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왕(Οἰδίπους Τύραννος) / 안티고네(Ἀντιγόνη) /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Οἰδίπους ἐπὶ Κολωνῷ) / 아이아스(Αἴας) / 트라키스 여인들(Τραχίνιαι) / 엘렉트라(Ἠλέκτρα) / 필록테테스(Φιλοκτήτης)
==
테이레시아스 - 아아, 슬프도다! 지혜가 아무 쓸모 없는 곳에서 지혜롭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그걸 잘 알면서 내가 왜 잊었던가! 그렇지 않았다면 예까지 오지 않았을 것을.
오이디푸스 - 왜 그러시오? 그렇게 의기소침해서 들어오시다니요.
테이레시아스 -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주시오.
그대의 짐은 그대가, 내 짐은 내가 지는 것이 상책이오. 내 조언에 따르겠다면.
오이디푸스 - 말해주지 않겠다니 그 무슨 소리요?
그것은 온당하지도 않거니와, 그대를 길러준 이 도시에 대한 불충입니다.
테이레시아스 - 보아하니, 그대의 말씀이 그대를 파멸로 인도하고 있소.
그래서 나도 같은 실수를 피하려고 말을 아니하는 것이오.
==
테이레시아스 - 그대가 찾고 있는 범인이 바로 그대란 말이오.
오이디푸스 - 그런 모함을 두 번씩이나 하다니 그대는 반드시 후회하리라.
테이레시아스 - 더 화나도록 다른 것도 말씀드릴까요?
오이디푸스 - 실컷 하시오. 그래봤자 다 허튼소리니까.
테이레시아스 - 그대는 부지중에 가장 가까운 핏줄과 가장 수치스럽게 동거하면서도, 어떤 불행에 빠졌는지 보지 못하고 있소.
오이디푸스 - 그런 말을 하고도 언제까지나 무사하리라 믿는 게요?
테이레시아스 - 물론이오. 진리에 어떤 힘이 있다면 말이오.
오이디푸스 - 물론 있지, 그대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지만 그대에게는 없소. 그대는 귀도, 지혜도, 눈도 멀었으니까.
테이레시아스 - 가련한 분 같으니라고! 머지않아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그대에게 퍼부을 그런 욕설을 내게 퍼붓고 있으니!
오이디푸스 - 그대 영원한 어둠 속에 사는 자여, 그대는 나든 다른 사람이든 햇빛 보는 자를 결코 해코지하지 못하리라.
테이레시아스 - 그대는 나로 인해 넘어질 운명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런 일을 관장하시는 아폴론께서는 능히 그러실 수 있다오.
오이디푸스 - 그런 생각을 해낸 자는 크레온인가, 그대 자신인가?
테이레시아스 - 크레온이 아니라 그대, 그대가 그대의 재앙이라오.
==
데이레시아스 - 그대에게는 내가 그런 바보로 보이겠지만, 그대를 낳아준 부모에게는 현명한 사람이었소.
오이디푸스 - 어떤 부모 말인가? 게 섰거라. 인간들 중에 누가 나를 낳았지?
테이레시아스 - 바로 오늘이 그대를 낳고 그대를 죽일 것이오.
오이디푸스 - 온통 수수께끼 같은 모를 소리만 하는군.
테이레시아스 - 수수께끼를 푸는 데는 그대가 가장 능했잖소?
오이디푸스 - 내 위대함을 보여준 바로 그 일로 나를 조롱하다니.
데이레시아스 - 하지만 바로 그 재주가 그대를 파멸케 했소.
==
테이레시아스 - 가긴 가되 내가 온 까닭을 말하고서 가겠소.
그대의 얼굴쯤은 두렵지 않소.
그대는 나를 파멸케 할 수 없으니. 단언하건대, 그대가 아까부터 위협적인 말로 라이오스의 피살 사건을 규명하겠다고 공언하며 찾던 그 사람은 바로 여기에 있소이다.
그는 이곳으로 이주해온 외지인으로 여겨지지만 머지않아 테바이 토박이임이 밝혀질 것이오.
하지만 그는 그런 행운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오.
앞 못 보는 장님이 되고 부자에서 거지가 되어 지팡이로 앞을 더듬으며 이국땅으로 길을 떠날 운명이니까요.
그리고 그는 함께 살고 있는 그의 자식들의 형이자 아버지이며, 자신을 낳아준 여인의 아들이자 남편이며, 아버지의 침대를 이어받은 자이자 자기 아버지의 살해자임이 밝혀질 것이오.
안으로 들어 그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시오.
그러고도 내 말이 틀렸거든 그때부터는 예언에 관해 내가 무식하다고 말하시오.
==
오만은 폭군을 낳는 법.
오만은 시의적절하지도 유익하지도 않은 부로 헛되이 자신을 가득 채우고는 꼭대기로 기어 올라갔다가 가파른 파멸 속으로 굴러떨어진다네.
거기서는 두 발도 무용지물.
하지만 나라에 유익한 경쟁일랑 결코 없애지 마시길 내 신께 비나이다.
나 항상 신을 보호자로 여기겠으니.
==
이오카스테 - 인간은 우연의 지배를 받으며 아무것도 확실히 내다볼 수 없거늘, 인간이 두려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되는대로 그날그날 살아가는 것이 상책이지요.
그러니 당신은 어머니와의 결혼을 두려워 마세요.
이미 많은 남자들이 그 신탁에서처럼 꿈속에서도 어머니와 동침했으니까요.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이라야, 인생을 가장 편안하게 살아가지요.
