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7월26일(수)흐림 간간히 비
삭발일. 선덕스님과 서기스님과 동행하여 목욕을 다녀오다. 머리 깎는 일은 산중의 다반사인데 무어 그리 대단한 것이라 삭발날이란 이름 붙여 놓고 하루를 기리는가? 스님들에게는 출가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추억 가운데 머리털이 상징하는 바가 가슴을 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출가하여 삭발의식을 행할 때 세숫대야를 앞에 놓고 上行者상행자가 머리를 깎아줄 채비를 한다. 상행자는 먼저 가위로 긴 머리를 서너 동강 잘라주면서 땅을 파고 묻고 오라한다. 거기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향해 하직인사를 드리며 다시는 세속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히라고 시킨다. 그러면 땅을 파는 게 아니라 가슴을 파는 것이라, 삽으로 가슴을 후벼 판다. 가슴에 난 구멍 속으로 머리카락을 묻고 세속의 사연을 봉인한다. 다시는 세속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아버지, 어머니 부디 사바세계 한 평생 편안하게 지내소서. 소자는 부처님 문중으로 출가하여 부모님의 安過泰平안과태평을 기도하겠나이다. 그러면서 고향을 향해 세 번 큰 절을 올린다. 어떤 행자는 눈물이 얼굴을 적시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시원섭섭하였다.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해야 할 일을 마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숫대야로 돌아오니 상행자가 밤송이 같이 남은 머리털에 물을 축여 면도칼로 반들반들하게 깎아준다. 하얀 밤톨처럼 빛나는 머리를 거울에 비쳐보며 아, 이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안도의 숨을 깊이 내쉰다. 이제 부터는 절집의 스님네 가족이 된 것이다. 나는 드디어 부처님 제자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세속의 ‘나’는 죽고 부처님 가문의 아들로 다시 태어났다. 그래서 삭발한 날을 다시 태어난 날이라 하여 생일로 삼는 노스님들도 있었다. 나는 순천 송광사로 출가하였다. 1983년 7월27일 광주버스터미널에서 송광사 가는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큰 절로 걸어 올라갔다. 파란 바탕에 <대승선종 조계산 송광사>라는 금색 글씨로 쓰진 현판이 일주문에 걸려 있어 중후한 기운이 나를 감쌌다. 나는 혼자 생각에 스님이 되려는 사람들은 모두 승보종찰 송광사로 가야되는 줄 알았었다. 마치 영장이 나와 군에 가려는 사람들은 모두 논산훈련소로 가야하듯 말이다. 어째든 송광사와의 인연은 이렇게 맺어져 삭발본사가 되었다. 당시에 행자는 20명에서 30명 사이로 상당히 많이 모였기에 소대병력만큼 되었다. 행자 가운데 제일 먼저 온 분이 행자반장을 맡는데, 당시 이 분의 권위는 거의 祖室조실스님을 방불하였다. 행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집단생활에 동화되어 기계부속처럼 원활하게 돌아가야 된다. 행자생활은 거의 훈련소 신병생활과 같거나 自隊자대로 배치된 이등병의 신세와 같았다. 할 일 많고 심부름도 많아 거의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없는 환경에서도 금쪽같은 시간을 아껴서 남몰래 좌선과 독경을 했던 추억이 아련하다. 그때의 간절하고 부지런했던 기억이 그립고 소중하다. 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행자시절이여.
2017년7월27일(목)흐리고 간혹 비
안개가 나지막이 깔려 산을 감싸니 薄紗煙霧박사연무요,
담장 밖의 망초 꽃이 스러져 흙빛으로 변했네,
가을은 남몰래 여름의 눈 속에 숨었었구나.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봉선사와 꼭 같은 이름의 절이 중국 낙양에도 있다. 두보(杜甫, 712~770)가 한번은 용문석굴로 유명한 봉선사를 찾았던 모양이다. 古文珍寶고문진보에 이런 시가 나온다.
遊龍門奉先寺유 용문 봉선사-용문 봉선사에서 노닐다
已從招提游, 이종초제유 이미 절에서 노닐다가
更宿招提境; 갱숙초제경 다시 큰 절로 와 하룻밤을 묵네.
