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인자무적 2

[건강이]

연재소설
인자무적-2

골목길을 돌자 향내가 코를
찔렀다. 정결은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기와를 얹은 지붕은 방금 전에 내린 소낙비로 인해
더욱 선명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정결은 기와집 앞에서 잠깐
망설였다.
조그만 대문에는 날아갈 듯
한 글자체로 천년궁(千年宮)이
라는 현판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대문 옆에는 사인교의 가마와 그 가마를 메고 온 것이 분명한 네 명이 아무렇게나
길가에 퍼질러 앉아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천년궁 이라고?”

정결이 잠시 망설이는 사이,
대문이 열리면서 우아한 궁장의 여인이 양쪽으로 시녀를 대동하고 나왔다. 정결이 얼른 옆으로 비켜서자 궁장차림의 여인이
정결을 지나쳤다. 독한 향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궁장 차림의 여인이 정결을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정결이 얼른 눈을 내리깔자
피식 웃음을 날리면서 얼른
사인교 가마에 올랐다.
네 명의 사내가 가마를 들고 일어서서 골목길을 걷기 시작하자 두 명의 시비도 종종걸음으로 가마를 뒤따랐다. 돌아보니
대문은 어느새 굳게 닫혀있었다.

“계십니까?”

정결이 큰 목소리로 대문 안쪽에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안에 아무도 없나요?”

대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무사차림을 한 우락
부락한 사내가 정결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무슨 일이오?”

“천년궁의 주인을 만나러 왔습니다.”

“앞일을 물으러 온 거요?”

“그렇다고 해둡시다.”

무사차림의 사내가 정결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가을이 끝나가는 무렵이라
바람이 쌀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낡다 못해 아예 삭아버린 피풍의에 무릎이 불룩 튀어나온 먼지투성이의 하의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다시 한마디를 던졌다.

“여기가 뭐하는 데 인줄은
알고 온 거요?”

정결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이곳의 주인을 만나러 왔다니까요?”

“이거 보시오. 천산신녀님을
한 번 면담하려면 적어도 은자 두 냥은 있어야 한단 말입니다. 지금 높으신 여인네들의 예약도 열흘 이상이 밀려있단 말입니다.
꼭 만나야 한다면 은자 한 냥을 예약금으로 걸고 내일 모레쯤 다시 오시오.”

“천산신녀라구요?
게다가 은자 한 냥을 걸어야
한단 말이오?”

“젊은 양반이 말귀
참 못 알아 듣네.
은자가 없다면 그냥 가시오.”

“예약이 없는 날은 언제요?”

“개구리 수염 날 때요.”

정결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자 무사가 신경질을
부리면서 말을 이었다.

“귀하신 몸이란 말이오.
천산신녀님은 당신 같은 비렁
뱅이와는 차원이 다르단 말입니다.
계속 얼쩡거리면 업무 방해죄
로 관아에 신고할 테니 그리 아시오.”

“알았습니다. 그 대신에 신녀님에게 결이가 왔다고 전해 주시오.”

“그런 어수룩한 수작은 부리지 마시고 은자나 마련해서 오시오.
워낙 신통력이 높으신 분이니 은자가 아깝지는 않을 거요.”

“알았소이다.
며칠 내로 다시 오겠소.”

정결은 대문 안으로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섰다.
그때 안쪽에서 가늘고 쉰 여인의 새된 음성이 들려왔다.

“시끄럽구나.
밖에 무슨 일이 있느냐?”

무사가 대문을 쾅 닫으면서
큰 소리로 대답했다.

“지나가던 비렁뱅이가 시비를 걸어서 관아에 고발한다고
겁을 주어서 쫓아 버렸습니다.”

“잘 했다. 누구에게나
친절해야 한다. 알았지?”

“예, 덕분에 정신수양은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영 마음이 불안하단 말이야.
이상한 일이지.”

천산신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사방이 온통 흰 색의 종이로
도배된 방안엔 탁자가 하나
놓여있고 그 탁자위에선 향이 홀로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신녀님 말씀대로 예약손님들 다 돌려보내고 오늘의 일정을 모두 비웠습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무사의 말에 신녀가 다시 중얼거렸다.