==
오이디푸스 - 터질 테면 터지라고 둡시다.
설령 내 혈통이 미천하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알아내기로 결심했소이다.
저 여인은, 여인들이 그러하듯, 자존심이 강하니까 아마도 비천한 내 출생을 창피하게 여기겠지요.
하지만 나는 나를, 좋은 선물을 주시는 행운의 여신의 아들로 여기는 터라 창피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
행운의 여신이 내 어머니요.
그리고 내 형제인 달들은 내가 때로는 미천하도록, 때로는 위대하도록 정해놓았소.
그런 자로 태어난 나는 앞으로 결코 다른 사람으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니, 내 가문을 밝히지 못할 까닭이 어디 있겠소!
==
오이디푸스 - 그대는 이 사람이 묻고 있는 아이에 관해 말하지 않았다.
목자 - 그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허튼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오이디푸스 - 그대가 흔쾌히 말하지 않으면 울면서 말하게 되리라.
목자 - 제발 부탁이니, 저 같은 늙은이를 학대하지 마옵소서.
오이디푸스 - 누가 당장 저자의 두 팔을 뒤로 묶지 못할까!
목자 - 왜 이러세요? 불운한 내 신세! 알고 싶으신 것이 무엇입니까?
오이디푸스 - 이 사람이 묻고 있는 그 아이를 그대가 이 사람에게 주었느냐?
목자 - 주었습니다. 그날 내가 죽어버렸더라면 좋았을 것을!
오이디푸스 - 그러잖아도 바른 대로 말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
목자 - 하지만 말씀드리면 저는 더 확실히 죽게 될 것입니다.
오이디푸스 - 보아하니, 이자가 더 꾸물댈 작정인 게로구나.
목자 - 아닙니다. 제가 주었다고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오이디푸스 - 어디서 났느냐? 그대의 아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의 아이냐?
목자 - 제 아이가 아니라, 누군가에게서 받았습니다.
오이디푸스 - 여기 있는 시민들 중 누구한테서? 어느 집에서?
목자 - 더는, 제발 부탁이니, 주인님, 더는 묻지 말아주소서.
오이디푸스 - 나로 하여금 다시 묻게 한다면, 그때 그대는 끝장이다.
목자 - 그러시다면, 그 애는 라이오스 집안의 아이였습니다.
오이디푸스 - 노예였나, 아니면 그분의 핏줄로 태어났나?
목자 - 아아, 이제야말로 끔찍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구나!
오이디푸스 - 그리고 나는 듣지 않을 수 없고. 그래도 기어이 들어야겠다.
목자 - 그분의 아들이라 했습니다만, 안에 계신 마님께서 그 사연을 가장 잘 말씀해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오이디푸스 - 그녀가 그 아이를 그대에게 주었는가?
목자 - 그러합니다, 왕이여.
오이디푸스 - 무엇 때문에?
목자 - 저더러 그 아이를 죽여 없애라 했습니다.
오이디푸스 - 제가 낳은 자식에게 어찌 감히 그럴 수가?
목자 - 사악한 신탁이 두려워서였습니다.
오이디푸스 - 어떤 신탁이었지?
목자 - 그 아이가 부모를 죽일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오이디푸스 - 그렇다면 어째서 그대는 그 아이를, 이 노인에게 주었는가?
목자 - 그 아이가 가여워서였습니다, 주인님.
저는 그가 그 아이를 자기 나라로 데려갈 줄 알았는데, 그 아이를 구해 가장 큰 불행을 가져왔나이다.
만일 그대가 이자가 말하는 그 사람이라면, 알아두소서, 그대는 불운하게 태어났습니다.
오이디푸스 - 아아, 모든 것이 이루어졌고, 모든 것이 사실이었구나!
오오, 햇빛이여, 내가 너를 보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기를!
나야말로 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에게서 태어나, 결혼해서는 안 될 사람과 결혼해, 죽여서는 안 될
사람을 죽였구나!
==
아아, 그대들 인간 종족이여, 헤아리건대, 그대들 삶은 한낱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구나.
누가 대체 행복으로부터, 잠시 어른거리다 사라져버리는 행복의 그림자보다 더 많은 것을 얻는가?
그러니 불행한 오이디푸스여,
내 그대의 운명을 거울삼아 인간들 중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기리지 않으리라!
==
마님을 보자 그분께서는 큰 소리로 무섭게 울부짖으며 마님이 매달린 밧줄을 푸셨어요.
가련하신 마님이 바닥에 눕자, 이번에는 보기에도 끔찍한 일이 벌어졌어요.
그분께서 마님 옷에 꽂혀 있던 황금 브로치를 뽑아 들더니 자신의 두 눈알을 푹 찌르며 대략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제 너희는 내가 겪고, 내가 저지른 끔찍한 일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보아서는 안 될 사람들을 충분히 오랫동안 보면서도 내가 알고자 한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앞으로는 어둠 속에서 보거라!"
이런 노래를 부르며 그분께서는 손을 들어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자기 눈을 찌르셨어요.
그때마다 피투성이가 된 눈알들이 그분의 수염을 적셨어요.
핏방울들이 드문드문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의 검은 소나기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어요.
이런 재앙이 두 분에게서 터져 나왔어요.
따로따로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를 위해 한데 뭉쳐서 말이에요.
대대로 누려온 지난날 그분들의 행복은 과연 진정한 행복이었지요.
