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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舜道사적▼ 개성 태봉에서☞ 진산 태봉으로 [출처] 개성 태봉에서 진산 태봉으로 (용봉서신(龍鳳書信)) |작성자 디딤돌 증산상제님께서는 황해도 개성(開城)에 응기돼 있던 태봉(太鳳)기운을 충남도 진산(珍山)으로
옮기셨습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개성(開城) 송악산(松岳山)에 가서 태봉기(太鳳旗)를 만드시어, 이성계의 태(胎)를 안치한 진산(珍山) 태봉산(胎封山)에다 태봉기(太鳳旗)를 꽂으셨습니다.
@ 황해도 개성(開城)에 있는 송악산(松岳山)은 동서로 솟은 용호산(龍虎山)과 진봉산(進鳳山)을 청룡과 백호로 삼은 명산이라. 상제님께서 수부님과 성도들을 데리고 연백평야를 들르신 뒤 송악산으로 가시어 공사를 보시니 인근 마음 사람들이 따라 올라와 수종을 드니라. 상제님께서 갑칠에게 명하시기를 "명주베 스물한 자를 구해 오라." 하시고 공우에게는 "경면주사를 구해 오라." 하시거늘, 공우와 갑칠이 상제님의 말씀을 좇아 각기 명주베와 경면주사를 구해 오니라. 상제님께서 성도들로 하여금 명주베 스물한 자를 바닥에 펼쳐 사방을 꿰매게 하시고, 다른 성도들에게는 "고를 만들라." 하신 뒤에, 공우에게 명하시기를 "근처에서 가장 큰 대(竹)를 구해 오되 나무가 상하지 않게 뿌리째 뽑아 오라." 하시니라. 이 때 수부님께서 장정 여럿이서도 들기 어려울 만큼 큰 아름드리 벽조목(霹棗木)을 구하여 치마폭에 싸서 안고 오시거늘, 상제님께서 그 벽조목에 크게 글자를 새겨 도장을 만드시니라. 이 때 성도들은 모두 "얼싸 절싸 얼럴럴 상사디야~." 라 소리하며 흥에 겨워 춤을 추고 태을주(太乙呪)와 진액주(津液呪)를 읽으며 몸을 흔들다가 구르기도 하니라. 이윽고 상제님께서 벽조목 도장에 경면주사를 바르신 후 번쩍 드시어 명주베 한가운데에 도장을 찍으시거늘,
太 鳳
이라는 두 글자가 뚜렷하더라. 이어 깃발 네 귀퉁이에 차례로 '一' '二' '三' '四'를 쓰시고 각 수아래에 세계 여러 나라의 이름을 그 나라 말로 쓰신 후에 성도들로 하여금 '태봉기(太鳳旗)'를 대나무 깃대에 묶게 하시니라. 이때 문득 공우가 상제님께서 시키신 바도 없는데 으쓱으쓱 어깨춤을 추며 깃대를 세워드니 마을 사람들도 입을 맞춰 창을 하며 고를 메는데 대부분이 나이 어린 초립동이더라. 공우가 기를 들고 신명나게 춤을 추며 앞으로 나가가매 상제님과 수부님께서 나아가시고 성도들과 고가 뒤따르니라. 상제님과 수부님과 모든 성도들이 신명나게 춤을 추더니 "훔치 훔치 태을 천상 원군 훔리 치야 도래 훔리 함리 사바-하"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를 노래부르듯 읽으며 몸을 흔들고 흥을 돋우다가 얼마후 여기저기서 신도를 내려받아 공중으로 펄쩍펄쩍 뛰고 공우도 신명이 나 깃대를 휘젓고 주문을 외무며 신명나게 개성장터로 향하니라. 이 날은 마침 장날이라, 장터 사람들이 멀리에서 거대한 깃발이 펄럭이며 사람들이 허공으로 훌쩍훌쩍 솟았다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크게 놀라 "저 봐라! 저 봐라! 저것 봐라!" 하며 웅성거리는데, 어른들은 깃발에 쓰인 글을 읽고자 애쓰고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깃발을 향해 모여드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혼잣말처럼 말씀하시기를 "해원을 할 것이다" 하시고 수부님께서는 아이들을 보시고 말없이 웃으시니라. 