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양하라/시149:1-9
김근중 목사
우리가 잘 부르는 찬송가 중에 248장을 작사한 토마스 헤이스팅스(Thomas Hastings)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정식으로 음악을 배우지 않고서 음악교사가 된 분입니다. 이 분은 어릴 때부터 음악을 너무나 좋아했지만 영문학과 철학, 그리고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다른 학문을 공부하면서도 음악이 좋아서 결국은 음악교사가 되었습니다. 이 분이 가졌던 평생의 소원은 “아름다운 음악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음악으로 하나님의 영광 을 드러내려고 가사를 짓고 작곡을 했습니다. 이 분이 40년 동안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로 헌신하면서 많은 찬송을 지었는데, 600수 이상의 찬송 가사와 1,000곡 이상의 찬송곡을 썼습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에도 이 분이 작사 작곡한 것이 일곱 곡이 들어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조금 전에 말씀을 드렸던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어둡던 이 땅이 밝아오네’하는 248장이고,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 에 앉으신’하는 27장이고,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하는 188입니다.
이 분이 지은 찬송가를 부르다 보면 공통점을 느낄 수가 있어요. 그것은 이 분의 평생 소원처럼 영광스런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찬양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찬양하는 것이지만, 헤이스팅스의 찬양을 보면 이러한 면이 특별합니다. 이 분의 찬양곡을 불러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해서 마음이 뜨거워지고 하나님이 바로 옆에 계신 것 같은 느낌을 갖습니다. 참 좋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에게 있어서 찬송은 무엇보다도 소중합니다. 찬송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의 태도를 표현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 찬송은 하나님의 은 혜를 감사하여 드리는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음성입니다. 이러한 찬송은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서 언제나 끊임없이 이어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시편은 150편 전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시이며 찬양기도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149편은 하나님께서 창조주와 왕 되심을 기억하며 찬양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서 수난을 당해왔지만 하나님께 서 돌보셔서 결국은 돌아와 승리하였기에 온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는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양하라고 합니다. 새 노래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는 노래와는 구별이 됩니다. 새 노래는 날마다 새로운 곡을 지어서 부르라는 말이 아닙니다. 단순한 교리나 교회에서 습 관적으로 부르는 노래도 아닙니다. 새 노래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만남과 체험을 가진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말합니다. 이것은 노래의 형식이나,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찬양하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생활을 하면 서 하나님을 새롭게 인식하고 새로운 신앙 체험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말합니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양하라고 하는 이유는 4절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보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구원의 역사입 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서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주관하셨고 이끄셨습니다. 다른 민족과는 구별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출애굽 이후에 광야생활을 하면서 가나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하나님이 전적으로 구원해주시는 것을 봅니다.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게 하시고 하시는 모든 과정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과 능력으로 한 것이 아 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이나 다른 대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셨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도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해방시키시고, 이러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이끄시고 돌봐주셨습니다. 하 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양하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오늘 우리가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양해야 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구원의 길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시고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 다. 예수를 믿고 난 사람들에게는 기쁨과 평안을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도 천국의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는 자체가 즐겁습니다. 일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공부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의 소식을 듣고 예수를 믿어서 천 국의 기쁨을 사는 사람들인 줄로 믿습니다.
그 뿐인가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손길이 뻗치지 않은 곳이 어디 있어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어디 있어요? 미국에 살면서 사는 순간마다 내가 잘나고 능력이 있어서 사는 것인가요? 내가 실력이 있어서 공부하는 것인가 요? 내 힘으로 자식들 키우고 가르치는 것인가요? 나의 힘으로 직장에 가서 일하고 돈을 버는 것인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닙니다. 모든 것이 나의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 된 것 같아 보이지만, 가만 히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때로는 눈에 보이게,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게 역사 하셨고, 고난 중에도 보호하셨고, 힘들 때에도 이끌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돌보심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저와 여러분이 있게 된 것 입니다. 우리 중에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만끽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니까 막연히 찬양하는 것도 아니고, 찬양 예배를 드리니까 그냥 따라서 찬양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 님,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환란 가운데서도 지켜주신 하나님, 승리케 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하여 새 노래로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찬양예배는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찬양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 러면 오늘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신 것을 보면서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찬양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기쁨과 즐거움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먼저 2절을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자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시온의 자민은 저희의 왕으로 인하여 즐거워할지어다”아멘.
찬양은 기쁘게 해야지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환한 얼굴을 가지고 기쁜 마음을 가지고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격하여 기쁘게 찬양하는 것입니다.