“잘 했다. 너 하나만 남고
나머지는 나가서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오너라.”

신녀가 방문을 열고
은자 두 냥을 던졌다.
두 냥을 받아든 무사가 휘파람을 불자 지붕 위와 기둥 뒤 그리고 나무 위에서 세 명의 무사가 떨어져 내렸다. 무사가 세 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은자 한 냥을 가운데 서있는 무사에게 휙 던졌다. 가운데 서있던 무사가 얼떨결에 받았다.

“나가서
술 한 잔씩 하고 오란다.”

“형님은 안 나가시고요?”

“오늘은 내가 당첨이다.
한명은 여길 지켜야 하는 거
알지?”

“우리끼리 먹으려니 어쩐지
미안해서요?”

“내 술값은 미리 챙겨두었다.
하하하”

무사가 품속에 있던 은자
한 냥을 허공으로 던졌다가
다시 받았다.
무사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발길을 돌려 대문을 나섰다. 은자 한 냥을
품속에 챙긴 무사는 다시 대문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상념에 잠겼다. 그때였다. 다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오늘 예약은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신녀님께서 몸이 안 좋아 쉬신다고 하니 다음날 오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무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쾅쾅하고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사가 인상을 쓰면서 대문을 활짝 열었다.
거기엔 아까 찾아왔던 남루한
옷차림의 젊은이가 서있었다.

“여기 은자 두 냥을 가져왔습니다. 신녀님을 뵙게 해주십시오.”

“이것 보시오. 은자 한 냥을
예약금으로 걸어도 삼 일후에나 면담이 가능하단 말입니다.
그 젊으신 분이 진짜 말귀 어둡네?”

“신녀님과는 아는 사이란 말입니다. 제발 한번만 결이가
왔다고 전해주기나 하십시오.”

그때까지 조용하던 방문이
활짝 열리고 천산신녀가 얼굴을 내밀었다. 훌쩍 큰 키에 긴 생머리가 자연스럽게 흩날렸다.
하지만 그의 목에서는 듣기
역겨운 새된 음성이 새어나왔다.

“무엇 때문에
이리 시끄러운 것이냐?”

흰색 도포를 길게 걸쳐 입고
머리에는 문사 건을 삐딱하게 얹었다.
격식에 어긋난 옷차림이지만
묘하게도 자유분방한 느낌을
줄뿐 난삽해 보이지는 않았다. 신녀의 눈가로 한 젊은이가 보였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피풍의 속으로 굵직굵직한 팔 다리가 보였다.

게다가 아무렇게나 흘러내린
머리에는
얼마나 오랫동안 감지 않았는지
먼지가 수북하게 앉아있었다. 게다가 피풍의도 여기저기 찢기고 삭아서 오히려 옷이 사람의 덕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게다가 등에는 낡은 고검 하나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는데 그 모습 또한 어딘지 낯익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몸이 천 근 만근이라 귀찮기 짝이 없었다.

“ 오늘은 몸이 무지하게 안 좋으니 내일 모레 오시면 예약 없이 한 번 만나드리리다. 부탁이니 오늘은 돌아가시오.”

“알았습니다.”

낮은 중저음 역시 귀에 익다.
젊은 사내가 미련없이 돌아선다.
어지럽다. 최근 들어서 이렇게 기력이 약해진 적은 없었다.
사내가 나가고 대문이 닫혔다. 잠시 벽에 기대어 앉았다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불길한 예감 하나가 온몸을 전율에 빠지게 했다. 급히 문을 열고 무사에게 소리쳤다.

“아까 소란을 피운 자도 저자였더냐?”

“그렇습니다.”

“별 다른 말은 없었더냐?”

“결이가 왔다고 전해 달라고
통사정을 했지만 묵살했습니다.”

다리에 힘이 탁 풀린다
그때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이명과 두통이 사라지고 나른한 전율이 온몸으로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결이구나.
어느새 결이가 저렇게 컸구나.

[부산항구]

인자무적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