(이등등상부) 此為神歸頂天(차위신귀정천) 久之上昇可以立待(구지상승가이립대)
- 번역 : 또 하나는 고요한(靜) 가운데 있노라면 몸(肉身)의 기운이 솜과 같아져 몸은 솜옷이나 옥과 같아진다. 앉아 있는 그대로 있으려 해도 그대로 있지 않게 되어 한없이 둥둥 위로 솟구친다. 이를 일컬어 ‘신(神)이 꼭대기에 있는 하늘로 돌아간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고요하게 있는 일(靜)을 오래도록 하면 위로 오르는 일을 기다려 볼 수 있다.
- 참뜻 : 넋의 작용을 그치고 얼의 작용을 일으키고 있으면 의식은 얼로 가득차 의식은 가벼워지고 귀해진다. 변하지 않으려 해도 절로 으뜸가는 신과 같이 되어 으뜸가는 신의 마음으로 의식은 움직여 으뜸가는 신에게 돌아가려 하는데 이를 일컬어 ‘신(神)이 꼭대기에 있는도록 꾸준히 하면 의식이 으뜸가는 신에게로 돌아가 으뜸가는 신과 하나가 되는 현상 역시 머지않아 겪게 될 것이다.
此三者皆現在可驗者也(차삼자개현재가험자야) 然亦是說不盡的(연역시설부진적) 隨人根器各現殊勝(수인근기각현수승) 如止觀中所云(여지관중소운) 善根發相是也(선근발상시야) 此事如人飲水(차사여인음수) 冷暖自知(냉난자지) 須自己信得過方眞(수자기신득과방진)
- 번역 : 이 세 가지는 모두 현재에도 겪어볼 수 있는 효험이다. 그러하긴 하지만 이러한 효험들은 말만으로 다 전할 수는 없다. 사람은 타고난 사명(根器)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지관(止觀)>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착한 뿌리는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이 이를 가리킨다. 이러한 일은 사람이 물을 마시는 일과 같아서 차가운지 따뜻한지 스스로 알아야 하는 것과 같아 결국 몸소 확실히 얻게 된 다음에야 진실을 알게 된다.
- 참뜻 : 이 세 가지 효험은 넋의 작용을 그치고 얼의 작용을 일으키면 누구나 현실에서 겪을 수 있는 효험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말로만 다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이외에도 사람마다 나타나는 저마다의 효험이 있는데 이는 각각의 사람들에게 부여된 참된 뜻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하지관>에서는 ‘(그치고 살피는 일을 하면) 착한 뿌리가 모습을 드러낸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언급한 뜻을 가리킨다. 하여간 이러한 일은 사람이 물을 마시는 일과 같아 몸소 직접 마셔보아야 찬지 더운지 알 수 있는 것과 같아 스스로 수련하여 실제로 겪어야만 진실을 알 수 있다.
* 마하지관(摩訶止觀)을 가리키는데 천태종에서 법화경을 주석한 책으로 중국 수나라 시대(594)에 지의(智顗) 대사가 강설한 것을 제자 관정(灌頂)이 필기한 책이다.
* 의식에 강림하여 마음에 나타나는 으뜸가는 신을 기독교에서는 성령이라고 칭하는데 성령이 사람에게 부여하는 능력의 종류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한 글이 있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 어떤 이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에 따라 지식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 안에서 믿음이, 어떤 이에게는 그 한 성령 안에서 병을 고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어떤 이에게는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영들을 식별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신령한 언어를 해석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이 모든 것을 한 분이신 성령께서 일으키십니다. 그분께서는 그것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십니다.’(코린12 : 4~11)
先天一氣(선천일기) 即在現前證驗中(즉현전증험중) 自討(자토) 一氣若得(일기약득) 丹亦立成(단역립성) 此一粒眞黍珠也(차일립진서주야) 一粒復一粒(일립복일립) 從微而至著(종미이지저) 有時時之先天一粒是也(유시시지선천일립시야) 有統體之先天一粒 (유통체지선천일립) 乃至無量也(내지무량야) 一粒有一粒力量(일립유일립력량) 此要自己胉大(차요자기박대) 為第一義(위제일의)
- 번역 : 원래부터 있는 하나의 기(先天一氣)가 만약 앞에 나타나는 일을 실제로 겪는 중이라면 ‘겪고 있는 하나의 기(一氣)는 무엇이지?’ 하고 따져보게 된다. 선천일기를 겪는 중이라면 단(丹)도 또한 바로 생기는데 이 하나의 씨는 참된 한 알의 구슬이다. 한 씨앗, 또 한 씨앗을 거듭 얻노라면 어렴풋하지만 결국 뚜렷이 드러나는 상태에까지 이른다. 그때그때 있는 원래부터 있는 하나의 씨앗(先天一粒)이 이것이다. 일체을 간직한 원래부터 있는 하나의 씨앗(統體之先天一粒)이 있는데 이 씨앗을 얻으면 크기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끝없이 커진다. 하나의 씨앗에는 그 씨앗에 간직된 힘이 있다. 일체를 간직한 원래부터 있는 하나의 씨앗(統體之先天一粒)을 얻어 키우기 위해서는 스스로 얻은 씨앗을 크게 키우는 일이 첫 번째로 중요하다.
- 참뜻 : 으뜸가는 신을 직접 접촉하게 되면 ‘이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지? 왜 내 앞에 나타났지?’ 하고 궁리하게 된다. 으뜸가는 신을 겪노라면 으뜸가는 신의 마음 역시 바로 얻게 되는데 이는 뜻의 형태로 하나의 씨앗과 같은데 보석과 같이 귀하다. 보석 모으듯 으뜸가는 신의 뜻을 하나하나 얻노라면 처음에는 희미하게 직관적으로 알 뿐이지만 결국 뚜렷한 모습을 알게 된다. 으뜸가는 신의 뜻은 처음에는 그 모습을 잘 알 수 없고 나무와 같이 자라며 자란 뒤에야 그 모습을 알 수 있기에 씨앗에 비유되며 고대 동양인들은 이와 같은 으뜸가는 신의 뜻을 원래부터 있는 하나의 씨앗(先天一粒, 선천일립)이라고 불렀다. 이와 유사한 비유로 원래부터 있는 하나의 기(先天一氣, 선천일기)가 있는데 선천일기는 으뜸가는 신을 가리킨다. 으뜸가는 신의 뜻에는 그 뜻에 걸맞는 힘이 간직되어 있다. 으뜸가는 신의 뜻에는 일체를 간직한 으뜸가는 신의 뜻(統體之先天一粒)이 있고 이와 같은 씨앗은 한계 없이 끝없이 커지며 그 뜻에 간직된 힘의 크기는 측량할 수 없다. 일체를 간직한 으뜸가는 신의 뜻을 얻는 데에 특별한 방법이 있는 있는 것은 아니다. 넋의 작용을 그치고 얼의 작용을 일으켜 자신에게 부여된 으뜸가는 신의 뜻을 찾아 헤아리고 실천하며 살아가노라면 일체를 간직한 으뜸가는 신의 뜻 역시 얻게 된다. 이와 같은 자세가 제일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