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마음일까 생각일까
잠시 머무를 상념이라면 모를까
잡념은 더더욱 싫다
너를 만나면 이 밤이 두렵다
불현듯 꿈에도 일어나니
너와 깊은 밤 나누기 싫다
베개를 같이 쓰자고 하니
밤에는 머리에 있고 낮에는 가슴에 있어 멀어지는가.
너를 쫓는 와인도 있고 새로운 참 이슬도 있다만
내 의지를 시험하기는 싫구나.
한가로운 명상이라면 동틀 때 보자꾸나.
오늘만이라도 멀리 멀리 가거라.
3.후회
잠은 깼는데 눈은 뜨기 싫다
어젯밤 색다른 물 치켜들고
잔을 모아 헹가래 치던 아우성이 쑥스러워
엷은 호청에 머리 감고
도리도리 해보아도
술기운에 주절댄 회한에 부끄러움이
보여 질까 눈을 뜨기 싫다
4. 그 이름 詩 1
누구나 너를 부를 수 있다던데,
그렇다고 아무나 부를 수 도 없다던데,
아직은 아무나 인가 보다.
5. 그 이름 詩 2
오~우 하는 감탄 까지는 아니더라도,
책장을 못 넘길 만큼에 심금은 아닐지라도,
끄덕 끄덕 알겠다는 공감을 만나야,
네가 되는것 아닌가.
너의 문을 열어,
그 내밀함을 그리지 못해도,
詩라고 부르는가.
큰소리로 부르고 싶은 것은,
다음 생에는 詩人이 되고 싶어서다.
6. 그 이름 詩 3
흥겨워 춤추고 노래 했는데,
아무도 보지 않는 공연은,
항사인가 詩인가?
항사(恒事): 늘 있는일
그때가 좋았지
아직도 한창이라고 코웃음 칠 어른들도 계시겠지요.
이십여 년 전 친구 자식들에 혼사로 한 달이 멀다 하고 모여
곧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심에 축하를 장난기 어리게 나누던 시간.
점잔을 빼고 앉은 혼주와 풋풋한 신랑신부의 기념사진을 남기고 피로연 연회장으로 간다.
잔칫집 분위기는 시끌벅적한 것이 우리 내 문화인가 ?
음식을 나누는 식사 자리마저 반가움과 안부를 챙기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반주로 걸친 한 잔은 아쉬워, 주당들 술 낚시 명분이 필요할 때
혼주가 초등하교 동창들만 한잔 더 하고 가라고 봉투를 들려준다.
자리를 깔고 앉을 장소 찾아 모이니 시끌시끌하고
웃음소리가 배 밖으로 나오고 허물없는 사이들이 벌써 장난기가 그득하다.
코 흘리게 3~4학년으로 돌아간 얼굴들, 표정은 봄 소풍에 들뜬 애들인데
잠시 후 벌어질 짓궂은 장난기들이 입가에 번질번질 하다
반가움에 한 잔, 예의가 없어지는 두 잔, 입심 좋은 친구가 부도덕 해지는 석 잔을 건배하고 나면,
지난날에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마실 까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사연,
또 아무도 모르는데 나만 아는 사연들 풀어 놓는다
미안하고 부끄럽고 철딱서니 없는 시절의 이야기가
주변에 민폐도 아랑곳 않고 웃음소리가 떼 창을 이렇다
같은 날 입학한 친구들이다 보니 우연히도 그날 생일인 친구가,
나 오늘 생일인데, 한잔 따르라고 잔을 드니 ,어~잉 나는 어제 생일인데,
"그래 나는 내일 생일인데"
결국 사흘 뒤 생일 친구까지 친구의 생일 축하를 위해 케이크가 급조 되고
당일 생일인 친구를 위해 생일 축가가 함성에 가깝도록 울린다.
케이크에 촛불을 끄고 나면 박수와 함께 노래가 나오고
네 사람의 생일 축하를 위해 촛불을 꼈다 켰나를 하여
케이크 하나로 생일잔치를 네 번이나 했다 법석한 시간이 지나고
술이 거나하게 오르니 한 사람씩 돌아가며 노래하는 시간
드디어 범생이 여자 친구 차례가 되어 노래를 시키니
쭈뼛쭈뼛 노래시키지 말라고 손 사레를 치며 밖으로 나가려 하지만
짓궂은 친구들이 그냥 두는가.