陰壑生虛籁, 음학생허뢰 어둔 계곡에서 텅 빈 바람 소리 울리고
月林散清影; 월림산청영 달빛어린 숲에 맑은 그림자 어른거리네,
天闕象緯逼, 천궐상위핍 하늘 바라보니 별자리 낮게 드리우고,
雲臥衣裳冷; 운와의상냉 구름 속에 누우니 옷이 차구나
欲覺聞晨鍾, 욕교문신종 들려오는 새벽종소리 잠 깨우려는데
令人發深省. 영인발심성 사람 마음 깊이 돌이켜보게 하누나.
낙양의 용문석굴은 봉선사 경내에 위치해있고, 석벽에 부조된 노사나불이 측천무후의 얼굴을 본 따 새겨졌다하고 만고에 유명하다. 측천무후는 불교를 애호하여 화엄종과 북종선을 후원하였다. 들려오는 것 보이는 것이 모두 令人發深省영인발심성이라, 사람 마음 깊이 돌이켜보게 한다. 너 지금 뭐하고 있느냐? 너 지금 뭔 짓하고 있는 줄 아냐?
2017월28일(금)흐림, 간간히 비 뿌림
맥스에게서 소식 오다.
Dear Wondam Sunim, Thank you for your note. It is comforting to know your example, and your clarity and kindness shine through in your guidance. Your perception of the situation here is accurate. My father died this January, so that has added to the situation and confusion. He was a wonderful person, and it provides new perspective now without him living. At GOOD, as we manage through our acquisition of Upworthy, it feels I should be present with the situation as it resolves, though this may happen quickly. My intention is to work 8-9 months next year, and then use the remaining 3-4 for spiritual practice - long meditation retreats or long walks, or just living simply and centered, until a deeper clarity and completeness emerges. Definitely there is a strong inner urge to leave my full time work completely and focus 100% on spiritual practice. Still some fear and hesitation exist to leave behind my income, and I would like to see the situation through a bit further to not feel I am running away from anything or acting too drastic after the death of my father. Gratitude and respect fill my heart thinking of you. Sending best wishes to you for your summer retreat, and I look forward very much to when our paths cross again in person. I am very interested to do the intensive practice under your supervision, and perhaps when the time is right a correct situation and opportunity will appear. Yours the dharma, Max
친애하는 원담스님께. 서신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스로 수행자의 예를 보여주시고 또 지도하는 방식에서 비쳐 나오는 명료함과 친절함을 알게 되니 위안이 됩니다. 여기에서 제가 처한 상황에 대한 스님의 인식은 정확합니다. 제 부친은 올 정월에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이 힘든 상황에다 혼란을 가중시켰지요. 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셨어요. 이제 아버지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되었어요. 굿이라는 회사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업워디社를 매입하는 절차가 가까스로 진행 중인데요, 아마도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질 것 같긴 한데 상황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할 것 같아요. 내년에는 8,9개월만 일하고 3,4개월 동안은 수행하는 데 쓰고 싶어요. 장기간 안거에 들어가든지, 장거리 도보여행을 하든지, 단출하고 집중이 있는 삶을 살든지 하면서, 더 깊어진 명료함과 완전함이 깃들 때까지 그러려고 해요. 얽매는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 100% 수행에 몰입하고 싶은 내적인 열망이 확실히 있어요. 수입원을 떠난다는 것에 망설임과 두려움이 좀 있긴 해요. 어떤 것으로부터 도망치거나 아버지가 죽은 뒤에 별다른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좀 더 상황을 지켜보고 싶어요. 스님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와 존경심이 떠올라요. 안거를 같이 지내는 스님들께도 안부 전해주시고요. 우리 가는 길이 서로 마주치게 될 것을 학수고대합니다. 스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집중수행을 진심으로 하고 싶어요. 아마도 시기가 적절하고 상황이 맞으면 기회가 올 것입니다.
부처님 법에 귀의하는 맥스로 부터
이에 답장하다.
