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נָשֹׂא 나쏘" : 6월 둘째주 새벽예배 토라포션 in 5779
민4:21-7:89(To), 삿13:2-25(Haft), 행21:17-26(Brit), 히8:1-13:25(신약)
화요일(셋째 날)
민5:1-10(To), 히10:1-18(신약)
히10: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이 율법은 문자적 토라이다. 씨앗과 같다. 씨앗을 보고 이것이 참 형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장차 올 좋은 일, 선한 일, 토브의 그림자라는 것이다. 모든 문자적 토라는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이다. 그렇다고 씨앗을 버리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율법이 장차 올 일의 그림자라고해서, 이것은 그림자니까 얼른 버려야된다고 실제로 생각해서, 토라를 버려왔다. 그러나 토라는 문자적 토라와 영의 토라로 나뉘어진다. 그것은 다른 토라가 아니라, 같은 토라인데, 씨앗에서 나무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 비밀의 핵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One body를 예비하셨다. 씨앗이 자라서 한 몸이 된다.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는데, 왜 토라에는 이렇게 제사와 예물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한가? 카인과 아벨부터 다 제사와 예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번제와 속죄제를 기뻐하지 않으시면, 왜 예수 그리스도는 오셔서 번제와 속죄제를 완성하셨는가?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은, 라쫀, 그분의 뜻, 갈망, 궁극적인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사의 모든 것은 다 그분의 궁극적인 갈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지, 그것이 그분의 궁극적 갈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분의 궁극적 갈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한 몸이 되는 것이다. 그분의 궁극적 갈망은 하아담, 바로 The Man이 되는 것이다.
16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영의 생각이 생명과 평안이다. 그들의 마음과 생각에 토라를 기록한다. 영의 생각이 생명과 평안이다. 이것을 생명의 성령의 토라라고 한다. 우리에게 생명이 주는 것이 무엇이냐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다. 이것에 의해서 죄와 불법이 다 사라진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나, 자꾸 죄와 사망으로 끌려가는 것을 본다. 오직 성령의 토라만이 곤고함 가운데서 우리를 온전히 구해낼 수 있다.
נָשֹׂא 나쏘 : 들다, 짊어지다
민수기의 시작은 나쏘, 머리를 들라는 것으로 시작된다. 시내 광야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가장 핵심적인 것이, 로쉬, 머리를 들라는 것이다.
우리도 종종 집에서 부모님이랑 지내면서 배우는게, 엄마, 아빠가 자녀를 키울 때 가장 가르치는 핵심이 머리를 쓰는 것이다. 공부해라, 이런 것이 다 머리드는 법, 머리로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머리 중 가장 좋은 머리가 돌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완전한 하나됨이 머리 속에서 이해되는 머리가 가장 좋은 머리이다. 머리 좀 써라, 너는 머리가 있는거냐 없는거냐? 이런 말을 많이 쓴다. 굉장히 무시무시한 말이다. 뎅강뎅강한다는 소리인가? 저는 그런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아무도 제 생각을 몰랐다. 그래서 제 별명이 복소수였다. 숫자는 숫자인데, 정의되지 않고 알 수 없는 숫자가 복소수이다. 제 스스로 모든 것들을 결정하고 판단하고 살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그 자녀들을 가르치시고 인도하실 때 제일 중요시 여기는 것이 머리로 사는 것이다. 몸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키울 때도 제일 고통스러운 것이, 자녀들이 감각으로, 육신으로 사는 것이다. 이 땅에서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이 땅에서 사는 것에만, 하루살이 인생에만 관심있는 것이다. 그러면 너무 고통스러운 것이다. 자녀들이 자꾸 깍뚜기가 되면, 고통스러운 것이다. 정말 하나님께서도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기 원하지 않으신다. 이 땅에서의 목적이 아닌, 머리로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민수기의 시작이 바로 이 머리이다. 이 민수기의 시작도 나쏘인데, 나쏘가 또 시작된다.
나쏘는 머리를 드는 것인데, 머리를 든다는 말의 핵심을 잘 알아야 한다. 머리는 무엇에 쓰는 것이냐? ראשׁ 로쉬를 뒤로 하면 나쏘의 핵심 단어가 들어있다. 머리는 결국 영(ר)을 드는 것(שׁא)이다. 그래서 영의 토라이다. 굳이 문자적 토라의 영의 토라의 차이점을 이야기해보라면, 문자적 토라는 몸에 관한 것을 밝혀낸다. 그러나 영의 토라는 영, 머리에 속한 것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몸으로 할 것은 문자적 토라에서는 분명하다. 그러나 머리는 다 영에 관한 것이다. 영의 생각이 생명이고 평안이다. 영을 드는 것이다. 영을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머리를 그리스도라면, 몸은 교회이고, 머리가 왕이면, 몸은 왕국이다. 머리와 몸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뭘까? 몸의 가장 큰 기능은 받는 기능이다. 언뜻보면 몸이 주는 기능을 하는 것 같지만, 몸의 가장 큰 기능은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받아서 주는 것이다. 그래서 몸의 일차적 기능, 가장 우선순위는 받게 되어있다. 그래서 여러분이 머리 없이 몸으로 살았을 때는, 결국 받는게 안 이루어지면 뒤집어진다. 막 주려고 살았어도, 결국 받는게 안 오면 뒤집어진다.
어제 오순절은 대단한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 사모님이 전한 그 메세지는 정말 반만년 역사 이래로 성령에 관한 가장 핵심적인 메세지라고 생각한다. 성령의 선물이 뭐냐면, 바브였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성령의 선물인데, 성령의 선물이 바브였다. 너를 못 박을 수 있는, 그런 못 하나를 주셨다. 저는 최고의 오순절이었다. 나를 어떻게 할 수 있는, 나에게 삶의 능력을 줄 수 있는 그런 성령을 기대했는데, 못을 하나 주고 가셨다. 저는 잊을 수가 없었다. 선물 보따리를 열어봤더니, 못이 하나 들어있었다. 주님은 너무 멋있으신다. 영화를 찍어도 어떻게 이렇게 멋진 영화를 찍을 수 있겠는가?
사람이 육을 살려고 영을 육에다가 내리면, 이것이 바로 사탄의 Cross라고 했다. 일곱 가지 저주라고 하는 것은, 육을 살려고 인간이 영을 자꾸 육에 내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일곱 가지 저주라고 하니까, 이것을 또 해결해달라고 하는데, 아니다. 십자가란, 육신에게 있는 일곱 가지 저주를 해결해주겠다는게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일곱 가지 저주가 있는 육신의 세계를 해결하려고 든다. 계속 이 저주를 해결해달라고 하는 것을 저주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적인 힘, 그리스도를 육신의 일을 해결하는데 쓰려고 한다. 주님은 그게 저주이기 때문에, 사탄의 Cross이기 때문에 절대로 해결 안 해 주신다. 그게 구부러진 Cross이다. 끊임없이 영의 세계를 육신에 세계로 가져와서 구부러뜨린다. 주님은 육을 절대로 해결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고 죽여버린다. 오직 십자가만이 일곱 가지 저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길이란, 십자가 파워를 갖다가 일곱 가지 저주를 다 내쫓는 것이 아니라, 이 일곱 가지 저주를 가져오는 근본인 육에 못을 박는다는 것이다.
오순절에 더 이상 받으려고 하는, 받는 것이 최고의 목적인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제자들의 삶 속에 참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렇게 성령을 받고 뭘 했겠는가? 일생 일대 최고의 오순절을 보냈다. 육들의 아우성을 들었어야만 했다.