장난기 심한 야유와 질타가 쏟아지니 뭔가는 해야 하는 친구의 망설임에
연실이가 노래하면 내가 발가벗고 옻나무에 올라간다고 한다.
친구 발가벗는 약속 보겠다고 떠밀어 무대에 올려놓고
'노래 해 노래해" 하는 극성가로 부추기는 원성이 대단한데
친구는 자세를 고쳐 잡더니 양손을 아랫배에 겹쳐 잡고
"섬집 아기"를 얌전하게 시작한다.
아직도 그 순진함에 힘을 보태는 친구들에 합창, 그때가 좋았지
노래하면 발가벗고 옻나무에 올라간다던 친구에 약속은 아직도 유효해
술이 거나하면 그날에 기억을 소환 한다
동문회다 동창회다 명분만 생기면 두세 달에 한 번씩 모였다
회비도 없는 모임, 꼭 정해진 것도 아닌데 좀 여유로운 친구가 밥 사고
또 다른 친구가 술사고 어느 날은 숙소까지 예약하는 후덕한 친구들의 마음 씀씀이가
모임 잔금을 풍성하게 해준다.
더욱이 서울 원주 대구 영천 청주 울산 영월 정선 전국구에 있어도 참 잘 모였는데
10년 세월 흐르고 나니 자식들 출가의 시간이 지나고
부모님이 우리를 불러 모은다 애도와 축하의 경조사가 거듭 되던 시간을 지나고
나니 코로나로 급작스런 친구의 비명도 간혹 듣는 때가 있다
하나둘, 여기 저기 아프다는 소식과 건강 챙기라고
카톡에 숱한 건강식품을 시끄럽도록 늘어놓지만 건강이라는 게 관리한다고 되던가?
이제 우리의 차례가 다가온다. 친구들에 안부와 건강을 묻는다.
7월, 역마살
1. 하루의 무게
잠결에 들은 함석 기와 때리는 빗소리를 서너 번은 들은 것 같은데
마당은 빗물이 흥건하고 수명을 채우기는 했는가?
이른 낙엽과 갑자기 쏟아진 비바람에 작은 나무 가지가
함께 마당을 어지럽혀 비질을 하기도 애매하다.
부채를 흔들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인사를 나누는 우리 집 댕댕이
잘 잤나, 입을 열수 있는 혼자 말에 말벗이 그나마 적막한 공기를 깨고 아침을 연다.
툇마루에 앉아 사람 인적 내자고 라디오를 켜니 아침 뉴스와 김종배의 시선 집중이 시작되는 시간.
오늘은 어떤 위정자들에 이야기가 도마에 올려 질까?
삶에 무게를 느끼는 사람은 욕심이 많다는데, 그래서 일까?
별 다른 일정 없는 오늘도 무료하고 적적할 것 같은 날,
오늘에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까?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긴다.
많은 선인들이 욕심과 비움을 이야기 하는데 깨달음이 부족한 탓인가?
좋은 뜻인 것은 같은데, 무슨 욕심 뭘, 비우라는 것인가?
어제 보다 오늘, 오늘 보다 내일, 더 좋은 삶을 지향 하는 게 인간인데,
무엇을 버리고 비우라는 것인가?
불필요한 것이야 잘못했거나 실수일 때 생기는 일이지, 욕심과 비움은 아직 이다.
오늘도 마음 닿는 곳에서 열중하는 것이 나의 일인걸.
올해 꼭 해보고 싶은 한 가지는 경포 해수욕장에서
한기를 느끼는 바닷물에 수영을 하고 인증 사진을 남기는 일과,
청풍랜드 호반무대 뒤편 번지 점프하는 곳에서
떨어지는 순간의 공포감을 벗어나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다.
나이 더 들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인데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한가로운 일을 함께할 성향을 가진 친구도 없는 독거노인에 비애가 꿈으로 남는가?
말동무, 밥 동무, 길동무, 옆 지기에 아쉬움. 나에게 아직 빨간 실에 인연이 남아 있을까?