찬양집 CD에 보면 찬양집회의 모습을 사진 찍어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 사진에 나타난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기쁘게 노래하는지 모릅니다. 스데반의 얼굴이 따로 없어요. 모두가 스데반의 얼굴이에요. 천사의 얼굴이에 요. 우리교회에서도 예배 시간에 보면 천사의 얼굴을 하면서 찬양하는 형제 자매들이 있어요. 때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찬양하는 분들이 있어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니까 너무나 고맙고 감사해서 기쁨으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찬양을 기쁨으로 부르다보면 찬양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서 2배 3배의 기쁨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입에서 찬양이 터져 나오게 되어 있어요. 설거지 할 때도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운전을 할 때에도 찬양이 흘러나옵니다. 걸어다니면서도 찬양이 입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고등학교 때에 성탄절을 준비하고 있을 때인데, 제 친구가 신앙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는데,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이렇게 부르더라구요. 성탄 츄리를 하며 연습을 할 때 인데 이렇게 불렀어요. 이 찬송 소리를 듣고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었는데, 이 친구가 세상 노래를 좋아하다가 예수를 믿었거든요. 예수를 믿고 나니까 얼마나 좋은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그만 뽕짝에 맞추어서 불렀던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가 너무나 기쁘고 즐거워서 그렇게 불러도 상관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러한 찬양도 받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박자가 틀렸어도, 곡조가 틀렸어도 그것 때문에 찬양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찬양하는 사람의 마음, 기쁨과 즐거움으로 부르는 사람들의 찬양을 받으십니다.
우리는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양해야 합니다. 그런데 5절에 보면 기가 막힌 표현이 있습니다.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저희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 찌어다”
영광 중에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침상에서 기쁨으로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침상은 어떤 곳인가요? 편히 쉬는 곳입니다. 잠자는 곳입니다. 잠자는 침대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 하고 기뻐서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침상에서 기뻐서 찬양하면 잠도 오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침상에서 기쁘기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침상에서 잠 못 이룰 때는 어떤 때인가요? 기쁘고 즐거울 때인가요? 아니면 괴로울 때인가요? 아마도 대부분은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에 잠을 이루지 못할 거예요. 어떤 사람은 분하고 억울하고 괴롭고 힘들어서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있을 거예요. 그런데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나 놀라워서 침상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 노래로 하나님께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가 막힌 표현입니다.
여러분, 침상에서 하나님 때문에 기쁘고 즐거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 노래로 찬양한 적이 있나요? 이제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분이라도 그러한 것은 생각만 해도 좋은 일이 아닙니까? 저는 토요일이나 주일 저녁은 잠을 편히 자지 못합니다. 토요일 저녁에는 하나님이 주일에 은혜 주실 것은 생각하면 기뻐서 잠을 잘 못 자구요, 주일 저녁은 하나님이 은혜 주신 것을 생각하면서 기쁘고 감사해서 잠을 잘 못 잡니다. 침대에서 한참을 생각하고 좋아합니다. 어떤 때 는 피곤해서 잠을 빨리 자고 싶은데 너무 기쁘고 즐거우니까 잠이 오지를 않아요. 생각만 해도 좋은 거예요.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오늘밤에는 여러분의 침상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하여 잠 못 이루는 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영화 제목 중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있습니다. 멜로 영화라고 들었는데, 무슨 일 때문인지 잠 못 이루는 지 는 모르지만, 오늘밤부터는 다른 일 때문에 잠 못 이루지 마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기쁘고 즐거워서 찬양하느라고 잠 못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밤은 예수 믿는 기쁨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의 잠 못 이루는 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 야.
둘째로, 춤추며 찬양해야 합니다.
3절 처음 부분에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라고 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춤추며 찬양한다는 것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유교문화권에 살아왔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께 춤추며 찬양하는 것을 천하게 생 각해 왔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거룩하지 못하다고 하여 외면해오기도 하였습니다. 오직 거룩 거룩하게만 불러야 한다고 잘못 생각해 왔습니다. 거룩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거룩은 점잖은 것이 아닙니다. 거룩은 하나님을 닮는 것을 말합니 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이 거룩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춤추며 찬양하는 것이 거룩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쁘시게 하는 모든 것은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춤추며 찬양하는 것도 거룩한 것입니다.
다윗을 보세요. 사무엘하 6장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춤추는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블레셋 백성들에게 빼앗기는 수치를 당한 후에 법궤가 오벳에돔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다윗 성으로 옮기는데, 이 스라엘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백성들은 환호성을 울리고요 나팔소리는 우렁찹니다. 다윗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서 온 힘을 다하여 춤을 춥니다. 얼마나 열심히 춤을 추었던지 입었던 옷이 흘러내릴 정도였어요. 그 모습을 다윗의 부인이며 사울의 딸인 미갈이 보고서 업신여깁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 건달패들이 맨살을 드러내고 춤을 추듯이 춤을 추었으니 왕의 체통이 그게 뭡니까? 그 때에 다윗이 멋진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치자로 세워주셨으니 나는 찬양할 수 밖에 없소. 나는 언제나 주 앞에서 기뻐하며 찬양할 거요. 내가 스스로를 보아도 천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주님을 찬양하는 일 때문이라면 이보다 더 낮아지고 싶소.”얼마나 근사한 대답인가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라면 지금보다 더 낮아지고 천해져도 좋다는 다윗의 고백이 오늘 찬양예배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학대학을 다닐 때에 기숙사 룸메이트인 후배와 찬양집회를 갔습니다. 서울의 동부 이촌동에 위치한 충신교회였는데, 장로교회였거든요. 젊은이들이 모여서 찬양을 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어요. 토요일도 아닌 목요 일이었는데, 어디에서 이렇게 많이 왔는지 아래 위 층의 예배당을 가득 메웠어요. 연주에 맞추어서 찬양을 하는데, 정말 뜨겁게 하대요. 그 때만 해도 찬양예배가 보편화되지 못한 때였거든요. 더욱이 장로교회이잖아요. 장로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조용하게 예배를 드리는데, 이 교회는 그렇지가 않은 거예요.
