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아, 유가. / 채종근
'유사이래'(有史以來), 혹은 '유사이전( 有史以前 )'이 라는 말을 쓰지만 글자가 박힌 책이란 존재는 참으로 묘한 존재이다. 이 존재로 인하여 인류의 문화가 발전하고, 이 존재로 인하여 2천 5백년 전의 공자님의 말씀을 듣고, 1쳔여년 전의 주부자의 생각에 닿을 수 있다. 인간이 인간 다울 수 있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누가 무어라 해도 책의 존재 덕분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책에 기대지 않고 그 천재를 발휘한 사람이 몇이나 있었는가? 앞으로의 시대는 책이 아닌 다른 형태로 문화가 전수될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것 역시 광의의 의미에서 활자를 주 내용으로 하는 책의 한 변형체에 다름 아니다. 아마도 세상 끝날까지 사람은 책, 혹은 활자로 울고 웃으리라.
유마의 방 같은 나의 작은 방에도 별별 책이 다 모여있다. 그야 말로 '동서고금의 책'들이 다 모여 있다. 사서오경과 노장이 아주 천연스레 사이좋게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사기와 한서와 열국지 삼국지 십팔사략 통감절요가 한 공간에 역시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가급적 찾기 좋게 배치하느라 역사서는 역사서대로 경서나 사상서는 그것대로 같이 모으다 보니 그렇게 꽂히는 것이지만 그 저작이 만들어진 연대나 성격을 생각해본다면 기막힐 일이다.
예기와 장자란 가장 극단적으로 대비될 서물이 아닐 것인가.
예기는 주지하다싶이 예를 다룬 유가서이다. 거기에는 수 많은 예와 관련된 담론들이 담겨 있다. 개는 왼손으로 잡고 가고 양은 오른 손으로 잡고 가라고 한다. 외를 깎아 올리는 방법도 각 신분에 따라 달리하는 내용이 나온다. 사람이 죽었을 때 그 고인의 주검에 둘러선 가진 들이 엎드려 우는 행태까지 달리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복식에 대해서도 많은 활자를 할애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그 책을 읽으며 왜 이렇게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는 이야기들이 많은가 하고 묻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책이 바로 유가의 '예기' 그 책이니까.
그러나 보통 전국시대 말기에 나온 것으로 알려진 '장자'는 유가의 일거일동을 의식하며 쓴 듯이 보인다. 유가는 과거 지향적이다. 언필칭 요순이요 언필칭 삼대의 정치요, 하은주요 문무주공이다. 끊임없이 문화의 정수가 고대의 성인들에 있으니 그리로 돌아가라고 강조하고 있다. 공자님 또한 그 스스로 여러번 꿈에서 주공을 만날 정도로 주나라 초기의 문화를 그리워하고 그 문화를 재현하고 싶어하였다. 그 과거 지향적인 행태에 대해 방달한 장자는 도대체 이상한 행태의 머리 쓰개와 복장과 신발을 하고 나타나, 단정한 복식의 유림이라도 자니갈라치면 그 특유의 변설로 공박해댄다.
"당신이 입은 그 복장은 무슨 복장이냐?" 그러면 유자는 단정하게 읍을 한 자세로 뭐라 뭐라 설명을 한다.
장자는 말한다.
"당신의 그 고상한 선왕의 복장을 저 원숭이 무리에 입히면 어떻게 되겠나? 다 찢어 발기고 말거야."
다시 그 유가가 선왕의 문화에 대해 언급하자 장자는 말한다.
"의식을 행할 때 계단을 오르면서 오른발부터 먼저 올리고 합족하고 또 오른발 부터 먼저 올리고 한다고? 내려올 때는 왼발부터 먼저 내리고 합족하고 다시 왼발부터 내리고...그러나 생각해보라. 지네가 그 많은 발을 놀리면서 어느 발부터 먼저 움직이겠다고 생각하던가? "
방달한 그 장자와 단정한 복식의 한 사람 유자가 담론하는 그 광경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자 잠시 많은 사람이 둘러싼다.
장자는 자신의 브레이크 없는 차에 더욱 신이 나 가속페달을 밟는다.