피, 하는 코웃음 소리를 내곤 슬며시 웃고 만다.
궁리를 거듭하는 때,
작은 딸아이가 경포에 가족들과 휴가를 온다기에 옳다구나 기회다 했는데,
사돈처녀까지 함께 한다는 말에 그만 아쉬움은 큰 낙담으로 다가온다.
어렵다는 사돈이야 비슷한 연배이니 감수를 하더라도 사돈처녀 까지는 아니다.
아무리 유교가 무너졌다 하더라도 사돈처녀에게는 꼴사나운 모습으로 비쳐질까
나로서는 용납이 안 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팔월 중순이 지나면 물도 차가울 뿐 더러, 썰렁한 해수욕장에 수영 하겠다고
바닷물에 뛰어드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은 조급해 진다. 비온뒤 칠월에 햇살은 뜨겁다 못해 불이다.
비 젖은 대지도 힘차게 빨아들이는 지면의 열기와 훅하는 더운 바람은
그늘을 나서기가 망설여지고, 개밥바라기별이 내릴 때 쯤,
댕댕이 데리고 운동 삼아 오르던 앞산에 걸음도
벼락 같이 쏟아지는 국지성 소나기 때문에 며칠을 거르고 있는 때다.
하루에 무게를 느낄 즘이면 먹을 갈고 지난주에 집자(集字) 해놓은
시품출어인품(詩品出於人品)을 올해의 출품작으로 선택해 습작을 시작한다.
화선지를 펼쳐 놓고 흰 여백에 수놓은 문자의 구성, 글의 의미,
파자(波字)와 발묵의 변화를 그리며 기필 하지만, 막상 붓을 잡고 한자 한자 써보면
어설프게도 감동과 호기는 어디로 가고 기대에 미치지 않는
화선지를 내려다보며 첨삭 부분을 찾아간다.
획의 강약, 대, 소, 이 체자 비교, 자전을 펼쳐들고 한자 한자 짚어보고
새로운 마음으로 붓을 가누지만, 양에 차지 않는다.
무엇이든 숙성이 필요한 시간. 긴 고민하기 싫다.
안 되는 일 오래 고민하면 정신건강에 이롭지 못하다.
몰입을 벗어나 환기를 바꾸고 긴장을 풀어주는 일.
날이 덥지 않으면 놀이터라도 한 바퀴 돌아오면 좋으련만,
따가운 햇살이 그늘을 통제한다.
전혀 다른 생각으로는 게임이 최고. 인터넷 바둑판에 들어가 한판 두 판.
이기는 바둑에는 주방에 냄비를 태워 버린 것이 한 두 개인가,
하지만 지는 바둑은 마음이 퀭하니 편치 않다.
또 마음 상하기 싫으면 단순한 spider(스페이드) 게임도 괜찮다.
이렇게 한두 시간 환기를 바꾸고 나면 새로운 마음으로 자리를 잡는다.
기분에 따라 붓에 율동이 달라지는 놀이,
눈앞에 펼쳐진 화선지는 손짓을 하는 듯 이끌리어 붓을 가누어 보지만
몇 장 쓰지 못하고 붓을 놓고 만다. 획, 획, 결구에 미,
조화의 부족함을 찾아야 진도가 나갈듯 하다.
하루에 열서너 장 써서 한 달은 써, 첨삭하고 수정하고 숱한 파지를 만들어내고,
답보 상태를 격고 나야 칠 부 능선은 올라선 듯 할 텐데,
그때는 시간이 부족함을 알게 되고 조급한 마음과 긴장감에 자연스러움을 놓치기 십상이다.
이렇듯 여유롭게 시작 한다고 해도 부족함을 채우기에는 촉박하다.
어쩔 수 없이 마감 시간에 맞추어 끝내야 하는 글.
늘 그렇듯 흡족한 마음으로 당당하게 작품을 마감한 때가 없으니 아쉬움 속에서 쓰고 또 쓴다.
아직은 8월9월의 시간이 있어 여유롭다. 이렇게 공들이고 집중해야 하는 물음은 없다.
오늘에 무게도, 무더운 더위도, 집중해 잊히는 것들이 최선이라는 방편 속에 마감의 그 시간까지.
