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판 왕자님의 파란만장 육아일기 ※ [부제: 비상(飛上)을 꿈꾸다] 001.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광복과 동시에 수립되어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의정부로 복원되고 새롭게 부활한 삼정승과 육조판서의 추대로 순종(純宗)의 숨겨진 아들이자 일제의 눈을 피해 외도란 외딴 섬에서 길러진 연해대군(이해윤)이 왕위에 올랐고 그는 35년만에 다시 부활한 왕조에 태조로서 해종(諧宗)이란 왕명을 부여받았다. 독립의 자유와 함께 도태했던 왕조는 사라지고 새롭게 왕조가 부활하자 국민들은 기쁨의 환성을 부르짖었고 새로운 왕조는 굳건히 나라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20세기 한국에 조선왕조를 뿌리로 둔 새로운 대한왕조(大韓王祖)시대가 열렸다. . . . 그리고 그 후 약 60년이란 긴 시간이 물처럼 흘렀다. ............................................................................... ※ 대한왕조(大韓王祖) 계보 ※ [제1대 해종(諧宗)] 연해(連海)대군(이 해윤) 재위기간 : 1945.8 - 19**.9 (15년 1개월) 부인 : 2명 자녀 : 4남 2녀 단명왕후 유씨 -신명(新明)대군(제 2대 신종), 신유(新流)대군, 신화(新花)공주 공빈 김씨 -월하(月下)군, 월성(月聖)군, 월화(月花)옹주 [제2대 신종(新宗)] 신명(新銘)대군(이 명)-민주정치 도입 재위기간 : 19**.9 - 19**.11 (27년 2개월) 부인 1명(일부일처제 도입), 자녀 : 3남 1녀 초현왕후 정씨 -위한(偉翰)대군, 위현(偉炫)대군(제 3대 선종), 위연(偉練)대군(제 4대 현종), 위혜(偉慧)공주 [제3대 선종(善宗)] 위현(偉炫)대군(이 현) 재위기간 : 19**. 8 - 20**. 8(16년) 부인 : 1명 자녀 : 2남 연화왕후 하씨 -천률(天律)대군(왕세자), 천륜(天倫)대군 ※2년 전 사고사로 모두 사망한 것으로 기록. [제4대 현종(賢宗)] 위연(偉練)대군(이 연) 재위기간 : 20**.8 - 재위 中 부인 : 2명 자녀 : 1남 1녀 효명왕후 신씨(사망) -강건(强健)대군(왕세자), 화평(和平)공주 효령왕후 진씨 -현재 회임 중. - 대한왕조(大韓王祖)실록에서 발췌. ............................................................................... . . . 20**년 8월 15일. 대궐의 중심공간인 근정전의 웅장한 건물 앞에 있는 두 층의 기단 위에 마련된 넓은 공간인 월대에서 대한왕조 수립 60주년 축하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궁궐 곳곳마다 화려하게 장식된 연등은 이 행사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 지를 나타냈다. 또한 큰 행사가 있을 때만 특별히 초청하는 국립 국악단의 아름다운 수제천 연주가 가늘게 울려 퍼지는 태평소 소리와 함께 궁궐의 담을 넘어 멀리 멀리 뻗쳐졌다. 허나, 독립의 기쁨과 함께 평화로운 음악을 즐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현재 제위 중인 대한민국의 왕 '현종'의 아들 강건대군, ‘이강휘’의 왕세자 책봉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월대 아래 놓여진 조정의 양쪽으로 도열한 문무백관들과 왕실의 종친들 사이에는 낮게 울리는 음악소리와 낯설기만 한 어색한 침묵이 그들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왕실의 최상급 정장인 금관조복을 입고 손에는 홀(笏)을 들고 있었다. (※금관조복: 조선시대 문무백관이 조하(朝賀)·경사 등에 입는 공복(公服). 홀(笏): 왕세자·세손·왕후·비·빈 등을 봉할 때 가르치거나 타이를 말, 여쭐 말이 있으면 써두어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길이 한 자, 너비 두 치의 얄팍하고 길쭉한 옥(玉), 상아(象牙), 괴목(槐木) 등의 재료로 만든 막대.) "주상전하, 중전마마 납시오!" 굵은 목소리를 가진 도승지(말하자면 청와대 비서)의 큰 외침과 동시에 엄숙한 표정을 유지한 체 동쪽 줄에 서 있던 문신과 서쪽 줄에 서 있던 무신들의 고개가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한 명의 오차도 없이 일제히 숙여졌다. 낮게 그리고 천천히 울려 퍼지던 음악소리는 점점 빠르고 웅장하게 변해갔다. 왕을 맞이하는 소리. 그 소리에 맞게 거대한 행렬을 뒤로하고 포커페이스에 위엄으로 가득 찬 모습을 한 현종과 함께 늦은 나이에 회임을 하여 나날이 불러오는 배의 묵짐함을 힘겹게 유지하고 있는 효령왕후가 모습을 드러냈다. 왕은 국가에 큰 행사라는 것을 알 수 있게끔 왕을 상징하는 9가지 문양이 있는 옷과 9류 면류관(冕旒冠)으로 구성된 구장복(九章服)을 입고 있었고 왕후도 그에 맞춰 청색과 적색으로 이루어진 왕비의 예복인 적의와 '대두(大首)'라는 가채를 쓰고 있었다. 그들은 널찍한 뜨락과 터를 높인 상월대, 그 위에 당에 설치한 용상 위로 나란히 향했다. 용상, 말 그대로 의자 위에 화려하게 수놓아진 용의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멋졌고, 생동감이 넘쳐 마치 의자에 새겨 있지만 금방이라도 뛰쳐나와 승천할 듯이 보였다. 도승지는 왕과 왕비가 자리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모아 큰 소리로 외쳤다. "세자저하 납시오." 근정전 안팎을 울리는 도승지의 엄숙한 목소리에 근정문 밖으로 거대한 행렬이 보였다. 그 중앙에는 세자를 상징하는 칠장복(七章服, 일곱가지 문양이 들어간 세자의 정복)을 입은 카리스마 넘치는 조각 같은 외모를 지닌 소년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문 안으로 들어왔다. 뜨락에서 용상으로 가는 통로에는 왼쪽 계단인 좌계와 오른쪽 계단이 조계가 있는데 세자로 보이는 소년은 왕만이 쓸 수 있는 조계의 계단을 천천히 밟고 올라왔다. 아직 식도 치르지 않은 대군이 왕의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양쪽으로 도열해 있는 대신들 중 그 누구도 세자의 행동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았다. 그저 납빛으로 변한 얼굴을 들킬세라 끊임없이 고개를 아래로 숙이기에 바빴다. "죽책문(竹冊文) 수여." 소년은 그저 차가운 조소를 입에 머금은 체 당당하게 걸어나가 왕에게로 향했다. 잠시 후, 그가 임금이 앉아있는 용상 앞에 서자 대기하고 있던 도승지는 표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게 굳은 현종을 향해 경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에게는 보일 수 없는 사무적인 태도를 고수한 체 현종은 자신의 앞에서 45정도 허리를 굽혔다 핀 소년에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분명 왕의 앞에서 예를 갖추고 무릎을 꿇는 것이 궁중 법도요, 인지상정이건만 그저 고개 한 번만 숙였다 핀 당당함이 그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세자는 예를 갖추라." 