"내 말을 들어보시오. 저 유가가 입고 있는 옷이 그 옛날 주공이 제정한 것이라 하오. 유가는 말끝마다 선왕 선왕 하며 과거로 돌아가지고 하고 말끝마다 효를 이야기하며 부조에 가르침에 순종하라고 하고 있는데, 그게 맞을까요? 문둥이 여자 하나가 밤에 애기를 낳고 얼른 불을 밝혀 자기가 낳은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오. 왜 그랬겠소? 자신처럼 눈썹이 없거나 하는 문둥이일까봐
두려워한 것이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자기가 낳은 자식들이 자기처럼 못난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단 말이오."
장자의 말을 듣다 보면 수긍되는 부분이 없지도 않다. 햇빛이 강하면 그늘도 두텁다든가. 세상의 어떤 주장이든 긍정적인 부분도 있고 부정적인 부분도 있다. 우리는 장자 속에 함몰되지만 않는다면 장자의 좋은 점을 보아내고, 그것으로 유가를 보완하는 호재로 삼을 수도 있으리라. 혹은 그 반대도 가능하리라.
유가 예기의 그 많은 담론 중에 가장 이채로운 것은 아마도 공자님과 당시의 노나라 제후 애공이 주고 받은 '유'의 정의에 대한
'유행'(儒行)이란 글이 아닐까?
예기 41편의 이 글은 애공의 물음으로 시작되고 있다.
"부자께서 입으신 복장은 유자의 복장인가요?"
애공의 물음에 대해 공자님이 대답이 이어진다.
"구(丘)는 어려서 노나라에 살면서 큰 소매의 홑옷을 입었고, 자라서는 송나라에 살면서 장보(장보)의 관을 썼습니다. 구가 듣건대 군자의 배움이 넓다 해도 그 복장은 고향에서 입는 것을 따른다 합니다. 구는 유의 복장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애공이 다시 묻는다.
"감히 유의 행실에 대해 묻습니다."
그리하여 예기 41편의 제목이 된 그대로 '유행'에 대한 호한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장자가 산림을 지나가는 유자 한 사람을 불러 어쩌면 나무 그늘에 앉혀 놓고 어쩌면 마시던 막걸리 잔을 건네고 주고 받고 한 이야기들이 바로 장자의 내용이라면
공자와 애공 간에 상읍을 하고 주빈의 자리를 정하고 난 뒤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그리고 수행한 제자들이 한 쪽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기록한 형태가 바로 유가의 경서의 기록이자 예기의 그 기록이리라.
유가에 대한 문외한 한 사람이 유가란 어떤 것이며, 유행이란 어떤 모습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그 대답이란 참으로 쉽고도 어려운 것이리라. 우리는 그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의 전형으로서 '유행(儒行)'을 읽는다.
여기에는 여러 모습의 유자들의 모습이 다양하게 제시된다.
"선비는 충과 신으로 갑주(甲胄)를 삼고, 예와 의로써 간로(干櫓)를 삼으며, 인(仁)을 쓰고 다니며 의(義)를 품고 대하니, 비록 폭정이 있더라도 그 대하는 바를 고칠 수 없다. 그 스스로 확고히 섬이 이와 같은 것이 있다. 선비는 일묘(일묘)의 담장에 환도(환도)의 실에다 대를 쪼개어 엮은 문을 달고, 문 옆에 작은 문을 내며, 쑥대로 엮은 출입 문에 옹기() 구멍의 들창을 달고 옷은 [부족하여] 식구들과 번갈아 입고 나오며, 이틀에 하루치 음식을 먹으며, 임금이 그의 말을 응용하면 감히 의심치 않고, 응용하지 않더라도 감히 첨유(첨윺)함이 없으니, 그 벼슬함에 이와 같은 자가 있다. 유자는 금세의 사람과 더불어 살면서 옛 사람과 더불어 상고하여, 금세에 이를 행하고, 후세로서 본보기를 삼는다. 단지 세상을 만나지 못하여 위에서 불러 이끌어 쓰이지 못하고 아래로는 밀어주는 이가 없으며 참첨하는 백성들이 서로 어울려 작당하여 위해를 주려는 자들이 있어 몸이 위태롭게 될지리도 뜻은 빼앗을 수 없으리라."
이 儒行이 말하는 유자의 상은 후대 북송의 범문정공의
先天下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