이런 일상에 혹 가다 찾아온 고향 친구가 잘살고 있다고 부러운 듯 이야기 하지만 그럴까?
정희성 시인에 시인 본색(本色)이라는 글처럼 오골계나 되지 않으면 좋으련만,
각자 자신에 삶에 무게를 남들은 보지 못 할뿐 아닌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우리 삶 자체가 고행이라고 늘 무게를 느끼고 사는 게 인간에 업(業)이라고,
숙명으로 받아들이려면 잊어버리는 망각도 필요함이니~~~
2. 의문에 코로나
봄을 알리는 입춘이 지나고 나면 겨우내 움츠렸던 기지개를 켜느라,
작은 텃밭이라도 상추며 고추, 방울토마토를 비좁도록 심어 놓고, 정성들여 가꾸는 성의도 없이 잊었다가,
무료할 때 한번 씩 풀 뽑고 늦은 비료 챙기는 사발농사가 뭐 잘 되겠는가?
그래도 어쩌다 둘러보면 상추와 아삭 고추 방울토마토가 주렁주렁 매달려
손을 기다린 듯 가지가 늘어졌다. 잦은 비로 무성한 잡풀이 상추를 감싸 안아 뱀 나올까 무섭다.
무성한 숲을 헤쳐내고 소쿠리에 따 담는다. 농사는 크든 작든 풀과의 전쟁이다.
내 어머니 생전에 텃밭을 화분처럼 가꾸시어 집 주변 조차도 훤하더니,
이제는 약을 치지 않고는 감당이 안 된다.
텃밭 농사도 일처럼 꾸준히 가꾸고 정성을 들여야 되는 일.
이 무더운 여름에 몸을 달구는 땡볕에 일이 소일이라도 피해갈 시간인데,
때도 못 맞추고 힘을 쓰고 있으니, 분별없는 엉뚱한 성향이 나에게 있음을 가끔은 느낀다.
햇살은 따가운데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하늘을 보니 비구름은 먼 것 같은데 굵은 비가 제법 세차게 떨어진다.
그러다 말겠지 하고 분주하게 풀을 뽑고,
소쿠리에 고추, 토마토, 상추를 뜯어 담는다. 비가 점점 세차게 퍼 붓는다.
이 무더위 비 좀 맞으면 어떠리. 비를 작정하고 맞는 그 기분, 묘한 즐거움도 있다.
이런 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우울증이나 조울증 증세가 있다던데 혹 나도!
작은 소쿠리 하나로 상추와 고추를 따도, 한 끼,
멀어야 두 끼 먹기 어려운 식성,
많이 먹지도 팔지도 못하는 텃밭에
비를 맞아가며 열일 하는 것도 무게를 잊어버려는 욕심이다.
칙칙하게 젓을 옷을 세탁기에 던져 놓고 샤워를 한다.
찬물에 더위의 열기는 가시고 나른함이 밀려온다.
손쉬운 봉지커피를 들고 숙련된 입맛에 미각을 느끼며
밀려오는 생각을 붙잡으려 담배를 꺼내 물고 깊은 연기를 몰아쉴 때,
무게를 덜어낸 안도가 내려앉는다.
여름은 해가 길어 늘 늦은 저녁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인터넷 뉴스나 메이저리그 김하성이나 배지환의 활약상이 눈에 들어온다.
메이저리그, 쉽지 않은 그 자리, 우리나라 선수가 더욱이 뛰어난 활약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그들이 대단하다.
일찍이 자신에 진로를 찾아 숙련되어 가고 있는 그들에 장래는 많은 젊은이들에 우상으로 성장하고,
국위선양에 칭송과 박수를 받는 인물로 간다는 게 부럽다.
젊은 날에 더 일찍 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지 못한 회한의 아쉬움이 아직도 아리다.
그 시절 뜀만 잘 뛰는 차범근을 숭하는 철없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걷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하는 세월에 서 있으니 말이다.
이달에 책 천원을 경영하라.
읽던 페이지를 펴 들고 한 장도 못 넘겼는데 코가 간질간질 하더니, 심한 재채기가 거퍼 나온다.
이어 맥없는 콧물이 원통한 눈물 흐르듯 주르르 흐른다.