하지만 오늘은 비탄과 파멸과 죽음과 치욕과 온갖 이름의 재앙이 그분들 몫이에요.
==
오이디푸스 - 친구들이여, 내가 무엇을 볼 수 있고, 내가 무엇을 사랑할 수 있으며, 어떤 인사가 내 귀에 반갑게 들리겠소?
나를 어서 나라 밖으로 데리고 나가시오.
친구들이여, 나를 데리고 나가시오, 폭삭 몰락한, 가장 저주받고, 하늘의 신들께 가장 미움받는 인간인 나를!
코로스 - 그대는 자신의 운명과, 운명에 대한 통찰력 때문에 불행해졌습니다.
내 차라리 그대를 몰랐더라면 좋았을 것을!
오이디푸스 - 목장에서 내 발에 채워진 잔혹한 족쇄를 풀고 죽음에서 나를 끌어내 도로 살려낸 자, 그자가 누구든 죽어 없어져라!
조금도 고맙지 않은 짓을 했으니까.
그때 내가 죽었더라면, 친구들과 나 자신에게 이토록 번거로운 짐이 되지는 않았을 것을!
코로스 - 그것은 나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오이디푸스 - 그랬더라면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고, 나를 낳아준 여인의 남편이라고 사람들이 나를 부르지 않았겠지!
하지만 나는 지금 신들에게 버림받아, 부정한 여인의 아들이 되고 불쌍한 나를 낳아준 분의 결혼침대를 이어받았구나.
모든 재앙을 능가하는 재앙이 있다면, 그것은 오이디푸스의 몫이로구나.
코로스 - 그대의 선택이 옳았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나이다.
장님으로 사느니 죽는 것이 더 나으니까요.
==
크레온 - 자, 이리 오세요. 애들은 놓아주시고.
오이디푸스 - 내게서 이 애들은 빼앗지 말게.
크레온 - 모든 일을 지배하려 들지 마세요.
그대가 지배한 것들도 평생토록 그대를 따르지는 않았어요.
(크레온과 오이디푸스, 퇴장)
코로스 - 내 조국 테바이 주민들이여, 보시오.
저분이 유명한 수수께끼를 풀고는 더없이 권세가 컸던 오이디푸스요.
그의 행운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지 않은 시민이 있었던가!
보시오, 그런 그가 얼마나 무서운 불운의 풍파에 휩쓸렸는지!
그러니 항상 생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기를 지켜보며 기다리되,
필멸의 인간은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기리지 마시오,
그가 드디어 고통에서 해방되어 삶의 종말에 이르기 전에는.
==
인간의 성공에는 재앙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법은.
멀리 헤매는 희망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어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허욕의 미끼라네.
그래서 더러 아무 영문도 모르고 있다가 뜨거운 불에 발을 데게 된다네.
누군가 현명하게도 이런 유명한 말을 했지.
신께서 그 마음을 재앙으로 인도하시는 자에게는 언젠가 악이 선으로 보인다고.
하지만 그가 재앙에서 자유로운 것은 한순간뿐이라네.
==
누군가 자기만 현명하고, 언변과 조언에서 자기만 한 사람이 없다고 여긴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막상 검증해보면 속이 비어 있음이 드러나지요.
현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많은 것을 배우고 때로는 양보할 줄 아는 것은 수치가 아니에요.
==
내 아들이여!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실수를 하더라도 자기가 저지른 실수를 고칠 줄 알고 고집을 부리지 않는 자는 더이상 행복으로부터 버림받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오.
다름 아닌 고집이 어리석음의 죄를 짓게 하는 것이오.
그대는 죽은 자에게 양보하시오.
죽은 자를 찌르지 마시오.
죽은 자를 죽이는 것이 무슨 용기가 되겠소?
그대를 위해 조언하는 것이오.
덕이 되는 좋은 조언을 해주는 이에게 배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즐거운 일이지요.
==
테이레시아스 - 그렇다면 잘 알아두시오.
지금으로부터 태양의 날랜 수레가 채 몇 바퀴 돌기도 전에 그대는 살인한 죗값으로 그대의 혈육 중 한 사람을 시신으로 바치게 될 것이오.
그대는 지상에 속하는 자들 가운데 한 명을 아래로 밀어내고, 살아 있는 자를 무자비하게도
무덤 속에서 살게 하는가 하면, 하계의 신들에게 속하는 시신을 장례도 치르지 않고, 매장
도 않은 채 욕보이며 지상에 붙들고 있기 때문이오.
시신들에 대해서는 그대에게도, 위쪽 세계의 신들에게도 아무 권한이 없소이다.
그대가 그렇게 하는 것은 하계의 신들에 대한 횡포요.
==
그래서 우리는 안절부절못하시는 통치자의 명령대로 정황을 알아보러 갔지요.
그리고 우리는 무덤의 맨 안쪽에서 목을 매단 소녀를 보았는데, 입고 있던 고운 리넨 천을 찢어 올가미를 만들었더군요.
한편 하이몬 도련님은 두 팔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쓰러진 채 세상을 떠난 신부의 죽음과 아버지의 행위들과 자신의 불운한 사랑을 슬퍼하고 있었어요.
크레온 님께서는 도련님을 보시자 무섭게 소리지르며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울면서 도련님을 부르셨어요.
"불쌍한 녀석, 무슨 짓이냐? 이게 무슨 미친 짓이냔 말이다.
대체 무슨 재앙이 너를 이렇게 망쳐놓았느냐? 제발 나오너라, 내 아들아. 내 간절한 부탁이다."
