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남산은 길도 많아서
기분에 따라 이 길 저 길로 오르지만
내려올 땐 언제나 같은 길을 걷는다.
백범광장 쪽으로 내려오면
40여년 세월 그 자리를 지킨 힐튼 호텔이 저만큼에서
남산을 두 팔로 감싸 안을 듯
귀로의 나를 품어줄 듯 활짝 반겨준다.
양쪽 모서리가 부드럽게 휘어진 이 건물이 완공되던 무렵을 기억한다.
사각의 건물을 저리 구부려 지을 수도 있는 거구나, 감탄을 했었다.
그런데 몇 번 소유주가 바뀌더니 보존하자는 목소리를 뒤로한 채
헐어버리기로 결정했다 하여 찾아가 본 힐튼 호텔.
Hilton이란 로고가 사라지고
주변 건물이 하나 둘 불을 밝혀도
홀로 검은 창에 침묵을 지키며
운영 종료 안내문만 바람에 너풀거리고 있었다.
건물에도 운명이란 게 있나보다.
어떤 소유주를 만나느냐에 따라 부침을 겪는걸 보면.
연륜이 더 오랜 종로 삼일빌딩은 리모델링으로 본 모습을 유지하건만
사라질 힐튼 호텔을 보는 마음은
한번은 떠나야할 생의 뒷모습을 대하는 듯 쓸쓸하다.
열악한 시대
건설이 아닌 건축을 구현한 건축가 김종성님.
혼신의 힘을 기울인 역작에
기대 이상으로 좋은 호텔을 만들었다’는
힐튼 인터내셔널 회장의 편지를 받고 울었다는데...
힐튼이 헐린다는 소식에
고령의 불편한 몸을 이끌고 분신 같은 작품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봤다.
긴 시간 한 장소를 대표하는 상징적 건물인 랜드마크가 주는 의미는
단순한 건물 이상의 의미인 것 같다.
역사가 담겨 있고 추억이 깃들고...
힐튼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남산 길은 이전과 결코 같은 느낌일 수 없을 거다.
랜드마크 보존과 개인의 재산권 유지 그 간극이 새삼 안타까운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사진 다음 이미지)
첫댓글 오매나!!
힐튼이면 내 한창 청춘시절에 멋쟁이 건물로 지어진 것인데
어찌 사람 목숨만큼도 못견딘다는 말인가?
설계하신 분도 저리 멀쩡히 살아계신데 말이다.
십여층건물이라 아마도
요즘 적어도 50층은 지으니 그리 높이 지으려
철거하나봅니다.
세상의 발전에 목숨부지하기가 쉬운 일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게요.
지금 봐도 세련된 건물인데
사람의 한생보다 짧네요.
2대 3대 역사가 이어지는 근대건축물들이
고궁과 어우러지는 서울의 모습
멋질텐데요.
소유주 D기업의 몰락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힐튼의 마지막이 씁쓸합니다.
그러게 참 이거 플로라 님 글을 읽고
처음 알았구만요^
호텔을 부수고 50여층 정도의 건물을
올리면 남산은 뭐가 될까요?
당연 잘 보이지도 않고 건물만 우뚝 보이겠져~
부랴부랴 찾아보니 매우 의미가 있는 건물이었네요.
콩크리트나 철골로 그저 높이 쌓아 올리기만 하는
건축에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힐튼호텔~
관련 기사 전문을 답댓글에 올려 봅니다.
외관은 물론 내부도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던 힐튼을
문화유산으로 보호하자는 목소리에
개발업체도 절충안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로비는 보존하고
고도를 다소 완화하여 남산 조망권을 확보하는 방향으로요.
많은 사람의 관심이
최악의 상황은 면하게 한 것 같습니다.
놀라운 소식 감사합니다..
83년에 지은 건물이라면
아직 젊은 나보다도 한참이나
젊은 건물이건만...
100여년을 넘게 지난 외국의 건축물은
물론 수백년 역사적으로 지키는 정신에
비해, 오직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재개발을 선호하는 우리의 정서...
남산의 전경을 지키겠다고,
외국인 아파트를 허물었던 상황과
다른 것인지??
반갑습니다, 서글이님.
오래 전 파리를 처음 보았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나지막한 건물들이 있는 도시가
마치 한 폭의 작품 같았습니다.
그런 경관을 갖기까진
19세기 도시 개선 사업과
이면에 재산권을 희생한 시민 정신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열악한 시대를 거치면서
경제 가치가 최고였던 우리나라.
시간이 흐르면
차츰 그런 시민 정신이 무르익어 가리라 생각합니다.
힐튼 호텔이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지나
봅니다.
서울유학시절 많이 찿았던 남산길은 중장년이
되어서도 서울에가면 남대문을 거쳐 오르던
길이기도 하였지요.
앞으로는 남대문 거쳐서 남산에 오르는 길도
꽤 낯설어질듯 합니다.
오래 전부터 남산길을 사랑하셨네요.
같은 길을 오래 다니다보면
그 길의 나무, 꽃 한 송이까지도 눈여겨 보게 되지요.
늘 보이던 나무 한 그루가 보이지 않아도 궁금해지는데
하물며 긴 시간 한 자리를 지키던 건물이 사라질 빈 자리가
못내 아쉽고 서운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