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산행기
일 시 : 2006년 5월 21일 (음,4월 24일)
장 소 : 경남 합천군, 거창군, 경북 성주군 소재 가야산(1,430M)
동 행 자 : 서울 중구산악회 45명
산행코스 : 경북성주 백운동 매표소 → 용기골 → 서성재 → 마애불입상 → 극락골 → 용탑선원 → 해인사 → 치인리주차장
산행시간 : 4시간
가야산하면 난 왠지 합천군이 떠오른다.
경남 합천뿐 아니라 거창군과 경북 성주군에 걸쳐있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경남 합천이라 하면 나에게는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이 있다.
우리 집안 초계최씨의 가계도를 보면 경주최씨 최치원 할아버님을 시조로 분파된 전주최씨, 그 전주최씨에서 분파된 초계최씨가 나의 내력이다.
草溪[옛 지명 팔계(八溪)], 즉 경남 합천군 초계면이 우리 최씨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라 꼭 한번 가고싶은 마음에 부실한 몸을 챙기고 길을 나섰다.
서울에서 가기엔 워낙 먼거리라 서둘러 출발 한남대교와 한강을 뒤로하고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했다. 도로엔 여전히 산악회버스가 나래비로 달린다.
잠시후 천안 못미쳐 망향휴게소에 구수한 아욱국에 밥을 말아 상큼한 겉절이 배추김치에 아침식사를 했다. 매번 수고스럽게 준비하신 회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가야산국립공원은 해발 1,430미터의 높이로 경남 거창군과 합천군, 경북 성주군에 걸쳐있는 산으로 우두봉을 최고봉으로하여(혹자는 칠불봉을1,433M로 최고봉으로 여김) 1,000미터이상의 여러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으며 1972년 10월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대한팔경과 12대명산의 하나로 손꼽히며 산 정상부근까지 수백년이 넘을 듯 한 소나무와 잣나무, 구상나무등 침엽수림과 각종 참나무류의 활엽수림이 울창하여 전국의 어느산에도 뒤지지 않는 절경을 자랑하며 예로부터 해동명산으로 불리워 왔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대의 가람 해인사를 품에 안고 있어 더욱 더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 들이는게 아닌가 싶다.
버스로 4시간여를 달려 백운동 주차장에 도착
신발끈을 조여 메고 도시락을 하나씩 부여 받고 언제나처럼 맨뒤에서 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나는 항시 산행때에는 뒤편에 서는 버릇이 생겼다.
산행에 실력도 실력이려니와 온산을 헤집듯 두리번거리고 나무꼭데기도 올려다 보고 만져보고 바위 틈새도 기웃하기도 하고 카메라 셔터도 연신 눌러데니 비켜 설수도 없는 좁은 산길에서 나 때문에 정체된 산우들의 원성이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생긴 나만의 자구책이다.
이번 산행은 백운동에서 올라 치인리쪽으로 코스를 잡아서인지 그리 붐비질 않았다.
들머리부터 커다란 돌들로 잘정비된 산길이 오름 먼곳까지 정성스레 깔려있고 바로 옆으로는 계곡 물소리가 동행자인양 계속해서 내 옆을 따라오고 있어 가벼운 소풍을 온듯한 기분으로 산행을 할수 있었다.
서성재까지 능선으로 오르는게 아니라 계곡을 끼고 돌아서인지 다른곳보다 유난히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많았다. 덕분에 능선 옆쪽으로 있다는 만물상은 흔적도 보질 못했다.
가야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는 서성재에서 점심을 먹고는 마애불입상이 있는 극락골쪽으로 하산을 하려하니 어찌된일인지 길이 통제 되있다. 잠깐 우왕좌왕 산악회 산악대장일원님들의 노련한 분발을 촉구할 대목이었다. 그렇지만 자연스레 나있는 등산로로 인해 산성터를 건너 조릿대수풀을 헤치고 하산길에 나섰다. 한참을 내려가고 나서야 그쪽 방향의 입산 통제가 되있는 이유를 알수 있었다.
아무튼 서성재에서 우두봉을 거치지 않고 극락골쪽으로 하산 시원스레 흘러 내리는 계곡에 시원함을 만끽하며 여유롭게 발길을 옮기던 중 왼편으로 마애불입상 이정표를 보고 일행을 빠져나와 계곡에서 능선까지 치고 올라 능선에 도착 수고로움 만큼의 광경을 눈 앞에서 보게됐다. 마애불입상은 보물 제222호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높이 7.5M의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얼굴은 풍만한 편으로 약간 치켜올라 간 눈꼬리, 윤곽이 뚜렷한 인중과 입 등 세부표현이 약간 위쪽에 치우쳐 있어 이마가 좁고 살쪄 보이면서 근엄한 인상을 준다.