하지만 도련님은 무섭게 노려보더니 크레온 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는 한마디 대답도 없이 열십자 손잡이의 칼을 뺐지만, 도망쳐 나오는 아버지를 맞히지는 못했어요.
그러자 불운한 도련님은 자기 자신에게 화가나 지체 없이 칼에 몸을 기대며 칼을 옆구리 안으로 반쯤 밀어넣었어요.
그러고 나서 도련님은 아직 정신이 있는 동안 축 늘어진 팔로 처녀를 끌어안고는 숨을 헐떡이며 처녀의 창백한 얼굴에다 피를 콸콸 쏟았어요.
그리하여 도련님은 시신으로서 시신 곁에 눕게 되었어요.
가련하게도 도련님은 이곳이 아닌 하데스의 집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며, 인간에게는 어리석음이 가장 큰 재앙임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어요.
==
크레온 - 아아! 분별없는 생각의 가혹하고도 치명적인 실수여!
그대들은 보시구려,
한 핏줄에서 나온 살해자와 피살자를!
아아, 슬프도다, 불행한 내 결정이여!
아아, 내 아들아, 이런 젊은 나이에, 아아, 슬프고 슬프도다!
죽어서 세상을 떠나다니!
네 어리석음이 아니라 내 어리석음 때문에.
코로스 - 그대는 정의가 무엇인지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소이다.
크레온 - 아아! 정의가 무엇인지 나는 불행을 통해 배웠소.
하지만 그 순간 어떤 신께서 엄청난 무게로 내 머리를 내리치시며 나를 그릇된 길로 내동댕이쳤소.
내 행복을 넘어뜨리고 발로 짓밟으시며.
아아, 인간들의 힘들고 괴로운 노고여!
(궁전에서 사자 2 등장)
사자 2 - 주인님, 주인님께서는 지금도 슬픔의 짐을 양손 가득 들고 계시지만, 집안에 드시면, 새로운 재앙을 당장 맞닥뜨리시게 될 거예요.
크레온 - 이런 재앙들에 또 무슨 재앙이 잇따른단 말인가?
사자 2 - 여기 이 시신의 친어머니이신 불운하신 왕비님께서 세상을 떠나셨어요, 잠시 전의 충격으로 인하여.
==
크레온 - 오게 하라, 오게 하라!
내 운명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 나타나 나에게 마지막 날을 가져다주게 하라!
최고의 운명이 오게 하라, 오게 하라, 내가 더이상 다른 날을 보지 않도록!
코로스장 - 그건 나중 일이오. 우리는 당면한 일들부터 처리해야 하오.
나중 일들은 염려해야 할 자들이 염려하게 될 것이오.
크레온 - 내가 바라는 것들을 기도해봤을 뿐이오.
코로스장 - 그렇다면 앞으로 더이상 기도하지 마시오.
인간은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요.
크레온 -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다오, 이 못난 인간을!
나는 본의 아니게 너를 죽였구나, 내 아들아.
그리고 당신마저, 여보! 아아, 기구한 내 신세!
어디로 시선을 돌리고,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내가 손대는 일마다 잘못되고, 감당할 수 없는 운명이 나를 덮쳤구나.
코로스 - 지혜야말로 으뜸가는 행복이라네.
그리고 신들에 대한 경의는 모독되어서는 안 되는 법.
오만한 자들의 큰소리는 그 벌로 큰 타격을 받게 되어,
늘그막에 지혜가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네.
==
오이디푸스자 - 얘야. 너는 내가 정당하게 말할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는 신성한 곳으로 인도하여라.
필연과는 싸우지 말자꾸나.
==
이스메네 - 아버지, 아버지께서 살고 계신 곳을 찾느라 제가 고생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어요.
당하면서, 또 그것을 이야기하면서 두 번씩 고통당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이번에는 아버지의 불운한 두 아드님에게 재앙이 닥쳤음을 전해드리러 온 거예요.
처음 그들의 소망은 크레온 님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도시를 부정에서 구하는 것이었어요.
가문의 오랜 저주와, 그 저주가 어떻게 아버지의 불행한 집을 덮쳤는지 차분하게 생각해본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어떤 신, 또는 자신들의 죄 많은 마음에 이끌려 세 배나 불행해진 그들은 사악한 경쟁심에 사로잡혀 통치권과 왕권을 장악하려고 다투고 있어요.
그리하여 나중에 태어난 혈기왕성한 아우가 먼저 태어난 폴뤼네이케스의 왕위를 빼앗고 조국에서 추방했어요.
하지만 그는, 저희들 사이에 파다한 소문에 따르면, 언덕에 둘러싸인 아르고스로 망명해 그곳에서 장가들어 새 인척들을 얻고 장수들을 친구로 삼았대요.
아르고스가 당장 카드모스의 자손들의 나라를 차지하거나, 아니면 테바이의 명성이 하늘에 닿도록 하겠다고요.
아버지, 이것은 빈말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현실이에요.
언제쯤 아버지의 시련을 신들께서 불쌍히 여겨주실지 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
오이디푸스 - 가장 사랑하는 아이게우스의 아드님이여, 오직 신들만이 늙지도 죽지도 않고, 나머지는 모두 전능한 시간이 파괴해버리지요.
대지의 힘도 쇠퇴하고 신체의 힘도 쇠퇴하며, 신의는 죽고 불신이 생겨나지요.
