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의 말에 에드윈은 드디어 걸렸다!라는 표정이었고,세르노는 웃지 않으려고 허벅지를 꼬집으며
참고 있었다.
세르노의 눈에는 왕비와 뮤리엘이 참 재미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에드윈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수프만 떠 먹었다.
뮤리엘은 고양이 리엘을 집어 들고 얼른 뒤로 감췄다.
왕비가 뮤리엘에게 말하려고 했을 때,점잖게 앉아 수프를 떠 먹으려 했는데 또 다시 재채기를 하자 왕비는 뮤리엘을 아까 에드윈이 쏘아보던 눈과는 180도 다른 눈으로 쳐다보았다.
“왕자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실테지요?”
“네.그..그렇습니다.”
“그리고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습니까,고양이는 방 밖으로 가져나오지 말라구요.식당은 더더욱
고양이가 올 곳이 못되지요.안그렇습니까?”
“네.고양이가 올 곳은 아니지요.정말 죄송합니다 어마마마.”
뮤리엘의 목소리는 엄청나게 작아져서 혼자 우물우물 하는 것처럼 들렸다.
고양이는 뮤리엘의 등 뒤에서 “냐아옹-“거리며 울고 있었다.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왕비는 뮤리엘에게 말했다.
“…공주가 품위없게 식탁 밑에서 기어다니고 있다니…”
“……”
“고양이를 데리고 그만 나가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뮤리엘은 왕비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허겁지겁 식당에서 나가버렸다.
식당에서 나와 궁전 복도를 걷고 있는 뮤리엘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리엘은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냐아옹 거리며 울고 있다.
뮤리엘은 이런 고양이가 짜증이 난다며 복도 바닥에 고양이를 내려놓는다.
마음같아선 바닥에 내동댕이 치고 싶었지만 말이다.
부드럽게 고양이를 내려놓은 다음,뮤리엘은 눈물을 소맷자락으로 닦아내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복도에 남은 고양이는 냐아아옹 그러며 뮤리엘의 뒤를 계속 따라가고 있었다.
뮤리엘이 찾아온 곳은 에드윈의 방이 있는 2층이었다.
물론 오빠의 방에 찾아가려는 것은 아니고 같은 층을 쓰고 있는 유모 헬레나에게 찾아 온 것이다.
뮤리엘도 가는 길에 방문 근처에 서 있는 병사를 보았다.
역시 라노프가 아닌 새로운 병사가 뮤리엘에게 고개를 숙였다.
뮤리엘은 인사를 받지도 않고 병사 앞을 지나쳐 헬레나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뮤리엘은 라노프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데 라노프는 보이지 않고 바보 같이 생긴 병사가 서 있자 가뜩이나 앨리스 왕비에게 혼이 나서
기분이 나빠져 있는데 뮤리엘의 기분을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이었다.
뮤리엘이 들어오자 고양이도 슬금 슬금 따라 헬레나의 방으로 들어왔다.
아직까지 뮤리엘은 고양이도 들어왔는지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헬레나는 편지를 쓰는 책상위에서 재봉틀로 열심히 무언가를 만들고 있어서 뮤리엘이 들어왔는지
모르고 있었다.
뮤리엘은 신경쓰지 않고 헬레나의 일이 다 끝날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는지 소리없이 흔들의자에 앉았다.원목탁자와 세트인 원목 흔들의자는 삐걱 이며 흔들 흔들 거리고 있었다.
꽤 오래된 흔들의자였다.
안락의자처럼 푹신 푹식 하지도 않고 색깔도 마음에 안드는 나무 색깔이었다.
뮤리엘의 방에는 이런 딱딱한 의자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았는데 이런 딱딱한 의자에
앉아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 불편했다.
그리고,탁자위에 올라가 있는 고양이 리엘을 보고 뮤리엘은 인상을 찌푸렸다.
고양이는 탁자 위에서 뛰어 올라 뮤리엘의 무릎위로 착지했다.
뮤리엘의 옷에 얼굴을 부비면서 아양을 떨고 있는 리엘.
“어머,공주님 언제오셨어요?”
그제서야 공주가 왔다는 걸 알고 재봉틀에서 손을 떼는 헬레나.
공주의 무릎위에 앉아 있는 귀여운 고양이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다가왔다.
뾰로통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이고 있는 뮤리엘을 보고 헬레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뮤리엘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고양이의 털을 만지작 만지작 거렸다.
그러고 보니 리엘의 털을 많이 자라있었다.
기다란 리엘의 털은 다닐때도 방바닥에 털을 끌고 다녔고 털도 자주 많이 빠졌다.
헬레나는 고양이를 보고 한마디 했다.
“리엘 말이예요.털을 좀 다듬어야 할 것 같네요.?”
“….그래….?그럼 유모가 해줘.”
뮤리엘은 에드윈과는 달리 헬레나를 아직까지 “유모”라 부르고 헬레나를 편하게 부르고 있었다.
헬레나는 잠시 어디론가 가더니 가위와 빗을 가지고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무릎위에 있는 리엘을 들어다가 방 창가에 있는 틀에 놓고는 이리저리 리엘의 몸을 살펴본다.
그럴때마다 리엘은 자꾸 부끄러운 모양인지 냐옹 거렸다.
헬레나는 고양이를 보면서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언제나 환하게 웃고 사는 헬레나를 보고 뮤리엘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헬레나는 만날 웃을까?매일 매일 즐거운 일만 있는 것도 아닐텐데 왜 매일 웃고 있을까?’
