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 작사, 작곡 하덕규 / 편곡 김진환 / 김호중 & photo by 모모수계
https://youtu.be/-k0qD6dW4I8
음악편집:체칠리아
[오늘의 사건]
2000년 12월 10일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김대중 대통령(오른쪽)이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있었던 2000년 노벨평화상 시상식에서
베르게 노벨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상장과 메달을 받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12월 10일 한국·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증진시킨 공로로,
노벨평화상 제정 100년째이자 뉴 밀레니엄 첫해인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대통령은 이날 오후 9시(한국시각)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 메인홀에서 하랄드 5세 노르웨이 국왕과
각국 외교사절 등 1100여 명이 참석한 시상식에서 군나르 베르게 노벨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노벨평화상 인증서와 금메달, 900만 크로네(12억 원 상당)의 상금을 받았다.
김 대통령은 수상 연설에서 “노벨평화상은 세계 인류에게 평화를 위해 헌신하도록 격려하는
숭고한 메시지이자 나에겐 영광인 동시에 무한책임의 시작”이라면서 “나머지 인생을 바쳐
한국과 세계의 인권과 평화, 그리고 우리 민족의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을 맹세한다”라고 밝혔다.
베르게 위원장은 수상자 선정 경위 발표를 통해 “김 대통령이 동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기울인 평생의 노력,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으로 이 상을 수상하게 됐다”면서
“이 상에는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머나먼 길에 더욱 진척이 있기를 격려하는 뜻이 담겨있다”라고 밝혔다.
[오늘의 인물]
1990년 12월 10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세계 언론들이 예상했던 그대로 1990년 노벨평화상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59)에게 돌아갔다.
노르웨이의 노벨평화상 위원회가 밝힌 수상자 선정 이유도 짤막했다.
오늘날 국제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변화와 평화운동에서 고르바초프가
선도적 역할을 담당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사실상 고르바초프는 전 공산권 세계를 상대로 무혈 민주혁명을 이끌면서
사상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었으며, 서방세계에는 ‘고르비(고르바초프 애칭)
마니아’를 형성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지난 1985년 집권 이후 고르바초프는 동서냉전 종식의 실질적인 견인차 역할을 수행했으며
소-미, 소-중, 소-일, 소-서유럽의 관계 개선에서 발휘된 그의 신사고 외교는 금세기 후반부의
국제질서에 새로운 판도 변화를 몰고 왔다.
고르바초프는 국내적으로도 소련 공산당의 1당 독재에 종지부를 찍도록 유도함으로써 볼셰비키
혁명 70년 사상 최대의 정치 변혁을 주도했으며, 글라스노스트(공개)의 확대 실천으로
서방의 지원을 유인하면서 공산 통제경제를 자유시장경제체제로 이행시키기 위한 돌파구를 열었다.
고르바초프는 모두 8차례에 걸쳐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하면서,
지난 87년 12월 양국간 중거리 핵전력(inf) 폐기 조약 체결, 소련군 50만 감군,
재래식무기 50% 감축 협상 등 전례 없는 군축 무드에 앞장서 왔다.
1989년 아프가니스탄의 소련군 철수도 그가 내린 결정이었으며,
1990년 10월에 완수된 독일 통일도 그가 동유럽의 평화혁명과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와해를 허용치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란 추정을 할 수도 있다. 동구가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파기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는 또 한국 및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국교를 재개함으로써 소련에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의
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증해 보였다.
고르바초프는 이라크에 대해 유엔에서 미국과 협조, 지역분쟁에 대한 강대국 간의 협조 유형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당초 고르바초프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해 논란이나 반대의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두 공화국의 민족 분규를 유혈 진압한 점, 발트 3국의 탈소
독립운동에 강경한 반대 입장을 고수해온 점 등이 거론됐다.
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대통령제를 도입하여 그 권좌에 오른 뒤 또다시 정치-경제적
비상대권을 장악함으로써 ‘신(新) 차르 정치’를 펴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경제체제의 전환 과정에서 확대되고 있는 식량 및 소비재 품귀현상과
이로 말미암은 소련국민의 고통과 정치불안 등을 감안한다면
그가 노벨평화상을 받기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노벨평화상 위원회는 고르바초프의 국제적 역할에 크게 주목했다고 밝히고
소련의 국내 사정은 단지 일과성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초강대국 지도자로서는 미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수상(1906년) 이후 처음,
그리고 공산권 지도자로서는 사상 첫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다.