Good to hear from you. I feel easy to hear that you commit yourself to the Good and are aware of not running away from the imminent requirements. Yes, definitely next year we will enjoy a better chance for your intensive meditation and my affordability. Let`s have a high hope for our brilliant encounter. Keep in touch. Wondam with love and care.
네게서 소식을 들으니 기쁘다. 네가 굿이란 회사에 헌신하면서 당장 요청되는 일에서 도망가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니 안심이 되는구나. 그렇다. 확실히 내년이면 너는 집중수행을 하고 나는 장소를 장만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 더 나은 기회가 올 것이다. 반짝이는 우리의 만남을 높이 기대해보자. 연락하고 지내요. 사랑과 관심을 가진 원담으로부터
2017년7월29일(토)종일 흐림
하루가 느닛느릿. 큰 절에서 어린이 불교학교가 열려서인지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요즘 절에 어린이 보기가 힘든데 봉선사는 그래도 포교에 관심이 있어 여름방학을 기회로 어린이 불교학교를 운영한다. 이것은 오늘날의 봉선사를 있게 한 耘虛운허(1892~1980) 노스님 덕택이다. 노사는 역경과 포교의 원력으로 평생을 사신 분이다. 젊은 시절 만주지역에서 10년간 학교교육을 통해 애국심으로 민족의 미래를 준비하면서 일본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을 하셨다. 그러던 중 일본의 경찰에 쫓겨 강원도의 금강산의 유점사에서 스님이 되었다. 그 후 봉선사를 중심으로 일제의 피압박 시대에 살았다. 스님은 독립운동시기부터 죽을 때까지 학생과 불교신도를 위한 교육에 한평생 헌신하였다. 1945년 해방된 후 남양주시에 광동중학교(光東中學校)를 세우고 교장으로서 교육에 투신하였는데 이 중학교에서 시작한 것이 나중에 의정부광동고등학교로 발전했다. 스님은 불교와 사회에서 교육에 헌신한 교육자이셨다. 부처님도 교육자이셨다. 아, 나도 교육자이고 싶다. 스님은 모름지기 교육자이어야 한다.
2017년7월30일(일)흐림
가을 기운이 느껴진다. 쓰르라미가 들어가고 참매미가 운다. 풀벌레 소리가 쏠쏠하다. 점심 공양 끝나고 대중이 다각실에 모여 해제를 준비하는 일정을 발표했다. 하안거 3개월이 바야흐로 마감 시간이 다 되간다. 끝까지 잘 마무리해야한다.
문득 <여명의 눈동자> 마지막 장면과 엔딩Ending 자막이 떠오른다. 지리산 눈 덮인 산 속, 최대치의 품에서 장하림의 옷을 덮고 떠난 윤여옥과, 죽어가는 최대치를 바라보는 장하림. 세 사람의 마지막 장면은 다시없을 최고의 Ending 장면이지만 그건 드라마. 실제상황은 최고의 비극이며 고통이었다. 나는 그걸 잊고 사는가? 아니면 잊은 지 오래되었나?
“그해 겨울 지리산 이름 모를 골짜기에 내가 사랑했던 여인과 내가 결코 미워할 수 없었던 친구를 묻었다. 그들은 가고 나는 남았다. 남은 자에겐 남겨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희망이라 이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이 무정한 세월을 이겨나갈 수 있으므로.”
죽지 않고 남은 자들의 희망이라! 그 때 안 죽고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결국 다 죽는다. 그러면 그건 누구의 희망이 되는가? 중생의 희망은 세간에 갇힌 欲이다. 죽음을 건넌 覺者의 보리심이랄까, 사무량심만이 대치와 여옥의 恨과 하림의 希에 깃든 欲漏를 풀어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大義를 위해 싸우다 이름 없는 산하에서 죽어갔던 사람들을 잊었는가? 잊어버리려 하는가? 잊어버린 척 하는가? 세월이 지나도 바래버리지 않고 남아 있는 건 있다. 그건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다.
