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나태주)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송혜교와 박보검 주연의 tvN의 인기드라마 [남자 친구]에서 나태주 시인의 [그리움]이 몇 번이나 낭송되었고, 그 결과, 나태주 시인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라는 단 5행 짜리의 시가 출신성분과 나이 차이를 따지지 않고 이룩해낸 사랑으로 승화된 바가 있지만, 그러나 나태주 시인의 [그리움]은 이처럼 멜로 드라마의 값싼 주제로 소비되고 그 유효성이 상실될 시가 아니다.
대부분의 고귀하고 위대한 문화적 영웅들은 그 고귀하고 위대한 신분의 표지를 지니고 태어났는데, 왜냐하면 인간의 사회에서는 버림을 받았지만, 신들의 사회에서는 무한한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나일강가에 버려졌던 모세, 마굿간에서 태어난 예수와 지중해의 작은 섬 코르시카에서 태어났던 나폴레옹 황제, 양치기 소녀의 몸으로 프랑스를 구원했던 잔 다르크,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되었던 장 자크 루소, 신성모독자의 신분으로 이역만리를 떠돌아 다니다가 비명횡사했던 데카르트 등이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고귀하고 위대한 인물은 그 예언자적 지성과 통찰력으로 시대를 앞서 간 자이며, 불가능을 가능케 한 선구자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들은 사회적인 통념과 모든 인식론적 장애물들과 맞서 싸우며, 그리움을 육화시키고, 그 그리움의 주체자가 되어갔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했던 모세와 사회적 하층민들을 구원했던 예수의 주제도 그리움이었고, 유럽연방을 구상했던 나폴레옹 황제와 프랑스를 구원했던 잔 다르크의 주제도 그리움이었다. 현대 민주주의의 근본 이념인 사회계약론을 창출해냈던 장 자크 루소와 중세의 암흑기에서 ‘사유하는 인간’을 창출해냈던 데카르트의 주제도 그리움이었고, 영어와 영국인의 영광을 창출해냈던 셰익스피어와 전인류의 영광인 {파우스트}를 창출해냈던 괴테의 주제도 그리움이었다.
나태주 시인의 [그리움]은 모든 혁명의 근본 동력이자 우리 인간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근본 정서라고 할 수가 있다. 그리움의 역사 철학적인 의미는 매우 다양하고, 인간 정서의 총체로서 우주적인 크기와 맞닿아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과 만남에서부터 천지개벽과도 같은 최고급의 인식의 혁명까지, 그리고, 남녀간의 사랑이나 최고급의 사랑과 이상적인 공화국까지, 그 모든 사랑과 사건과 만남의 근본 동력은 그리움이기 때문이다. 꿈은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은 꿈이 된다. 사랑은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은 사랑이 된다.
이 세상의 삶의 근본 정서는 그리움(사랑)이고, 그리움이 없으면 그 어떤 삶도 살아갈 수가 없다. 나태주 시인은 그리움의 시인이고, 그는 그리움을 인간화시켜, 그 그리움의 주체자로서 시를 쓰며 살아간다. 시인은 그리움으로 사유하고, 시인은 그리움이 있기 때문에 가고 싶은 길을 간다. 시인은 그리움이 있기 때문에 만나지 말라는 사람을 꼭 만나고, 시인은 그리움이 있기 때문에 하지 말라는 일을 반드시 하고 만다. 그리움은 불이고, 활화산이며, 언제, 어느 때나 최고급의 혁명의 불꽃으로 타오른다.
앎(지혜)은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은 모든 혁명의 원동력이다. 시인은 그리워하기 때문에 시를 쓰고, 이 시를 쓰는 힘으로 혁명을 꿈꾼다.
앎(지혜)은 시인에게 고문을 가하고, 이 고문 속에서 살아 남은 자만을 전인류의 스승으로 만들어 준다.
시인은 인간 사회에서는 버림을 받지만 신들의 사회에서는 은총을 받는다.
---- 반경환 명시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