이런 소중한 광경을 여기까지 와서 그냥 지나친다는건 너무나 아까운 일이라 올라 왔지만 딴사람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일행과 합세하기 위해 다시 줄달음을 쳐야 했지만 아무도 없는 적막한 곳에서 오직 나 혼자만이 불상과 대면한 기분은 뭐라 표현 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극락교를 건너 용탑선원에서 여러 회원님들은 참배를 하고 시원한 약수를 수통에 채워 넣고 다시 해인사로 하산, 법보종찰이라는 해인사로 향했다.
해인사
신라 애장왕 3년(803년)에 순응과 이정 두 대사가 창건했으며 순천의 僧寶寺刹 송광사, 양산의 佛寶寺刹 통도사와 더불어 法寶寺刹 해인사는 우리나라 3대 사찰하나이다.
우선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적광전을 비롯해 여러 건물들은 웅장하기 그지없었고 팔만대장경을 간직하고 있는 법보전, 수다라전,장경각은 단아하면서도 자외선, 적외선 또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한다는 나는 잘모르지만 신비하게도 과학적인 모양새를 띄고 있단다.
대장경판전외에 오래된 건물로는 대적광전을 비롯해 응진전, 퇴설당, 구광루, 해탈문등이며 나머지는 근래에 지은 건물이란다.
또 해인사는 성철스님이 열반에 드신 절이기도 하다.
워낙 서울에서 먼거리라 차도로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지만 그 먼거리를 달려간 보람을 만끽할만한 뛰어난 풍광과 울창한 수림을 지녔고 역사적 유물과 사찰을 품에 안은 가야산은 과연 내 맘속에 영원히 간직 할만한 산이었고 또 다시 가고 싶은 산으로 손색이 없는 산이었다.
▲ 가야산 산행코스 약도
▲ 망향휴게소에서 아침식사
▲ 잣나무 어린 방울
▲ 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동 주차장
▲ 가야산 정상 능선
▲ 백운동 용기골 들머리 계곡
▲ 첫번째로 나타나는 백운1교
▲ 백운2교
▲신갈나무와 잣나무등 각종 나무로 뒤덮힌 수림
▲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사람이 멀리 내다 보고 있는 형상을 띤 바위가~
▲ 오름 먼곳까지 바위로 등산로가 잘 정비되있다.
▲ 시원한 용기골 계곡물
▲ 백운3교
▲ 계곡길을 가는 회원님들~
▲ 계곡물과 함께 바로옆 바위도 흘러내린채 굳어있다
▲ 한잔의 막걸리로 타는 목을 축이고~
▲ 꽃은 참꽃마리같은데 잎이 영 아니네?
▲ 각종 참나무 서식지
▲서성재 바로밑 나무계단 (계단안쪽에 흙이 푹 파여 발걸음을 내딛기가 더 힘들었다.)
▲ 가야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는 서성재
▲ 서성재의 이정표
▲ 서성재에서 점심식사
▲ 서성재에서 우두봉(상왕봉) 가는 길
▲ 소 머리 형상을 하고 있다는 우두봉 가야산 정상 (칠불봉이 최고봉인지는 확실치 않음)
▲ 극락골로 가는 하산로가 통제된 팻말 (등신로?)
▲ 산죽 일명 조릿대(옛날 쌀을 이는 조리를 만들었다 해서 조릿대라 불림)숲을 지나 하산행
▲ 야생화 (무슨 꽃인지 아시는 분?)
▲ 극락골쪽으로 하산하는 회원님들
▲ 마애불입상쪽으로 난 계단 능선 오름길
▲ 마애불입상의 옆 모습
▲ 보물 제 222호 마애불입상
▲ 소나무들이 참나무에 지지않고 굳건히 살아가고 있다.
▲ 소나무 수피
▲ 극락골 계곡물
▲ 뿌리는 하나인데 줄기가 둘로 갈라져 자란 잣나무
▲ 덩굴이 잣나무의 목을 졸라 누군가가 덩굴 밑둥을 잘라 주었다.
▲ 신갈나무에 밀리지 않고 당당히 하늘을 차지한 소나무
▲ 극락골이 폐쇄된 이유를 알게 해준 다리
▲ 극락골을 폐쇄 시킨 이유가 사찰 식수원 때문
▲ 막아논 덕분에 여자는 밑으로 기어서 남자는 위로 넘어서(?)~
▲ 멋들어진 계곡길
▲ 당단풍과 어우러진 계곡
▲ 옆으로 용탑선원이 보인다.
▲ 극락교 건너 용탑선원으로~
▲ 용탑선원 내부
▲ 비어버린 수통에 물을 채우고~
▲ 철쭉
▲ 불두화 (부처의 고불고불한 머리를 닮았고 석가탄신일인 사월 초파일쯤에 핀다해서 절에서 많이 심는다.)