2017년7월31일(월)흐림
아침나절에 도량을 깨끗이 정리하는 울력을 하다. ‘마무리’라는 좋은 말이 생각난다. 이제 여기에서 일어난 일들을 마무리해야 한다. 맺힌 것을 풀고, 쌓인 것을 흩어서 아무 찌꺼기도 남지 않게 끝내야 한다. 뒤끝이 없는 멋진 끝맺음, 이것이 깔끔한 마무리다. 결제 대중은 곧 흩어진다. 3개월 함께 지내기로 약속한 시간이 끝나간다. 일주일 뒤면 프라이팬에 콩 튀듯이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다. 이생에 다시는 못 만날 스님도 있을 것이고, 어디선가 다시 볼 스님도 있을 것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다반사인 것이 수좌생활이다. ‘다음 생에나 봅시다.’고 인사를 하던 구참스님도 있었다. 수행이란 긴 여정을 가다보면 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도 보이는 곳까지 가기만 하면, 거기에 다시 갈 길이 보인다. 어디서든지 나보다 먼저 간 선각자는 있게 마련이다. 그분께 머리 숙이고 길을 물으면 다시 나아갈 길이 열린다. 길을 끝까지 가려는 사람은 중간에 멈추거나 거기서 끝내지 않는다. 중간에 다 됐다고 멈추며 끝내는 사람은 아니 간만 못하다. 길의 끝까지 가려는 사람은 시작할 때부터 남다르다. 어떤 길의 끝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진정한 끝이 아니라면 항상 다시 시작하리라. 끝이 아닌데 끝이라고 우기면서 중간에서 살림을 차리는 사이비들이 적지 않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기라성 같은 역대 선지식들 앞에 겸손할 줄 모른다. 나부터 젊은 시절에 그랬었다. 빨리 가고 질러간다고 생각한 만큼 늦어졌고, 멀리 돌아서 겨우 지금 여기에 있게 되었다. 수행이란 여정이 長江大河장강대하와 같아 長久心장구심이 요구되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2017년8월1일(화)맑음
비 소식이 있었지만 다시 맑아졌다. 발우를 씻어 말린다. 스님들이 밥을 받아먹기 위해 각자 가지고 다니는 식기를 鉢盂발우라 한다. 말하자면 예전에 거지들이 밥을 구걸하며 들고 다니던 박 바가지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하루에 일곱 집을 다니면서 밥을 얻어먹으라 했다. 제자들이 배 곪아 죽는 것을 막기 위한 생활방편으로 그렇게 했다기보다는 당시 인도에서는 遊行유행하는 탁발승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일은 흔히 있는 풍속이었기 때문이다. 세간의 풍속에 따라 탁발하여 먹고 살라는 생활규칙에는 특별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 스님들이 세간을 벗어나기 위한 공부를 하더라도 세상을 완전히 버리거나 떠나는 것이 아닌, 세간살이의 현장에서 사람들을 직접 만나 밥을 얻는 대신에 법의 인연을 맺어주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기브 앤드 테이크Give & Take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기브앤드테이크는 거룩한 주고받음이요, 영원의 가치를 띤 거래이다. 法緣으로 이뤄진 거래는 세간적 행복을 약속하고 나아가 출세간적 행복까지 담보해준다. 그래서 숲속에 거주하는 탁발승은 매일 아침 발우를 들고 당당하게 마을로 들어가 신심 있는 시주들로부터 밥을 한 숟갈씩 혹은 한 주걱씩 받는다. 탁발승은 그럴 때마다 ‘이렇게 공양올린 인연으로 현생에는 세속적인 행복을 누리며 많은 공덕지어 내생에 천상에 나시기를. 부처님 법을 만난 인연으로 마침내 윤회를 끝내고 열반을 성취하시길!’ 心祝심축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밥을 빌면서 법을 보이는 것이다. 