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바쁘다 창원에서 사위와 딸 그리고 손자 녀석이 오전 비행기로 김포공항으로 온다는 것이다
딸이 온다고 지레 겁을 먹은 아내는 화장실 청소며 안방에서 작은방들까지 쓸고 닦고 소독하고 아기가 누울 매트 이불보를 벗겨 빨고 화분도 옮겨 놓아 녀석의 건강과 말썽소지를 없애야 했다 그건 딸년이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도 주위 환경에 신경이 예민하여 깔끔한 것을 좋아해서 나와 아내는 늘 신경을 써야만 했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말거나 했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딸로부터 늘 잔소리의 상대가 되어 주었다 농사를 하다보면 흙먼지가 몸에 붙어있기 마련인데 털지 않고 들어온다든가 일하고 들어 와 음식이 차려지면 씻지도 않고 밥을 먹는다든가 하면 꼭 제동을 걸고 잔소리를 해 댔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번거로운 것과 격식을 갖추는 걸 싫어한다. 전쟁 후에 태어난 또래 세대도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도 있을 것이다 나는 변화를 줄만큼 깨어나질 못 하고 살아 왔다 계절에 관계없이 샤워를 매일 하는데 우리말로 하자면 세수 비누를 쓰다가 비누가 떨어지면 보이는 데로 빨래비누로 몸을 씻는다
아내가 딸을 앞에 놓고 아빠는 빨래비누로 몸을 씻는다고 하면 빨래비누는 피부를 거칠게 하느니 다른 피부병을 유발하느니 세수 비누도 안 좋은 것인데 아빠의 위생상태가 문제라는 것이다 집안의 유통기한이 지난 요구르트나 라면 같은 인스턴트식품도 거의 내가 먹어 치우는데 딸은 유통기한이 하루만 지나도 폐기처분하라고 한다
사실 유통기한이 지나도 문제는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있을 것이다 만에 하나 잘 못 되었을 때가 문제지 그러나 나는 유통기한은 유통 기한 일 뿐이지 먹고 마시고 끓여 먹는 기한은 아니라고 본다 내가 젊은 시절 쓰레기 처리장인 난지도에 근무 하던 시절엔 육 개월이나 일 년 지난 라면이나 과자가 쓰레기로 들어오면 그걸 몰래 가져다가 아이들도 먹이고 나도 먹었어도 아무 탈 없이 살아 왔다 그런 과거 때문인지 나는 유통기한엔 그리 신경 쓰지 않는 편인데 아이들이 하도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아내도 마트에 가면 어떤 것 이든 유통기한이 긴 것을 구입한다.
밭에서는 늘 장화를 신고 활동하다보니 문 앞에 와서야 슬리퍼로 갈아 신고 들어오지만 바깥은 늘 흙이 있어 방문 앞 현관에 흙먼지가 깔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가끔 물걸레로 닦지만 오늘 아침 딸 때문에 닦고 물청소 하고 감나무며 자두나무 마당에 심은 화초들과 잡초 떨어진 잎들까지 말끔하게 딸을 맞이하는 일거리로 소일하였다 그냥저냥 살면 좋을 것을 이런 수고를 해야 하는 심정에 딸이 오면 애비노릇 하기도 힘든 나이임을 감안해 주기를 간청해 볼까 한다
나이에 걸맞게 촌부다운 살림살이 게을러 널브러져도 그런 것들이 친근한 나의 벗임을 그리고 이젠 그런 것들과 동고동락 할 나이임을 인식해 주기를 말이지
샴푸를 쓰면 몸이 미끄덩거려 싫은데 빨래비누면 어떻고 세수 비누면 어떻고 면도 할 때 쓰는 크림보다는 한번 쓱 하고 문지르면 되는 돈 안 들고 쓰는 비누면 족한 나이 인 것을 그리고 내가 이날 까지 변함없이 곁에 있었던 것들 인 것을
흙먼지도 나 어린 시절과는 다를 것이다 어느 산골짜기 흙인들 오염이 안 된 곳은 없을 것이니 하늘을 나는 미세먼지가 가려서 내리지는 않을 테니 위생도 신경 쓰고 현대 생활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은 한다 그러나 너무 매여서 살다보면 되레 더 나쁜 결과를 초래 할 것이라고 본다 나쁜 환경에 적응하고 적응하다보면 언젠가는 무뎌 질 것이다 피부에 나쁘다던 빨래 비누를 사용한 나의 피부는 거칠고 거무튀튀하게 늙어는 가지만 아직도 땀샘에서는 땀이 솟고 있으니 여느 늙은이와 다를 바 없다 흙먼지에도 잘 적응하고 있으니 살만하다
위가 아파 고생을 하고 있다 위궤양이다 인플랜트를 한 이가 흔들렸던 모양이다 접착제로 붙인 것이 한 쪽이 떨어 진 것을 모르고 음식을 먹었더니 잇몸을 건드려 염증이 생겨 염증치료차 항생제외 진통제를 복용 한 것이 위궤양을 재발시킨 것이다 잇몸을 치료하고 인플랜트 한 것을 확인한다고 X-레이를 찍은 결과 이 하나가 염증이 있다고 발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스피린을 먹느냐고 묻기에 안 먹는다고 하고 하여 발치를 하였는데 2시간이 경과해도 피가 안 멈추어 절친한 약사에게 전화하니 지혈제를 처방 받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먹는 약 전체를 확인해 보라고 해서 확인하니 허리 통증약과 신장 치료약에 혈관 확장제가 들어 있다고 하니 그게 원인이라는 것이다
지혈제를 먹고 기다렸으니 역시 멈추지 않았다 저녁 여덟시 덜컥 겁이 나서 병원 응급실로 가니 대기 환자가 너무 많다 거의 한 시간 반을 기다렸다가 지혈제를 넣고 봉합시술을 하고 다시 솜을 물고 두 시간을 기다리니 밤 열두시 종일 솜을 꽉 물고 있었으니 턱이 빠질 것 같이 아팠다 종일 굶은 속은 쓰리고 아프고 며칠 동안 항생제와 소염진통제를 복용한 것으로 인해 위궤양도 재발하였다
나이가 들었다고 나잇값을 하는 것 같다 껍데기만 보면 그렇지는 않다는데 늙으면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여유는커녕 매일 바쁘게 산다 병원과 약방 출근으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게 늙어지는 과정이며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하고
어느새 큰소리치던 시절은 가고 아내와 딸년들 눈치나 보며 소외되어 가는 기분으로 살아가는 나이가 되었는지 왜 자꾸 마음이 나약해져 가는지 아마도 그건 약봉지 숫자가 늘어감에 따른 삶의 공허함일 것이다 아니면 허무한 것이 인생인 것인가 허무한 인생 이걸로 글 한 줄씩 엮어 봤다
허허로운 마음 채울 수 없는 날들 뿐 무난한 삶인 줄 알았거늘 한세상 사연만 많았어라 인걸의 꿈도 세월 따라 갔지만 생의 오묘함은 세월이 오고감에 있었던 것을
그러나 저러나 오늘 손자와의 만남 이젠 자꾸 어린 것들의 재롱이 예쁘고 귀여워진다 늙은 할아비로 점점 더 농후하게 익어가기 때문일까? 요즘은 카톡 동영상을 보며 히히거리는 그 맛에 젖어 산다 큰 손자들은 징그러운 데 막내 녀석만 보면 입이 벌어진다 만병을 치료하는 묘약이다 할배가 맞는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