한 제자는, 마침 오순절날이 생일이었다. 그런데 오순절 날 이 위대한 말씀을 듣고 싸웠다. 그래서 생일선물을 하나도 안 해준 것이다. 생일 선물을 못 받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픈가? 편지 한장 안 써준 것이다. 오순절 날 배운게 뭔가? 생일 선물 안 해줬는데, 그게 왜 마음이 아픈가? 결국 내가 해준게 다 받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게 마음이 아픈 이유는, 그동안 내가 너한테 해준게 얼만데, 생일 선물도 안 해주냐는 것이다. 사실 보면, 여러분들 모두 그 제자 생일 선물 아무도 안 해주는데, 여러분들에겐 아무도 원망을 안 하는데, 남편한테만 그렇게 원망하느냐? 내가 해준게 있어서 그렇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궁극적 목적이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몸의 Priority는 받는 것에 있다. 그런데 몸과 육의 차이가 있다. 어쨌든 몸은 받는 것의 최종적인 기능이 있다. 그런데 몸이 머리에 붙지 않을 때 그것을 육신이 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몸은 받아야 한다. 받는 의지가 제일 크지만, 머리인 영은 주는 것이다. 생명과 평안이라는 것은 주려고 할 때 온다. 내가 받으려고 할 때는 절대로 생명과 평안이 안 온다. 그런데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무조건 주려고 할 때, 나의 목적이 주는 것일 때는 다 생명과 평안이 온다. 상처받는 것도 다 받으려고 하는 것에서 온다. 콩기당 하는 것도 다 받으려고 하는 것에서 온다. 절대로 평안이 오지 않는다
평안은 화목제이다. 주님이 왜 화목제를 완성하셨는가? 주님은 받으려고 하는 목적이 0%였다. 그래서 그분이 머리이시다. 머리라고 하는 것은 주려는데 쓰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타락이란, 받으려는데 머리를 쓰면서 그것을 머리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머리가 없는 것이다. 몸이 받으려고만 하는 것이다. 목적 자체를 받는데 둔다. 그러면 이것을 정욕이라고 하지, 머리라고 하지 않는다. 내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룻, 머리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머리를 어떻게 박는가? 그것은 바로 주려고 하는 머리에 붙었다. 받으려고 하는 것을 없앴다. 우리는 끊임없이 받으려고 머리를 쓰는데, 그것은 머리가 아니라 정욕이다
그래서 몸과 머리의 기능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몸은 받으려고 하는 기능을 가지고, 머리는 주는 기능을 가졌지만, 몸이 머리에게 연결되지 않으면, 몸은 육신으로 타락하고, 자기 정욕을 머리삼아서, 메두사가 된다. 그래서 계시록에 나오는 짐승, 이런 것들의 특징이 머리가 7개인 것이다. 여러분들도 공포영화 보면 제일 무시무시한 것이 머리가 7개 되는 것이다. 뱀 중의 뱀이다. 그것이 다 정욕의 머리이다. 머리에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나쏘는 인간이 머리에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미드바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몸을 주셨는데, 이 몸이 목적을 주는 것에 두지 않으면, 몸은 메두사가 된다. 사탄의 구부러진 십자가는 대단하다. 인간의 정욕이 어디까지냐면 600만명을 죽이는데까지 간다.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다. 여러분들이 선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광야로 들어가지 않으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 자식에게마저도 못할 짓을 한다. 자기 딴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나는 상처받았다. 니들이 나한테 한게 뭐냐?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자기는 잘 하는 줄 안다. 그러나 아무도 Care하지 않고, 아무도 살리지 않고, 엄청나게 잔인하게 다 죽인다.
인생의 마지막에 보면, 자기 주위에는 처참하게 상처받은 사람들 뿐이다. 몸이 받으려고 하는 것을 머리로 삼아서, 정욕을 머리로 삼아서 메두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머리에 붙는다는 것, 이 몸은 광야에서 왕국을 대표한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이다. 그래서 이 몸이 이제는 머리와 결합하겠다. 이 소리는 뭘까? 몸이 나의 목적을 주는데 두겠다. 이 고백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머리를 들라고 하는 것은, 이 몸이 내 목적을 주는데 두겠다는 것이다
진짜 리더십이란 다른게 아니다. 삶의 목적을 주는데 두는 것이 리더십이다. 사람들이 왜 리더십을 잃어버리는지 아는가? 목적을 내가 성공하는데 두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지는데, 내가 나아지는데, 내가 멋진 사람 되는데, 내가 영적인 사람 되는데, 내가 사랑받는 사람 되는데, 내 상처 치유하는데 두기 때문이다. 목적을 나에게 두기 때문이다. 진짜 리더십은 목적을 주는데 둘 때 리더십이 나온다. 뭐든지 상관없다. 나에게 무엇이 생기기만 하면, 주는데 목적을 둔다. 정말 놀라운 것이다.
이번에 세연하고 미진이 가는데, 이제 제자들이 많이 커서, 파송식하는데, 나는 한달에 10만원을 후원하겠다고 한다. 벌어봤다 얼마나 벌겠는가? 그게 제자들에게 작은 돈은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 들어오는 것들이 이제는 주기 위해서 존재한다. 이게 참 놀라운 것이다. 그게 리더십이다. 그때 리더십이 생기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왜 온 열방의 리더십이 되는가? 그냥 자나깨나 이들이 존재하는 목적은 주려는데 있다. 제가 늘 이야기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반드시 학습하고 배우는 것이 자기의 실패를 배운다. 그리고 결핍, 부족, 이런 것들을 다 깨닫는다. 어렸을 때는 이런 것을 잘 못 깨닫는다. 어렸을 때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천진난만하다. 전쟁터에서 다 잃어버리고, 엄마, 아빠가 돌아가셨는데도 천진난만하면 마음이 아프다. 저 아이의 결핍의 삶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나한테 뭐가 없는지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이것을 만회하고자 어마어마한 노력을 한다. 이것을 스트레스라고 한다. 능력의 부족, 재정의 부족, 이런 것들을 엄청나게 깨닫는다.
청년의 때에도 스트레스가 많다. 온 세상이 그런 스트레스를 가지게 만든다. 사탄은 인류의 리더십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놓으면, 이거 만회하려고 난리를 핀다. 나한테 뭐가 없고, 이거 만회하려고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리더십이 나온다. 나에게 부족한 것을 다음 세대에게 이것이 오지 않게 하겠다. 나한테서 이것이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 그것을 살게하겠다. 다음 세대는 나처럼 살지 않게 하겠다. 다음 세대는 나에게 부족한 것이 부족하지 않게 하겠다. 그래서 토탈 비전의 가장 중요한 비전 중 하나가 다음 세대이다. 내가 실패한 것들을 다음 세대는 실패하지 않게 하겠다. 만약 다음 세대를 보지 않는다면, 토탈 비전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너무나도 이 어른들이 리더십을 잃어버리고 있다. 자기가 어떻게 해보려고, 자기가 성공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사탄은 이 시대의 리더십을 다 빼앗아갔다. 이스라엘이란, 복의 근원이다. 이스라엘이 복의 근원이 되려면, 모든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왕국이면서, 받으려고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이스라엘이 하는 것이 주기 위한 것이다. In order to Give에 결합하는 것이다. 이것을 그리스도라고 한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기다리는 그리스도이다.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그렇게 기다리게 되어있다.
이 머리에 붙는 것을 짐을 진다고 한다. 머리를 들라는 것이 무슨 소리일까?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 힘든 것 중 하나가 머리를 들고 다니는 것이다. 이게 굉장히 무겁다. 이게 굉장한 짐이다. 머리 들기가 힘들 때 오는 것이 어깨 결림, 목 디스크, 이런 것이다. 이 머리가 볼링공 무게이니, 이것을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짐이다. 굉장히 무거운 것이다. 여러분 머리가 가벼운 것이 아니다. 힘드시지 않은가? 인간만이 이것을 위에 올리고 다닌다.