탁발승의 한 걸음 한 동작이 모두 sati-sampajana이기에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탁발승은 밥을 퍼주는 남자나 여자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단지 형체만 어렴풋이 인식할 뿐이다. 탁발승의 눈길은 밖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닌 안을 향해 있다. 그러므로 탁발하는 것 자체가 정념수행이다. 아침 반 나절 동안 마을을 돌면서 탁발했다 해도 ‘누구에서 무엇을 받았는지’에 대한 想이 없다. 좀 길게 經行을 한 것 같은데 발우가 무거워서 보니까 밥이 담겨있네. 이런 느낌이다. 善哉. 善哉. 그립다. 미얀마 숲속 위빠사나 센터에서 탁발하던 시절이 그립다. 우리는 부처님 당시의 승가(사와까상가savaka sangha)가 지켜왔던 아름다운 전통을 너무 많이 잃어버렸다. 우리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돌아가려고 되돌아보니 까마득하다. 그래서 더 그립다. 내 마음의 고향은 부처님당시의 아리야상가Ariyasangha이다. 왜, 그때 태어나지 못했을까? 이것이 천고에 맺힌 한이다. 그렇기에 사바세계의 한 귀퉁이에서 이렇게 외로운 여우처럼 살아간다. 이곳에는 숨만 쉬고 살아도 감지덕지 하다고 여겨야 한다. 왜? 나는 부처님당시 아리야승가에 들어가지 못했을 정도의 박복한 중생이었기에, 지금 인간남자의 몸으로 그나마 가사라도 걸치고 간신히 불교를 공부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기 때문이다.
2017년8월2일(수)맑은 후 차차 흐려짐
햇살이 너무나 화창하다. 햇볕이 좋아 눅눅해진 이불과 담요를 말린다. 여름동안 덮여져 있거나 눌려져 있는 것들이 습기를 먹어 축져졌다. 정신신체적psychosomatic으로도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고 눌러두었거나 한쪽으로 밀쳐두었던 것들이 오래되면 엉겨서 몽글몽글 덩어리가 된다. 이럴 때 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고 햇볕에 쬐여서 말려야 한다. 닫힌 마음의 창을 열고 햇볕을 쬐게 하는 일이 참회와 정념수행이다. 사람은 가만히 두면 자기가 편한 곳을 찾아가서 거기에 처박혀 시간을 보낸다. 쾌락의 법칙이다. 자기 취향대로 재미나는 대상을 찾아간다. 거기서 싫증이 날 때까지 죽친다. 그러다가 권태로워지면 다시 재미를 찾아서 다른 대상으로 옮겨간다. 재미난 대상-싫증-재미난 대상-싫증...을 되풀이 하면서 일생을 산다.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옮겨 다니는 마음은 원숭이가 하는 짓과 같다고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원숭이노릇하기를 멈추고 가만히 앉아 ‘마음’이란 원숭이가 무슨 짓을 하는지 관찰해본다. 마음이 재미난 대상을 찾아 몰두하면 여러 가지의 허물이 벌써 생긴 것이다. 재미를 유발했다고 느껴진 대상을 실체화하고 집착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재미를 찾고 느끼는 습관이 더 강화된다. 대상을 실체화하고 집착하니 無常을 망각한다. 재미를 찾는 습관이 강화되니 무아를 망각하고 我見이 강화된다. 정견을 등졌으니 無明이 늘어난다. 나는 사람인가, 원숭인가? 나는 빛을 향해 가는가, 어둠속으로 숨는가? 나는 무명이 늘어나는 짓을 하는가, 무명을 밝히는 일을 하는가? 질문이 날카로워 방심할 수 없게 만든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거의 원숭이 짓을 하고 있을 텐데. 최소한 지금 나의 상태가 어떠한지는 알아차린다. 알아차림, 바른 기억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일 수 있다.
2017년8월3일(목)맑음
새벽정진 마치고 죽비를 놓는다고 대중에게 고하다. 이로서 하안거 좌선정진은 공식적으로 마무리한 셈이다. 날씨가 좋아 모두 함께 좌복피를 벗겨내어 빨다. 개인이 쓰던 이불과 베개 닛은 각자 빨아서 말려야한다. 빨래를 줄에 널어놓으니 햇살이 내려와 퉁기면서 부서진다.