현종의 차가운 말투에 소년은 잠시 주춤하다 천천히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언뜻 소년의 얼굴에 웃음기가 베어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현종은 괘념할 여유가 없었다. 머무적거리며 시간을 끌면 그에게 더욱 불리할 뿐, 중신들의 의심을 살뿐이다. 옆에 앉은 효령왕후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는 못 본 척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자 그의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령상궁이 예를 갖추며 그에게 다가와 고급스럽게 세공 되어 있는 받침대에 올려져 있는 대나무 문서를 건넸다. 조선시대에서 만들어진 것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세자의 임명사실을 기록한 대나무 문서인 죽책문을 손에 쥔 그는 약간을 떨리는 듯 보이는 손으로 문서를 집었다. 그는 한 번 힘을 줘서 꾹 쥐고는 결심한 듯 두어 걸음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앞에서 허울뿐인 예를 갖추고 있는 소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 순간이었다. 종친들 사이에 파묻혀 존재조차 몰랐던 한 소년이 난대 없이 뛰쳐나왔다. "제길, 이 책봉식은 말도 안 됩니다!!!" "처, 청령군마마!!!" "이런, 청령군마마!!!!" "옥새도 없는 왕의 세자 책봉례가 가당키나 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대한왕조 역사상 최고의 불의의 사고라 불려지는 사건으로 인해 선왕이었던 선종선대왕과 그의 여식들이 한 순간에 모두 숨을 거둔 이후 급작스러운 세력들의 움직임으로 인해 사건의 전말은 잊혀진 체 선대왕의 동생이었던 현종이 왕위에 오른 지 2년이 지났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2년 동안 미루고 미뤄온 세자책봉이 현종의 장자인 강건대군이 오늘 이렇게 세자자리에 오르면서 드디어 본 자리를 찾게 되었다. 아니 그래도 현종이 즉위한 즉시 세자의 책봉례도 이루어져야 했건만 자꾸 미루기만 하는 왕실의 태도에 대신들과 관료들은 의아함과 호기심으로 잔뜩 불거져있었다. 헌데, 난대 없이 튀어나온 세자 또래의 청령군이라 불리는 소년의 불같은 외침은 궐내에 모여있는 모든 문무관료와 왕족들에게 커다란 파장을 불러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경건한 의식 때문에 침묵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던 근정전 안은 경악으로 가득 찼고 쉬쉬하고 있던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림이 번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란 말입니까! 옥새가 없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청령군마마께서 없는 소리를 하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소문 못 들으셨습니까, 옥새가……." 겉잡을 수 없이 불경스럽게 번지는 그들의 말소리에 당황한 듯 표정이 굳어지는 현종을 감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눈으로 바라보던 강건대군이라 불리는 소년이 순간 고개를 돌려 매처럼 매섭고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으로 수군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압도적인 힘, 소년의 눈에서는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빛이 났다. 왕이 당황하건 말건 상관도 않던 사람들이 소년의 눈빛에 모두 숨이라도 멎어버린 양 거친 호흡을 한 순간에 멈춰버리고 두려움에 질려 소년의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왕에게조차 굽히지 않는 허리를 이제 세자의 자리를 굳힌 소년을 향해 거침없이 굽히는 가신들의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보며 왕은 애써 씁쓸한 기색을 감추기 바빴다. 하지만 실망할 틈이 없었다. 우선 켜진 불부터 끄고 봐야 했다. 혈기왕성한 나이인지라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거침없이 뿜어내고 있는 청령군을 가장 말릴 수 있을 만한 물색하던 중 현종의 눈에 적당한 인물을 눈에 들어왔다. 002. "형판(형조판서의 준말=지금의 법무부 장관), 청령군을 별궁까지 잘 모셔다 드리게." "예, 전하." 짧은 대답과 함께 중신들 가운데 서 있던 한 남자가 걸음을 재촉해 나왔다. 왕에게서 부름을 받은 형조판서의 직책을 맡고 있는 중년의 그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허리를 굽혀 현종을 향해 예를 갖춰 보이고는 날뛰고 있는 청령군의 두 팔을 가볍게 그러나 뿌리칠 수 없는 강한 힘으로 붙잡았다. 힘이 없다고는 하나 일국의 왕자를 이런 식으로 무례하게 다룬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한 나라의 궁중 법도상 말도 안 되는 짓이다. 그러나 이미 이런 일에 익숙해졌다는 듯 다른 대신들은 서로의 눈을 피하며 모두 입을 봉쇄하고 쉬쉬할 뿐 그 어느 누구도 스스럼없이 나서지 않았다. 양육강식의 사상이 뿌리까지 박혀있는 곳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궁(宮). 힘은 없지만 자유를 원하는 청령군은 자신을 감싸고 있는 강한 압박에 마치 자유를 구속당한 야생동물 마냥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제길!!! 형판대감, 놓으십시오!!!! 이 책봉례는 무효입니다!!! 어떻게……. 전하 아니 백부님! 제게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왕실의 문제아로 일컬어지는 불같은 성격을 지닌 청령군, 이 휼. 선종 선대왕과 현종의 형이자 군부인의 뱃속에 있던 그가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에 일찍이 병으로 세상과 별거한 위한대군의 자제로 군부인 마저 세상을 떠난 지금, 현종이 그의 감시를 위한 배려 아닌 배려로 인해 궁궐에 있는 별궁에 거처를 하고 있었다. 