“흠…공주님이 여기 찾아온 이유는..왕비님께 또 꾸중 들으셨죠?”
헬레나는 뮤리엘의 마음속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뮤리엘은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의 긴 털을 가위로 싹둑 싹둑 잘라내며 다듬어주는 헬레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한동안 뮤리엘과 헬레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헬레나가 열심히 고양이의 털을 자르기에 집중을 하고 있을 때 뮤리엘이 책상 위에 있는 재봉틀과
거의 다 만들어진 옷가지들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뮤리엘은 소리없이 다가가서 옷가지들을 바라보았다.
재단사 만든 것도 아닐텐데 굉장히 잘 짜여진 옷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옷들은 그리 화려하지도 않은 그냥 평범한 소년들이 입는 옷이었다.
뮤리엘 것도 아니고,그렇다고 에드윈의 것도 아닌 이 옷은 누구의 것일까..?
궁금해진 뮤리엘은 옷을 들고 헬레나에게 물었다.
“유모!이 옷들은 누구거야?”
방금전까지만 해도 웃고 있던 헬레나의 시선이 뮤리엘이 들고 있는 옷을 보면서 표정은 싹 바뀌었다.
당황스러운 헬레나는 들고 있던 가위를 내려 놓고 일어섰다.
그 사이에 리엘은 해방되었다는 듯 창틀에서 펄쩍 뛰어 내려 침대 밑으로 쏘옥 들어가버렸다.
뮤리엘은 궁금한 표정으로 옷을 보며 서있었고 헬레나는 뮤리엘의 손에 있던 옷을 확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책상위에 가지런히 옷을 올려다 두고 뮤리엘을 내려다보았다.
“누구 옷인데 그래?나한테 말하면 안되는거야?”
“…네.그래요.”
“그래?알았어!그냥 잘 만들어서 본 것 뿐이야.다른 뜻은 없어!”
헬레나의 기분이 약간 이상해졌다는 것을 눈치챈 뮤리엘은 재빠르게 이 상황에서 빠져나갔다.
다시 의자로 돌아가 앉는 뮤리엘을 보곤 헬레나는 옷을 들고 걸어가 옷장 안에 걸어 놓는다.
곧 헬레나는 창틀위에 있던 리엘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자 리엘이 숨을 만한 곳을 다 찾아다녔다.
결국은 뮤리엘의 도움을 받고 리엘을 찾아내었다.
몇분 전의 원래 상태로 돌아온 헬레나와 뮤리엘.
이번과 몇분 전의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뮤리엘은 밀크 초콜릿을 가져오라고 시종에게 시켜 먹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초콜릿을 맛있게 먹고 있던 뮤리엘이 이제서야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헬레나를 불렀다.
“유모,유모는 이 성에서 산지 얼마나 되었어?그러니까 아바마마랑 어마마마를 모신지 얼마나 되었냐는 뜻이야.”
리엘의 털 자르기를 끝내고 빗으로 가지런하게 내려주고 있던 헬레나가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엔 한..18년정도 되지 않았을까 하네요.”
“18년씩이나?그럼말이야…유모.우리 어마마마에 대해서 잘 알겠네.?”
빗질을 모두 끝내고 리엘이 창틀에서 뛰어내려 초콜릿을 먹고 있는 뮤리엘의 무릎 위로 다시 올라가자 헬레나는 뒷처리를 하면서 또 다시 말했다.
“그렇겠죠.뭐 궁금하신 거 있으세요?”
“응!우리 어마마마는 성격이 너무 빡빡하셔.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다 품위다 예의다 등등 이런 것들만 따지잖아.너무 엄격하셔.”
헬레나는 빙그레 웃으며 탁자 위의 난의 잎사귀를 골고루 하얀 수건으로 닦아낸다.
뮤리엘은 신기한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크게 뜨고는 난을 바라보았다.
헬레나가 말했다.
“앨리스 왕비님과 저는 어렸을때부터 친구였지요.전 하녀의 딸로 태어나고 왕비님은 부유한 하이트 공작님의 딸로 태어나셨고요,왕비님은 외동딸이셨기 때문에 하이트 공작님은 왕비님을 엄청나게 사랑하셨답니다.왕비님께는 십자수 뜨개질 바느질 등등 예의범절 까지 모두 골고루 배우셨답니다.물론 검술 궁술 마법술 같은 것도 배우셨지만 이론으로만 배우셨고요.”
헬레나의 말이 끝나자 그와 동시에 난을 닦던 손이 멈췄다.
난의 초록색 잎이 더 윤이 나서 반들 반들 해졌다.
하얀 수건은 약간 더러워져 있었고 헬레나는 언제 준비해두었는지 아래에 있는 물이 든 작은 바가지에 수건을 넣고 씻혔다.
그리고 다시 물을 짠 다음에 다른 화병에 든 난초에 가서 똑같이 살살 닦았다.
뮤리엘의 무릎에 올라와서 잠을 청하고 있던 리엘이 화들짝 놀라서 의자 아래로 떨어졌다.
뮤리엘이 잠시 자신의 무릎위에 리엘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벌떡 일어서서 헬레나의 옆으로 다가섰다.
헬레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고 뮤리엘에게 흰 수건을 건네주었다.
웬만하면 뮤리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눈빛만 보아도 알수있는 헬레나였다.
뮤리엘은 흰수건을 받아 들고는 헬레나가 했던 것 처럼 살살 난초의 잎을 부드럽게 닦아내었다.
이때 뮤리엘은 난초 잎에 붙어 있는 작은 벌레를 보고 벌레를 엄지손가락과 집게 손가락으로 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