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맛집 개성집

[천하주유(한광운)]

-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
조지훈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 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인생이란 그런거다
누구에게도 말 못할 사연 하나쯤 간직하고 살아간다.

그것이 사랑이었건
이루지 못하는 목표였거나
아리고 아려 아프다는 말도 못할 이야기거나
아니면 수치스러울 만큼 비굴한 모습이었건 누구나 차마 뱉지 못하는
말 한마디 가슴속에 숨기고 살아간다.

그래서 이렇게 푸르르고 푸르르고
청신하고 청신한 날들이 있어
가슴속 깊은 사연을 풀어 헤쳐보는 거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개성집'으로 향한다.
(남양주 와부읍 경강로 876)

생각할 필요도 없다.
개성식 만둣국도 있지만 이곳에서는
이렇게 외쳐야 한다.

"여기요 오이소박이 국수 셋(인원수에 맞춰서) 부탁드립니다"

음식을 기다리는 손님들이 장사진을 이루지만 식탁에서 손님이 떠나고
깨끗하게 정리된 후에라야 새로운 손님을 맞는다.

하염없이 푸르른 날, 발그스레한 김칫국이 살얼음되어 국수 그릇에 가득하고 바득바득 잘 씻은 면발은 전분기 하나없이 매끈거리고 탱탱하다.

백김치와 겉절이는'아삭아삭'이 아니라 '사각사각'거린다.
김장용 배추가 아니라 알배기 배추로 담았기 때문이다.

국수에는 엄지손가락만한 오이가 너댓개 들어가 있다.

씹으면 겉은 물컹거리지만 속은 갓 따온 오이처럼 아삭거린다.

우리가 알고 있던 오이소박이가 백김치로 변신했다.

국물의 감칠맛은 국수그릇을 두손으로 잡고 들이키게 만든다.

거칠 것 없이 목줄기를 타고 뱃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세상사에 얹혔던 것들마져 다 따라 내려간듯 하다.

국수는 역시 '후루륵 후르륵~~'소리를 내며 몇 번의 입당김을 하면서 먹어야 제맛이다.

맛이 소박하면서 깊다는 것은 화려하면서 수수하다는 말처럼 모순되고 대비되는 것 같지만
오이소박이에 담긴 저 먼 산 뒤에서 오는 듯한 짭쪼름함과 시큼함에
바로 앞에서 치고오는 새콤달콤함이 더해진 맛이니 이리 표현할 수 밖에는 없는 노릇이다.

금새 세상사를 잊고 허겁지겁 먹어치우더니 알량한 이익에 눈이 먼 본성이 드러나 천원을 더해 곱배기를 시키지 않은게 후회스럽다.

백김치를 리필시켜 먹고 그것도 모자랐는지 국수 그릇의 바닥까지 깨끗히 올킬해버렸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커피 한잔을 뽑아 식당밖 정원, 한강이 보이는 의자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소심한듯 한맺힌듯 살짝이 세상을 향해 오봉옥 시인의 싯귀를 되내어본다.

'강물이 그냥 강물이더냐
흐를 줄 알아 강물이지
다 버리고 흐를 줄 알아 강물이지
그림자 하나 남기지 않고
남 모르게 남 모르게 흐를 줄 알아
강물이지

흐르지 않는 것들 다 와서 봐라
그 무엇하나 버리지 않고
제 욕심만 챙기는
죽은 것들 다 와서 봐라

강물이 어찌 강물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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