자유를 얻지 못한 새가 구슬피 울 듯 발악을 하며 소리치는 휼의 모습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조금씩 웅성거렸지만 강휘는 가소롭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차갑게 냉소를 지었다. 사람을 저 바닥으로 떨어뜨리게 만드는 저 웃음,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불어 항상 바닥을 기어다니는 지렁이만도 못하다는 듯 바라보는 경멸에 찬 눈빛까지. 어쩜 그렇게 사람 속을 잘도 뒤집어 놓는지 강휘의 조소 섞인 웃음에 화가 머리끝까지 뻗치다 못해 펑 소리를 내며 폭발하기까지 이른 휼의 눈에는 보이는 게 없어졌다. "지랄 맞게 쳐 웃기는! 재수 없는 자식. 이거 놓으십시오! 형판대감! 한 대 치지 않으면 제 속이 먼저 잿더미가 될 것 같습니다! 제길!!!!" "청령군마마, 어찌 이러십니까!" 왕 아래 삼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과 함께 대한민국 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육조판서(이조, 병조, 호조, 형조, 예조, 공조) 중 하나인 추관 형조(秋官 刑曹)판서인 ‘강 윤’의 손에 잡힌 휼이 강휘의 비웃음에 얼굴까지 새빨갛게 변해서 더욱 거세게 발버둥침에도 불구하고 냉정을 잃지 않는 윤은 표정에 한 치의 변화도 없이 휼의 귀에 조그맣게 말을 흘렸다. "청령군마마, 그만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별궁으로 얌전히 가시지요. 이러시면 당신이 믿고 있는 희망인 '그 분'에게 해를 가하는 것은 물론 세자저하와 주상전하가 만든 당신의 자유를 가둔 새장은 당신이 나는 것마저 허용치 않을 정도로 더더욱 좁아질 것입니다." 그의 차분한 귓속말에 휼의 머리 속에는 익숙한 한 소년의 얼굴과 동시에 요 근래 현종과 강건세자의 별궁 감시가 더욱 심해진 것이 떠올랐다. 도청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고 또한 예상도 하고 있었다. 완벽주의가 트레이드마크인 강건대군이 그런 짓을 안 하면 오히려 이상했다. 하지만 자신이 머물고 있는 별궁에서 이젠 도청도 모자라 몰래카메라까지 발견했다. 여기서 더 심해져 학교 생활까지 그들에게 감시를 당한다면…….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고 정신이 아찔해졌다. "제길!!! 오늘은 이렇게 물러나지만 어디 한 번 그렇게 끝까지 가보시죠!! 사리사욕으로 가득 찬 당신들이 만드는 결과가 어떻게 될 지 궁금해집니다!!" 그는 불쾌한 듯 입에서 거칠게 욕설을 뱉으며 몸을 틀었다.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근정전 밖으로 걸어나가는 그를 보며 황급하게 윤은 고개를 돌려 현종을 향해 예를 갖춰 보이고는 청령군을 뒤따라 정전을 빠져나갔다. 마치 한 차례의 짧은 폭풍이 지나간 것 같았다. 그들이 사라지자 웅성거렸던 정전은 다시 침묵과 엄숙함으로 둘러싸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현종은 애써 담담하게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죽책문(세자의 임명장)과 교명문(세자로서 지켜야할 규율을 쓴 글), 세자인(세자를 증명하는 도장)을 차례로 강휘의 손에 들려주었다. 현종은 자잘하게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힘을 줘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 자신을 보며 희미하게 조소를 짓는 강휘의 모습을 보며 그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제 그가 할 일은 모두 끝이 났다. "세자, 너의 본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입니다. 아바마마." 겁에 질려 두려운 시선으로 한 걸음 물러서 자식을 바라보는 자신의 아버지가 무엇을 염려하고 무엇을 당부를 하는 것인지 강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현종은 더욱 자신의 아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현종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짧게 대답한 강휘는 시선을 옮겨 왕의 용상 옆에 마련된 또 다른 용상에 앉아있는 효령왕후에게로 옮겨졌다. 강휘와 시선이 마주친 그녀는 그의 눈에서 무언가를 본 것인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언뜻 강휘의 입꼬리도 묘하게 위쪽을 향해 올라간 듯 보였다. 이윽고, 현종이 용상 쪽으로 몸을 돌리자 서 있던 문무백관들은 마치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홀(笏)을 하늘 높이 올리며 천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천세! 천세! 천천세!" 그 커다란 환성 속에서 효령왕후와 한참을 대치하고 있던 강휘는 여유와 자신감이 넘치는 그녀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읽은 것인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그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러나 이번에는 입가에 뚜렷하게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점차적으로 불러오는 그녀의 배를 천세의 외침이 멎을 때까지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 * * 그 시각, 인천국제공항에서 막 한국으로 도착한 소녀가 공항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이국적으로 보이는 그녀의 눈에 띄는 외모에 그녀를 지나쳐간 사람들은 뭔가에 홀린 것 마냥 신기한 시선으로 한 번씩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런 시선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지 소녀는 그저 한국에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들뜬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꽃을 찾는 나비마냥 나폴나폴 거리며 공항 입구로 뛰어나가다 공항 안으로 들어오던 모자를 푹 뒤집어 쓴 남자와 정면으로 부딪히고 말았다. "아야. 죄, 죄송합니다." "..........." 언뜻 소녀는 부딪힌 순간 남자의 나이가 적다는 것이 느껴졌다. 공손한 그녀의 사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자를 써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소년은 그저 그녀를 향해 무성의하게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 빠르게 공항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언뜻 소년이 지나쳐간 자리에서 시원한 바람 향기가 났다. 