상제님 일행이 드디어 개성장 안으로 들어오니, 사람들이 순식간에 구름같이 모여들어 발 디딜 틈 없이 북새통을 이루거늘, 갑칠이 앞으로 나서서 구경꾼들의 질서를 잡으니라. 이 때 형렬의 뒤에는 주로 아이들이 따르며 성도들을 흉내내어 주문도 따라해 보고 깡충깡충 뛰어 보기도 하는데, 갑칠이 아이들에게 주문도 일러 주고 인파에 휩쓸리지 않도록 보호하니, 아이들이 갑칠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갑칠의 손등을 조그만 손으로 툭툭 건드리고 만져 보기도 하더라. 이 때 송악산에서부터 상제님 일행을 따라 온 아리따운 색시 하나가 남몰래 갑칠을 훔쳐보니라. 어느덧 일행이 큰 무리가 되어 개성장을 벗어나 사천강(紗川江)으로 향하니 개성 전체가 크게 떠들썩하거늘, 공우가 오른쪽 어깨에 깃대를 걸치고 왼손으로 고의 용머리를 잡은채 "얼럴럴 상사디야~" 하며 선소리를 하기도 하더니, 상제님께서 사천강에 이르시어 고를 양편에 걸치게 하시니라. 이 때 순사들이 군중을 해산시키고 수상한 자들을 잡으려고 상제님 계신 곳까지 이르거늘, 상제님께서 조화권을 쓰시어 순식간에 성도들을 데리고 강을 건너 그들의 눈앞에서 차츰 사라지시니라. 이에 흥에 겨워 춤을 추며 사천강까지 따라온 개성 사람들이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갑칠을 훔쳐보던 색시도 말을 잃고 갑칠의 뒷모습만 보니라. 상제님께서 수부님과 성도들을 데리고 강을 건너신 후 산맥을 짚으시며 동해 쪽으로 나오시더니, 울릉도 성인봉(聖人峰)으로 가시어 점심을 드시고 다시 경기도 검단산(黔丹山)으로 가시니라. 검단산에 이르시어 산신제를 지내시미 공우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깃대를 들도 덩실덩실 춤을 추니라. 산신제가 끝난 후 성도들이 여기저기에서 웃고 떠들고 있으려니, 상제님께서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시어 크게 소리치시기를 "태봉산(太鳳山)으로 가자!" 하시니라. 상제님과 수부님께서 태전(대전)에 도착하시어 태봉산을 오르시는데, 공우는 주문을 읽으며 그 박자에 맞춰 태봉기를 신나게 흔들고, 성도들도 상제님의 별다른 명이 없음에도 끊임없이 주문을 외우니라. 상제님께서 정상에 도착하시자 공우에게 "깃대를 가져오라." 명하시어 깃대로 삼은 대나무를 뿌리째로 산 정상에 꽂으시고, 이어 성도들에 큰 옹기 항아리를 가져오게 하시어 태봉기 앞에 청수를 모셔 놓으신 후, 상제님과 수부님께서 대나무를 향해 읍배 하시니라. 이에 성도들도 읍배를 올리면서 보니 스물한 자나 되는 큰 깃발이 태전 어디에서도 선명히 보일 듯 바람에 펄럭이더라. (도전 pp762-765)
예로부터 왕(王)의 탯줄은 왕조의 뿌리요 원천이라 하여 명당터를 골라 모셨습니다. 이성계의 태는 조선 왕실의 근본이라 하여 매우 신성시하였습니다. 본래 이성계의 태는 함경도에 있었는데 무학대사의 건의에 따라 조선 개국직후 만인산에 항아리에 태를 넣어 태실(胎室)을 설치한 것입니다. 용담답사기에 따르면, '옛날에 담양 세성인(世性人) 전추 (田秋)라는 사람이 그 지총(地塚) 위에 집을 짓고 밭 아래 동네에서 풍족하게 살았다.
태조 등극2년 호우 계유년(1393)에 군사람 진순도(陳舜道)가 그 위(태봉)를 점복했다.