휴지를 감아쥐고 흐르는 콧물과 재채기를 세차게 하고나니, 오뉴월에 무슨 감기?
아차, 싶은 생각이들 때, 비 맞고 상추 고추밭에 앉았던 생각이 빠르게 나타난다.
코를 움켜쥐고 훌쩍거리며 머리를 눕힐 때 까지, 곤욕스러운 시간을 견디느라 밤이 길다.
자고나면 좀 괜찮으려니 하는 기대감으로 일찍 잠을 청했다.
자고 일어나니 별다른 이상은 없는데,
여전히 콧물만 줄줄 흘러 병원 문 열기 바쁘게 들어갔다.
이미 십여 명의 먼저 온 환자들은 얼마나 아프기에 이렇게 일찍 인가 라는 의아함속에 접수를 마치고 순서를 기다린다.
감기 같은데 좀 보아 달라고 하니, 이달 까지는 무료라고 코로나 검사까지 해보자고 한다.
코에 깊숙이 솜봉을 찔러 넣는 그 고약한 기분 잠깐 사이에 코로나 양성이네요.
코로나도 많이 약해저서 미약한 감기와 같으니
걱정하지 말고 감기약 먹으며 안정을 취하라는 이야기와 숭한 엉덩이를 보여주고 왔는데,
어디에서 전염 되었는가 지난 한 주일에 되감기가 빨리 돌아가지만 짚이는 곳이 마땅치 않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건소에서 문자가 왔다. 코로나 격리 환자로 5일간 격리하시겠냐고?
어차피 칩거 생활이지만 주변에 민폐를 주어서 되겠는가.
딱히 찾아갈 곳도 없는데, 몸에 배인 일상이 뭐 대수인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나니
칠월 한 달 일정을 못 맞추어 들썩들썩 잰 걸음만 하다가 길을 나서지 못한 역마살을 이렇게 잠재우는가,
한 주일을 이렇게 코가 헐도록 훔쳐 됐으니 핑계 좋은 액땜이라고 부르고 만다.
3 허울 좋은 휴가
이제 코로나 격리 시간도 끝나고 조심스레 활동해도 되지 않겠나,
동서쪽을 가늠하던 저녁 늦은 시간 전화벨이 울린다.
셋째 매제의 술 취한 음성 행님 뭐하십니까? 지금 여기 동생들 다 모였습니다.
네 시간이면 되니 속히 내려 오이소. 말이 네 시간이지 거제까지 총알택시도 어렵은 시간이다.
꼭 오라는 소리겠지, 오빠 시간이 되면 내려와 옆에서 셋째 동생이 거든다.
거제도에서 동생들이 휴가를 보내는 모양 세다.
넉살 좋고 사회생활에 인간관계가 좋아 보이는 셋째 매제의 부름이 그지없이 반갑다.
당장이라도 나서고 싶지만 자정이 가까운 시간 내일 아침 일 찍을 기약하고,
전화를 놓기 바쁘게 짐을 꾸려 놓고 새벽을 준비 한다.
어머니 생전에 영월로 달이 멀다하고 자주 오더니 돌아가신 후에는 멀어지는 발길이 서운하기도 하다.
다 사람 사는 섭리려니 하고 이해하며 지낸 시간.
여동생 네 가족이 도란도란 모여서 사이좋게 지내는걸 보면 한편 흐믓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소외된 혼자가 서운한 마음은 지울 수가 없다.
그렇다고 피하거나 불편함이 있는 사이는 아니다 보니
더 무거운 주말에 시간을 덜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어 마음은 들뜬다.
댕댕이 사료만 주고, 준비한 그대로 차에 올라 주유소를 향해 달려간다.
거제시 둔덕면 거림2길. 370km. 다섯 시간 십 분을 가자면 가득 채워야 왕복을 하리라?
내비를 설치하고 허울 좋은 휴가를 나도 간다.
골안개가 산허리를 반은 감싸고도는 이른 시간 신선이라도 내러 올 듯 한, 풋풋한 아침풍경!
마음은 벌써 거제도에 몽돌해수욕장에 입수가 선하게 다가온다.