하지만 그런 것도 느낄 세 없이 그녀는 뭐 저란 사람이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사라진 소년의 잔상을 바라보다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공항 밖으로 나온 그녀는 자신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손을 활짝 피며 환히 웃음을 지었다. "I'm in KOREA!" 사람들은 소녀의 갑작스러운 외침에 이상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정작 시선을 받는 그녀는 개의치 않는 듯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드디어 한국이다. 13년 동안 꿈에서도 그렸던 한국!! 한참 상상으로 부풀어오른 그녀의 앞으로 검은색의 고급스러운 리무진 한 대가 섰다. 달칵거리는 문소리와 함께 리무진 뒷좌석에서 20대 후반의 준수한 외모를 지니고 깍듯하게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낯익은 한 남자가 내렸다. 그는 두리번거리는 동작도 없이 단 한 번에 공항 문 앞에 서 있는 소녀의 앞으로 다가와 45도 각도로 허리를 숙이며 예를 표현했다. "안녕하십니까, 하늘아가씨.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어, 당신은……." (띠리리리- 띠리리리-♬) 의외로 등장한 남자의 모습에 넋을 놓고 있던 소녀는 갑작스럽게 울리는 핸드폰 전화벨 소리에 퍼뜩 정신이 나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녀는 핸드폰 액정에 뜬 이름을 보며 더욱 흥분된 마음으로 폴더를 열었다. 소녀가 말도 꺼내기 전에 폴더에서는 쾌활한 하이톤의 여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늘아, 도착했어?!] "응- 지금 도착해서 서울로 가는 참이야. 그런데 왜 준석씨가…?" [내가 보냈어, 직접 마중 못 나가서 미안해! 오늘 세자 책봉례가 있어서 종친들은 모두 참여해야 했거든. 준석씨가 네가 머물 곳으로 직접 데려다 줄 거야. 그럼 내일 예비소집일 오고 다음주부터 진짜 우리 학교 다니는 거야?] "응~ 고마워, 강해야. 응응, 다음주부터 드디어 도산서원으로!!! 강해야! 보고싶어~♡!!!" [가시네~ 애교는! 그럼 내일 예비소집일 늦지 않게 오고! 다음주에 학교에서 보자!] "응~ 고마워! 강해야." 전화를 끊은 소녀는 강해의 보디가드 중 하나인 준석의 에스코트를 받아 리무진에 올랐다. 넓은 좌석 중 창가 바로 옆에 앉은 그녀는 밖으로 보이는 끝을 알 수 없이 높고 푸른 하늘을 넋이 나간 듯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시동이 걸리고 차가 출발하자 꿈만 같았던 한국의 풍경이 하나 둘 그녀를 지나쳐갔다. 차창 밖으로 풍경이 하나 둘 바뀔 때마다 소녀의 가슴이 두근두근 떨려왔다. 정적인 도시가 아닌 동적인 도시, 서울! 활기 넘치는 사람들을 보며 소녀의 가슴엔 왠지 한국에서의 생활은 자신이 살아온 18년보다 훨씬 스릴 넘치고 즐거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003. 20**년 8월 16일. “으흠- 그러니까 21세기 한국에 왕조가 있다 이거지. 어디 보자~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광복과 동시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의정부로 복원되고 새로이 등용된 삼정승과 육조판서의 추대로 일제의 눈을 피해 외도란 외딴 섬에 몇몇 상궁들이 보필한 순종(純宗)의 숨겨진 아들인 연해대군 이해윤, 해종(諧宗)에 의해 20세기 한국에 조선왕조를 뿌리로 둔 새로운 대한왕조(大韓王祖)시대가 화려하게 열렸다.“ 새하얀 종이처럼 빳빳하게 한 치의 구김 없이 다림질된 하얀 블라우스와 화사한 갈색 체크리본, 늘씬하게 빠진 허리 라인을 강조해주는 밝은 갈색 조끼. 주황색과 흰색이 섞인 체크주름치마를 평소에도 깔끔한 성격을 지녔다는 것을 알게 해 주게끔 단정하게 다려 입고 갈색빛이 도는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를 질끈 하나로 묶은 소녀는 한 손엔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한 손엔 파일을 든 체 그 파일 안에 빽빽하게 정리된 종이들을 머리를 푹 수그려 조그만 소리로 읽으면서 비좁고 좁다란 골목길을 위태롭게 걷고 있었다. “그 후 해종과 단명왕후 사이의 아들이자 신명세자였던 신종(新宗)이 왕위를 물려받았고, 신종과 초현왕후 사이의 자제 위현세자인 선종(善宗)이 왕으로 즉위하였지만, 재위기간 16년 만인 2년 전 불의의 사고로 인해 선종 선대왕(先代王)과 연화왕후, 그리고 그의 여식인 천률세자와 천륜대군이 모두 함께 승하한 불상사로 인해 선종 선대왕의 동생이었던 위연대군이 삼정승과 육조판서의 추대로 대한왕조 제 4대 왕인 현종(賢宗)으로 즉위하였다. 그리고 재위 2년 만인 20**년 8월 15일에 왕조 수립 60주년 축하행사와 함께 현종과 효명왕후 사이의 자제인 강건대군 이강휘가 드디어 다음 보위를 잇기 위해 문무백관들과 종친들이 모인 근정전에서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하지만 이미 신종 때 민주정치의 도입으로 왕권은 급격히 쇄신하여 그 힘이 미약해져왔고, 아직 다소의 권위가 남아있긴 하지만 현재 대한왕조는 영국의 의원내각제의 형태로 바뀌어가고 있는 추세.................... …어어?!! 으앗!!!!!“ 앞도 보지 않고 파일에 쓰여 있는 글을 읽으며 걷던 소녀는 무릎까지 오는 정체불명의 커다란 장애물(?)에 의해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안 그래도 불안하게 걷던 그녀는 무방비의 상태에서 발에 걸린 장애물 덕분에 대책을 세울 수도 없이 그대로 땅을 향해 몸을 내던지듯 빠른 속도로 몸이 떨어졌다. (쿠웅!) “아야…” 묵직한 소리와 함께 그대로 물컹한 느낌의 장애물과 함께 쓰러져버린 그녀. 대짜로 자빠진 걸 보아하니 코나 안 깨졌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째 넘어지기는 했는데 조금 느낌이 이상하다. 뭔가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맞다. 장애물에 걸려 넘어졌지? 잠깐! 장애물의 느낌이 어째 물컹하고 폭신폭신한 것이 꼭 사람 같다-? 그래, 이 느낌 사람… 잠깐!!! Stop!!! 사... 사람?!!!!!! 힘없이 쓰러졌던 소녀는 놀란 듯 넘어진 자리에서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섰다. “Oh!! Goddam!!! 은빛하늘!!!