예배당에 가득 모인 사람들이여 소리 높여서 찬양하고, 손뼉치는 것은 기본이에요. 손도 들고 찬양을 하구요 어떤 때는 율동하면서 찬양을 하더라구요. 참 대단하대요. 그런 찬양예배를 처음으로 목격한 저로서는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요 그 집회에 몇 번 참석하고 나서 제가 이상해졌어요.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왼지 이상하고 낮설기만 했는데, 점차적으로 찬양의 은혜에 파묻히게 되고 손들고 찬양하고 율동을 하면서 찬양하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어요. 박수치 며 찬양하는 것은 더 신나요. 제가 전염이 된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찬양을 하면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발바닥으로 바닥을 톡톡 치든지 손이라도 흔들어야지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여러분이 보셔서 아시겠지만, 찬양을 부를 때에 제가 손 을 흔드는 것을 보셨을 거예요. 제가 전직이 지휘자도 아닌데 왜 그러냐 하면 찬양하는 것이 기쁘고 즐거운데 어떻게 표현할 것이 없으니까 손이라도 흔드는 거예요.
여러분, 춤추며 찬양한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박수를 치면서 찬양하고 손을 들고 찬양하고 율동을 하면서 찬양하고, 이런 모든 것이 다 춤추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입술로만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온 몸을 다하여 찬양하는 것이 춤추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디스코 장에 가서 몸을 격렬하게 흔드는 것만이 춤추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분들 중에는 박수치고 손들고 찬양하는 것 이 익숙하지가 않아서 어색해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런 모습을 처음 본 분들은 아마 경기할 지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다 그렇습니다. 자꾸 따라서 하시면 점차적으로 나아지실 것입니다. 머지 않은 날에 입술로만 찬양이 아니라, 마음이 뜨거워지고 기뻐서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새 노래로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소고와 수금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3절 후반에 보면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소고와 수금은 악기 종류인데, 이 말씀은 두 종류의 악기로만 찬양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소고와 수금은 모든 악기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보충하는 말씀이 시편 150편 3절에서 5절입니다. 바로 옆에 있으니까 큰 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찌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 찌어다. 큰 소리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찌어다”아멘
여러 악기가 나오지요? 나팔소리, 비파, 수금, 소고, 현악, 퉁소, 큰 소리나는 제금, 높은 소리나는 제금, 이러한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많은 종류의 악기를 동원하여 찬양하라고 하 셨을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악기의 종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소리나는 모든 악기로 찬양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피아노 하나 보다는 키타가 어우러지는 것이 좋고, 기타에다가 플릇이 어우러지는 것이 좋고, 플릇에다가 바이올린이 어우러지는 것이 좋고,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악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저는 우리 교우들이 한 사 람이 한가지의 악기를 연주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절기예배나 오늘과 같은 찬양예배를 드릴 때에는 전교인이 연주를 하며 찬양했으면 좋겠습니다. 악기 연주에 욕심이 있는 분들은 오늘부터 배우세요. 자신이 없는 분들은 탬버린이나 트라 이앵글이라도 가지고 연주하세요. 얼마나 아름다운데요.
여러분, 신앙생활에 재미가 있으신가요? 예수 믿는 맛이 있으신가요? 혹시 예수를 믿지만 예배를 드려도 그렇고, 찬양을 불러도 그렇고, 기도를 해도 맥이 빠진 분들이 있으십니까? 찬송을 살리시기 바랍니다. 찬송을 살리기가 제일 쉽습 니다. 찬송이 살면 모든 것이 삽니다. 찬송이 살면 예배도 살고요, 찬송이 살면 기도도 살고요, 찬송이 살면 말씀도 삽니다. 찬송이 중요합니다. 새 노래로 하나님께 찬양할 때에 신앙생활이 사는 줄로 믿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은 찬양전도축제가 있습니다. 천하보다도 귀한 한 사람 한 사람을 전도하는 기회인데, 찬양을 통하여 마음 문을 활짝 열려고 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찬양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신 분들이 있다면 이번 찬양전도축제를 통 하여 찬양의 기쁨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새 마음을 가지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까이에 계셔서 우리의 찬양을 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마음을 가지 고 하나님을 만난 감격을 가지고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