그 해, 오늘 무슨 일이... 총 66건
ㆍ2010년 · 여성 학생군사교육단 창설식
ㆍ2010년 ·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劉曉波), 75년 만의 궐석(闕席) 시상식
ㆍ2008년 · 국내 항공우주공학 선구 위상규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ㆍ2000년 ·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ㆍ1999년 · 프란요 투즈만 크로아티아 대통령 사망
ㆍ1993년 · 넬슨 만델라 노벨평화상 수상
ㆍ1991년 · 제5차 남북 고위급 회담(서울)
ㆍ1990년 ·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ㆍ1990년 · 미국 석유왕 해머 사망
ㆍ1988년 · 국민일보 창간
ㆍ1987년 · 미국 바이올린 연주자 하이페츠 사망
ㆍ1982년 · 소련, 우주인 211일의 우주체 공기 록 세우고 귀환
ㆍ1981년 · 국회 내무위 통금해제 건의안 가결
ㆍ1979년 · 테레사 수녀 노벨 평화상 수상
ㆍ1978년 · 베긴-사다트 노벨평화상 수상
ㆍ1976년 · 제20차 남북 적십자 실무회담(판문점)
ㆍ1976년 · 한적(韓赤) 북적(北赤)에 성묘단 교류 제의
ㆍ1975년 · 소련의 반체제 물리학자 사하로프, 노벨평화상 수상
ㆍ1973년 · 북한 함정 서해 대청도 부근에 계속 출몰. 긴장상태 조성
ㆍ1973년 · 한국-인도, 국교수립
ㆍ1971년 · 빌리 브란트 서독 수상 노벨평화상 수상
ㆍ1971년 · 광복 후 첫 민방공 훈련 실시
ㆍ1970년 · 소련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 노벨 문학상 수상
ㆍ1966년 · 패티김·길옥윤 결혼
ㆍ1963년 · 한국-바티칸시국(市國) 수교
ㆍ1962년 · 황지선(黃池線) 개통
ㆍ1961년 · 하마슐드 전 유엔 사무총장에 노벨평화상 수여
ㆍ1961년 · 소련-알바니아 국교 단절 발표
ㆍ1960년 · 박태선 장로교 신자 1,000여 명 동아일보사 습격
ㆍ1957년 · 시인 노천명 사망
ㆍ1956년 · 독립운동가 정이형 사망
ㆍ1954년 · 유엔총회, 중국의 한국전 포로 억류 비난 결의안 채택
ㆍ1952년 · 알베르트 슈바이처 노벨평화상 수상
ㆍ1951년 · 유엔총회 군축위원회 설치 안 채택
ㆍ1950년 · 독립운동가 김규식 사망
ㆍ1950년 · 50만 북한동포 남하 피난
ㆍ1948년 · 제3회 유엔총회서 세계 인권선언 채택
ㆍ1948년 · 한미 경제원조 협정 체결
ㆍ1948년 ·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사망
ㆍ1946년 · `아가씨와 건달들`의 작가 러니언 사망
ㆍ1946년 · 헤르만 헤세 노벨문학상 수상
ㆍ1945년 · 대한독립 촉성 총동맹 결성
ㆍ1943년 · 영국, 태평양함대 창설
ㆍ1937년 · 소련 외교관 레프 카라한 사망
ㆍ1936년 · 영국 왕 에드워드 8세, 심슨 부인과의 사랑 위해 퇴위
ㆍ1936년 · 근대 희곡의 혁신자 피란델로 사망 - 1934년 노벨문학상 수상
ㆍ1935년 · 경성 부민관 낙성식
ㆍ1935년 · 부민관 준공
ㆍ1932년 · 일제, 조선 소작 조정령 공포
ㆍ1928년 · 스코틀랜드의 건축가, 디자이너 매킨토시 사망
ㆍ1926년 · 유일한, 유한양행 설립
ㆍ1922년 · 안창남 모국방문 시범비행
ㆍ1913년 · 타고르, 아시아 첫 노벨상 수상
ㆍ1913년 · 호남창의대장 이석용 체포
ㆍ1903년 · 마리 퀴리, 제3회 노벨상 수상
ㆍ1902년 · 나일강 애 스완 댐 완공
ㆍ1901년 · 제1회 노벨상 시상식
ㆍ1901년 · 한-프랑스 우 체조 약 비준
ㆍ1898년 · 미국-스페인 평화조약 조인(괌-필리핀 등 미국에 이양)
ㆍ1897년 · 쿠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ㆍ1896년 · 스웨덴 발명가 노벨 사망
ㆍ1877년 · 소련, 플레부나 점령
ㆍ1877년 · 미국 보스턴에 전화 개통
ㆍ1869년 · 미국 와이오밍주, 부녀 참정권법 제정
ㆍ1865년 · 벨기에 첫 번째 왕 레오폴 1세 사망
ㆍ1018년 · 거란, 제3차 고려 침입
[출처 : 조선닷컴]
첫댓글 오늘도 좋아하시는 김호중의 가곡을 게시해 주셨네요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정말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있었나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그 때 돈 주고받았다는 루머도 있었죠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이 분은 진정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1993년 · 넬슨 만델라 노벨평화상 수상을 하셨죠
타실 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오늘도 좋은 자료 게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포근한 날씨네요
아름답고 행복한 휴일 되십시오^^
네...
호중이 노래 사랑합니다
역사를 보면서
오늘의 악다구니 하는 현실의 정치를 보노라니
요즘의 현실들 참으로 유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주도 힘차게 출발 하 입 시다
오전에 병원가야 하기에
부지런 떨고 잇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