바미드바르, 광야를 배우지 않으면 모두가 다 목 디스크 걸리고, 어깨 결림 속에서 다 죽는다. 짐을 진다를 משׁא 마싸라고 한다. 나싸, 들다의 명사형이다.
민4:24 게르손 종족의 할 일과 멜 것은 이러하니
나쏘는 다 멜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멜 것은 마싸이다. 짐을 지다. 머리로 산다는 것은 짐을 지는 것이다. 우리는 짐을 안 지려고 한다. 짐을 안 지면 자유해지고, 행복해지는 것인 줄 안다. 스트레스가 없으면 자유하고 행복한 줄 안다. 아니다. 짐을 지려고 하는 자들이 리더십이 된다. 짐을 지려고 하는 자들이 이스라엘이 되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 자기 짐을 벗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을 짐 벗고 자유롭게 살려고 하지만, 그게 자유가 아니라, 정욕으로 살려고 하는 것이다.
자기가 받으려고 하는 것, 정욕적이고 감각적인 것은 머리 안 써도 된다. 내가 뭐가 좋은지 금방 안다. 나 맘 상한건 금방 안다. 모든 것의 판단이 금방 된다. 부부싸움할 때 금방 판단된다. 나한테 어떻게 했다 모든 것을 금방금방 안다. 머리 쓸 필요 하나도 없다. 부부싸움할 때 머리 쓰는 사람 봤는가? 신약 성경의 모든 비밀을 알아서 부부싸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법의 비밀이 역사한다고 싸우는 사람은 없다. 다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이다. 짐을 지려고 안 한다. 짐을 지려고 한다는 것은 주기 위한 목적으로 머리에 붙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진영을 형성한다는 말은 뭘까? 어떨 때 진영을 형성하고, 군대가 되는가? 군대가 있으면 안심이 된다. 물론 타락한 군대는 위험하지만, 군대는 우리를 지켜준다. 군대는 주는데 목적이 있어서, 받으려고 하는 개인을 전혀 케어를 안 한다. 군대가서 받으려고 하는 것은 전혀 accept가 안된다. 어제 반석이가 군대를 갔다. 군대 가면서 좋아하는 애는 처음 봤다. 드디어 반석이가 머리를 바꾸는 일을 하러 가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다 군대이다. 진영을 형성하면, 받는 의지가 주는 의지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Receive가 왕국인데, 여기에 In order to Give를 붙인다. 나는 주려고 하겠다. 나는 뭐만 생기면 주려고 한다. Receive를 여자가 대표하고, 머리는 남자가 대표한다. 여자는 뭐만 생기면 주려고 한다. 여자가 타락하면 생기면 두렵다. 남자는 생기기만 하려고 주려고 한다. 그러니 싸우는 것이다. 너는 생기기만 하면 주냐? 나는 안 챙기냐? 딴 기집애들한테는 그렇게 잘 하면, 나는 안 챙기냐? 이게 부부 사이의 가장 큰 싸움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짐을 같이 짊어져야 한다. 생기기만 하면 주려고 해야한다.
이게 왜 싸우냐면, 여자는 생기기만 하면 주려는데 붙어야 하고, 남자는 First 여자한테 주어야 한다. 남자는 지가 직접 주면 안된다. 여자를 통해서 줘야한다. 남자는 직접 다른 여자들한테 직접 다 주고, 여자는 챙기려고만 하면 그 부부는 완전히 끝장나는 것이다.
어쨌든 이스라엘은 진영을 형성해서 이 집을 짊어지기로 작정을 했다. 그러면 머리가 정말 중요하다. 이 진영을 형성할 때, 머리가 중요한데, 머리란 말은 리더십이다.
동쪽 : 유다, 잇사갈, 스불론
남 : 르우벤, 시므온, 갓
서 :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북 : 단, 아셀, 납달리
이 진영을 형성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머리이다. 많은 사람들은 오직 예수라고 하면 신앙이 좋은 줄 안다. 그냥 오직 예수만 찾으면 자기는 신앙이 좋은 줄 안다. 그러나 대개 그런 케이스들은 리더십에 대한 상처가 있다. 그 상처 베이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육신의 아버지에 대한 상처라든지 말이다.
주님은 The head이시다. 그런데 heads, 머리들이 없이는 배우지 못한다. 주님은 The father인데, 아보트, fathers가 없으면 배우지 못한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개념이 잘못되면 하나님 아버지는 절대 알 수 없다. 다 받으려고 하기에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른다
여러분들이 주님에게 붙는데, 왜 주님은 진영을 형성할 때, 각 지파의 머리들을 말씀하시는가? 주님만 머리이고, 니들 나한테 오라고 하면 되지, 주님은 각 지파의 머리들을 지명하셔서, 그 머리를 통해서 진영을 형성하고, 그 머리를 통해서 내 머리에 붙으라는 방법을 쓰신다. 그래서 오직 예수라고 하면 신앙이 좋은 것 같지만, 사실 겁나게 교만한 것이다. 어느 누구 밑에도 들어가지 않고, 내가 머리가 되겠다는 것이다.
받는 의지가 주는 의지로 자기를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정말 머리들이 필요하다.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것을 지휘관들이라고 한다. 지휘관들에 따른 성품을 알아야 한다. 처음으로 여러분들이 주는 것으로 목적을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나흐숀이 나와야 한다.
1) 유다 지파의 리더십 : 나흐숀
나흐숀은 나하쉬, 뱀이다. 내 경험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뱀을 장대에 매달아야 한다
이 땅에서 몸으로 하는 경험이 무엇이라고 하는 것을 모르면 안된다. 이 땅에서의 리더십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의미하는데, 나흐숀, 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몸이 경험한 지식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내 몸이 경험한 것을 증거로 산다. 정말 지겹다. 내 경험을 가지고 고려청자로 심어놓고, 계속 닦으면서 산다.
첫 번째 유다 지파가 생겨나지 않으면 진영은 형성되지 않는다. 반드시 뱀에 대한 지식, 경험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 땅에서 경험한 것은 Nothing, 아무것도 아니다. 인카운터에서 계속 이것을 다룬다.
2) 잇사갈 지파의 리더십 : 나타나엘
잇사갈 지파는 토라 공부하는 지파이다. 토라 공부는 나탄, 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주는 것이 무엇인가? 잇사갈 지파는 사실, 보상, 삯, 이런 말이다. 주는 것이 여러분들의 보상이다. 참 희한한 것이다. 탄니님이다. 나탄, 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진영으로 형성되지 않고, 여러분들은 망한다
3) 스불론 지파의 리더십 : 엘리아브
엘리아브, 나의 하나님은 아버지이다. 스불론은 다 비지니스이다. 이 땅에서 여러분들은 살아가면서 누구든지 다 비지니스를 하는데, 그때 아버지에 대한 지식이 제일 중요하다. 엘리아브, 즉, 아버지를 닮아간다. 내가 비지니스를 해서 이익을 남기는 것은, 다 아버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아버지를 닮아가려고 비지니스를 하는 것이다
이 지식이 없이는 진영이 형성되지 않는다.
4) 르우벤 지파의 리더십 : 엘리쭈르
엘리쭈르, 나의 하나님은 반석이시다. 무엇이 반석인지 알아야 한다. 반석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어야 한다. צוּר 쭈르는 영의 의이다. 육신의 의가 아니라, 영적인 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육신의 의를 목적으로 사는데, 영의 의를 목적으로 살아야 한다. 육신의 의를 이야기하니까 그렇게 싸우는 것이다. 부부 싸움이 끝도 없는 이유가, 다 육신의 의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의 의가 무엇이냐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5) 시므온 지파의 리더십 : 슬루미엘
시므온 지파는 슬루미엘, 샬롬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쉐마, 드는 것은 샬롬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샬롬, 평화가 뭔가? 이 집안에는 왜 평화가 없나? 미치겠다. 그러면 그 평화가 무엇인가? 평화는 형상을 훈련하는 것이다. 내가 좋은 것이 평화가 아니라, 형상을 끊임없이 훈련하는 것이 샬롬에 대한 지식이다.