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하늘은 자신의 밑에 깔린 장애물이 5살 정도 되 보이는 남자아이란 사실에 긴 속눈썹을 가진 큰 옅은 바다 빛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울렁거렸고, 발랄함이 한 가득 묻어나는 희고 고운 얼굴에 한 가득 짙은 울상을 지어졌다. 한국에 온 지 하루만에 사고를 치다니, 강해가 알면 그녀에게 또 한 소리 듣게 생겼다. “I'm crazy(나 미쳤나봐)!!! 어떡해!! 꼬...꼬마야, 괜찮아?!” 하늘은 엎어진 체 일어설 줄 모르는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며 다급하게 외쳤다. 걱정스러운 외침에 아이는 눈물도 흘리지 않고, 아니 한 마디의 말조차도 하지 않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묘한 눈망울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넘어지는 하늘의 몸에 정통으로 깔려 얼굴에 흙이 덕지덕지 묻었음에도 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의 훤칠한 인물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하지만 아이의 눈은 나이에 맞지 않게 깊이 있는 성숙함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마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듯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아이의 눈망울에서 시선을 떼지 못 하고 하늘은 안절부절 못 하며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얘야? 괜찮아? 안 아파?!” “...............” 재차 반복되는 하늘의 질문에도 아이는 묵묵부답의 자세로 일관했다. 비명도 지르지 않았고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 그저 아이는 크고 똘망똘망한 시선으로 하늘의 얼굴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순간, 아이의 의뭉스런 행동에 그녀의 머릿속에 급작스럽게 하나의 생각이 스쳐갔다. “혹시, 말을 못 하니?” “.......(끄덕)........” 대답 없는 아이는 하늘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시했다. 어린것이 생긴 것은 전혀 남부럽지 않게 생겨서 Communication(대화)을 못 하다니!!! 이대로 대화가 안 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가!? 이러다가 교환학생으로서 가게 된 학교의 첫 등교에 늦게 생겼다. ‘말도 못 하는데… 확 관심을 돌려놓고 우선 보는 사람도 없으니 튀어버려?’ 그러려면 넘어지면서 떨어뜨린 저 뒤편에 널브러진 바이올린을 줍고 바로 뛰어야한다. 바이올린! 하늘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지만 오늘은 특히 목숨만큼 귀중했다. 오늘 도사서원 별관에서 열리는 교환학생 예비소집일 일정을 마친 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말 그대로 천재 바이올린리스트인 '민태희' 씨 밑에서 강습을 받기 위해 강해의 주선으로 그녀 앞에서 시범 연주를 하기로 약속까지 했으니 말이다. 아니, 그것보다도 우선은 급한 학교부터 가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급한 불이 있으면 먼저 끄라고 옛 말도 있고 말이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되는 의뭉스러운 생각에 속으로 음흉하게 웃으며 모든 상황을 정리해버렸다. 하늘은 안면 한 가득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더럽혀진 아이의 얼굴에 묻은 흙을 급한 손놀림으로 잽싸게 털어 주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꼬마야.” “............” 금방이라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아이의 맑은 눈동자와 눈이 정면으로 마주친 하늘은 지레 양심이 찔려 몸을 움찔거렸다. “누... 누나가 바...바빠서 그런데, 부모님은 어디 계셔…?” 처음 보는 아이야, 미안. 날 원망하지 말아주렴. 이 누님께서 나중에 다시 만난다면 꼭 맛있는 것 사줄게. 속으로 말도 안 되는 말을 중얼거리며 아이의 관심을 돌리며 점점 아이에게서 뒷걸음치는 하늘에게 아이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손가락으로 그녀의 뒤쪽을 가리켰다. 뭐가 있기에? 설마, 이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인가! 아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점차 시선을 따라 옮기는 그녀다. “어라, 도산서원 학생?” 여자로서 작은 키가 아닌 하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차이가 나는 큰 키를 가진 소년, 조각 같지만 딱 봐도 차갑고 냉정해 보이는 소년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결 좋은 머리칼은 언뜻 보기엔 검정색 같았지만 자세히 보면 천연적인 파란 빛깔을 내고 있었다. 그와 조화를 이루는 사파이어와 같이 푸른빛이 도는 눈동자와 촘촘하고 긴 속눈썹. 누가 조각이라도 해 놓은 듯 매끄럽게 뻗은 콧날을 지나 붉은 입술로 떨어지는 예쁜 라인과 갸름하고 매끄러운 턱선까지… 완벽이란 단어가 딱 어울리는 소년! 하늘이 다니게 될 도산서원의 심플한 디자인의 밤색 차이나식 남자 교복은 마치 완벽한 조각 같은 그를 위해 준비한 옷처럼 보였다. “후… 휘, 너 또 말 안 들을래?” 그 잘생긴 얼굴에 한 가득 인상을 찌푸린 소년은 하늘 따위는 눈에 보이지도 않다는 듯이 무시하며 그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걸어서 아이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아이의 손을 낚아채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휘! 아빠가 밖에 나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지?” “...아..아빠?!!” 004. 기껏해야 자신의 나이 또래로 보이는 소년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아빠라니?! 하늘은 자신을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는 소년에 대한 불쾌감이 일기도 전에 소년의 발언으로 인한 당황스러움에 그녀 자신도 모르게 불쑥 소리치고 말았다. 