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하게 하라
여행은 책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인생살이를 직접 몸으로 경험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이다. 여행이란 아무도 없는 낯선 장소에 홀로 뚝 떨어져서 스스로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혼자 여행을 많이 하며 여러 상황에 부닥쳐보면 세상 보는 안목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강원도에서 일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부터 틈만 나면 아이들을 끌고 들로 산으로 돌아다녔다. 그러자 아이들은 좁은 방 안보다 시원한 계곡에서 가재를 잡으며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아이들이 그런 식의 여행에 익숙해지자 초등학교 2, 3학년 때부터 아이들끼리만 고속버스를 태워 여행을 시켰다. 그때 나는 원주에서, 아이들 아빠는 강릉에서 근무했는데 내가 아이들을 원주 터미널에서 고속버스에 태워 보내면 아이들 아빠가 강릉 터미널에서 데려가는 식이었다. 아이들은 고속버스가 달리는 동안 갑자기 화장실에 가야 하거나 멀미가 나는 등의 돌발 사건에 스스로 대처해야 했다. 그런 일을 겪는 동안 어려움에 부딪히면 누군가에게 부탁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낯선 곳과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이 3, 4학년이 되자 88올림픽이 끝나고 정부는 전 국민에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여권을 발급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2주 휴가 동안 아이들과 유럽으로 떠날 구체적인 여행 계획을 세웠다. 여행이 결정된 다음에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떠나는 해외여행이니만큼 최대한 잘 활용하기 위해 떠나기 전부터 철저히 준비했다. 먼저 청계천 헌책방을 뒤져 유럽 역사책을 샀다. 우리 아이들은 각각 자기 짐을 배낭에 메고 독일, 프랑스, 헝가리,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5개국을 돌았다. 워낙 적은 예산으로 떠난 여행이라서 아이들은 노숙도 해보고 캠핑 텐트를 빌려 열악한 잠자리를 겪어야 했지만 즐겁게 여행했다. 그리고 나도, 아이들 아빠도 적금을 깨고 다녀온 그 여행이 얼마나 큰 가치를 발휘했는가를 두고두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우리 아이들은 이 여행을 통해 넓은 세상을 보았고, 훗날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서도 미국은 그 넓은 세상의 일부일 뿐이라는 당당함으로 미국 아이들과 동등하게 경쟁했다.
나는 여행이 주는 교육적 효과의 매력에 빠져 아이들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가기 전까지 남는 기간에 다시 유럽 여행을 가도록 했다. 우리 아이들은 이때 두 명의 미국 친구와 함께 하루 100달러 예산으로 40일 간의 유럽 여행을 했다. 어떤 날은 꼭 보고 싶은 공연을 보기 위해 밥을 굶기도 하고, 간신히 한 사람만 누울 수 있는 싼 유스호스텔에서 묵으며 갖가지 인생 경험을 했다. 그 여행을 마친 후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좋아하던 비행기 시뮬레이션 게임기도 더 이상 사지 않고 지독한 구두쇠가 되었다. 그때 우리 아이들과 함께 여행했던 한 친구는 우리 아이들과의 여행을 통해 세상을 보는 안목이 바뀌어 대학 졸업 후에는 외교관이 되어 맥시코로 떠났다. 작은아이는 파리에서 소르본느 대학을 구경하며 화장실 가는 길에 학교 회랑에 붙어 있는 10세기 전후 학자들의 초상화에 감동받아, 자기도 그 자리에 초상화가 걸리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큰아이 역시 유럽의 아름다운 건축물에 감동받아 건축학과에서 공부하고, 좋은 성적으로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는 유럽으로 가 일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공부하기를 원하는 부모라면, 아이들이 어렸을 때 혼자 여행을 시키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