6) 갓 지파의 리더십 : 엘리아싸프
엘르아싸프 다 모으는 것이다. 모음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돈도, 사랑도 다 모으려고 한다. 모은다는 것은 이웃을,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를 잃어버리지 않고 다 살려고 한 몸이 되게 하겠다. 우리가 하는 일은 주님이 하시는 이 모으는 일을 하는 것이구나. 창세 전에 나와 하나였던 자들을 모으는 것이다
여러분이 12가지 지식이 없으면 머리에 못 붙는다. 이 머리들은 끊임없이 이것을 가르친다.
7) 에브라임 지파의 리더십 : 엘리쉐마
나의 하나님을 듣는다. 이것이 쉐마이다. 보는게 아니라 듣는 것이다. 나아쎄 베니쉬마. 그래서 내가 순종함으로 듣는 것이다.
8) 므낫세 지파의 리더십 : 가말리엘
므낫세 지파는 잊어버리는 것인데, 잊는 것의 가장 큰 특징이 김멜이다. 하나님의 신성을 훈련하기 위해서 선택하는 것이다. 사람이 선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나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신성 훈련을 위해서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9) 베냐민 지파의 리더십 : 아비단
달렛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나의 아버지는 달렛이다. 도디, 나의 사랑, 이것이 베냐민이다. 아가서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북쪽 지파는 화력이 쎈 지파이다.
10) 단 지파의 리더십 : 아히에제르
네 형제가 도움이다. 이 세상에 있는 물질이나 파워가 아니라, 내 형제가 도움이라는 것이다.
11) 아셀 지파의 리더십 : 파기엘
파가, 만나다. 인카운터하다. 인카운터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머리에 접속을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인카운터를 이렇게 많이 하는 것이다.
12) 납달리 지파의 리더십 : 아히라아
라아, 내 형제가 라아, 악, 이웃이다. 라아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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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식이 없이는 진영을 형성할 수 없다. 이 지식이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붙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는 비나, 모든 지식과 통찰력이지, 나를 구원하는 신이나 우상같은게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주는 것에 대한 머리이고 지식이시고 영이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지식을 중심으로 진영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흐숀, 경험을 뭐라고 하는가? 나탄, 주는 것을 뭐라고 하는가? 받기 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주기 위해 주는 것을 뭐라고 하는가? 아브, 아버지를 뭐라고 하는가? 쭈르, 영적인 의를 뭐라고 하는가? 샬롬, 아싸프, 모으는 것을 뭐라고 하는가? 쉐마, 듣는 것, 김멜, 무엇을 위해 선택하는가? 달렛을 뭐라고 하는가? 아가서를 아는가? 단 지파, 네 형제를 도움으로 여기는가? 형제와 연합하여 동거해서 One body가 되는 것이 네 궁극적인 판단의 모든 것이냐? 아쉘, 파가, 너는 인카운터를 아느냐? 납달리, 너는 라아에 대한 지식이 있느냐?
이것에 의해서 진영이 형성된다. 이것에 의해서 사람은 반으려는 기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 받으려고 하는 것에 주려는 모든 목적을 더하고 결합시킨다. 이 것을 그 사람이 성령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지나고나서 보니까, 이 열두 가지 지식을 참 많이도 배웠다. 처음에 교회 시작할 때 열두 지파의 지휘관들 외우라고 했을 때는, 설명을 들어보니까 우리가 5년 동안 배운 것이 열두 지휘관에 대한 모든 지식을 배운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왕국이 주는 것으로, 여러분들의 삶의 목적이 주는 것으로 바뀌는 것은, 그냥 줘야지 하는 것이 아니다. 막 주다가도 주님은 언제나 서운한 것이 드러나도록 증명하신다. 준 것이 많을 수록 삐진다. 그래서 제가 늘 이야기하는 것이, 차라리 주지 말라고 한다. 성경을 많이 읽을수록, 기도 많이 할 수록 하나님에게 삐지고, 교회한테도 한게 많을 수록 삐진다. 그래서 초신자들에게는 절대로 교회 안에서 뭘 하게 하면 안된다. 초신자는 절대로 집사 시키면 안된다. 한게 많을 수록 더 반역을 하게된다. 나에게 어떤 지식이 필요한지 점검해보기 바란다.
* 기도
주님 내가 이스라엘로 이 땅에 왔습니다. 이제 내가 교회로 결합되기 원합니다. 교회로 진영을 형성하기 원합니다. 이때 나에게 리더십에 붙을 수 있는, 그런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한 주간에 이 지식들이 우리에게 있게 하시고, 이 지식에 따라서 진영을 형성하게 하시고,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들어 우리가 진정한 이스라엘이 될 수 있도록, 이 광야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소서. 모든 정욕을 제거하여주시고, 십자가를 지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나쏘 넷째날 12일 토라포션(민5:11-6:27, 히10:19-39)
나쏘는 광야에서 계속 머리를 다루신다.
민4:21~22 게르손 자손도 그 조상의 가문과 종족에 따라 계수하되.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을 계수한다.레위지파의 자손들이다.
레위자손 3명중 한명인 고핫자손은 바미드바르에서 다룬다.
나쏘에서 게르손을 다루신다.
게르손은 가라쉬(쫓겨나다, 으깨지다, 돋아나다)에서 나온말.
근본적인 감정에서 거절감을 다루신다. 쉽지않는 사건이 생겼을때 7가지 저주를 해결 해달라고 하는게 아니라 이것을 통해서 아버지 집으로 가라는 싸인임을 깨달아야 한다.
게르손 자손은 거절감에 대함을 담당한다. 그들은 성막의 휘장과 덮개, 막에 대한 부르심이 있다.
막을 메는 자들이다.
고핫자손들은 지성소의 성물들, 법궤, 메노라등 예배의 본질을 다룬다.
거절감정(가라쉬)은 사람을 순식간에 망치는 결과를 낳고 극단적인 상황에 까지 가게 한다.
창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쫓아냈다는게 가라쉬, 거절했다라는것이다.
주어를 하아담이 에트(알렢부터 타브이신분)를 가라쉬 했다.
우리가 하나님을 쫓아냈다는 가라쉬의 근원을 나타냈다.
우리의 막이 걷어지고 은혜를 받으면 내가 하나님을 쫓아냈구나를 깨닫게 된다.
내가 가라쉬의 근원, 내가 죄의 근본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게르손의 막이 걷힌다.
게르손은 아보다, 예배하고 경배하는 자들이 된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내가 죄인이다 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사건보다 사람이 문제임을 알수 있다.
다윗은 막내였으나 아버지 가 다윗을 세우지도 않았다.
요셉도 모든것을 새롭게 해석했다. 우리의 해석은 없어져야 한다.,
막(마싸크) , 해석을 적용하는 것이다. 우리안의 가라쉬의 해석이 바뀌어야 한다.
예렘1:5~6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거절감의 치유에 대해 말씀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반응이 나온다.
여러나라의 선지지가 아니라 우리를 말한다.
모세는 나는 아이라 말할줄 모른다고 입이 둔한자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잘하는 아론이 있다고 하신다. 모세의 치유에 있다는 것이다.
신31:6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앞에서 떨지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고.
나를 떠나소서 했던 모세가 치유받은것이다. 예배를 회복하고 막을 걷어낸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 하고있다.
게르손이 회복 되고나면 예배가 회복되고 한사람이 등장한다.
민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모든 나병 환자와 유출증이 있는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밖으로 내보내되.
나병환자를 구별하여 쫓아낼수 있는 분별력이 생긴다.