뒤늦게 수습을 위해 황급히 입을 틀어막기는 했지만 이미 지른 소리는 골목 안에서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하늘의 존재를 파악한 소년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웬 생판 모르는 여자가 시야에 잡히자 언짢은 듯 표정을 구기는 소년의 파란 눈동자가 자신과 비슷한 색을 띄고 있는 하늘의 눈동자와 마주치자 미세하게 흔들렸다. “뭐야… 넌?” 시건방지게 느껴지는 소년의 말과 동시에 그를 주시하고 있던 하늘의 시선은 바이올린 케이스가 널브러진 위치에 서 있는 소년의 발 밑으로 떨어졌다. “에에? 내 목숨과도 같은 바이올린 케이스!!!!! 으아아아!!! 너 발 안 떼????!!!!! 그게 얼마짜리인데!!!!” 소년의 발에 지긋이 밟혀져 있는 그녀의 하나밖에 없는 바이올린 케이스를 본 순간, 입이 딱 벌어진 하늘의 눈이 번개라도 맞은 듯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 자식이 사람이 소리를 쳤으면 바로 발을 비켜줘야 할 것이 아닌가? 대수롭지 않은 듯 여전히 지긋이 발로 케이스를 밟고 있는 저 녀석의 심보는 뭐란 말인가! 역시 잘난 것들은 성격은 완전 폭탄 맞아 파탄자라더니 그 말이 정답이로세. 눈이 뒤집힌 그녀는 앞뒤 안 가리고 소년의 앞으로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아챘다. "야!! 너 나한테 죽어볼래?!!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아?!!!" "시끄러워." "뭐?! 뭐?! 너,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녀는 흥분에 찬 새빨간 얼굴에 침까지 튀겨가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소년은 하늘이 튀긴 침이 더럽다 못해 불결한지 멱살이 잡힌 채로 주머니에서 손수건까지 꺼내 자신의 얼굴에 묻은 그녀의 침을 닦아냈다. 그것도 모자라 벌레만도 못하다는 듯한 경멸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는 소년의 눈길에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하늘은 있는 힘껏 소년을 밀어버리며 소리쳤다. “뭐야, 니가 얼마나 잘났길래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 너 오늘 나한테 딱 걸렸어, 너 나한테 죽을 줄 알아!!!!” 18년, 짧지 않은 인생동안 이런 취급을 당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존재감을 무시할 뿐더러 거기에다 플러스로 쓰레기만도 못한 취급이라니! 그녀가 흥분에 못 이겨 새빨갛게 변한 얼굴로 소년에게 주먹을 날리려는 순간, 그녀의 귀에 살얼음이 얼 정도로 차갑고 기계같이 딱딱한 목소리가 관통했다. “그 전에 네가 먼저 죽을 듯 싶은데…? 그 손 떼.” “뭐, 뭐야…?” 이 저음의 압박감이 철철 넘치는 굵은 목소리는 소년의 목소리가 아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다가온 사람의 인기척에 갑작스럽게 등에서 식은땀까지 줄줄 흐르는 하늘은 두려움에 찬 듯 천천히 고개를 뒤를 향해 돌렸다. (철컥-) 철컥? 철컥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바로 귓가로 울려 퍼지는 커다란 소리에 놀라 말이 나오지 않는 듯 입을 다물었다. 흥분으로 붉어졌던 얼굴이 싸늘하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느껴본 적 없는 생소한 서늘한 기운에 온 몸이 마비되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마에 닿은 낯선 차가운 감촉에 두 눈동자가 위로 향했다. 실제로 본 적은 많았지만 한 번도 만진 적은 없었던 물체가 보였다. 그 물체의 정체를 머리 속으로 빠르게 파악한 그녀는 다물었던 입이 딱 벌어졌다. 한 손으로 다룰 수 있게 만든 검은색의 윤기가 좔좔 흐르는 소형 자동권총! 보기만 해왔던 권총이 왜 지금 자신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단 말인가! “다...당신! 뭐… 뭐야?!” “저승길에 길동무가 없어 외롭겠군. 잘 가라.” 21세기 민주주의의 땅 한국에서는 분명 총 소유가 금지된 것을 알고 있는데? 큰 키에 검정색 양복을 입고 검정색 선글라스까지 차려 쓴 준수한 외모의 남자는 차갑게 하늘을 향해 말하곤 권총의 방아쇠를 잡을 손에 천천히 힘을 주기 시작했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덜 되었는지 맹한 표정으로 그녀는 남자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남자는 그녀에게 일말의 여유도 주지 않을 것처럼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이런! 미국에서도 총 맞아 본 적이 없는데 한국에서 총 맞아 죽는 건 상상도 안 해봤다! 이제야 자신의 목숨에 위험이 가해진 것을 깨달은 하늘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웨… 웬 총이야!!! 난 이렇게 죽을 만큼 죄를 진 적이 없다고요!!!!” “침 튀겼잖아.” 총을 들고 위협하는 남자의 대답에 하늘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이 풀어졌다. 황당했다. 멀쩡한 허우대를 지닌 사람이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의 이마를 겨눈 총만 없었다면 사람 얼굴에 침을 튀길 수도 있는 것이지, 침 튀겼다고 총 맞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외치고 싶을 정도였다.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총만 없다면 말이다. 그나저나 건방진 낯짝을 하고 있는 소년이 뭐 이 나라의 왕이라도 돼?! “여 명(呂 命), 멈춰라.” 하늘의 머리를 겨냥한 소형권총의 방아쇠를 거의 안쪽으로 당긴 명의 귀에 고음도 저음도 아니지만 마성을 가진 매력적인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차갑기만 한 소년의 목소리가 하늘에겐 지금 이 순간은 마치 구원의 종같이 들려왔다. 소년의 말에 명은 죽음의 공포에 덜덜 떨고있는 하늘의 뒤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눈에 멈춰달라는 듯 눈물을 흘리며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휘의 말없는 투정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역력히 나타나는 피곤한 안색을 한 소년이 보였다. “주군. 신(臣)을 막지 마옵소서.” 명은 소년의 시선에 자신이 시선이 마주치자 마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소년은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죄 지은 사람처럼 부담스러워하며 피하는 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표정이 없는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언제나 이런 식. 