눈부신 날
구름 한가로이 마음 한가로이
해야 할 일 다 했으니 할 일 없고
하릴없이 쓰르라미 울음 오후의 정적을 돋을새김
텅 빈 오후 시간의 증발, 푸른 바람 머물다가 잠듦
2017년8월4일(금)맑음
봉 암사에서 수행하는 연관스님이 옮긴 <선문촬요>를 법보시 받고 속표지에 한 수 써넣다.
不立文字吵丁東, 불립문자초정동
遠山無限碧層層; 원산무한벽층층
一揮金杵破嵩山, 일휘금저파숭산
獨步乾坤通万方. 독보건곤통만방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더니 딩동댕 시끄럽네,
먼 산 너머 또 산은 끝없이 푸르러
금강저 한 번 휘둘러 숭산을 무너뜨리고
천지간에 홀로 가니 모든 것에 통하네.
吵:시끄러울 초
丁東: 딩동댕 소리, 의성어
金杵: 금강저, 집착된 想을 해체시켜 보게 하는 반야의 작용
嵩山: 달마대사가 9년 면벽했다는 숭산 소림굴. 선종의 원조로 삼는 본거지
2017년8월5일(토)맑음
구름 걷히고 하늘이 밝아지니 시선이 남쪽으로 향한다. 내일이면 진주로 돌아간다. 진주에 누가 기다리며 무슨 할 일이 있기에, 무슨 인연이 있기에 거기로 가는가?
나무 그늘 아래
나비와 함께 앉아 있다
이것도 전생의 인연
木の陰やて
ふと宿るも
他生の緣
Sharing tree shade
With a butterfly...
Friends in a previous life
-고바야시 이싸(小林 一茶)의 하이꾸
‘나무 그늘’은 共業공업으로 만들어진 器世間기세간. 거기에 나비와 함께 앉는다. ‘나비’는 五蘊世間오온세간으로 인연 있는 遠近원근의 중생이다. 잠간 앉아있는 것이 한 생이요, 삶과 죽음이다. 우리가 그렇게 산다. 일생동안 같이 살거나, 혹은 몇 년 동안 알고지내는 것이 모두 나무 그늘 아래 나비가 잠간 앉았다 날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게 미미하고 가벼워, 흔적도 없고, 이유와 의미도 붙일 수 없다. 이것이 무상하다는 것. 진주에는 무슨 나무 그늘이 있나? 진주선원이란 나무 그늘이 있다. 그 그늘아래 나비 같은 스승과 제자들이 모인다. 함께 앉아 무엇을 하나? 우리 삶이 나비춤과 같아 무상하고 무아이며 皆苦임을 깨달아 하루를 영원처럼, 영원을 하루처럼 산다. 무시간을 호흡하면서 생사를 건너는 감로법을 세상에 전한다. 이것은 다생에 맺은 인연의 결과이다. 바로 그 인연, 부처님의 인연을 깊게 새긴다.
저녁예불 뒤에 대중이 모여 自恣會자자회를 갖는다. 한철 동안 수행을 함께 하면서 겪었던 일 가운데 자기가 잘못한 것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의식이다. 먼저 입승 소임을 맡았던 나부터 내 허물을 고백한다. 생활규칙을 적용하되 대중 모두를 흡족해주지 못해서 불만이 일어나게 했던 점, 무덥다는 핑계로 정진분위기를 느슨하게 만들었든 점을 고백했다. 돌아가면서 자기 허물을 고하고 덕담을 나눈다. 다음날 다른 회상에서 건강하게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나자고, 모두 정진 잘 하셔서 출가의 본 뜻 성취하시라는 말로 자자회를 끝맺는다. 그리고 내일이면 제 갈 길로 흩어져 간다. 수좌는 만났다 헤어지기를 다반사로 여긴다. 그래서 굳이 잘 있어라 다시 만나자 인사를 하지 않고 떠난다. 자리에 없으면 떠난 줄로 알고 찾지 않는다. 칼로 끊은 듯한 떠남을 즐긴다. 새벽이슬을 밟고 안개 속으로 사라져가는 구도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