남안동 휴게소에서 급한 볼일만 보고, 현풍 휴게소 까지 오니 거른 아침이 생각난다.
잔치국수 한 그릇으로 대신하고 자판기에 커피한잔을 뽑아들고 한숨 돌리고자 그늘을 찾아 앉았다,
운치와 낭만의 한가로운 여유는 과속을 단속하는 카메라 속에 담아버렸으니, 급한 마음 반은 왔는것 같은데 멀다.
차가 밀리지 않겠나? 했던 주말에 휴가철은 괜한 기우였다.
질서 정렬한 4차선 도로 차량 물결은 장관이다.
각자에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행렬은 인위적으로 만든 카드섹션 모양으로 진풍경을 만들어낸다.
그 속에 나도 함께 라는 즐거움을 안고 가속을 한다.
거제대교 입구에서 통영에 탁 트인 앞바다를 건너다보며,
거의 다 왔다는 안도감과 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의 신선함은 고개를 바짝 쳐들어야
하늘이 보이는 분지의 풍경과는 또 다른 하늘에 서정을 느껴 본다.
아이고, 어서 오이소, 멀리 오시느라 고생 하셨습니다.
멀지 예, 잘 지내셨습니까? 도착시간에 맞추어 기다리던 매제와 동생들이 반겨준다.
짐이라 할 것도 없지만, 봄에 묵나물 만들어 놓은 것과 이웃에서 얻어 놓은 감자를,
동생들이 오면 주려고 포개 놓았던 것을 이 기회에 가지고와 내려놓고, 이르는 데로 따라 나섰다.
동생들도 어제 밤 모여서 한잔했기에 아직 식전이다.
예정된 아점 식단을 찾아간 곳은 어가횟집에 점심 특선 미역국.
어머니 생전에 생일날 아침에나 먹던 또 다른 미역국을 별미로 먹고,
디큐브 백화점 6층 CGV영화관을 이른 시간에 왔다.
후끈후끈한 더위를 피해 냉방이 잘된 영화관이 피서지로 선택되었음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어린 시절 방학이 되면 친구들과 강변 모래밭에 군용 에이 텐트를 쳐 놓고,
삼양라면에 건빵과 족대 질로 잡아 놓은 물고기를 넣고 고추장을 풀어먹던 그때가!
뙤약볕을 앉아서 어설픈 기타 줄에 토요일 밤을 노래하던 그 때 가.
많은 젊은이들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공간.
눈에 띠는 젊은 부부들이 애기 손을 잡고 얼레고 달레는 모습은 이 시대 국가 유공자라고 불러 주고 싶고.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조심스럽게 부축하여 걸음을 놓는 젊은이에 모습에선, 내 어머니가 생각난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주변에 민폐를 두려워하지 않는 청춘들은 그들만의 시대에 시기를 즐기고 있으니,
성원은 아니더라도 눈살 찌프릴것 가지야,
병원, 약국, 카페, 놀이방, 문구점, 서점, 빵집, 아이스크림.
밖을 나가지 않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이 장소. 이 무더운 여름날에 풍년가를 울려주고 싶다.
한때 영월의 작은 영화관에서 겨울 늦은 밤을 보낸 적이 있는데,
영화관 얼마만인가? 넷플릭스가 출현 하고 부터는 발길이 멀어지는 곳.
동생들과 세대 차이를 느끼게 된다. 휴가의 시간에 영화 관람이라!
바로 아래 동생이 일곱 살 차이 막내와는 이십년 차이니,
생각하는 사고의 질이 이렇게 다르구나를 느낀다.
밀수. 남해바다에 입수만 생각하고 달려온 나는, 덤으로 영화까지 감상하는 호사를 누리게 됐으니
나의 허울 좋은 휴가는 동생들의 휴가에 끼워 넣기로 가는 일정으로 수정 한다.
영화의 기획성, 평론, 연기력, 이런 것은 동생들의 덧붙이는 이야기로 가늠하고,
스토리 전개가 그 시대물로 산골에 살던 나는 세상 저 끝에서 저런 일도 있었구나,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목숨 걸고 일을 해야 하는 환경과 돈에 유혹을 피할 수 없는 숙명 속에 바다의 범죄 활극.