도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오버하는 행동까지는 눈감아 줄 수 있지만 이렇게 마치 죄인처럼 한 번도 제대로 소년의 눈과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 명의 행동이 진저리가 나는 듯 소년은 좌우로 어설픈 고갯짓을 하며 안타깝게 혀를 찼다. “네가 그럴 필요 없다.” “주군! 당신의 용안에 불결한 것을 묻힌 죄인입니다.” 지금 저 자식이 뭐라고 시부렁거린 다냐. 불결?! 공포에 떨던 몸이 명의 말 한마디에 한 순간 확 굳어버린 하늘이다. 더러운 것도 아니고 추접스러운 것도 아니고 불결이란다. 소년도 그렇고 이제는 저 자식까지 자신을 벌레만도 취급하지 않는다. “주군? 용안?” 명의 줄줄이 소시지처럼 이어지는 말들이 하나같이 어이없다는 식으로 코웃음을 치는 하늘은 이젠 겁도 없이 어깨를 건들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흥분한 그녀의 눈에는 이미 총이란 존재가 삭제된 듯 싶었다. “웃기고 있네. 지가 무슨 왕이라도 돼? 용안이래~ 용안~ 얼씨구, 사고친 애 아빠 주제에, 무슨 주군. 지나가던 개가 웃겠네.” 귀도 밝지, 하늘이 혼자 우물거린 말을 들었나 보다. 잘 생긴 얼굴에 주름이 갈 정도로 인상을 구긴 명이 그 즉시, 내려놓았던 총을 정확히 그녀의 머리를 향해 다시 겨누었다. 아무튼 제 무덤 파는데 일가견이 있는 우리의 하늘양, 또 한 번 생명의 위기를 느낀다. “…죽고 싶어 안달을 하는군. 다시 한 번 지껄여봐. 뭐라고?” 선글라스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그의 압도적인 눈빛엔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귀도 밝은 자식… 말 한 번 잘못 했다 또 황천길 밟게 생겼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총의 자태에 침만 꼴딱꼴딱 삼키며 하늘은 올망졸망한 눈으로 한 번만 살려달라는 듯 뒤에서 지켜보는 소년을 애절하게 쳐다보았다. “…명. 멈추라고 했다. 저 여자 말처럼 난 왕이 아니다.” 005. 그녀의 연민 어린 눈빛을 당연하다는 듯이 무시해 버리긴 했지만 그녀의 눈빛에 부응한 듯 소년은 천천히 명을 향해 말했다. 자신의 존재는 무시해도 편을 들어주는 소년의 말에 하늘은 환희의 눈물까지 나올 뻔했다. 정작 말하는 소년의 목소리는 씁쓸한 듯한 목소리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하늘이 그런 소년의 목소리를 알아차릴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그저 살았다는 기쁜 마음에 소리 없는 환호성을 속으로 지를 뿐이다. “…젠장.” 얼굴에 짜증을 한 가득 보이며 총을 집어넣는 명의 모습에 더욱 더 환희를 느낀 그녀는 '약오르지'란 말을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명에게 만들어 보이곤 혓바닥까지 쑥 내밀어 '메롱'의 모션을 취하며 손으론 승리의 브이자를 만들어 보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명의 주먹 진 손을 보니 왜 이리 통쾌한 것인지. 절로 웃음이 나왔다. 베실베실 웃고 있는 하늘에게 시선을 한 번 준 소년은 상황이 정리된 듯 보이자 분에 못 이겨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명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여 명. 언제쯤이면 지금의 상황을 인정할 것이냐?” “주군! 당신이야말로!” “나는 이미 자격을 잃었다.” “주군!” “명령이다. 똑같은 말 번복하지 마라.” “언제쯤이면 주군은 이 륜이 아닌 이군자륜으로서의 삶을 사실 겁니까? 언제쯤이면 주군이 마음속에 품은 그렸던 그 세상을 소인이 볼 수 있는 겁니까?” “…학교 다녀 올 테니 휘 데리고 집에 가라.” 무슨 상황인지 전혀 감이 안 잡히는 대화에 하늘은 눈만 깜빡거렸다. 명령이란 말에 명은 그 즉시 입을 다물고 기계처럼 고개를 들더니 앞에 서 있는 하늘을 옆으로 확 밀치며 소년과 휘가 있는 뒤쪽으로 걸어갔다. "아야. 내 등!!" 아니, 저것도 남자란 말인가?! 기사도(騎士道) 정신도 모르는 남자는 남자 축에도 껴주지 않는다는 정신이 박혀있는 요즘 시대에 이렇게 여자를 있는 사정없이 벽에 밀치다니!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명의 힘에 비좁은 골목의 벽에 사정없이 내팽개쳐져 부딪힌 그녀의 눈이 또 다시 분노로 불타올랐다. "야! 너 자꾸 남자녀석이 쪼잔하게 그러냐? 총만 있음 다냐!" "응." "뭐, 뭐!!! 저 자식이!!!!" 그런 것 따위 신경 안 쓴다는 듯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말하는 명의 말에 이미 겁을 상실한 그녀는 머리끝까지 치민 화가 폭발함과 동시에 명을 향해 손에 들고 있던 파일뭉치를 온갖 감정을 실어 세게 던졌다. 하지만 그녀가 막무가내로 던진 파일뭉치를 명은 온전히 맞아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대로 옆으로 몸을 틀어 파일뭉치를 가볍게 피했고 빠른 속도로 날아가던 파일뭉치는 뒤에 서있던 소년이 한 손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받아냈다. “헉! 어, 어떻게!” 빠르게 날아가던 파일뭉치를 한 손으로 받아낸 것도 놀라웠지만 그것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감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을 줄 알았던 소년이 보인 웃음이었다. 뭐 놀란 사람은 명뿐이었지만 말이다. “흐음, 은빛하늘. 기억해두지.” 파일뭉치 제일 앞장에 써 있는 그녀의 이름을 힐끗 본 소년은 포커페이스였던 얼굴에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유지하며 그녀를 지나쳐갔다. 남들이 보면 그대로 녹아버릴 소년의 웃음이었지만 이미 심사가 뒤틀릴 대로 뒤틀린 하늘의 마음은 저 건방진 낯짝을 한 대 갈겨주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야! 내 파일을 돌려주고 가! 야! 제길!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라!” 그녀의 발악을 무시한 체 점점 사라지는 소년이 뒷모습에 대고 유치하게 소리치는 하늘을 명이 울먹거리는 휘를 안아 올리며 살벌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사람 무섭게 노려보기는. 하늘은 긴장으로 숨쉬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의 눈빛에 하늘은 혹시나 또 권총을 꺼내지 않을까 경계하며 뒤로 슬그머니 물러났다. “뭐, 뭐야! 노려보면 어쩔 건데?” “…너 밤길 조심해라. 