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谷公 墓碣銘】
대곡공 묘갈명
公諱先謹 字擇仲 號大谷 蔡之氏仁川 始於高麗同樞密仁川君 諱先茂
공의 휘는 선근(先謹)(1576-1615)이며 자는 택중(擇仲)이고 호가 대곡(大谷)이다. 인천 채씨는 고려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인천군(仁川君) 휘 선무(先茂)로부터 시작되었다.
考應鯤 號月厓 妣仁同張氏贈吏判烈女
아버지는 응곤(應鯤)이고, 호는 월애(月厓)이다.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 증 이조판서 열(烈)의 따님이다.
无育以公嗣焉 本生考諱應麟 進士 號松潭 娶平山申氏習讀寬女.
자식이 없어 공을 후사로 들였다. 본생고(本生考)는 휘 응린(應麟)으로 진사이며 호가 송담(松潭)이다.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 습독관(習讀官) 관(寬)의 따님으로
舉七男 公以宣廟丙子三月十三日生
7남을 낳았다. 대곡공은 선조(宣祖) 병자년(1576년) 3월 13일에 태어났다.
序居第六也 天資溫雅氣稟純正
여섯 번째 아들이다. 타고난 성품이 온아하고 기품이 순정하였는데,
上學一見輒解 先公益加教督 手書忠信誠敬四字 與之
공부를 할 때 한 번 보면 바로 이해했으며, 그런 아들에 대해 아버지는 더욱 교독(教督)을 가하고, 직접 ‘忠信誠敬’ 네 글자를 써서 주기도 하였다.
九歲丁外艱 執禮如成人 事母至誠 色養溫淨
아홉 살에 부친상을 당하니 집례(執禮)함이 어른과 같았고, 어머니 섬김을 지성으로 하여 색양(色養)의 도리와 동온하정(冬溫夏凊)의 효도를 다하였으며,
滫瀡曲當其道 兄弟友而箴
도리를 곡진히 하여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면서도 잘못된 것은 깨우쳐주었고,
親戚睦而義 朋友信而敬
친척간에는 화목하면서도 의에 맞게 하였으며, 붕우에게는 신의와 공경을 다하였다.
庚寅拜內舅旅軒先生 因留受業 旅翁愛其立志甚篤
경인년에 외숙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637) 선생을 뵙고 수업을 받았으며, 여헌 선생은 그의 입지(立志)가 매우 돈독함을 사랑하였다.
與姨兄盧敬菴景任 聯床講討敬推許
이종형 경암(敬菴) 노경임(盧景任)(1569-1620)과는 책상을 연하여 공부하였는데, 경암이 허여하였다.
壬辰亂 隨仲兄琴灘公 協贊八公義陣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중형 금탄공(琴灘公)을 따라 팔공산의 의병진(義兵陣)을 도왔다.
癸巳丁本生內艱 雖干戈搶攘中
계사년(1593)에 본생비(本生妣)의 상을 당하자 비록 창과 방패 창양(搶攘)하는 가운데였으나
能式禮罔愆 乙巳 約一鄉同志 重刱聖廟 是秋 陪寒岡先生 行月講於仙查
능히 예를 행함에 어긋남이 없었다. 을사년(1605)에 우리 고을의 선비들과 논의하여 성묘(聖廟)를 중창하였으며, 이해 가을에 한강 정구(鄭逑)(1543~1620) 선생을 모시고 선사재(仙查齋)에서 월강(月講)을 행하였다.
癸丑 修研經書院 申明學規 勉進後生
계축년(1613)년 연경서원(研經書院)을 중수하고 거듭 학규를 밝히고 후진을 권면하여 나아가게 하였으며
與徐樂齋思遠 孫慕堂處訥 都鋤齋汝兪 李白川天封 諸賢師友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 서재(鋤齋) 도여유(都汝兪), 백천(白川) 이천봉(李天封) 등 여러 어진 사우들과
往來以資 勸獎焉 蓋公內服彛訓 外承師旨 所務者日常行所講者洛閩羣書
왕래하며 서로 도와 배움을 권장하였다. 대개 공은 안으로는 떳떳한 가르침을 따르고, 밖으로는 스승의 뜻을 이었으며, 힘쓴 바는 일용상행의 것이었고, 강론한 바는 낙민(洛閩)[정자와 주자의 학문]의 여러 책들로 .
一切紛華聲利 泊如也 乙卯十二月二十三日卒
일체 세간의 화려한 명리에 대해서는 담박하였다. 을묘년(1615년) 12월 23일에 돌아가셨다.
享年才四十 旅翁哭之曰 以君之才 中途夭折 天意不可知
향년이 겨우 40세로 여헌 옹이 곡하며 “그대와 같은 재주로도 중도에 요절하니 천의를 정말 알 수 없네.” 하였고
慕堂挽曰 襟期正大為儒者 論議眞純 謂學
모당 선생의 만사에서 “흉금에 정대함을 기약하니 유자라 할 만하고, 논의가 참되고 순정하니 학문 하였다 이를만하다.”하였으니
而卽此 可以推想也
이 말에 나아가 그의 본령을 미루어 알 수 있다.
墓智妙蟹峰向午原
묘소는 지묘동(智妙洞) 해봉(蟹峰)에 오좌원(午坐原)으로 있다.
配星山李氏忱女 配淳昌薛氏校尉勤女 生三男
배위는 성산이씨(星山李氏) 침(忱)의 따님이며, 순창설씨(淳昌薛氏) 교위(校尉) 근(勤)의 따님이다.
生三男楘檠察訪梲 三女曺挺民金鏁任汝衡 孫曾以下不錄
3남3녀를 낳으시니 3남은 목(楘)과 찰방(察訪)인 경(檠)과 절(梲)이며, 3녀는 각각 조정민(曺挺民)과 김소(金鏁)와 임여형(任汝衡)에게 출가하였다.
銘曰
명하여 말한다.
以質之美才之良
아름다운 바탕 훌륭한 재주로서
而師敎正友輔彊
스승의 가르침으로 바르고 벗들의 보익으로 강강하였네.
夫奚用不臧
어디에 쓰인들 착하지 않겠는가?
於乎壽止中身
아아, 공의 수명 중년에 그쳐
先賢所嗟傷
선현들이 탄식하고 상심하는 바라.
功在斯文
공이 사문에 있었으니
後人所不忘
후인들은 잊지 말지어다.
我用撮其美
내가 그의 아름다운 점 뽑아내어
表揭蟹峰之陽
해봉의 남쪽에 나타내어 표하리라.
柳川李晩煃
유천 이만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