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E FRANCIS ANGELUS, Twenty-eighth Sunday in Ordinary Time, Saint Peter's Square, 15 October 2023
Dear brothers and sisters, buongiorno! Today’s Gospel passage tells us about a king who prepares a wedding banquet for his son (cf. Mt 22:1-14). He is a powerful man, but he is above all a generous father, who invites others to share in his joy. In particular, he reveals the goodness of his heart in the fact that he does not compel anyone, but invites everyone, even though this way of his exposes him to the possibility of refusal. Take note: he prepares a banquet, freely offering an opportunity to meet, an opportunity for a feast. This is what God prepares for us: a banquet, to be in communion with him and among ourselves. And we, all of us, are therefore invited by God. But a wedding banquet requires time and commitment on our part: it requires a “yes”: to go, to go to the Lord’s invitation. He invites, but he leaves us free.
프란치스코 교황 삼종 기도, 연중 제28주일, 성 베드로 광장, 2023년 10월 15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복음 구절은 아들의 혼인 잔치를 준비하는 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마태오 22,1-14 참조) 그는 힘 있는 사람이지만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기쁨에 동참하도록 초대하는 관대한 아버지입니다. 특히 그는 거절당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초대한다는 점에서 그의 마음의 선함을 드러냅니다.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연회를 준비하고, 자유롭게 만날 기회, 잔치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즉 그분과의 친교와 우리사이의 친교를 위한 잔치를 준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초대를 받습니다. 그러나 혼인잔치는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가겠다는, 주님의 초대에 응하겠다는 “예”를 필요로 합니다. 그분은 초대하시지만 그분은 우리의 자유 의지에 맡기십니다.
This is type of relationship that the Father offers us: he calls us to stay with him, leaving us the possibility to accept, or not accept, the invitation. He does not propose to us a relationship of subjection, but rather of fatherhood and sonship, which is necessarily conditioned by our free assent. God is respectful regarding freedom; very respectful. Saint Augustine uses a very beautiful expression in this regard, saying: “He who created us without our help will not save us without our consent” (Sermon CLXIX, 13). And certainly not because he does not have the capacity to do so – God is omnipotent! – but because, being love, he respects our freedom fully. God proposes: he does not impose, never.
이것이 바로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제공하시는 관계의 유형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초대를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을 남겨두시면서 우리를 당신과 함께 머물라고 부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복종의 관계를 제안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의 자유로운 동의에 의해 필연적으로 정해지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제안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유를 존중하십니다. 아주 존중하십니다. 이와 관련하여 성 아우구스티노는 다음과 같은 매우 아름다운 표현을 합니다. “우리의 도움 없이 우리를 창조하신 분께서 우리의 동의 없이는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CLXIX 설교, 13) 그리고 분명 그분이 그렇게 하실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십니다. - 하느님께서 사랑이시고 우리의 자유의지를 전적으로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제안하십니다. 그러나 절대로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Let us return, then, to the parable: the king – says the text – “sent his servants to call those who were invited to the marriage feast; but they would not come” (v.3). Here is the drama of the story: the “no” to God. But why do men refuse his invitation? Was it perhaps an unpleasant invitation? No, and yet – the Gospel says – “they made light of it and went off, one to his farm, another to his business” (v.5). They did not care, because they were thinking of their own affairs. And that king, who is a father, God, what does he do? He does not give up, he continues to invite; indeed, he extends the invitation, until he finds those who accept, among the poor. Among those who know they have little else, many come, until they fill the hall (cf. vv. 8-10).
그러면 비유로 돌아갑시다. 본문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왕은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3절). 여기에 이야기의 드라마가 있습니다. 하느님께 “노”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왜 그분의 초대를 거절합니까? 혹시
불쾌한 초대였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 복음은 말하기를 -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5절) 그들은 자신들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이신 그 왕,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하십니까? 그분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계속해서 초대하십니다. 실제로 그분은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초대에 응하는 사람들을 찾으실 때까지 계속 초대하십니다. 자신들이 가진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홀을 가득 채울 때까지 옵니다. (8-10절 참조)
Brothers and sisters, how many times do we fail to heed God’s invitation, because we are intent on our own affairs! Often, we struggle to have free time, but today Jesus invites us to find the time that frees: the time to dedicate to God, that lightens and heals our hearts, that increases peace, confidence and joy in us, that saves us from evil, loneliness and loss of meaning. It is worth it, because it is good to be with the Lord, to make space for him. Where? In the Mass, in listening to the Word, in prayer and also in charity, because by helping those who are weak or poor, by keeping company with those who are lonely, by listening to those who ask for attention, by consoling those who suffer, one is with the Lord, who is present in those in need. Many, however, think that these things are a “waste of time”, and so they lock themselves away in their private world; and it is sad. And this generates sadness. How many sad hearts there are! For this reason: because they are closed.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자신의 일에 몰두하느라고 얼마나 자주 하느님의 초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까? 종종 우리는 자유 시간을 갖기 위해 애쓰지만,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가 그 시간을 찾도록 초대하십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시간, 즉 하느님께 바치는 시간, 우리의 마음을 밝혀주고 치유하는 시간, 우리 안에 평화, 확신, 그리고 기쁨을 더해주는 시간, 우리를 악, 외로움, 그리고 의미의 상실에서 구해주는 시간을 찾도록 초대하십니다. 그것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고 주님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서 그렇게 합니까? 미사에서, 말씀의 경청에서, 기도에서, 또한 자선에서 그렇게 합니다.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움으로써, 외로운 사람들과 동행함으로써, 관심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임으로써,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함으로써, 우리는 어려운 사람들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들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자신들을 그들의 사적인 세상에 가둡니다. 그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슬픔을 낳습니다. 슬픈 마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이유 때문에, 그들이 폐쇄되어 있기 때문에.
Let us ask ourselves, then: how do I respond to God’s invitations? What space do I give him in my days? Does the quality of my life depend on my affairs and my free time, or on love for the Lord and for my brethren, especially those most in need? Let us ask ourselves this. May Mary, who with her “yes” made room for God, help us not to be deaf to his invitations.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하느님의 초대에 어떻게 응답하나요? 나의 일과 중에 어떤 공간을 그분께 드리나요? 나의 삶의 질이 나의 일과 나의 여가시간에 달려있나요 아니면 주님과 나의 형제들 특히 가장 어려운 형제들에 대한 사랑에 달려있나요? 이것을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예”라는 응답으로 하느님께 자리를 마련하신 성모 마리아여, 저희를 도우셔서 저희가 그분의 초청에 귀머거리가 되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