綠色의 抒情(서울, 대구합동 담양여행기)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으려고 할 때가 아니라 새로운 시선을 가질 때 가능하다- (마르셀 프루스트)
주최 ; 대구중학교 제17회 동기회
일시 ; 2017년 10월 26일, 목
여행지 ; 담양 죽녹원, 메타스퀘어길, 소쇄원, 식영정 일대
장면 #1 - 죽녹원의 풍경이 화면에 흐르고 큰 바위에 새겨진 몇 개의 시비가 코발트색 가을 하늘과 시원스레 뻗어 올라간 진녹색의 대숲을 배경으로 듬직하니 앉아있다. 그중 하나의 시비에 카메라가 어프로치 한다.
[갈대 섬에 바람 불고 눈발이 허공에 날리니
숲을 사서 돌아와 작은 배를 매어 두었네
비껴 부는 피리 몇 곡조에 강위의 달은 흰데
자던 새가 물 안게 속에서 날아 오르네]
‘제봉집’에 수록되어 있는 고경명(高敬命 1533년 중중28년 - 1592년 선조25년, 1588년 식년문과에 장원을 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6천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금산에서 싸우다가 전사했다.)의 시가 음각되어 있다. 세월의 풍상에 퇴색하고 있는 모습이다.
장면 #2 - 미리 당도한 김완식이 ‘즐거운관광’ 버스에 나를 위해 맡아둔 자리에 나는 앉는다. 어원달이 섭섭한 표정이다. 그는 오랜만에 만난 김완식과 옆자리에 앉아 가고 싶었던 것인데, 나는 뒤를 돌아보며 한마디 즐거운 농담을 한다.
“물고기(魚)야 잘 있었나?”
“니기미.”
그사이 채천득은 함께 온 부인과 차내 이별을 하고 맨 뒷좌석에 앉는다. 사실 그 맨 뒷자리는 주석(酒席) 자리인데, 이제 반백을 휘날리는 우리들 연세라 이름뿐인 주석 자리일 뿐이다. (채옹은 까졌지만)
장면 #3 - 장원익 동기회장과 그의 평생 주부(主婦)인 부인이 고심 끝에 마련해온 비빔밥으로 만든 아침식사와 여러 가지가 정성들여 포장된 간식봉투를 물과 함께 배달하고 차내는 먹는 소리가 설컹설컹 쩝쩝 들린다. 그러나 옆에 앉은 김완식이는 밥을 먹지 못하고 모찌만 먹고 만다. 버스는 남으로, 남으로 달리고 있다. 차창은 김이 서려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종이로 닦아내어도 금방 또 김이 서리고 만다.
장면 #4 - 가는 도중 차내에서 김완식과 나는 현 시국에 대해 각자의 소견을 열변하기도 한다.
김 ; “박근혜가 좀 소통이 있는 국정운영을 했더라면 좌빨들에게 병신처럼 당하지 않았을 건데, 참으로 어리석어. 그 여자가 할 줄 아는 게 도대체 뭐가 있나?”
박 ; “어느 매체에 허화평이 인터뷰한걸 보면, 국가도 운명이 있는 것 같다. 전 세계가 한길로 가는데 한반도는 다른 길로 가겠다고 하는데 일시적이고, 영원히 가지 못하고 반드시 제동이 걸린다.”
김 ; “그렇게 될 거지만 현 상황이 너무 답답해, 젊었다면 이민이라도 갈 것인데....”
박 ; “좌빨들은 아주 조잡한 사상이고 이론이지만 그나마 있는 것인데 우파는 사상의 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서구 근대국가모델을 만들면서 어떤 사상적 이론적 학습과 준비 없이 출발했다. 일본은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혁명에 대한 고찰>이라는 책을 1881년에 번역하여 많은 정치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이 읽도록 했다. 우리는 이 책을 한길사에서 번역한 게 2009년이었다. 시차가 도대체 얼마인가?”
김 ; “참으로 한심하다.”
박 ; “우파는 지금껏 이념투쟁을 해본 적이 없다. 이놈은 북한과 가까우니 국가보안법으로 때려잡아야 된다, 종북이다 라는 말만으로 일관되어 왔다. 그렇게 하다 보니 국민들도 알레르기와 반발이 생긴 것이다. 사상적 토대가 없는 것이다.”
더 이상의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다 열거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
장면 #5 - 차가 어느 듯 지방도로로 접어 들어간다. 창밖을 내다보니 ‘담양’ 무어무어라는 표지판이 휙 지나간다. ‘죽녹원(竹綠苑)’ 후문에 차가 정지를 하고 버스에서 내리니 대나무를 훑고 온 가을바람이 서근서근하게 불고 있다. 이곳에서 대나무 숲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먼저 당도한 서울 동기들이 주위를 서성대며 대구동기의 버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장면 #7 - 드디어 도착한 대구 동기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이제 우리들은 죽녹원 입구를 들어가고 있다. 잔디는 이제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고 대구 동기들을 아무리 빠꼼히 쳐다봐도 몇몇은 전혀 기억이 되살아오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들은 대중 동기다. 세월이 무엇인지.
장면 #8 - 죽녹원은 2003년 5월에 문을 열었다고 하며 약 31만 스퀘어미터의 면적에 울창한 대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주위에는 영산강의 시원인 담양천을 끼고 있다. 우리들은 여러 개의 갈림길이 흩어져 있는 죽녹원의 대숲 길로 들어간다. 대숲 길로 들어가니 바람이 나직나직하다. 아마 수억 그루가 될 대나무들이 하늘 높이 쑥쑥 올라가있고 대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 조차 서분서분한 구석 없이 짱짱하게 박혀있다. 숲길에서 우리들은 흩어지기도 하고 어느 갈림길에서는 조우하기도 하면서 가을의 대나무 숲길을 이리저리 소요한다.
이곳 대나무 숲길이 총 8개의 길이 있다는데, 다른 길은 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중 ‘사랑이 변치 않는 길’을 걷다가 “사랑이 있어야 변하든 말든 하지”하니 어느 부인이 나를 쳐다본다. 나는 어연번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운수대통길’을 모두 걸으며 늦가을이 닥아 올 운수대통을 바라는 마음이 왠지 산드럽다.
제2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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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여행 전세버스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정차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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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앞에서 장원익 서울동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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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의 생수병 하나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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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녹원으로 들어가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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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녹원으로 들어가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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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녹원의 한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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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녹원의 중간 담장 , 산뜻한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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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벌레 조형물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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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벌레 조형물, 대나무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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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벌레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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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고디) 조형물, 대나무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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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명 시비 , 고기잡이배 그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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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순의 면앙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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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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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후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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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에서 우연히 짓다
첫댓글 피곤하셨을 텐데...
'녹색의 서정'
가을빛이 완연한데도 죽녹원이 떠오릅니다.
감사합니다.
임진왜란 이후 처음으로 버스에서 술 시중을 들다보니
피곤한데, 또 일이 있어 오늘 나갔다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