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행하는 MBC FM ‘배철수의 음악캠프’청취자들의 엽서 사연에서, 점심 먹다가 마주친 옆자리의 직장인들로부터, 혹은 동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주부들로부터 아직도 단골 메뉴로 듣는 얘기가 있다.
“배철수씨, 그때 감전 사고 있은 뒤 괜찮으세요?”
‘아니, 아무 탈 없으니까 지금까지 살아 있고 디제이도 하고 그러는 거죠. 보면 모르슈?’
물론 이 얘기는 머리 속에만 있고 입을 통해서 나오는 내용은 전혀 다르다.
“아, 예. 그 사건을 아직도 기억하십니까? 대단하시네요. 덕분에 기생충도 박멸되고, 뇌세포도 자극을 받아 IQ도 올라가고 상황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기억하고 싶지는 않지만 얘기 나온 김에 그때 그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볼까.
때는 1983년 3월 어느 날.
당시 ‘송골매’의 인기는 가히 하늘을 찌를 듯했다. 우리는 국제 가요제인 ‘동경가요제’에 한국 대표로 출전하기 위해 모든 방송을 중단하고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KBS TV 윤인섭 PD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다른 프로그램 연출을 맡게 됐다며 꼭 좀 출연해 달라는 것.
윤인섭 PD와는 그동안 친구처럼 편하게 지냈던 사이라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어 마지못해 출연하기로 약속을 했다. 프로그램 제목은 ‘젊음의 행진’.
방송은 생방송으로 무난하게 진행이 됐다. 드디어 마지막으로 ‘송골매’가 무대에 설 차례. 그날 연주할 노래는 ‘그대는, 나는’이란 곡이었다. 전주가 끝나고 노래를 하기 위해 마이크에 나가 섰는데 그날따라 조금 삐딱하게 기운 마이크가 눈에 거슬렸다. 워낙 인생을 바르게 살아온(?) 터라 그게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마이크를 바로잡기 위해 오른손으로 마이크를 잡는 순간, 왼손으로 잡은 기타와 오른손의 마이크 사이에 막대한 양의 전류가 흘렀고 나는 그 자리에서 고목이 쓰러지듯 넘어가고 말았다.
인간의 오른손과 왼손 사이에 심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건 감전 사고 중에서도 가장 위험도가 높은 사건이다. 아무튼 공개 생방송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넘어지면서 머리가 터진 나는 누군가의 등에 업혀 피를 질질 흘리며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급한 김에 아마도 악기 운반용 트럭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진 듯하다.
“어떡해. 죽었나봐. 나무토막 같이 뻣뻣해졌잖아.”
아직도 안타까움에 울부짖던 여학생들의 고함소리가 귀에 생생하다.
몇 시간 동안 의식을 잃었다 깨어났을 때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의 한마디도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천만다행입니다. 보기보다 심장이 튼튼하시네요. 액땜 하셨으니 장수하실 겁니다.”
정말 그 덕에 장수를 할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장수를 누리고 있다.
너무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 사건 이후 나는 큰 교훈을 얻었다. 인간은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그리고 그 시기는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사는 동안은 주위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것.
물론 말은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가끔 이 사건을 떠올리면 내 자신을 조금은 되돌아보게 되고 겸허한 자세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도 않고, 남에게 적극적으로 권유할(?) 생각도 없다.
아무튼 이 글을 읽은 독자들만이라도 다음에 우연히 나를 만나게 된다면 절대로 감전에 관련된 얘기는 꺼내지 말아주시길….
배철수(가수, DJ)
78년 대학가요제에서 ‘탈춤’으로 대상 수상.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모여라’등을 부른 그룹 송골매의 멤버로 활약.
90년부터 9년째 MBC FM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털털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화술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라디오 진행자로
1998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