아직은 이른 저녁시간 해넘이를 바라보며 미수 해안 로의 둘레 길을 걷는다.
인생도처유청산(人生到處有靑山) 세상 곳곳이 청산이다.
넘실대는 바닷물에 간간히 멸치 박스를 실은 작은 화물선이 물결을 흔들고
한가로운 갈매기 너울너울 나는 풍경. 통영은 '한국의 나폴리'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경관이라는데,
나폴리를 가 보았어야지, 영월만 살기 좋은 곳이 아니구나?
운동에 걸음인가? 산책에 걸음인가? 오가는 사람들에 여유와 넉넉함을 엿볼 수 있고,
깔깔대며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은 세상 모두 내 것인 냥 활기찬 모습이 일상이면 더더욱 좋겠다.
이렇게 바라만 보아도 좋은 바다와 하늘 아래서 오늘을 만끽하고 있는 나는 사진을 몇 장 남기고 자리를 벗어난다.
통영 민 수사 횟집 5층.
행님 여기가 검사내전 촬영 횟집 제일 좋은 자리로 예약 했습니다, 마이 드세요.
해지는 저녁시간 바다를 내려다보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으로 흐뭇한 시간.
많은 횟감을 열거해도 이름도 맛도 크게 내키지 않는다.
아이스크림과 간식이 아직 위장의 끝을 벗어나지 않은 모양이다.
회 몇 저름과 그저 해삼 멍게 꼬막과 초고추장 맛으로 먹고 나니 위장에 하중을 느낀다.
한번 절개한 위장에다, 워낙 입이 짧은 체질이라 매제의 성의가 무색하다.
그릇이 비워지기 바쁘게 새로운 음식으로 바꾸어주는 식사 도우미에 친절은 왠지 불편하다.
더욱이 나이 어린 도우미는 딸아이 보다 어린 손길에다,
말끝마다 양손 모아 공손하고 상냥하게 답하는 모습은 부르주아에 잘 길들여져
고용 관계를 잘 이행하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다.
동생 지갑을 빌려 삼 만원을 쥐어 주고, 바람을 씌우려 일층으로 내려왔다.
식사가 더 진행되는 동안 미수에 풍경을 잠시 접한다.
오가는 사람들에 여유로운 걸음 환한 표정,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한숨 돌리고 그래도 매운탕과 밥 반 공기는 넣어야 때를 이은 것 같은 포만감.
이른 잠 깨어 서둘러 나선 길.
동생들의 일정에 함께 하다 보니 하루가 이르다.
작은 술상을 차려 놓고 양주 진열장을 가리키며 행님 마음껏 드이소,
주졸인 나에게 듣기 좋은 소리이지만, 늘 뭐든 다 해줄듯 의기양양하고
후덕한 매제의 마음에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야, 오빠 어떻게 지내야고 밥은 잘 챙겨 먹고 아픈 곳은 없는지 안부를 묻는다.
혼자 사는 오라비가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그래 학교도 가고, 교도소도 가고,
하늘 샘이라는 독서 모임도 가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경로당 봉사 활동 하고,
착하게 잘 살고 있는데 살이 안 찐다.
건강검진도 했는데, 다 양호한데 체지방이 60% 뿐이란다,
후덕하게 배도 좀 나오고 얼굴이 번질번질 하면 좋으련만,
흰머리 늘어가고 짜글짜글한 주름만 가득한 내 모습 나도 마음에 안 든다.
오빠 마음을 좀 느긋하게 가져요. 둘째 동생이 잘 안다는 듯 나무란다.
두 딸들 잘 살고 있고, 오빠만 잘 먹고 잘 놀면 되는데 좀 넉넉한 마음으로 지내요,
하면서 체 지방에 좋다는 많은 건강 보조식품을 열거 하지만 혹하게 마음에 드는 것은 없다.
내일 일정도 있는데 휴가비를 좀 걷어야 되지 않나,
미안스러워 이야기를 꺼내기 무섭게 오빠 걱정하지마라
우리 회비 모아놓은 것 있다. 카드를 꺼내들며 이걸로 다 해결 할 테니 재미있게 놀다 가란다.
도저히 대작할 수 없는 주당들 사이에 몇 잔을 거들었더니 눈 커플이 무거워진다.