그리하여 친구 사이에 변함없는 마음가짐도 오래 버티지 못하며, 도시와 도시 사이도 마찬가지요.
이 사람에게는 오늘, 저 사람에게는 내일 즐거움이 쓰라림으로, 그러다 다시 사랑으로 변하지요.
지금은 그대와 테바이 사이가 화창하지만, 다가오는 수많은 시간이 수많은 밤과 낮을 낳고 나면, 그 과정에서 오늘의 소중한 화목도 사소한 이유에서 창에 의해 깨지고 말 것이오.
그때는 무덤에 누워 잠들어 있는 싸늘한 내 시신이 그들의 뜨거운 피를 마시게 될 것이오.
제우스께서 여전히 제우스이시고, 제우스의 아드님 포이보스께서 진실을 말씀하신다면 말이오.
하지만 건드려서는 안 되는 일들은 언급하고 싶지 않으니, 내가 시작한 곳에서 내 말이 끝나게 해
주시오.
약속만 지켜주신다면 그대는 결코 오이디푸스를 괜히 이곳 거주자로 받아들였다는 말은 하지 않게 될 것이오.
신들께서 나를 속이신 것이 아니라면.
==
적당한 몫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긴 수명을 바라는 자는, 내가 보기에, 어리석음에 집착하는 자가 분명하오.
긴긴 세월은 즐거움보다는 슬픔에 가까운 많은 것을 쌓기 마련이고, 적당한 몫 이상 지나치게 오래 살게 되면 즐거움은 더이상 아무데서도 찾을 수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종국에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구원자인 죽음이 찾아오지요.
하데스의 운명이 축혼가 없이, 뤼라도 춤도 없이 나타나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일단 태어났으면 되도록 빨리 왔던 곳으로 가는 것이 그다음으로 가장 좋은 일이라오.
경박하고 어리석은 청춘이 지나고 나면 누가 고생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누가 노고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이오?
시기, 파쟁, 불화, 전투와 살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난받는 노년이 그의 몫으로 덧붙여진다오.
힘없고, 뻣세고, 친구 없고, 불행 중의 불행들이 빠짐없이 함께 사는 노년이.
나만이 아니라 여기 이 불쌍한 사람도 그런 노년이 되었네.
북풍을 향한 곶이 사방에서 겨울 파도에 매질을 당하듯, 여기 이 사람도 파도처럼 덮치는 무서운 재앙들에 심한 매질을 당하니, 그 재앙들은 더러는 해가 지는 곳에서, 더러는 해가 뜨는 곳에서, 더러는 한낮의 햇빛 있는 곳에서, 또 더러는 어둠에 싸인 리파이산들에서 오는 것이라네.
==
지하의 여신들이여!
그리고 이길 수 없는 무서운 짐승이여,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손님 많은 문간에 살며 동굴 밖으로 짖어댄다는, 하데스의 길들일 수 없는 파수꾼이여!
그대 대지와 타르타로스의 아들이여,
청하건대, 부디 그 파수꾼이 사자들의 들판으로 내려가는 저 나그네에게 길을 환히 열어주기를!
그대를 부르고 있나이다,
영원한 잠을 주시는 분이여!
==
“얘들아, 오늘로 너희에게 아버지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내 모든 것이 소멸해, 너희는 더이상 나를 부양하는 수고를 하지 않게 된다.
힘든 수고였지.
알고 있다, 얘들아. 하지만 단 한마디 말이 나를 위한 그 모든 수고를 보상해줄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너희를 사랑했고, 어느 누구도 나보다 더 너희를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나 없이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세 부녀가 이렇게 서로 꼭 껴안은 채 흐느껴 울었어요.
그들이 마침내 비탄을 끝내고 다른 소리도 더이상 들리지 않아 적막감이 감돌았을 때, 느닷없이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분을 불렀고, 그래서 모두들 놀랍고 두려워 갑자기 머리카락이 곤두섰어요. 신께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그분을 부르셨으니까요.
"오오, 거기 오이디푸스여, 왜 우리는 가지 않고 지체하는가? 그대가 너무 꾸물대는구나.”
==
아테나 - 오뒷세우스여, 신들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그대는 보고 있는가?
그대는 저자보다 더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을, 또는 어떤 일을 해야 할 때 저자보다 더 민첩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본 적 있는가?
오뒷세우스 - 그런 사람을 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비록 그가 내 적이긴 하지만 저는 사악한 미망에 빠져든 그의 불행을 동정합니다.
그의 운명이 내 운명으로 여겨지니까요.
제가 보기에, 살아 있는 우리 모두가 환영이나 실체 없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아테나 - 그대는 그런 통찰력을 지녔으니 신들에게 절대로 주제넘은 말을 내뱉지 말고, 체력과 재력에서 그대가 누군가를 능가한다 하여 우쭐대며 뻐기지 마라.
무릇 인간사란 하루아침에 넘어질 수도 있고, 하루아침에 다시 일어설 수도 있느니라.
하지만 신들은 신중한 자들을 사랑하고 사악한 자들은 싫어하지.
==
가련한 분이여, 완고하신 분이여, 그대는 종국에는, 종국에는 무한한 고통의 슬픈 운명에 이르게 되어 있었어요.
나는 그대가 마음이 사나워져 원한을 품고는 아트레우스의 아들들을 밤낮으로 원망하는 말을 들었으니까요.
그래요.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놓고 가장 용감한 전사들이 경합을 벌이던 그날 큰 고통은 시작되었던 거예요.