남녀를 막론하고 다 진영밖으로 내보내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할것이다 라고 한다.
내안의 나만을 주장하는 나병환자, 유출증 환자를 내보낸다.
유출증(피가 계속흐르면 생명을 낳지 못한다).
모든 부정은 생명을 낳지 못함, 열매맺지 못함에 있다.
민5:12 만일 어떤사람의 아내가 탈선하여 남편에게 신의를 져버렸고.
참람한 사건을 통해서 게르손의 예배를 회복 시킨다.
탈선한 여자, 이쉬이쉬 키 티슈테 이쉬토 베말라부 베마알.
이쉬이쉬, 남편이 두명이다. 결혼했는데 내 상상속에 내가 만들어놓은 남편이 또있다.
티슈테 에 쉐트(사단) , 마알(올라가 있다)
여자가 남편위에 올라가 있다, 토라를 배우면 어느순간에 우리는 모든것 위에 올라가는 말들을 하고있다. 목사님 그러면 안되죠~~하는.
그것이 머리에 붙는다는 것이다, 어느새 내가 목사님보다 리더보다 올라가 있는 짓을 하고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그러시면 안된다 라고 한말이 바로 티슈테 하고 있는것이다.
이런 여인이 내안에 등장하면, 머리위에 갓을 쓰지 않고 머리위에 올라가 있으면 사탄짓을 하면서 가정이 평안할수 없다.
남자위에 올라가면 특징이 이쉬이쉬, 내가 만든 남자가 있어서 평안을 깨트린다.
이렇게 되면 제사를 드리라 한다,
민5:15 우리안에 사탄짓 하는것을 위해 킨아의 민하(제사)를 드리라 한다.
지카론(기억)의 제사를 드리라 한다.
아버지 집을 위한 열심과 우리의 원래기억을 회복할수 있는 제사를 드리라고 한다.
민5:28 그러나 여인이 더럽힌 일이 없고 정결하면 해를 받지 않고 임신하리라.
결국에 우리안의 남편, 리더, 하나님, 이웃, 자녀 를 여러명으로 만든것에 대한 주님의 치유하심으로 임신할것이라고 하신다.
민5:24 여인에게 그 저주가 되게 하는 쓴물을 마시게 할지니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그 의 속에 들어가서 쓰리라.
임신하기 전까지 저주의 쓴물을 마시게 한다. 나오미의 고백처럼, 나의 육이 못박히는 쓴물을 마시게 한다.
저주가 되는 물이 우리배의 깊은 창자까지, 우리의 영혼까지 깊히 들어와서 우리배를 꿰뚫는 역사가 있어야 우리가 임신할수 있다,
생명을 낳기위해선 반드시 쓴물을 마셔야 한다,
나를 위해 인정받고자 하는 내 배에 들어와 꿰뚫는 역사가 있어야 겠다.
목요일(다섯째 날)
민7:1-41(To), 히11:1-40(신약)
* 신약
히11장은 믿음 장으로 굉장히 중요한 장이다.
히11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은 멀리서 보고 환영하고,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다고 한다.
עד 에드 : 증언
온 땅 까지 가서 나의 증인이 되어라. 오순절이 지났는데, 성령은 왜 받고 싶으신가? 각자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성령 받아서, 병이 치유되고 싶고, 어떤 사람은 문제가 해결되고 싶고, 영적으로 성숙하고 싶다는등의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성령을 받는 가장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이다. 그것을 에드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나그네라고 한다.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간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가? 에다라고 하면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가르친다. congregation, 오늘날의 교회를 뜻하는 단어이고, 회중이라는 뜻을 가진다. 우리가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전체 회중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 땅에서 어떻게 나그네로 살아가느냐? 우리는 천국에 간다니까 나그네로 살아간다고 하는데, 나그네로 사는 것은 역마살 들어서 떠돌아다니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다. 나그네로 산다는 것은 회중으로 산다는 것이고, whole, 전체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Whole, 전체, Totality, 이것이 회중으로 살아가는 것의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이 말은 개인주의를 극복하였다는 것이다. 사실 이 개인주의를 극복했다고 하는 것의 가장 핵심적인 것이 달렛이다. 에드, 에다, 너희들은 달렛을 보고 살아라. 증인의 삶, 너희들은 내 증인이 되라는 것은, 달릿의 비전으로 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이유가, 달렛을 우리에게 결합시키러 오신 것이다. 그분은 달렛을 완성하러 오신 분이다. 달렛의 비전으로 사는 것이 모든 것의 가장 핵심이다. 달렛의 비전을 가진 자들에게, 오순절 때 이야기했지만, 성령을 주신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 저주의 모든 기본적 형태가 결핍이었다. 나는 그것을 받았어야 됐었었어. 이게 다 결핍에서 나온다. 우리가 자꾸 치유집회등을 하면서, 계속 확인하는 것이 결핍의 토대 속에서 형성된 사단의 역사이다. 그래서 맨날 뭘 했어야 했고, 맨날 뭘 주지 않았고, 결핍인 것이다. 이 결핍의 삶을 벗어나는 사람들을 달릿의 사람이라고 한다. 달릿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것이 유월절의 노래이다. 다이예누이다.
די 다이 : 충분하다
옛날에 다이하드라는 영화가 유행했었다. 우리는 정말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이예누라고 한다. 누를 붙이면 복수형이 된다. 우리는 충분하다.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있다. 우리는 자동적으로 개인주의로 흐른다. 사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충분해. 이렇게 갔을 것이다. 자동적으로 머리 속에서 내가 죽고, 나는 충분해, 나로 흘렀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유월절 노래를 다이예누라고 하신다. 내가 충분하다는 소리가 아니라, 우리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게 인간에게서 가장 어려운 이야기이다.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사는 것이다
이 땅, 이 세상은 I, 나로 산다. 'I ness'로 산다. 단독자, 개인주의를 설명하기가 참 힘들었다. I ness라고 하면 이해가 확 되지 않는가? ness는 총체적인 명사형인데, 우리는 나라는 것으로 총체적인 것, 전체를 만든다. I ness로 사는 것이 이 세상이다. 그 땅에서 나그네로 사는 것은 이상하게 사는 것인데, 이게 전체로 사는 것이다.
전체를 만들 때 쓰는 히브리 단어가 있다. 동사는 그 삶의 Life style을 결정하는 핵심인데, 우리가 기동하고 살아가는 동사를 표현할 때 동사의 복수 형태를 만들 때 쓰는 가장 핵심 알파벳이 바브이다. 십자가의 못이라는 바브는 여러분들의 삶의 주요 동사에 바브를 붙인다는 것이다. 다이예누, 나는 충분해라고 하면 영적일 것 같지만, 굉장히 악한 것이다. 나는 행복하다고 하면 영적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행복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선지자들이 이사야, 예레미야인데, 이들은 하나님과 아무 문제가 없었고, 영적인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도 포로기로 잡혀가야하고, 전쟁이 일어나서 다 죽는다. 우리를 살기 때문이다.
동사의 가장 중요한 형태가 I를 표현하는 것일 때, 그것을 사망이라고 한다. 선악의 지식나무라고 한다. 사람이 증인으로 산다는 것은, 다이예누, 전체로 사는 것이다. 이 전체로 사는 비전을 달렛의 비전이라고 한다. 달렛의 비전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더 나은 본향을 찾는다고 한다. 하늘에 있는 본향을 찾아 간다.
이런 달렛의 삶을 사는 가장 핵심적인 것을 믿음의 삶이라고 한다. 그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에드, 증거를 얻는다. אמן 아멘, 모든 증거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다. אם 엠은 엄마인데, 엄마의 특징이 receive를 하는 것이다. 땅의 특징은 Receive를 하는 것이다. 땅은 씨앗을 받아서 낸다. 이게 땅의 특징이다. 땅은 비도 받는다. 비가 땅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경우는 없다. 땅이 하늘에게 뭘 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땅의 힘은 중력인데, 중력은 다 받기 위한 것이다.
