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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10일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오레노 레스토랑 오픈 당일 모습. photo 한화호텔앤드리조트 |
지난 7월 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턴호텔 뒤편 먹자골목. 한 건물 1층에 자리 잡은 ‘오레노’ 이태원 1호점을 찾았다. 지난 6월 10일 국내에서 문을 연 오레노는 일본 레스토랑 체인점이다. 일본에서 2011년 9월 창업 후 인기를 끌며 2012년부터 2년 연속 ‘일본 니케이(日經) 히트 상품’으로 선정됐다. 일본 내에 총 33개 점포가 있으며, ‘서서 먹는 정통 프렌치식 레스토랑’을 표방해 로브스터, 스테이크 메뉴를 저렴하게 선보이고 있다.
이 일본 레스토랑 체인점을 국내에 들여온 것은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호텔앤드리조트 FC(대표 심경섭). 이날 둘러본 오레노 1호점은 160여㎡(50여평) 규모로 ‘서서 먹는’ 콘셉트대로 서서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매장에 10개 정도 놓여 있었다. 수용인원은 86명 정도. 오레노 1호점이 위치한 골목에는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10개 정도 있다.
이 중 한 식당 종업원은 새로 문을 연 오레노를 가리키며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생각해줘서인지 점심 영업은 하지 않고 특이하게 오후 4시부터 문을 연다”며 “언제까지 점심 영업을 안 할지 모르지만 앞으로 저 식당 때문에 우리 가게 매출이 타격을 입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골목상권 침해 논란으로 철퇴를 맞았던 대기업들이 최근 의욕적으로 외식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전통시장 반경 500m 이내에 기업형 슈퍼마켓의 출점을 규제하는 유통법이 통과되는 등 유통업이 규제를 받자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외식사업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적극 진출하는 외식 분야는 프렌차이즈 레스토랑. 양질의 식자재를 상대적으로 싼값에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바탕으로 체인점 수를 급속히 늘려가고 있다.
오레노를 수입한 한화의 경우 이미 몇 차례 외식사업에 발을 내밀었다가 철수한 이력이 있다. 프랑스 전 대통령 사르코지가 즐겨 먹는 빵으로 알려진 ‘에릭케제르’라는 프랑스 베이커리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왔다가 2012년 ‘재벌 빵집 논란’이 확산되자 사업을 사실상 철수한 바 있다. 현재 이 빵집 매장은 한화그룹 계열사 건물 3곳에서만 운영되고 있다. 한화는 ‘빈스앤베리즈’라는 카페를 운영하다가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휩싸이자 2014년 이를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시키기도 했다.
한화리조트 류지영 홍보팀장은 이번에 오레노를 앞세워 외식사업에 다시 진출한 배경에 대해 “한화는 다른 대기업들과 달리 무분별한 매장 확장을 위해 외식사업을 하지 않는다. 개인 자영업자들이 진행하기 어려운 고급음식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문화선구자의 역할로 봐줬으면 한다”며 “상생을 위해 셰프 아카데미를 운영해 인력 양성에도 이바지할 계획”이라고 차별성을 강조했다.
같은 날 서울 여의도 ‘IFC’ 식당가. 여의도의 대표적인 복합쇼핑몰인 이곳 식당가는 대기업들의 외식업 전쟁터다. 25곳이 넘는 식음료 매장 중 대기업 소유가 즐비하다. 한식뷔페인 ‘계절밥상’과 ‘더스테이크 하우스’ ‘제일제면소’ ‘올리브마켓’ ‘투썸플레이스’ 등 CJ에서 운영하는 곳만 5곳이 넘는다.
범LG가 소유인 아워홈(회장 구자학)은 ‘푸드엠파이어’라는 대형 푸드코트를 운영 중이다. 멕시칸 레스토랑 ‘온더보더’는 이재연 전 LG그룹 고문의 차남인 이지용 JRW 사장이 운영한다. 모두 외식업계에서 ‘미다스 손’이라고 불리는 업체들이다. 이곳에서는 대기업 프렌차이즈 식당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듯 보였다.
요즘 대기업 프렌차이즈 식당 중 가장 잘나가는 곳은 한식뷔페다. 2013년 7월 CJ가 ‘계절밥상’의 문을 열면서 인기를 끌자 이랜드가 지난해 4월 ‘자연별곡’으로 뒤를 쫓아왔고, 신세계도 지난해 말 ‘올반’으로 경쟁에 가세했다. 롯데도 오는 9월 ‘별미가’라는 한식뷔페 브랜드로 시장에 뛰어들 예정이다. 이들 한식뷔페는 대부분 1~3시간 줄을 서야 자리를 잡을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매장 수를 급속하게 늘리고 있다. 현재 계절밥상이 20곳, 자연별곡이 40곳, 올반이 10곳의 체인점 문을 열었다.
이들 한식뷔페가 손님들을 빨아들이면서 인근 자영업 식당들을 위협하자 정부에서도 무차별한 확장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상태다. 동반성장위원회 김정희 과장은 “대기업 한식뷔페에는 최근 무분별한 확장 자제 권고가 내려진 상태다. 가령 지하철역 100m 이내, 연면적 2만㎡(6050평) 이상이 되는 복합다중 대형 건물에만 입점이 가능하도록 합의한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 단체가 공권력을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신규 사업 확장에 대해서는 강제로 제한할 근거가 미약하다”며 실제적으로는 대기업이 스스로 자제하는 방안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는 점을 내비쳤다.