분당, 왜관, 대구, 거제에서 각자 다른 생활 노선을 잘 지키고 있는 이들에
안주 거리가 밤을 세도 마르지 않을 듯하다.
주졸(酒卒)에 심정을 아는지라 행님 피곤하실 텐데 먼저 주무시소.
하며, 동생이 자리를 마련해준다.
느지막이 장승포 해양식당에 준비된 꺽대구(열기) 매운탕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빤히 보이는 바닷길을 30여분은 달린 것 같다, 하긴 우리나라 두 번째로 큰 섬.
둘레가 380km가 넘으니 멀리가면 그 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하리는 생각이 든다.
와현 해수욕장 휴일이라 주차공간이 녹녹치 않다. 두 바퀴를 돌아 겨우 주차를 하고
매제가 자리해 놓은 해변 파라솔에 자리를 잡았지만 모래밭은 가마솥 열기다.
준비된 반바지에 티셔츠를 걸치고 오늘에 미션을 수행하려
성큼 성큼 바닷물에 몸을 적셔 본다. 아뿔싸! 미적지근한 물 온도.
차가운 맛은 하나도 없고 낮은 수심에 흙물이 반이다.
10년 전쯤 몽돌해수욕장에서도 이렇지는 안았는데, 실망감이 스물 스물 올라온다.
젊은 날 경포해수욕장 오리바위를 수영하던 그때의 촉감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현실을 어쩌리. 머리가 잠길 정도까지 깊이 헤엄쳐 나가봐도 그 아련한 추억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해수욕장 가장자리를 차지한 젊은이들에 즐거운 환호성이 여기저기 들린다,
입수하는 광경을 동생이 사진으로 남기고, 한가한 샤워 실에서
싱거운 미션으로 끝낸 아쉬움이지만, 아직은 경포에 갈 시간이 있다는 위안을 가지며 발길을 돌린다.
먼저 휴가를 시작한 동생들은 정해진 일정 때문에 세 가족은 먼저 떠나고,
나도 갈 채비를 하던 중 매제가 행님 여기 바로 앞에
시인 유치환. 청마선생에 생가와 기념관이 있는데 한번 가보실람니까?
어젯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시를 배우러 다닌다고 했더니,
그 독한 양주 취기에도 기억하고 있었네. 정말 오 분도 안 되는 거리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기념관과 생가를 둘러보며 사진도 찍고 시도 읽어보는 한가로운 시간.
파도야! 어쩌란 말이야!
험절(險絶)로 내려 쓴 편액에 눈길을 멈추고,
글 쓰는 사람들의 인성에 대해서 생각이 머문다.
대책 없는 일을 자꾸 보채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
절규에 가까운 표현을 캘 리로 그려낸 글쓴이에 고뇌가.
글이라는 게 사실의 바탕위에 읽기 좋게 포장하는 언어의 기술이 아닌가?
자신이 겪었던 희, 노, 애, 락, 속에 경험의 축척치를 글로 표현하는 것은 알겠는데,
살을 붙여서 감동 주며, 깊이 있는 깨달음과 해학까지 얻어내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 할 수 있다면 좋은 글일 텐데. 어렵다.
내가 이렇게 보름정도의 일상과 감정을 토로한 글은 어떤 글인가?
글이라고 이야기조차 부끄럽다.
동생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귀가를 서두르는 마음은 벌써 영월인데,
집에 반겨줄 댕댕이 뿐인데 마음은 어찌 급한가?
합천, 칠곡에 군대 동기, 구미에 동창,
한번쯤 만나 차 한 잔 하고 싶은 벗들이지만, 멈추기가 쉽지 않다.
갈 때는 멀어도 희망과 목적이 있었는데 올 때는 8월에 칩거를 걱정하느라 더 멀다.
이렇게 7월에 역마살을 잠재운다.
2023년 7월30일
첫댓글 나폴리 사람은, 나폴리가 한국의 통영이라고 할 겁니다. 좋은 휴가 잘 보내셨네요.
기록이 쌓이면
스토리가 된다고 합니다
글은 이렇게 쓰는구나 하고 알 때가 왔으면 좋겠어요~~좋은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