이것을 여자들이 대표한다. 여자들에게 있는 중력은 엄청나다. 여자들의 중력은 여러가지로 표현된다. 호호홍, 자기야 나 저거 갖고싶어. 하면 그게 어마어마한 중력이다. 싹 빨아들인다. 나 다리아프다고 하면, 힘이 나서 업고 간다. 엄청난 중력을 발휘한다. 중력이란 내가 나를 즐겁게하고, 내가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 잉태하기 위한 것이다.
믿음이란 것에 의해서 Kingdom이 생겨나는데, Kingdom의 핵심은 받는 것이다. Kingdom은 다 하늘, 그리스도, 왕으로부터 받는다. 받아서 생산해낸다. 그래서 이 믿음의 가장 큰 핵심을 왕국을 건설하는 것인데, 모든 여인들, 모든 인류, 모든 Humanity는 다 믿음으로 살게 되어있다. 믿음으로 받아서 낳게 되어있다.받는 목적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받아서 낳으려고 한다. 생명을 낳으려고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가장 큰 핵심인 것이다.
여인이 받아서 낳으려고 하지 않으면, 생명을 낳으려고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을 때, 그 여인을 타락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실 창세기에서 선악의 지식나무로부터 열매를 먹는다. 이 말이 창3장에서 처음으로 나온다. 그전에 마음껏 먹으라고 나온 것 같지만, 창1-2장에서는 열매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3장에서 열매를 먹는다는 말이 처음 나왔다
원래 파르, 열매란 말은 생육하란 뜻이다. 아담과 하와는 생육하여야 하지, 생육을 먹으라고 하지 않았다. 자기가 살라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낳으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여러분들이 삶을 그렇게 누리려고, 내 삶의 실패와 행복을 고쳐서 나도 한번 누려보자 하는 순간 창3으로 가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삶에서 태어난 모든 것을 가지고선 생명을 낳는 것이다. 내가 생육하는 것이 아니라, 생육이 다른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 내가 에덴 동산에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은 이웃이 잘 산다는 것이다. 내가 불에 데면 위험하다는 것은, 내가 불에 댄 적이 있기 때문에 안다. 그 이유는, 내 자녀가 불에 가까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불에 댄 것이다. 배고파보신적도 있다. 자녀가 배고프다고 울 때, 그 고통을 알기 위해서이다. 핏덩어리가 젖을 달라고 울 때, 젖이 안 나오는 고통이란 말로 할 수 없다. 엄마의 고통은 정말 죽음이다.
왜 내가 배고픔의 고통을 알았을까? 그것은 내 다음 세대를 생육시키기 위함인 것이다. 그 모든 것은 다 내가 살기 위한 것이다. I ness. 이 현대 교회의 타락이 I ness이다. 뭘 가르치기만 하면 자기 자신을 성공시키려고 한다. 뭘 배우기만 하면 그렇다.
제자 훈련의 가장 핵심을 사역적 성품이라고 한다. 사역적 성품이란 사역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람이 I ness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아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은 다 Receive할 수 밖에 없는데, 씨앗을 Receive하는 것이다. 소망을 Receive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아만에이라는 말 속에 엄마가 들어있는 것이다. 이 시대의 모든 고통은 다 엄마들의 타락이다. 육신의 엄마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엄마란, 교회이다. 성경에서는 여인들이 교회이다. 생물학적인 남자, 여자가 아니라, 말씀으로 자기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살아가는 이모 베아비브들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히11장은 이 믿음의 장을 이야기한다.
* 토라포션
오늘 토라포션에 오면, 지휘관들이 장막 세우기를 끝낸 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이 헌물을 드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נְשִׂיא 나씨 : 지휘관들
- 나쏘의 사역형태
나씨는 드는 사역을 하는 사람들이다. 삶의 목적이 드는 일이다. 십자가를 지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휘관이고, 오늘날에는 대통령이다. 저는 어렸을 때 대통령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제 몸 어딘가에 점이 있는데, 이 점 때문에 제 할머니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셨다. 저도 될 줄 알았다. 토라에서는 나씨가 대통령이다.
요즘 교회에서는 대통령한테 내려와라, 올라가라 난리이다. 목사가 왜 여기에 관여를 하냐는둥하는데, 토라에서는 모든 성도들을 대통령 받는 만드는 일을 한다. 나쏘를 하는 지휘관들, 십자가를 집게 한다.모든 이스라엘이 십자가를 지게하고, 전체로 살게한다. 나그네로 산다는 것은 전체로 사는 것이다
회중이라는 것은 하나의 One body로 살게한다. 누가 진정한 리더십이 되는가? 나그네로 산다는 것은, 뿔뿔히 흩어져서 사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개념으로 살게 한다는 것이다. 그 일을 하는 자들을 리더십이라고 한다. 오늘 여러분들이 바미드바르의 나쏘에서 정말 리더십이 되시길 축복한다. 리더십이 하는 이야기가 개인이 잘 살게 해주겠다, 1인당 국민소득 4만불 시대가 되게 해주겠다. 개인의 시대를 도래시킨다. 그것은 이 시대를 가장 어둠 속에 빠뜨린다. 이 시대의 리더십은 나씨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지휘관들은 전체로 살게하는 힘을 이야기한다.
동쪽 : 유다, 잇사갈, 스불론
남 : 르우벤, 시므온, 갓
서 :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북 : 단, 아셀, 납달리
지휘관들이 코르반, 헌물을 드리는데, 덮개 있는 수레 여섯 대와 소 열두 마리씩 가져온다.
민7
3 그들이 여호와께 드린 헌물은 덮개 있는 수레 여섯 대와 소 열두 마리이니 지휘관 두 사람에 수레가 하나씩이요 지휘관 한 사람에 소가 한 마리씩이라 그것들을 장막 앞에 드린지라
지휘관이 되려면 상당한 손해가 온다. 당장 소 한 마리 드려야 하는데, 제일 좋은 소를 드렸어야 할테니까, 500만원은 할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 수레와 소를 레위인에게 준다. 나씨들은 레위인에게 주는 역할을 한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영적 원리이다. 그 레위인들에게 그것이 주어진다.
민7
12 첫째 날에 헌물을 드린 자는 유다 지파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라
13 그의 헌물은 성소의 세겔로 백삼십 세겔 무게의 은반 하나와 칠십 세겔 무게의 은 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14 또 열 세겔 무게의 금 그릇 하나라 그것에는 향을 채웠고
- 옛날에는 향이 굉장히 비쌌다.