태조가 처음에 소문을 듣고 기이하게 여겨 재신(宰臣)과 더불어 지관(地官)을 파견하여 그것을 보고 오도록 했는데, 지관이 산 위에 이르러 점 지하여 말하기를, ‘아름답도다(佳哉). 이는 만세의 터로구나! ’ (此萬世之基也)하고 탄복하여 태(胎)를 봉하도록 했다. (중략) 이에 태조가 상을 내려 『진순도』를 임주사(林州使)로 삼고, 전추 역시 회인현감에 봉하여 전택(田宅)을 하사했다. (중략)'라고 나와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만인산 : 군의 동쪽 20리에 있다. 성봉(星峯)이 있는데 땅이 후박하고 물이 깊으며, 봉우리가 기이하고 수려한 것이 연꽃과 같다. 태조의 태를 묻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곳은 조선 초기에 한 시인이 만인산을 보고, '산세가 깊고, 중첩한 산봉우리는 연꽃이 만발한 것 같고, 99산의 물이 한 곳으로 모여든다'고 찬양하기도 했습니다.
개성에서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태(胎)를 1393년(태조2년)에 진산(珍山) 마전리(馬田里) 만인산(萬刃山)에 모신 이후 만인산을 태봉산(胎封山)으로 불렀고, 태를 봉안한 고개를 태봉재라고 불렀습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태봉산에 설치한 이성계의 태실(胎室)을 인연으로 해서 개성 태봉기운을 진산으로 옮겨 태봉산에 태봉기를 꽂아 만천하 사람이 보도록 하신 것입니다.
진산(珍山)은 고려시대에 진동현(珍洞縣)이라고 불렸고, 만인산에 이성계의 태를 봉안하고 진주군(珍州郡)으로 승격시켜 지진주사(知珍州事)를 두어 다스렸고, 이후 특별히 옥계부사(玉溪府使)를 두어 이성계의 태실(胎室)을 특별 관리하도록 하였습니다. 1413년(태종13년)에 진산군(珍山郡)으로 개칭되었다가, 1914년 3월 1일 금산군(錦山郡)과 병합되었고, 1963년 1월 1일 충청남도로 편입되었습니다. 증산상제님께서 태봉기(太鳳旗) 공사를 보신 때에는 전라북도 14개군 중의 하나인 진산군(珍山郡)이었습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태봉기 공사를 통해 '개성태봉(開城太鳳)'을 '진산태봉(珍山太鳳)'으로 바꿔놓으셨습니다. 증산상제님의 천지공사로 태봉산(胎封山)이 태봉산(太鳳山)이 된 것입니다. 개성(開城) 송악산(松岳山)의 태봉(太鳳)기운을 받아 이성계(李成桂)가 조선(朝鮮)을 개국하였듯이, 진산(珍山) 태봉산(太鳳山)의 태봉(太鳳)기운을 받아 단주(丹朱)가 참봉(珍鳳)으로서 천지부모님이신 증산상제님과 고수부님을 모시고 후천 오만년 대시국(大時國)을 개국하게 됩니다.
@ 평소에 선생이 종도들을 데리고 노르실 적에는 반드시 '가구 진주치기 노리'를 하시는 데, 투전을 들고 탁 치시면서 ' O씨가 판을 첫다" 하시고, 다 걸거드리시면서 "파라 파라 깊이 파라. 얕이파면 다 죽는다. 잘못하다가는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란 말이다. 알것느냐. 도로 본자리에 떨어진단 말이다. 나는 알고 너는 모르니, 봉사잔치란 말이다. 아는 사람은 알지마는 누가 갈처주나. 제가 알아야 한다니께" 하시고, 또 가라사대 "나의 일은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라. 끝판에 O씨가 있는 줄 모른다 말이다." (동곡비서 p46)
@ 또 가라사대 "일을 해야 되니 김성국을 데리고 오라. 천지공사를 결정하자. 우리끼리 일 했으나 나의 일은 판밖에 있단 말이다." 또 손을 오무리시고 "이 손안에 무엇이 있는줄 아느냐. 방안에 일을 두고 마당에서 야단친단 말이다." (동곡비서 p46)
@ 또 가라사대 "나의 일은 상씨름 씨름판과 같으니라. 상씨름딸 사람은 술이나 먹고 잠이나 자면서 누워서 시치렁코 있다가 상씨름이 나온다고 야단들을 칠 때 그 때야 일어나서 판안에 들어와서, 어유 상씨름 구경하러 가자. 끝내기 여기 있다. 누른장닭 두 회 운다. 상씨름꾼 들어오라. 벽력같이 고래장치니 어느뉘가 당적할가. 허허허 참((珍) 봉(鳳)이로고. 소딸놈은 그기 있던감만 밤새도록 헛춤만 추었고나. 육각소리 높이뜨니 상씨름이 끝이 났다." 하시니라. (동곡비서 p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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