대기업의 외식사업 진출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라는 규제로도 제한하기 힘들다. 외식사업과 관련된 중소기업 적합업종들은 대부분 떡, 햄버거빵 등 식재료 중심으로 지정돼 있어 새로운 메뉴의 외식사업을 들고나오는 대기업을 제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골목상권에서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메뉴인 한식도 대기업들이 뷔페라는 형태의 체인점 메뉴로 공략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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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절밥상 서울 용산점에서 고객들이 음식을 담고 있다.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대박을 치고 있는 한식뷔페는 ‘중소기업 베끼기’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한식뷔페의 원조가 대기업이 아니라 20년간 한식업 한 우물을 파온 ‘풀잎채’라는 중소업체라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풀잎채’는 2013년 1월 경남 창원에서 ‘한식뷔페’를 선보인 후 손님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대기업 한식뷔페인 CJ의 ‘계절밥상’보다 6개월 먼저 선보인 셈이다. ‘풀잎채’ 정인기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대기업들이 자신의 메뉴를 베꼈다고 불만을 터뜨린 바 있다.
이러한 원조논쟁과 골목상권 침해 비판에 대해 ‘계절밥상’을 운영하는 CJ푸드빌 오흥택 홍보과장은 “우리가 원조라고 한 적은 없다. 한식뷔페에 사실상 원조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계절밥상’은 한국벤처농업대학과 제휴를 맺어서 채소류 같은 경우 국내 농가의 식재료를 쓰고 있다”며 상생을 강조하기도 했다.
대기업들의 외식업 메뉴 베끼기 논란은 한식뷔페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간식으로 제공돼 화제가 됐던 ‘마늘빵’도 베끼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경기도 파주 동네빵집에서 만든 ‘마늘빵’을 대형 프렌차이즈 업체인 ‘파리바게트’가 똑같이 내놓자 표절 논란이 들끓었고, 파리바게트는 논란이 확산되자 결국 ‘마늘빵’ 판매를 중단했다.
그렇다면 대기업들은 왜 외식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일까.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한국외식업경기지수’에 따르면 2014년 4분기 외식업경기지수는 70.67이다. 이 지수가 100을 못 넘기면, 경기가 나쁠 것으로 예상하는 외식업체 수가 좋을 것으로 예상하는 업체 수보다 더 많음을 의미한다. 지수만 놓고 보면 외식시장의 상황이 나빠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마냥 그렇지도 않다. 업종별로는 유흥주점업(62.00)과 기타주점업(68.98)이 상대적으로 수치가 더 낮다. 특히 대기업들이 주로 운영하는 제과점업(82.26), 비알코올음료점업(80.63)은 꽤 수치가 높은 편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상업지보다는 소규모 자영 형태의 골목상권인 주거지 쪽에서 경기 하락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료를 뜯어보면 대기업으로서는 전체 규모가 80조원으로 추정되는 외식산업에서 업종과 지역을 잘 선택하면 아직도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만들 여력이 충분하다는 판단을 할 만하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 대기업이 적은 자본으로 진입이 가능하고 환금성이 뛰어난 외식산업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연구원 김삼희 팀장은 “외식사업은 적은 자본으로도 진입이 용이해 현재 50여곳이 넘는 대기업이 외식시장에 뛰어들어 시장을 휩쓸고 있는 상태다. 외식협회 회원 43만명 중 약 70%가 사업장 규모 1억원 미만의 영세사업자인데 이들의 생계가 위협받지 않으려면 대기업의 무분별한 매장 확대는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기업의 외식사업은 자체개발 브랜드보다는 외국에서 이미 성공을 거둔 브랜드를 들여와 소개하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예컨대 멕시칸 패스트푸드전문점 ‘타코벨’은 아워홈 구자학 회장의 딸인 구지은 전 부사장이 최근 들여왔다. 구지은 전 부사장은 현재 8개인 매장을 5년 안에 50곳으로 확장한다는 계획을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농심 신동원 부회장도 일본에서 눈여겨본 일본 카레전문점인 ‘코코이찌방야’ 매장을 한국에 들여와 현재 전국 23곳에서 운영 중이다.
외식업이 다른 사업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다 보니 식품·식자재 관련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자본력이 있으면 시장에 진출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었다. 대형 연예기획사로 알려진 ‘YG엔터테인먼트’ 계열사인 YG푸드는 지난 6월 노희영 전 CJ브랜드전략 고문을 대표로 영입해 홍대앞에 고깃집 ‘삼거리 푸줏간’을 개업했다. ‘YG 연예인들이 다녀갔다’는 소문에 홍보까지 손쉽게 이루어지며 저녁이면 발 디딜 틈 없이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이 동네 자영업 식당들로서는 또 다른 복병을 만난 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3월 기준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은 21.9%다. 또한 전체 자영업 매장 가운데 음식점 및 주점업 비율은 2013년 기준으로 97.4%에 달한다. 그만큼 골목상권에서 식음료 및 주류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은 식음료뿐만 아니라 주류업인 ‘펍(pub)’ 매장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지난해 7월 롯데가 서울 잠실에 ‘클라우드 비어스테이션’을 개업한 이후, 신세계가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에 ‘데블스도어’라는 맥주 전문점을 열었다. 올해 1월에는 삼립식품이 서울 강남역에 독일식 맥주 전문점인 ‘그릭슈바인’을 개업했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외식사업의 성공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서준혁 대명홀딩스 사장이 2009년 서울 강남역 인근에 시작했던 떡볶이 전문점 ‘베거백’은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이라는 비난을 받다가 결국 매출부진으로 3년 만에 폐점했다. 임세령 대상그룹 상무가 오픈한 아시아 퓨전레스토랑 ‘터치 오브 스파이스’ 매장도 실적 악화로 사업을 접었다. 대기업들의 외식사업 진출은 계속되고 있지만 맛집으로 자리매김하며 롱런하는 경우는 아직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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