15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어린 숫양 한 마리이며
16 속죄제물로 숫염소 한 마리이며
17 화목제물로 소 두 마리와 숫양 다섯 마리와 숫염소 다섯 마리와 일 년 된 어린 숫양 다섯 마리라 이는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의 헌물이었더라
이런 의향이 있으신가? 여러분들이 코르반 드리는 이유는 잘 살기 위함이지, 이정도 하면 너무 과한거 아니냐고 한다 심지어 번제, 속죄제, 화목제를 위해서 드릴 의향이 있었을까? 지휘관들이 무슨 죄를 많이 지었길래 이것을 다 드려야 하는가? 지휘관들의 모든 관심은 이 전체를 위한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진영은 다 받는 의지이다. 이 받는 의지가 실제로 우리는 씨앗을 받는 것이구나. 이 땅에서 무엇인가 물질을 받는 것이 아니구나. 이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이 땅에서 씨앗을 받는 것이구나. 잉태하는 것이구나. 이 땅에서는 말씀을 받는 것이구나. 약속을 받는 것이구나. 믿음 장에서 가장 이야기하는 것이, 약속을 받았는데 준게 없다.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고, 이삭 덜렁 하나 준다. 하늘의 별 중의 몇% 이루어진 것인가? 이게 우리 주님의 나라이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되겠다, 자녀가 되게 하겠다,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해놓고 여러분에게 주는 삶이 뭔가? 무슨 삶을 주었는가? 그래서 여러분들 맨날 상처 아닌가? 그렇게 예수 믿으면 좋다고 해놓고 좋은게 뭐가 있는가? 처음에 몇달 좀 미혹되었다가, 계속 불만이다. 잉태하기 싫다는 것이다. 잉태, 이런거 말고, 나에게 강남의 아줌마들 같은 삶을 달라는 것이다. 젖도 안 먹이고, 전신 마사지 받으면서 천만원짜리 조리원에서 조리하는 그런 삶을 살라는 것이다. 내 아이들도 조리원 동기들하고 동창회하면서 말이다. 일주일에 200만원짜리 조리원 나온 애들과 놀 수 없지 않는가? 그렇게 행복하고, 풍요롭고, 그렇게 복 받은 삶을 살게하라는 것이다. 괜히 보이지도 않고, 아무것도 못 받고, 전 모래알 중에 하나 받은 것으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는 이런거 말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게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계속 믿음의 삶을 이야기한다. 잉태하라. 잉태하는데 필요한 것은 씨앗밖에 없다. 천만원도, 1억도, 집도 아니고, 잉태하는데 필요한 것은 씨앗 뿐이다. 그러니 얼마나 우리에게 충분한가? 정말 충분하다. 네게 씨앗이 바다의 모래알만큼 많다는 것을 아는가? 그 중 하나만 필요하다. 그러니 얼마나 충분한가? 그런데도 우리는 잉태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다. 그저 I ness, 내가 누리고 싶을 뿐이다. 이게 인간의 악이다
그런데 나씨들, 받는 의지들이 나 하나가 잉태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잉태하겠다고 한다. 전체가 하나님의 Kingdom,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잉태하겠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나 혼자가 아니라, 전체가 잉태한다. 그 일을 하는 것을 나씨라고 한다. 그래서 오늘 그 나씨가 이야기한다.
1. 유다 지파의 리더십, 나손
נַחְשֹׁון 나흐숀 : 나하쉬 = 뱀
뱀의 이름이 유다지파의 리더십인 이유가 뭘까? 유다 지파의 리더십이 제일 중요하다. 첫째 이다. 이가 첫째 날을 결정한다. 동쪽을 케뎀이라고 하는데, 이 동쪽이 열려야만 진영이 형성된다. 유다 지파가 제일 중요하다
나흐숀은 경험이다. 이 경험에 대한 지식이 어떠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판가름난다. 사람은 다 자기 육신이 경험한 것을 가지고 산다. 그래서 나는 이렇다, 저렇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은 다 경험이다. 육신이 경험한 것이다. 사실은 망상이고, 존재치 않는 허상이다. 육신이 죽을뻔했던, 괴로웠던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게 정말 실제인 것 같지만, 경험주의가 가지는 오류가 있다
여러분들이 십자가에 달렸다고 치자. 그러면 하나님이 진짜 나를 죽인거 아닌가? 아버지가 나를 죽인거 아닌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이 땅에서 사람들 구원하라고 해놓고, 나를 지켜주지도 않고, 죽인거 아닌가? 아버지는 나를 구해 줄 능력이 있었는데, 죽게 만들지 않았는가? 아버지가 날 채찍질당하게 하고, 침뱉게 만들고, 이게 얼마나 분명한 사실인가? 여러분들은 이런 증거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 쟤가 날 때렸다. 인간이 신의 아들인 나를 때리고, 침을 뱉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증인이 될 것이냐, 나그네가 될 것이냐가 결정된다. 나씨, 이 경험을 어떻게 들어올릴 것인가? 이게 가장 핵심이다. 이 경험을 장대에 매단 사람이 나손이다. ן눈은 장대이다. 이 뱀을 장대에 매단 사람을 나손이라고 한다. 이때 사람의 받는 의지는 물질을 받으려고 하는 것에서 잉태하고 씨앗을 받으려고 하는 것으로 바뀌어버린다. 육신의 개념을 나라고 하는 한, 육신적인 것, 물질적인 보상만을 받으려고 한다. 거기서 절대 못 벗어난다. 이 땅에서의 삶으로 보상받으려고 한다. 육체가 태어나면서 경험한 것을 경험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가난했는가? 사실 육체가 가난했던 것이다. 영혼은 가난한적이 없다. 육체가 가난했던 것을 사실, 진리라고 하는 한, 이 땅에서 육체가 부유하게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해주는 신이어야 한다. 그렇게되면 물질적으로 보상받으려고 한다.
내 남편이 나에게 잘해준적이 없다. 그것은 육체가 경험한 것이다. 그러면 이 땅에서 물질적인 남편이 반드시 나에게 잘해주는 날이 와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말이다. 그게 안 오면 이혼이라도 해야한다. 그것은 허상이고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이다. 내 영혼은 한번도 잘해주고, 못해주고, 선악을 경험한적이 없다.
나흐숀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이 경험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이 경험이 코르반, 헌물을 드리지 않는 한, 이 경험이 모든 것을 번제로 태워버리고, 이 경험이 속죄제와 화목제를 드리지 않는 한, 여러분들은 모든 것을 이 땅에서 받으려고 하고, 나그네로 못 산다.
이 모든 것들을 구성해서 케뎀의 것을 내리고, 시작할 수 있는 지휘관이 잇사갈의 지휘관이다. 잇사갈은 토라공부이고, 스불론은 비지니스이다.
2. 잇사갈의 리더십, 느다넬 = 토라공부
나탄 : 주는 것
주는 것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여러분들은 헛된 것, 눈에 보여지는 것만 받으려고 한다. 왜 이렇게, 저렇게 해줬냐고 맨날 한다. 토라공부를 하면 주는 것을 배운다. 받는 의지가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다 잉태밖에 없다. 잉태를 하면 커피를 그렇게 좋아하던 에스더가 안 마신다. 바이가쉬 엘라브 때문에 말이다. 또 한잔은 먹어도 된다니까 먹는다. 모든 것이 바이가쉬 엘라브에게 있는 것이다. 자기가 receive하는 것이 다 주기 위한 것으로 결정된다. I ness로 사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 산다. 나탄이다. 비로소 토라공부라고 하는 것은 잉태이다.
토라공부는 잉태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다 주는 시스템으로 가기 위한 것이다. 나탄의 지휘관이 여러분 속에 생겨나지 않으면 안된다. 지휘관은 다 지식이다. 여러분 속에 이 주는 것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멸망하고 만다.
3. 스불론의 리더십, 엘리아브
엘리아브 : 나의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
아브에 대한 지식이다. 아버지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여러분은 죽었다 깨나도 받는 의지가 나그네로 못 산다. 그저 이 땅에서 내가 아버지가 되어서, 내가 스스로 아비가 되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산다. 스불론 지파는 아브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뱀의 모든 것을 파해서, 뱀을 장대에 달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두 지휘관을 나탄아브라고 한다. 주는 것과 아버지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사람의 받는 의지는 이 땅의 망상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4. 르우벤 지파의 리더십, 엘리쭈르
צוּר 쭈르 : 반석, 의를 머리에 결합시키는 것
머리 속에 Righteousness, 의만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의로움이다. 의가 뭔지를 생각할 수 없다. 머리 속에 의에 대한 것이 들어있지 않으면, 사람의 받는 의지는 다 이 땅의 것을 소망하고 받으려고 한다.
그런데 이 시므온과 갓 지파가, 머리 속에 의로 살아가는 것을 지원한다.