==
보세요, 헥토르는 죽었지만 결국 형님을 죽일 운명이었어요.
(코로스에게)
그대들은 제발 두 사람의 운명을 잘 살펴보구려!
헥토르는 여기 이분에게서 선물로 받은 혁대로 전차 난간에 묶여 질질 끌려가다가 결국에는 숨을 거두었소.
한편 이분은 헥토르한테서 이 칼을 선물로 받았다가 이 칼 위에 엎어져 숨을 거두고 말았소.
쇠를 불려 이 칼을 만든 것은 복수의 여신이고, 그 혁대를 만든 것은 잔혹한 장인인 하데스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는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이 일들도 신들께서 인간들을 위해 생각해낸 거라고 주장하고 싶구려.
이런 판단이 마음에 안 드는 자는 자신의 주장을 고수하구려. 나는 내 주장을 고수할 테니.
==
오뒷세우스 - 그러시다면 들어보시구려.
그대는 제발 무모하게도 이 사람을 묻어주지도 않고 인정사정없이 내던지지 마시오.
그리고 그대는 권세에 휘둘려 정의를 짓밟을 정도로 이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되오.
한때 이 사람은 내게도 군대에서 가장 고약한 적이었소.
내가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손에 넣은 뒤로 말이오.
그가 나를 그렇게 대했지만, 나는 트로이아에 온 모든 아르고스인들 중 아킬레우스 말고는 그만이 가장 탁월한 전사임을 부인할 만큼 그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싶지는 않았소이다.
그대는 그의 명예를 정당하게 실추시킬 수 없소이다.
그대는 이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법도를 해코지하는 것이니까요.
용감한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모욕하는 것은 옳지 못하오.
설령 그를 미워했다 하더라도 말이오.
아가멤논 - 오뒷세우스, 그대는 나에 맞서 그를 두둔하는 게요?
오뒷세우스 - 그래요. 나는 그를 미워했소이다. 미워하는 것이 정당할 때는.
아가멤논 - 그가 죽었으니 그대가 그를 짓밟아서는 안 된다는 건가요?
오뒷세우스 - 아트레우스의 아들이여, 정당하지 못한 이익을 기뻐하지 마시오.
아가멤논 - 통치자가 자비를 베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오.
오뒷세우스 - 하지만 좋은 조언을 해주는 친구를 존중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요.
아가멤논 - 선량한 사람은 마땅히 윗사람의 말을 들어야 하오.
오뒷세우스 - 그쯤 해두시지요. 친구들에게 지는 것이 그대가 이기는 것이외다.
아가멤논 - 그대가 어떤 사람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려는 것인지 숙고해보시오.
오뒷세우스 - 그는 내 적이었소. 하지만 고매한 사람이었소이다.
아가멤논 - 어쩌자는 것이오? 죽은 적을 존경하겠다는 건가요?
오뒷세우스 - 나에게는 그의 탁월함이 그의 적대감보다 더 우세하니까요.
아가멤논 - 하지만 그건 변덕스러운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지요.
오뒷세우스 - 숱한 사람들이 오늘은 친구지만 내일은 적이지요.
아가멤논 - 그대는 그런 사람들을 친구로 삼으라고 권하는 것이오?
오뒷세우스 - 나는 마음이 완고한 사람은 권하고 싶지 않아요.
아가멤논 - 하지만 그대는 오늘 우리를 겁쟁이처럼 보이게 할 것이오.
오뒷세우스 - 모든 헬라스인들에게 정의를 존중하는 사람들로 보이게 하겠지요.
아가멤논 - 그래서 그대는 나더러 시신의 매장을 허용하라고 명령하는 것이오?
오뒷세우스 - 그래요. 나도 결국 그랬을 테니까요.
아가멤논 - 매사가 한 가지로군요. 누구나 자신을 위하니 말이오.
오뒷세우스 - 나를 위하는 것보다 누구를 위하는 것이 더 옳지요?
아가멤논 - 그렇다면 이것은 내 소행이 아니라 그대의 소행이라 불리게 하시오.
오뒷세우스 - 어떻게 하시든 그대는 아무튼 잘하신 셈이 될 것이오.
아가멤논 - 하지만 이 점은 잘 알아두시오.
나는 그대에게 이보다 더 큰 호의도 기꺼이 베풀고 싶소이다.
하더라도 나는 이 사람을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가장 미워할 것이오.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하시구려!
==
내 이르노니, 그대는 결코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만물을 다스리시는 왕, 크로노스의 아드님께서는 필멸의 인간들에게 고통 없는 운명을 주시진 않았어요.
우리 모두에게 슬픔과 기쁨은 돌고 도는 법이지요.
마치 큰곰이 운행 주기에 따라 돌고 돌듯이 말이에요.
인간들에게는 낮도 밤도 지속되지 않으며, 재앙도 부도 지속되지 않아요.
그것들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같은 사람에게 기쁨과 궁핍이 되풀이되지요.
==
보라, 소녀들이여, 오래된 예언의 신성한 말씀이 얼마나 갑작스레 우리에게 이루어졌는지!
그 말씀에 따르면, 달수가 다 차서 열두 번째 해가 지나면 제우스의 친아들의 노고들도 끝날 것이라 했는데, 이제 그 약속이 확실히 이행되었구려.
눈을 감고 햇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죽고 난 뒤에도 힘든 노고의 짐을 지겠어요?