▲ 여자 고무신
▲ 남자 고무신
▲ 붉게 피어난 철쭉꽃
▲ 잔디위에 떨어진 철쭉 꽃이파리
▲ 동자승 인형
▲ 범종루(梵鐘樓), 범종루는 범종 하나만을 두는곳도 있지만 대게는 법구사물이라 하여 범종, 법고,
운판, 목어를 매달아 놓고 있다.
▲ 법고(法鼓), 북소리가 심장소리를 닮았다 해서 모든 축생들을 제도한다.
▲ 범종(梵鐘),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들과 고혼(孤魂)을 제도한다.
▲운판(雲板), 판이 구름을 닮아 운판이라 하며 하늘을 나는 조류계의 모든 중생들을 구제한다..
▲ 목어(木魚), 물에사는 모든 중생과 수중고혼(水中孤魂)을 제도한다.
▲ 대적광전
사원의 중심인 큰 법당에는 그 사원의 정신적 중심 되는 부처님을 모시는데, 모신 부처님에 따라 법당의 이름이 정해진다. 일반적으로 큰 법당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많이 모시므로 대웅전이라 하는데, 해인사는 화엄경을 중심사상으로 세웠기 때문에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셔서 법당의 이름도 비로전이라 했는데, 1488년 학조 대사가 중창할 때 대적광전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 비교적 오래 된 건물의 구광루 (九光樓)
▲ 대적광전 바로 앞에 있는 정중탑은 사방귀에 풍경을 달아 놓은 것이 이채로웠다.
▲ 대적광전 앞 석등
▲ 대적광전 단청
▲ 대장경판전 출입문이 뭣때문인진 몰라도 폐쇄 되 대장경을 보려면 옆으로 돌아 올라가야 한다.
▲ 대장경판전 수다라전.
▲ 대장경판전 장경각
▲ 대장경판전 팔만대장경은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막고 백성들의 마음을 한곳으로 모으고자 제작된 것으로 정확한 갯수는 81,258판이며 자작나무가 아닌 산벚나무와 돌배나무로 만들었고 한판의 길이는 68cm 혹은 78cm이며 폭은24cm, 두께는 약 2.7~3.3cm이고 한면에 23행, 1행에 14자 전후이며 양면에 총 644자가 들어감
▲ 양각 목판
▲ 가야산 품에 안긴 해인사
▲ 멀리 중앙에 있는 나무가 해인사 유명한 소나무
▲ 해인총림
▲ 해인사 창건 당시 순응과 이정 두 대사가 심었다는 해인사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해방당시 죽었다는데 아직도 해인사를 장군 처럼 지키고 있다.
▲ 내세와 속세의 길목 해인사 일주문.
▲ 왕비와 왕자의 전설을 담고있는 영지 (연못에 해인사 전경이 비쳤다 함)
▲ 성철스님의 사리탑
"뚜렷이 깨달음 널리 비치니
고요함과 없어짐이 둘 아니로다
보이는 만물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마다 묘한 이치로다
보고 듣는 이것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아아 여기 모인 대중은 알겠는가?
산은 그대로 산이요
물은 그대로 물이로다."
- 성철스님 어록중에서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말을 쉽게 풀이 해놓은 사람이 있어 간단히 올린다.
장자가 꿈을 꾸게 되었는데 나비가 되어서 날라다니죠....
그러다가 꿈에서 깨어나는데 자신은 장자인 걸 깨달읍니다....
그래서 장자가 그러죠....
장자가 나비 꿈에서 깬건지.... 나비가 장자 꿈에서 깬건지....
알 수 없다고....
즉 나비가 꿈에서 장자였고 꿈을 깨서 다시 나비가 된 건지....
장자가 꿈에서 나비가 되었고 꿈을 깨서 다시 장자가 된 건지 알 수 없음을 말합니다....
즉 처음에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꾸고 다시 장자로 돌아옵니다....
장자는 성철스님 글에서 산 혹은 물 이겠죠....
1.장자는 장자입니다.... 나비는 나비이고요....
1.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2.장자는 꿈속에선 장자가 아니죠.... 나비는 꿈속에선 나비가 아니죠....
2.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로다.
3.장자는 꿈속에선 나비요.... 나비는 꿈속에선 장자죠....
3.산은 물이요. 물은 산이로다.
4.장자가 꿈깨면 장자고요.... 나비가 꿈깨면 나비이죠....
4.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스스로만의 잣대로 대상을 왜곡하거나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라는 뜻이지요
▲ 해인사를 나와 집결지 쪽으로~
▲ 중국 당단풍 나무
▲ 해인사 절과 어울리는 경비실.
▲ 홍류동천 물줄기
▲ 철쭉의 자태
▲ 절입구의 상가들~
첫댓글 가야산 좋은산 갔다 오셨군요, 반가운분들 모습도 보이고요 다음에는 단체사진도 올려주세요, 사진으로나마 볼수있게요, 산행기 올려주셔 감사합니다,
네 그러겠읍니다. 항시 건강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