5. 시므온 지파의 리더십, 슬루미엘
슬루미엘 = 샬롬 : 형상을 훈련하는 것
샬롬을 신성으로 훈련하는 것이다. 샬롬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샬롬은 형상을 훈련하는 것이다. 의란, 전체를 훈련하는 것이다. 이 전체, Totality, whole이 샬롬이다. 샬롬은 나 개인의 형상이 아니라, 전체 형상을 훈련한다. 전체가 뭐가 되어야 하는가를 바라본다. 모든 사람들이 전체를 바라보면, 거기에 샬롬이 있다. 그것을 평화의 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나 개인만 이야기하면, 거기엔 샬롬이 없다. 모든 사람들이 전체를 바라보는 것이 샬롬이다.
이것이 있으면 의로움을 머리 속에 집어넣을 수 있다
6. 갓 지파의 리더십, 엘리아삽
아싸프 : 모으다 = 요셉
내가 해야하는 모든 군대의 전체는 모으기 위한 것이다. 전체를 모으기 위한 것이다. 나에게 주신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주님이 왜 하나님의 의의냐? 주님은 전체, One body를 위한 생각만 하시고, One new man을 이루려고 일하셨지, 한번도 자기 자신의 형상을 추구한 적이 없다. 그래서 평화의 왕자라고 하시는 것이다. 항상 전체를 생각하셨다. 그게 주님의 의이다
전체의 하나님의 양 떼들을 다 모으신다.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다 찾는다. 그게 아싸프이다. 남쪽 지파는 이 전쟁을 하느라 정말 뜨겁다.
이 지식이 없으면 받는 의지는 맨날 헛된 것, 이 땅의 것만 추구한다. 이 땅의 것 때문에 삐지고, 난리가 난다. 나에게 있네 없네를 가지고 난리가 난다. 이 지휘관들이 살아나시길 축복한다. 이 지식이 살아나시길 축복한다
* 기도
이 시간 정말 우리 속에 이 지휘관들이 살아나서, 우리 모두가 우리를 보게하여 주시옵소서. 다이예누, 에다, 증인의 삶을 살게 하소서. 이스라엘 회중으로 살게 하소서. 한 몸, One body로 살게 하소서. 우리가 단 하나의 받는 의지인 왕국이 되게 하소서. 우리가 The man을 낳을 수 있는 왕국, Kingdom이 되게 하소서. 이제 주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천국이 무엇인지 알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모든 받는 의지가 왕국을 형성하게 하여 주십시요. 이 땅의 것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씨앗을 받을 수 있게 하소서. 말씀을 모조리 잉태하고, 이 말씀을 모두가 잉태하고, 말씀을 낳는 역사가 있게 하소서
우리가 주님 앞에 나갑니다. 주님, 우리가 얼마나 이 위대한 지휘관들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속에 이 위대한 지휘관을 일으켜주시고, 이 위대한 지휘관들에 의해서 당신의 Kingdom이, 에다가 탄생하게 하소서.
이 광야에서 오직 당신의 모든 말씀을 Receive할 수 있는, 당신의 토라를 받아서, 그 씨앗이 풀어질 수 있는 참된 땅, 주기 위해서 받는 당신의 왕국이 세워지게 하여 주소서
당신이 와서 죽으심으로 육체의 모든 경험을 망상이라고 선포하신 주님, 그래서 유다 지파의 지휘관 나손을 우리에게 세우신 주님, 경험에 대한 올바른 진리를 인류에게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십자가가 아니라면 우리는 이 일을 시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진영에 들어가지 못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쭈르가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반석이 되셔서, 참된 의가 되셔서, 의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신 주님. 아싸프를 가르쳐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다비드리 목사
광야에서의 열두지파의 지휘관이 우리안에 다 들어있다.
열두지파는 모두 우리의 마음이다.
봄)유다,잇사갈,즈블론.
여름)르우벤, 시므온, 갓.
가을)에프라임,므낫세,벤야민.
겨울)단,아셀, 납달리.
지파는 (쉐베트) 슈브가 보인다. 테트(본질-지혜)
지파는 슈브의 본질이다. 그 지파속, 회개의 본질로 주님께 갈수있다.
지파는 통치의 막대기. 회개를 본질로 갖고있는 사람이 통치를 할수 있다.
지파는 혼자가 아닌 여러명이다, 먼저 이스라엘이 되었다. 주변의 사람들과 지파를 형성하고 통치를 할수가 있다.
다섯째날부터 지휘관들이 헌물을 드린다.
헌물을 드리는것도 지파의 진영의 위치에 따라 드리게된다.
동쪽,봄)유다:나흐숀-감사를 해야한다.나하쉬(뱀의 지식),경험을 지식으로 살아간다, 리더쉽은 경험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지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나쏘와 같은 숫자값은 쏘네(미움), 경험은 지식이 아니다, 경험을 장대에 매달때 그것을 나쏘, 머리를 계수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식이다.
잇사갈:느탄엘(나탄엘)-주는것, 잇사갈은 토라공부하는 학자, 토라공부를 하는것도 주기위함,
스블론:엘리아브-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다. 주는분이다. 비즈니스도 주기위해 하라.
감사할때 동쪽(봄)진영이 세워진다. 감사의 지식, 주는것과 비즈니스의 목적이 아버지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남쪽(네게브),여름) 수동적인 자유의지가 있다. 남쪽 지방은 삶이 순탄하지 않다
르우벤:엘리쭈르-하나님은 나의 반석이시다, 나의 아버지가 라헬,나의 엄마보다 다른 엄마를 더 사랑한다, 신성을 훈련해야 한다, 하나님은 반석(쭈르-영을 머리로 목적으로 살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상황이 신성을 훈련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의 반석, 기초시다.
시므온:슐루미엘-시므온이 하나님을 찬양하다. 지므리를 데리고 텐트로 들어간다.
시므온은 그 상황을 판단할수 없었다, 슐루미엘(샬롬), 시므온이 봐야할게 평화다,
눈에 보이는 상황을 신성을 훈련하는 것처럼 그 상황을 형상을 훈련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게 평화임을 알아야 한다.
갓: 엘리아싸프-아싸프(모으다), 한몸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Iness 단독자가 아닌 One Body ,모으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서쪽(가을), 에프라임(열매), 가을에 수확한다.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않을때 생긴다.
우리안에 봄,여름의 지휘관이 다 생겨야 열매를 맺을수 있게 된다.
에프라임:엘리샤마-쉐마(듣다) 하나님을 듣는것이다.
순종을 잘한 사람이 아브라함, 나아쎄 베니쉬마 이다.
므낫세(잊어버리는자):가말리엘,김멜이 있다. 김멜로 신성을 훈련 하기위해 선택을 하는거다.
지금의 상황을 잊어버리겠다.
벤야민:아비단-달렛이 있다. 아버지께로 가는 문이 있다.
북쪽(겨울), 통치와 관련있고, 판단하고 정죄한다.
단:아히에제르-판단할때 기준이 형제 여야 한다. 아흐(형제), 에제르(도움)
나의 도움은 형제다. 단지파는 빌하(라헬의 시녀)의 자식이다.
억울함이 있지만 판단의 기준이 형제여야 한다.
아셀: 파기엘-파가(만나다,인카운터하다) 육신과 육신을 만나는게 아니라 마음에 들어가는 거다.
납달리:아히라-형제가 이웃이다.
열두지파 어느곳에도 단독자인 내가 없다, 마지막까지 형제가 이웃이라고, 형제가 이웃이 아니면 무너진다, 형제를 나의 도움으로 보지 않고 악으로 보는 순간 진영이 무너지게 된다.
장대에 달리신 주님을 보고 내경험이 지식이 아니라고 장대에 매달고 우리안에 지파가 다 살아나서 다음여정으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