오늘은 나의 주군 덕분에 산 줄 알아.” “누가 누구 때문에 살았다는 거야!” “후, 경고하건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은 모두 이 자리에서 잊어라. 그렇지 않고 어느 누구한테라도 발설할 시엔 너의 목숨은 보장할 수 없다.” 서릿발보다 더 싸늘한 명의 눈동자는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경고의 빛을 띠고 있었다. 여느 때보다 진지한 그의 눈빛 덕분인지 분위기가 한층 더 무거워졌다. 갑자기 형성된 숨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말문이 막힌 채 자신을 바라보는 하늘의 모습에 명은 자신의 발 옆에 놓여진 바이올린 케이스를 고의적으로 꾹 밟으며 말했다. “날 약올린 대가는 이 정도로 하지.” “야!!! 너!!!!” 저 자식이 저게 얼마인데!! 끝까지 사람을 약 올리다니! 또 한 번 도발에 발끈하는 하늘에게 그는 차갑게 굳은 표정을 일관한 체 말했다. “그렇게 열만 내다 학교 늦을 텐데? 아니, 이미 늦었나?” 학교… 학교…?!!!! 잊고 있었다!!! 짧게 비웃음을 날리곤 뒤돌아서 유유자적하게 제 갈 길을 가는 명의 모습에 그녀는 망연자실한 듯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하늘 Knock Down… “아아악!!!!!!!!! 이게 뭐냐고!!!!!!!” 그녀의 절규에 찬 비명소리가 좁은 골목길을 쩌렁쩌렁 울렸다. * * * 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는 여느 집 한 채보다도 더 비싸다는 최고급 리무진 안에는 남극에서 부는 바람보다도 더 강해 그대로 얼어붙을 것 같이 서릿발같은 바람이 때아닌 한여름에 불고 있었다. 그 강력한 바람의 영향이 얼마나 큰 지 긴장으로 굳어진 분위기 속에서 리무진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였다. 운전기사를 제외한 경호원으로 보이는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4명의 건장한 남자는 때아닌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며 자신들의 앞에 앉아있는 냉기의 근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어제 쇼는 그럴 대로 볼만하더군, 청령군." "제 쇼가 맘에 드셨다니 영광이군요, 세.자.저.하." "나는 즐겼지만 다른 사람은 어땠는지 모르겠군." "제 쇼는 세.자.저.하께서만 즐기시면 됩니다." 냉기의 근원은 왕실의 최고 문제아 청령군과 왕실의 최고 엘리트 강건세자. 나란히 옆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8개의 눈들을 괘념치 아니하고 자신들만의 대화를 이어가는 이들을 언뜻 보기에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일상처럼 말을 주고받는 듯 보이겠으나 말마다 가시와 한기를 뿜어내고 있으니 바로 앞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경호원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 같은 그들의 모습에서 두려움에 몸을 사리며 그들의 곁에 있어야 한다는 의무만으로 청령군과 강건세자가 서로를 향해 빼들어 찌르는 가시에 움찔거리고 그들이 뿜어내는 한기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청령군, 네 쇼는 참 재밌지만 말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창 밖만 바라보며 자신을 비꼬는 강휘의 말에 가시 돋친 말로 꾸역꾸역 대꾸해주던 휼이 갑작스럽게 진지해진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강휘의 눈동자는 얼음보다도 더 서늘하고 차갑게 빛이 나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서 풍겨 나오는 거역할 수 없는 위압감과 카리스마에 휼은 자꾸 자신이 거인 앞에 선 난쟁이처럼 압축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휼은 무의식적으로 침을 꼴깍 삼키며 떨려오는 몸을 사렸다. 이어지는 강휘의 말이 두려워졌다. 아무런 힘이 없는 휼이 모든 힘을 가지고 있는 강휘에게 위축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강휘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차가운 조소를 지으며 검지손가락으로 긴장 상태로 몸이 굳은 휼의 이마를 꾹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네가 발버둥 쳐 봤자 너는 이미 내 손아귀에 있다는 것만 알아둬." "나, 나는 네 손아귀에서 놀아나지 않아!" "훗, 끝까지 반항이다 이건가?" "내가 장담하건대 넌 절대 왕이 될 수 없어! 네 검은 속내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몰라도 내가 막을 거다!" 자신의 이마를 누르는 강휘의 손을 아직도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쳐 낸 휼은 입술을 꾹 깨물며 다시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휼의 돌아간 고개는 체 몇 초가 흐르기도 전에 강휘가 멱살을 잡는 바람에 다시 원 상태로 복귀되고 말았다. 한 대라도 칠 듯한 살벌한 분위기에도 마주 보고 앉아있는 경호원들은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상대가 상대인지라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힘없이 늘어지는 휼의 모습에 강휘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갑게 조소를 지었다. "이 휼, 네가 뭘 믿고 설쳐대는지는 모르겠지만 명심해둬라. 넌 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남겨둔 한낱 장기말일 뿐이다. 바닥에 있는 녀석은 바닥에 있는 녀석답게 바닥을 기면 된다. 내 말 알아듣겠나? 청령군. 아무리 아둔한 너라도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해하겠지. 난 하늘이지만 넌 그저 땅을 기는 지렁이만도 못한 존재다 이거야." 차갑게 이어지는 강휘의 말에 휼은 주먹만 불끈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강건세자라는 커다란 괴물 앞에서 맞설 힘이 없었다. 그저 이 지옥 같은 등교길이 빨리 끝나기만을 간절히,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 소설제목: ※ 현대판 왕자님의 파란만장 육아일기 ※ [부제: 비상(飛上)을 꿈꾸다] 작가: +메시아+ 글 출처: www.cafe.daum.net/msacafe 메일: darksorcery@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