켄타우로스가 죽음의 안개로 그분을 에워싸고는, 죽음의 신이 낳고 번쩍이는 뱀이 기른 독을 그
분의 옆구리에 주입했는데, 그분이 어찌 내일의 해를 볼 수 있을까?
게다가 섬뜩한 휘드라의 유령이 그분을 꼭 붙잡고 있고, 검은 갈기의 넷소스가 감언이설로 마련한 사람 잡는 몰이 막대기가 미쳐 날뛰며 그분을 괴롭히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가련한 마님께서는 젊은 여인과의 결혼으로 자기집에 큰 재앙이 급히 다가오는 것을 보시고는 그것을 손수 막으셨으나, 남의 조언에서, 치명적인 대화에서 비롯된 끔찍한 결과에 괴로워 탄식하시며 쓰라린 눈물로 하염없이 두 볼을 적시고 계시네.
그리고 다가오는 운명이 계략으로 인한 큰 재앙을 드러내 보이는구나.
우리도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나.
아아, 슬프도다! 일찍이 어떤 적도 제우스의 영광스러운 아드님에게 이런 참혹한 고통을 안겨주지는 못했는데.
아아, 전투에서 앞장서던 치명적인 창끝이여,
일전에 가파른 성채를 둘러싼 전투에서 오이칼리아의 언덕으로부터 저 신부를 신속하게 낚아채 온 창끝이여!
하지만 그것은 말없이 조용히 봉사하는 퀴프리스가 행한 일임이 드러났구나.
==
"오오, 내 결혼 침대와 내 신방이여!
잘 있거라, 영원히! 너희는 이 잠자리에서 쉬도록 다시는 나를 받지 못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마님께서는 재빨리 손을 놀려 황금 브로치가 가슴 위에 자리잡고 있는 곳에서 긴 옷을 벗으시며 왼쪽 옆구리와 팔을 완전히 드러내셨어요.
그래서 내가 전속력으로 급히 달려가 마님의 의도를 아드님에게 알려드렸지요.
하지만 우리가 가서 보니, 마님께서는 내가 갔다가 돌아오는 사이 쌍날칼로 옆구리를 찔러 간 있는 데까지 깊숙이 밀어넣으셨더군요.
그 광경에 아드님은 통곡했지요.
가련하게도 아드님은 자신의 분노가 이런 일을 초래했고, 어머니께서 본의 아니게 괴수에게 오도되어 그런 짓을 하셨다는 것을 너무 늦게 하인들에게서 들었으니까요.
그러자 가련한 젊은이는 쉴 새 없이 어머니를 위해 슬피 울며 큰 소리로 애절하게 통곡했고,어머니의 입에 키스를 쏟아부으며 어머니 옆에 나란히 누워서는 자기가 근거 없이 어머니를 비방했다며 자꾸만 비통해하고, 자기는 이제 아버지와 어머니를 두 분 다 동시에 여의고 살아가게 되었다며 울고 있어요.
집안 사정은 그래요.
그러니 누군가 이틀 또는 그보다 더 많은 날들을 미리 내다보려 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오늘을 무사히 넘기기 전에 내일은 없으니까요.
==
휠로스 - 아버지의 소원성취를 방해하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어요.
아버지께서는 명령하시고 강요하시니까요.
헤라클레스 - 자, 고통이 다시 깨어나기 전에, 내 강인한 마음이여, 내 입에 무쇠 가시들이 난 재갈을 물려 비명을 억제하고, 강요된 일을 흔쾌히 마치게 하여라!
휠로스 - 하인들아, 이분을 들어올려라.
너희들은 내가 하는 일을 너그럽게 보아다오.
너희들도 보다시피, 지금 일어난 모든 일들에 신들께서는 참으로 무정하셨다.
신들께서는 자식을 낳아 아버지로 추앙받으면서도 이런 고통을 방관하시다니.
미래사는 아무도 예견할 수 없는 법.
하지만 지금 닥친 일은 우리에게는 비참하고, 신들에게는 수치스럽고, 이 운명을 참고 견디는 이에게는 비할 데 없이 잔혹하구나.
코로스 - 소녀들이여, 그대들도 함께 이 집을 떠나도록 해요.
그대들은 이 집에서 방금 끔찍한 죽음과 온갖 이상한 고통을 보았어요.
하지만 그중에 제우스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어요.
==
코로스 - 용기를 내세요. 아기씨, 용기를 내세요.
하늘에 계신 제우스께서는 여전히 위대하세요.
그분께서는 만물을 굽어보시며 통치하시니까요.
그분께 아기씨의 쓰라린 원한을 맡기시고, 아기씨의 원수들을 너무 미워하지도 말고, 잊지도 마세요.
세월이 약이라지 않아요.
크리사의 소떼를 치는 해안에 살고 있는 아가멤논의 아드님도, 아케론 강가에서 다스리시는 신께서도 결코 무심하지 않으시니까요.
엘렉트라 - 하지만 내 인생은 대부분 절망 속에서 지나가버리고, 나는 더이상 여력이 없어요.
나는 자식도 없이, 사랑하는 남편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혼자 쇠진해가고 있으니 말이에요.
나는 아무런 명예도 없는 거류민처럼 이렇게 남루한 옷을 입고서 아버지의 방들에서 시중을 들고 찬도 없는 식탁 가에 서 있곤 하지요.
==
엘렉트라 - 그렇다면 말씀드릴게요.
당신은 아버지를 죽였다고 방금 시인하셨는데, 옳고 그르고를 떠나 그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내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당신의 살인 행위가 정당하지 않다는 거예요.
