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贈吏曹參議蔡公墓表】
증이조참의채공묘표
嗚呼。此東陽牧丹山之南麓負艮之原。高四尺而若堂者。卽承父死國兼忠孝。
아아, 여기 동양 모란산 남쪽 기슭에 간향으로 높이 넉 자이지만 우뚝한 무덤이 있으니 이 분은 아버지를 이어 나라를 위해 죽었으니 충과 효를 겸하였다.
蔡公諱綱字汝綱之墓也。蓋其先公當甲子逆适之變。本府以素著勇畧。召任軍務。則以新出身。慷慨赴軍。
무덤의 주인공은 채공으로 휘가 강이며 자가 여강이다. 그의 아버지는 갑자년 이괄의 난을 당하여 본부에서 평소 용력이 드러나 있던 그를 군무(軍務(군무))에 부르니 신출(新出)의 몸이었으나 강개하여 군으로 달려갔다.
出陣猪灘。當其全師敗沒之時。能奮忠勇力戰。擊殺賊者甚衆。而自度凶鋒之獨不可折。
저탄에 출진하였다가 전 군사가 패몰하던 그 때를 당해 분충용력(奮忠勇力)하여 싸우니 격살한 적이 매우 많았다. 그러나 흉봉(凶鋒)을 혼자서 꺾을 수 없다고 스스로 헤아렸으나
義膽之終不可屈。躍馬投水。視死如歸。
의로운 담기가 끝내 적당(賊黨)에 굴할 수 없어 말을 탄 채 물에 뛰어 드니 시사여귀(視死如歸)의 태도 그대로였다.
而公則當丙子金虜之亂。年方十八。人皆避亂山谷。而獨拜辭老母曰。
아들인 공이 병자호란을 당하였을 때 나이 열여덞이었다. 사람들은 다 산곡으로 피난하였으나 홀로 노모와 헤어지며 말했다.
父死於王事。兒何忍全軀。不赴國難乎。義當扈我車駕。無忝所生。遂持弓矢。徑往南漢。十二月二十五日。遇賊於坡州戰死。
“아버지께서 왕사(王事)에 돌아가시니 자식된 자가 어찌 몸을 아껴 국난에 달려가지 않으리까? 의당 나의 수레를 뒤따르는 것이 아버지에 대한 부끄럽지 않는 일이겠습니다.” 마침내 궁시(弓矢)를 가지고 바로 남한산성으로 가니 그날이 12월 25일이었으며, 파자에서 적을 만나 전사하였다.
父子皆不得屍。葬以衣履。後自朝家贈先公以司宰監正。贈公吏曹參議。而又皆命旌。
부자 두 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옷과 신발로 장례 지냈다. 뒤에 조정으로부터 아버지는 사재감정으로, 아들은 이조참의로 증직되었다. 또한 두 사람 모두에게 명정(命旌)이 내려졌다.
先公諱宗榮。妣淑人德水李氏。司直聃壽女。以萬曆己未生公。
아버지는 휘가 종영이며, 어머니는 숙인으로 덕수이씨 사직 담수의 따님이시며 만력 기미년[1619]에 공을 낳았다.
自幼行蹟雖無傳。推一事可知也。
어려서부터의 행적이 전하는 게 없으나 한 가지 일로 추측해 보면 알 수 있다.
公仁川人。麗朝之末。有諱貴河官戶曹典書。邦運訖。入杜門洞。折松圍籬。
공은 본관이 인천이며 고려 말에 휘 귀하가 호조전서를 지냈다. 나라의 운수가 다하여 두문동에 들어가 소나무를 꺾어 울타리를 삼았다.
築土封門。末乃遯于牧丹山下。與牧隱李公穡。東西分巷而居。
흙을 쌓아 문을 봉하였다가, 마침내 모란산 아래에 숨으니 목은 이색 선생과는 동서로 골목을 나누어 살고 있었다.
終守罔僕之節。於公爲七世祖。仍世居東陽。諱贇縣監。諱欽周承義副尉。諱穆通德郞。於公爲高曾祖也。
끝내 망복지절을 지키니 공에게는 7세조가 된다. 그로부터 대대로 동양(東陽)에 살았다. 휘 빈(贇)은 현감을, 휘 흠주(欽周)는 승의부위를, 휘 목(穆)은 통덕랑을 지냈으니 이들은 각각 공에게 고조, 증조, 조(祖)가 된다.
齊淑夫人韓山李氏。其考諱璟也。有一子。曰夢說 贈吏曹參判。
제숙부인은 한산 이씨이며 그의 아버지의 휘는 경이다. 한 아들이 있으니 몽열(夢說)로 증이조참판하였다.
有八孫。曰元龜,文龜,聖龜,壽龜,重龜,禎龜,祥龜,泰龜。
여덟 손자로 원구, 문구, 성구, 수구, 중구, 정구, 상구, 태구가 그들이다.
曾玄以下不錄。公之九世孫奎五。將早晩立石表諸墓。以補舊闕。而謁余爲文。
증손 현손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공의 9세 손이 규오로, 조만간 여러 묘에 입석하여 오래 되고 빠진 것을 보충할 예정으로 있다. 그가 날 방문하고 글을 청한다.
余與奎五相從日久。有不敢固辭也。於公父子。曾有一鄕公論。
나와 규오는 상종한지 오래 되어 굳게 거절하지 못하였다. 공의 부자에 있어서 일찍이 온 고을의 공론(공론)이 있으니
曰荷戈執殳。勇赴國難。蹈刃冒石。以全臣節者。
창을 들고 용감히 국난에 달려가 칼을 밟고 돌을 무릎 써 신하의 절개를 다한 자라고 하였다.
苟非平日之素所蓄積。知有國而不知有身。
진실로 평소에 수양을 쌓지 않았다면, 나라가 있을 뿐 자신의 몸 있는 줄 모르거나
知有死而不知有生者。其孰能之。
죽음이 있는 줄은 알아도 삶이 있는 줄 모르는 그의 그날의 일이 어떻게 가능했으랴.
一之有死難矣。乃有是父是子之死矣。
한 번 죽는 것도 어려운 일이거늘 이런 아버지와 이런 아들의 죽음이라니.”
吾不間 於其言也云。
나는 고을 공론장의 그 말에 끼어들어 무어라 말하지 못하겠다.
●휘(諱) 종영(宗榮)[1619-1636]의 묘표(墓表)이다. 묘표를 찬한 사람은 의병장 의암 유인석(毅庵 柳麟錫) 선생이다.
♣저탄(猪灘) :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동쪽에 있는 예성강(禮成江) 상류의 명칭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망복지절(罔僕之節) : 기자(箕子)처럼 망한 나라를 위해 지키는 절개. 여기서는 고려를 위해 지키는 절개를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