당신은 지금 동거 중인 그 악당에게 설득당한 거예요.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물어보세요, 누구 잘못 때문에 여신께서 아울리스에서 수많은 바람들을 묶으셨는지.
아니, 내가 말씀드리죠. 여신에게서는 알아낼 수 없을 테니까요.
내가 듣기로는, 아버지께서 한번은 원림 안을 거닐다가 당신의 발소리에 깜짝 놀라 뛰어 달아나는 얼룩무늬의 뿔난 수사슴을 쏘아 맞히시고는 자랑삼아 무슨 말씀 한마디를 하셨대요.
그 때문에 레토의 따님께서 노하여 아카이오이족을 붙드셨던 거래요.
그 짐승에 대한 보상으로 아버지가 친딸을 제물로 바치게 하려고. 그래서 딸을 제물로 바치셨던 거래요.
헬라스군에게는 고향으로 가든 일리온으로 가든 달리 해결책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아버지께서 심한 강요에 못 이겨 마지못해 딸을 제물로 바친 것이지, 메넬라오스를 위해서가 아니에요.
설령 당신 말처럼 아버지께서 아우를 위해 그랬다손 치더라도, 그 때문에 아버지께서 당신 손에 죽어야 하나요? 어떤 법에 근거해서죠?
조심하세요. 인간들에게 그런 법을 만들다가 당신 자신에게 고통과 회한을 안겨주지 않도록.
우리가 한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게 된다면, 당신이 맨 먼저 죽게 될 거예요.
당신에게 응분의 보답이 주어진다면.
잘 살펴보세요. 당신이 구차한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좋다면, 말씀해주세요.
어째서 당신은 지금 가장 수치스러운 짓을 하고 있는지.
당신은 전에 내 아버지를 죽일 때 도와준 공범자와 동침하여 그자에게 자식까지 낳아주면서 그전에 합법적으로 결혼한 남편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은 내쫓아버렸어요.
이런 짓들을 내가 어떻게 칭찬할 수 있겠어요?
아니면 이것도 딸을 위해 복수하는 거라고 주장하실 건가요?
그렇게 주장하신다면 수치스러운 짓이지요.
딸 때문에 원수와 결혼한다는 것은 불미스러운 짓이니까요.
하지만 당신에게는 따끔하게 타이를 수도 없어요.
내가 어머니를 욕하려 한다고 있는 말 없는 말 다 하니까요.
정말이지, 내게 당신은 어머니가 아니라 안주인이라고 생각돼요.
나는 비참하게 살아가며 당신과 당신의 정부에 의해 줄곧 고생이라면 원도 한도 없이 했으니까요.
하지만 가련한 오레스테스는 당신 손에서 구사일생으로 벗어나 망명자로서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어요.
당신은 내가 그 애를 당신에게 복수할 사람으로 기른다고 가끔 욕하곤 했는데, 내게 그럴 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했겠지요.
잘 알아두세요. 그 일이라면 만인이 보는 앞에서 나를 마음대로 규탄하세요.
고약한 년이라고, 욕쟁이라고, 후안무치한 년이라고.
내가 과연 날 때부터 그런 일들에 능하다면, 아마도 역시 그 어미에 그 딸이란 말을 듣게 되겠지요.
==
고귀한 자는 어느 누구도 비천하게 연명하며 제 명성을 더럽히고 이름 없이 죽기를 원치 않는 법.
딸이여, 내 딸이여, 그와 같이 그대도 하염없이 함께 애도하는 삶을 택하고 아름답지 못한 것은 물리쳐, 지혜롭고 착한 딸이라는 두 가지 명성을 한꺼번에 얻는구려.
원컨대 그대는 권세와 부에서 지금 그대가 예속하에 살고 있는 그만큼 원수들 위에 높이 군림하며 살아가시기를!
나는 그대가 불운 속을 거닐면서도 가장 위대한 법도를 준수함으로써 제우스에 대한 경외심에 의해 최고의 상을 타는 것을 보았소.
==
아이기스토스 - 네가 앞정서라!
오레스테스 - 네가 앞정서야 해.
아이기스토스 - 내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오레스테스 - 아니, 네가 네 마음대로 죽지 못하도록.
나는 너에게 죽음의 쓴맛을 보여줄 거니까.
법을 무시하고 행동하려는 모든 자들에게 이런 죽음의 벌이 당장 내려져야 할 텐데.
그러면 악당들 수가 줄어들련만!
코로스 - 오오, 아트레우스의 자손들이여, 그대들은 수많은 시련 끝에 힘겹게 자유에 다다도다. 오늘의 이 거사에 힘입어.
==
그럴 줄 알았소. 악한 것은 쉬이 소멸되지 않는 법이니까.
신들은 악한 것은 잘 돌봐주시지요.
신들은 악랄하고 비열한 것들은 기꺼이 하데스에서 돌려보내시는 반면, 올바르고 쓸 만한 것은 항시 이 세상에서 내보내시지요.
신들의 처사를 존중하면서도 신들이 나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이런 일을 나는 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하며, 어떤 점에서 신들을 찬양해야 하는 것이오?
==
인간의 운명은 공포와 위험으로 가득차 있고,
행운과 불행은 돌고 돈다는 점을 생각하시고.
고통의 바깥에 있는 자는 위험을 보아야 하며,
잘나가는 자일수록 인생을 세심하게 살펴야 하오.
방심하는 사이에 느닷없이 파멸이 닥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